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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게 오는 말들

더할 나위 없는 오늘들

by 글섬

연말이 되면 신이 난다. 뭔가 새로운 게 마구 쏟아질 것만 같은, 다분히 자의적인 착각에 기꺼이 빠져 지낸다. 매년 공연히 고대해 마지 않는 그 새로운 것들 중에 하나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일기장이다. 12월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일정 금액 이상의 도서를 구입하면 저 일기장을 구매할 수 있다. '준다'가 아니라 '살 수 있다'라는 게 함정이긴 한데 그 함정을 또 고대하는 사람이 나다. 얼핏 보기에 매일 일기 쓰는 걸 무척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기 딱이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난 그 안에 하루하루의 날짜 아래 적힌 세계문학전집 발췌문들이 좋다. 처음엔 나도 일기 쓰기에 주력했는데 나중에 보니 무슨 오늘의 운세처럼 오늘 날짜의 명문만 읽고 덮는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따라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들은 매일 이 일 저 일에 치여 매정하게 잘려 날아가 버리곤 했다.


그게 그리 잘려 날아가 버려도 되는 생각들인지 여기에 한 번 가지런히 모아본다. 다 모으고 나면 쓸어 모아 태워 버려야 할 낙엽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낙엽을 태우는 내음처럼 그래도 한때는 초록초록 생생했던 기억의 모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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