감기가 잠잠해지자 편도염을 앓기 시작한 막내는 결국 수족구까지 왔다. 가지 말까 생각했지만 작년에 코로나 덕분에 못 간외갓집에 올해도 못 간다면 아이들의 불 같은 화가 뒷감당이 안되기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자는 막내는 금방 회복했고, 우리는 다행히 포항으로 출발했다.
뻥 뚫린 고속도로 땡큐
휴게소 우동도 맛있게 먹었고, 차도 안 막혀서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미리 바닷가 평상을 예약하려 했으나, 엄마 친구네 오도리는 해파리의 습격으로 해수욕장이 폐쇄됐다. 해파리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들은 아무도 바다에 안 간다고 했고, 아예 바다를 안 보긴 아쉬워서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구경만 가자했다. 허허벌판이던 환여동은 스카이워크가 생겨 사람이 북적였고, 고소공포증과 찜통더위의 콜라보가 겁나서 올라가지도 않았다. 바다 위에 짧은 다리는 한번 가볼 만하다며 한 바퀴 돌았다. 덥고, 덥고, 덥다. 바다에는 대왕 해파리가 둥둥 떠다녔다. 어릴 때 해수욕장에서 놀 때 둥둥 떠다니던 작은 해파리 떼랑은 차원이 다른 외계 생명체 같았다.
대왕 해파리 너의 정체를 밝혀라
시원한 커피나 마시자고 했으나 아이들은 바다를 본 이상 통제불능의 상태가 됐다. 먹고 싶던 빵집은 노키즈존이라 가보지도 못하고 사방이 아이들로 가득한 모래사장 키즈존으로 달려갔다. 모래놀이만 한다고 했지만, 그럴 거라 믿었지만 역시나 한 발을 물에 담갔고, 한발 더 들어갔고, 결국 바닷물 마셔가며 해수욕을 했다.
어릴 때 뛰어놀던 바다에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뛰어놀고, 무방비 상태로 해수욕장에 있던 늙은 아빠(외할아버지)는 우산으로 대피해 예전에 살던 아파트와 함께 아이들을 바라봤다. 어릴 적 함께하던 추억들이 지금의 우리와 공존하는 이곳이 참 좋다.
미역을 팔아 집을 사겠다는 집념으로 둘째는 미친 듯이 이파리를 주웠다.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자 아직 미역을 못 팔았다며 다 팔야 한다는 아이와 집에 가야 하니 물고기 먹게 바다에 그냥 돌려주자고 하는 어른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결국, 바다에 되돌려주고 왔지만 미역을 못 팔아 돈을 못 벌었다는 소리는 몇 날 며칠이나 계속 됐다.
미역 사세요.
해수욕장에서 탈출하고 계획대로 내가 애정하는 횟집에 물회를 먹으러 갔다. 바로 앞에도 횟집은 가득하지만 난 항상 이 집 물회를 먹는다. 맛있으니까.
몇 년 사이에 횟집은 외곽으로 이사했고, 시내 횟집의 유혹을 뿌리치고 찾아갔다. 이젠 아이들도 커서 회를 잘 먹어 여유롭게 식사를 했고, 자연산 회를 배 터지게 먹었다. 전복회를 무지하게 잘 먹는 막내는 서비스로 주신 전복을 눈치 없이 또 달라고 했다. 추가 주문을 한다고 했으나 사장님은 곁눈질을 자꾸 하시면서 전복이 없다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눈치도 없이 전복을 기어이 시켰다. 사장님은 인심 후하게 전복을 세 마리나 서비스로 주셨다.
배부르게 횟집을 나와 집에 가자마자 곧바로 전 가족 9시 취침을 했다. 피곤하다. 이제 1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