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일 토요일 / 데미안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어떤 인생은 한 번만 태어나지 않는다. 데미안에 따르면 이는 자의든 타의든 여러 차례 기존의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너무 여러 번 깨뜨리는 거 아녀? 간단히 말하자면 이번 생은 망했다, 쯤이 되겠다.
뭘 자꾸 깨뜨려야만 하는 세계가 있다는 건 사실 몹시 피곤하다. 뭘 깨뜨리기로 결심하기까지는 그 세계를 구성하려, 혹은 그 세계에 속하려 애를 썼던 것보다 훠얼씬 더 많은 절망과 독려가 필요하니까. 그 과정에서 자진해서 피의자 신분으로 이뤄지는 나 스스로에 대한 검증은 덤이다.
뭐 어쨌든 그래서 태어나기는 한 건지. 어떤 의미로는 그런 것 같긴 하다. 대단한 뭔가가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생긴 대로 사는데도 여러 번의 깨뜨림과 여러 번의 탄생이 필요하다니. 비록 사는 모습은 우툴두툴해도 평생 스스로 태어나지 못하는 인생도 있으니 나름 성공한 삶이다, 라고 오늘도 나를 일으켜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