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마카르 총서 제20권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는 1893년 6월에 샤르팡티에(Charpentier)에서 처음 출간된 소설로, 『루공-마카르 총서』 시리즈의 마지막인 제20권에 해당한다. 이 소설은 제2제정의 몰락과 나폴레옹 3세 황제의 통치 말기인 1872년에 시작되어 1874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졸라는 서문에서 〈파스칼 박사〉가 총서 중에서 유일하게 과학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과학에 대한” 소설임을 밝히고 있다. 졸라는 이 소설에서 총서의 주요 인물들을 모두 다시 언급하고 그들의 삶을 요약할 뿐 아니라, 총서의 모든 철학적 의미를 요약하고자 했다. 또한, 정신의학자인 베네딕트 오귀스탱 모렐(Bénédict Augustin Morel)과 프로퍼스 루카스(Prosper Lucas)에게서 빌려온 유전 이론을 발전시켜 루공-마카르 가계의 유전병적 기질과 역사에 대한 결론을 제시한다.
〈파스칼 박사〉는 출판 당시나 그 이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이 총서의 사족 혹은 부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종말론을 연상시키며 강렬한 파토스를 불러일으키는 〈패주(La Débâcle)〉의 마지막 장면이 총서의 대미를 이미 장식한 느낌을 준다. 또한 1851년 쿠데타와 함께 시작되는 〈루공가의 운명(La Fortune des Rougon)〉에서 보불전쟁과 파리 코뮌으로 끝나는 〈패주〉까지의 시간이 제2제정의 전 시기를 아우르고 있고, 〈파스칼 박사〉의 시간적 배경이 1872년인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인상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1880년경부터 졸라는 계속해서 “과학을 다루는 소설이 전 작품의 결론이 될 것이고 연작을 설명해줄 것이다.”라고 서문을 통해 강조해왔다. 이처럼 〈파스칼 박사〉는 총서의 내적 필요성보다는 작가의 필요성에 더 부합하는 듯하다.
주인공 파스칼 루공(Pascal Rougon)은 〈루공가의 운명〉에서 플라상(Plassans)의 정권을 장악한 피에르 루공(Pierre Rougon)과 펠리시테 루공(Félicité Rougon)의 차남이다.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파스칼은 유전적인 결함이 없다. 단순하고 솔직한 그의 성격은 그의 주변 인물들과는 대조적이다.
환갑을 앞둔 의사 파스칼 루공은 플라상 부근 술레야드(Souleiade)에서 이따금 환자들을 돌보며 조카 클로틸드(Clotilde)와 충실한 하녀 마르틴느(Martine)와 함께 살고 있다. 세속적인 성공과는 담을 쌓은 그였지만 자신의 가문을 대상으로 유전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파스칼에 따르면, 오랫동안 현상을 설명하는 최종적 근거로 삼았던 초월적, 초경험적인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계에 대한 질문은 현상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본질을 묻는 ‘왜(pourquoi)’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들과 그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어떻게(comment)’로 제시되어야 한다. 인간의 이성은 세계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나갈 것이며, 진리를 밝혀내기 위해 인류가 기댈 곳은 바로 과학이다. 과학은 점점 더 많은 사실을 이성의 빛 아래 드러낼 것이고 더불어 인간은 무한한 힘을 가지게 되리라고 파스칼 박사는 믿고 있다. 19세기말 인류는 유례없이 많은 양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나, 그 엄청난 양에 오히려 짓눌려 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inconnu)”이 있을 뿐 “알 수 없는 것(inconnaissable)”은 있을 수 없다. 당장은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모든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다 해도, 지식의 축척은 계속될 것이고 이와 함께 “전진은 계속될 것이다.”
파스칼 박사가 20년 이상 심혈을 기울여 연구했던 대상은 바로 자신의 가문이었다. “여러 경우를 너무도 정확하고 완벽하게 보여주는” 루공-마카르 가문은 파스칼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구 대상이었다. 그는 가문의 가장 내밀한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면서 루공-마카르가의 계통수를 만들었다. 사실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그는 유전 이론을 자신의 가문에 적용시켰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사슬고리는 논리적이고 엄밀한 유전의 법칙에 따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파스칼의 과학이 밝혀낸 진리는 그의 할머니, 가문의 시조 아델라이드 푸케의 신경증적이고 히스테릭한 기질이 유전에 의해 가문의 모든 구성원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격세 유전에 의해 혹은 환경에 의해 이 치명적인 침해로부터 비켜가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가문의 구성원들은 결코 이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델라이드라는 뿌리로부터 시작되어 파스칼을 거쳐 뻗어 오르는 거대한 유전의 서사시에 대해 파스칼의 과학이 밝혀낸 진실은 절망스럽고 비관적이다. 파스칼의 가문에 대한 연구는 바로 “한 가문의, 한 사회의, 전 인류의 생성을 보여주는 방대한 성서”이다. 그의 과학에 대한 낙관과 별도로 파스칼에게 인류의 역사 그 자체는 “어둡고 혐오스런” 역사였다.
파스칼의 근심 중의 하나는 모친 펠리시테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연구 서류를 없애려 하고, 마르틴느와 클로틸드가 그녀의 영향 하에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 신앙을 고수하는 마르틴느에 의해 길러진 클로틸드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가진 동시에 삼촌의 교육으로 과학의 세례를 받기도 했다.
파스칼의 어머니인 펠리시테 부인은 아들이 집안 유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그 결과물들을 장속에 많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의 내용이 밝혀지면 집안의 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서류들을 없애려고 기회를 노리다가, 어느 날 파스칼의 부재 시 방문하게 된다. 그녀가 손녀딸 클로틸드가 보관하고 있는 그 장의 열쇠를 달라고 하여 마르틴느와 함께 서류들을 찾고 있을 때 파스칼이 돌아온다. 그 장면을 목격한 파스칼은 노발대발한다. 그가 열쇠를 내 준 클로틸드에게 불 같이 화를 내며 닦달하자 그녀 역시 지지 않고 그와 맞선다.
12살부터 18살까지 기나긴 사춘기를 보내며 “홀쭉한 키”에 “사내아이처럼 나무에도 올라가는” 개구쟁이였던 클로틸드는 성년이 되자 솔직하고 단호한 성품의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날씬한 여인으로 변모한다. 이성적 설명이 불가능한 “다른 것(autre chose)”에 대한 열망과 합리적 정신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클로틸드에게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우주를 지배하는 변하지 않는 법칙을 따르지 않는 예외는 과학적으로 결코 확인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 지금까지 인간의 지성만이 작용해 왔으며, 그러므로 난 네가 실제적인 어떤 의지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아. (중략) 난 인류의 미래는 과학에 의한 이성의 진보라고 믿는단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과해야 할 신성한 이상은 바로 과학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어. 서서히 획득한 소중한 진리는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며, 그 외의 것은 모두 환영이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진리의 총합은 항상 증가할 것이고 인간에게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줄 것이라고, 또 행복은 아니라 할지라도 평정을 주게 되리라고 믿어.”
클로틸드에게 비이성적 열망을 심어준 마르틴느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다. 마르틴느가 항상 입고 있는 의상은 마치 수녀를 연상시키듯 수녀들과 같은 “검은 옷”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수녀들의 생활태도처럼 조용하고 과묵하다. 그녀는 자기가 맡은 바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충실하게 맡아 수행한다. “파스칼의 형 사카르(Saccard)가 부인이 죽고 재혼하면서 7살 먹은 자기 딸 클로틸드를 파리에서 그에게 보냈을 때 그 아이를 키운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그 애를 성당에 데려가며 그녀가 항상 불사르던 경건한 불꽃을 전수하면서 그 아이를 키운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영향을 받은 클로틸드가 건강을 해칠 정도로 신앙에 전념하자 파스칼로부터 야단을 듣기까지 한다.
어느 날, 남불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신성을 갖춘 성 프란체스코파 카푸친회 수도사가 파스칼이 살고 있는 플라상에 오게 된다. 그는 현대과학의 허무함을 강조하고 이 세상의 현실을 부정하며 미지의 세계와 저승의 신비를 열어주는 설교를 함으로써 마을의 신봉자들을 감동시킨다. 클로틸드는 그의 설교에 심취하여 성당에서 기도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기진맥진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파스칼은 자신이 사랑하는 클로틸드의 쇠약한 몸을 보고 화가 나서 급기야 마르틴느에게 불평을 늘어놓지만 그녀는 오히려 파스칼에게 “아픈 사람들은 분명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이에요.”라고 말해 자신의 종교에 대한 확고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르틴느의 신앙은 이성적인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믿음이다. 마르틴느는 바로 이런 종교관에 입각해 파스칼에 대한 지극한 봉사와 집안일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는 신에게 순종하고 신을 섬기듯 집에서는 똑같은 맹목성, 순종성, 희생과 헌신으로 파스칼을 섬긴다. 성당에서는 신이 그녀의 종교적 주인이고 집에서는 파스칼이 그녀의 현실적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마르틴느가 파스칼에게 바치는 복종과 헌신은 그녀가 그 집의 가정부로서 주인을 섬긴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파스칼을 한 이성으로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파스칼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주종간의 신분차이를 넘어 한 여자가 한 남성에 대해 가지는 사랑과 숭배였던 것이다.
클로틸드는 파스칼 박사가 가난한 주민들을 치료하고 구제하면서 신경조직에 관한 실험과 자신의 가족의 유전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보조하고 도와준다. 파스칼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조카딸 클로틸드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클로틸드도 내심 삼촌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다.
파스칼의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경우는 유일하게 “innéité”의 경우이다. 즉 그는 부모의 정신적 육체적 특성이 혼합, 결합되어 나타나지만 한 부모의 특성이 단독으로 발견되지 않는 “새로운 존재”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네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어머니 펠리시테의 되풀이되는 말, 그를 파스칼 루공이 아니라 항상 파스칼 박사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습관이 스스로를 이 집안의 “예외적인” 존재로 여기는 파스칼의 가정을 뒷받침해주고 그에게 한없는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가문의 피로부터 자유롭다고 확신하고 있는 파스칼 역시 끔찍한 유전의 공포를 경험한다. 클로틸드에게 계통수의 비밀을 설명해 주고 난 후 파스칼 박사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마르틴느와 클로틸드가 자신의 연구를 파괴하리라는 강박 관념, 그가 개발한 주사를 맞고 사망한 환자, 오랜 독신 생활이 가져온 피폐함,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클로틸드를 향한 욕망, 과로 등이 중첩적으로 작용하여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몸이 쇠약해진 것이다.
급기야 “자신의 골수 속에 결함이 소생”했으리라는, “유전이라는 괴물의 발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파스칼은 자신의 경우가 어느 조상과 관계되는지, “돌연히 나타난 알 수 없는 조상”의 정체를 알고자 서재의 장롱을 채우고 있는 연구 서류를 미친 듯 파헤치며, “너냐?... 너냐?... 아님 너냐?... 아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당신, 할머니 당신이 나에게 광기를 물려주었나요?... 늙고 무뢰한 알콜중독자 삼촌, 당신의 고질적인 음주벽의 대가를 지금 내가 치르고 있는 건가요?... 너희들의 비극적인 종말이 정신병원의 감금실 구석에서 처참하게 부패하고 일그러져 끝날 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는 바로 너희들이냐?”라고 외치며 공포에 휩싸인다.
환자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치유의 희망을 주었다고, 보다 건강하고 진일보한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에 찼던 자신조차 전신 마비와 광기와 죽음으로 치달았던 자기 가문의 한 경우일 수 있다는 생각이 파스칼을 걷잡을 수 없는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자긍심의 반대급부로 온 공포로 인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든 그날부터 “파스칼은 악마에 들리게 된다.” 5개월 후 파스칼은 정신적, 육체적 공황으로부터 회복되고, 자신의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 유전과 관계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전과 동일한 강도로 과학의 능력을 믿을 수도, 자신에 대해 자부할 수도 없게 된다. 그 누구보다 이성적인 인간이고 누구보다 튼튼한 정신을 가졌다고 믿었던 자신을 “약간의 슬픔과 약간의 피로가 결국 미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그의 이성을 무장 해제시킨다. 그는 “맙소사! 우리는 너무도 보잘 것 없구나!”라고 중얼거린다.
마르틴느에게 파스칼의 공포는 악마의 소행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적과 미신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마르틴느는 파스칼의 “몸에 악마가 들어간 것”이며 교회에 데려가기만 하면 치유될 것이라고 믿는다. 실증 과학자인 파스칼에게 악마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공포는 과학이 그 “끔찍한 빛”을 들이대면서 그 “가공할 모습을 들추어 낸” 진실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느 날, 클로틸드와 동년배인 의사 라몽(Ramond)이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그녀는 “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에 대해서는 아주 진지한 우정만을 갖고 있어요.”라고 매우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리고는 파스칼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라며 사랑을 먼저 고백한다. 파스칼 역시 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클로틸드였다. “이 어린 소녀가 지금 그를 소유하고 또 그를 고문하며 그렇게 그의 적이 되었다.”
파스칼을 종교처럼 사랑했던 마르틴느는 파스칼과 클로틸드의 결혼 소식을 듣자 “비틀거릴” 정도로 충격에 빠진다. 마르틴느는 왜 화를 내냐고 묻는 클로틸드의 질문에 한 마디 대답도 없이 자기 방문을 거칠게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는, 늘 수녀 같은 단정한 태도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여주지 않았던 마르틴느였건만 “두 손에 얼굴을 묻고” “미친 듯이 울었다.” 그녀는 한 이성을 사랑하고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가진 여자로 변모한 것이다. 하녀인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소유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선망 때문에 그녀의 고통과 아픔은 더욱 크고 더욱 강하게 그녀를 사로잡는다.
파스칼은 과학의 “기적”,실험과 논증으로 얻어낸 실증적 진리를 전유함으로써 가능해질 기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유전의 비밀을 밝혀냄으로써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을 것”이고, “모두가 건강하고 튼튼하고 지적이게 될 때 한없이 현명하고 행복한 최상의 사람들만이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파스칼을 유전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것은 그가 인류의 미래를 걸었던 “20세기의 연금술” 과학도 명석한 이성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를 맞아준 활짝 열린 클로틸드의 품속이었다. 우주적인 차원을 부여받은 이 결합과 더불어 파스칼은 평정을 되찾고, 이후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고치기 위해 모든 것을 말하고자” 했던 자신의 신념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회의에 빠진 파스칼은 유전에 대해, 존재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델라이드의 광기도, 앙투안 마카르의 알콜중독도, 막심 루공의 마비증세도, 신경증이 낳은 세르주 무레의 신비주의도, 백치가 되어버린 데지레 무레도, 클로드 랑티에의 자살도, 자크 랑티에의 살인도, 나나의 육체적, 도덕적 퇴폐도, 그것이 절대적인 악이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아무리 악한 인간도 그 누구에게는 행복을 주는 인간이지 않았던가? 신이 악한 자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신이 개체가 아니라 자기 작품의 전체적인 진행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하듯,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존재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 있다는 사실, 살고자 하는 끈질김에 의해 모든 것은 “용서” 받을 수 있고 “속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많은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이 있다. 이렇게 추론하면서 파스칼은 모든 것을 치료하고 재생시키고자 했던 바람이 인간 이기심의 발로였고 삶에 대한 반항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제 파스칼에게 최상의 지혜는 삶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이때 삶이란 생명력만으로 자기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삶이다.
클로틸드는 그렇다면 이제 파스칼이 치유의 노력을 포기했으므로, 루공-마카르가의 상처들, 인류의 결함들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파스칼은 여전히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앎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난 이후, 난 더욱 평온해졌고 내 두뇌가 확장되고 고양되었음을 느껴. 삶에 대한 나의 열정이 너무도 확실해서, 삶의 목적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게 되었고, 선과 악에 대한 나의 개념에 따라 삶을 개조하려 하지 않고 삶에 전적으로 나를 맡기고 몰입할 수 있게 되었어. 자연이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은 자연 뿐이야. 난 자연이 요구하는 대로 살기 위해 자연을 알려고 노력할 뿐이야.”
클로틸드와 결혼한 지 1년 만에 파스칼은 공증인의 재산 배당금 횡령착복으로 파산의 위기에 처한다. 파스칼은 클로틸드에게 오빠의 병간호를 위해 파리에 다녀오라고 강요한다. 클로틸드가 파스칼의 강요에 못 이겨 파리로 떠난 뒤 파스칼은 자신이 협심증으로 조만간 죽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그 순간 그는 두려워하기보다는 유전의 값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삶의 보편적 법칙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퇴화의 한 증상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이 명백하고도 숙명적인, 아마도 불가피한 유전에 더 이상 분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반대로 겸손해졌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은 모두 나쁘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그는 자기 가문에 속하지 않는다는, 가문의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생각에 왜 그토록 기뻐하며 의기양양해 했던가?〔…〕아아! 자신의 가문에 속한다는 것! 그것은 다른 가문에 속하는 것만큼이나 좋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모든 가문은 서로 닮아 있고, 인류는 동일한 선과 악의 총합을 보여주며 어디서나 똑같지 않았던가?”
그것이 어떠한 가족이든, 한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은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이며 거대한 유기체의 구성원이며 죽음이 예정된 존재임을 의미한다. 이를 받아들이면서 파스칼은 평화롭게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 퇴화의 거대한 힘을 받아들인다. 삶이 지치지 않고 창조적 도약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폐허 위, 아니 부패한 퇴비 위에서이다. 노인은 죽고 아이는 태어난다. 유전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때, 파스칼은 자식을 갖는다는 사실을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최초의 인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결함이 세세손손 계속되리라는 생각은 자신의 독신 상태를 냉소적으로 위로해주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독신은 나쁜 유전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행위가 아니던가! 반면, 자연의 법칙에 동화함으로써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최상의 지혜로 생각하게 된 후 그에게 출산과 아이는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진정한 작품”으로 변하게 된다. 파리로부터 날라 온 클로틸드의 임신 소식은 그를 더없이 기쁘게 하고, 이 새로운 생명 앞에서 유전에 대한 그의 연구도 두려움도 사라져버린다. “아이는 태어날 것이고,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아이가 연속이고 지속될 삶이기만 하다면!” 아이와 함께 아이로 인하여 삶은 계속될 것이다. 삶의 이 무한한 움직임은 개체로서의 한 존재를 넘어선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은 바로 이를 위해 태어나고, 단지 그로 인해, 그들이 물려받고 또 뒤이어 물려주게 될 삶의 과업으로 인해 아이들은 사랑받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행복을 요구하는 자아의 반항을 접고 공동의 거대한 노역을 꿋꿋하게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파스칼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클로틸드가 황급히 파리에서 돌아온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미 2시간 전에 숨을 거둔 상태였다. 파스칼이 죽은 뒤 마르틴느는 계속 함께 살자는 클로틸드의 권유를 뿌리치고 파스칼의 집을 떠난다. 오직 파스칼만이 그녀의 주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죽던 날 펠리시테는 그의 서류들을 모두 불태워버렸고, 그 방화에서 기적적으로 계통수만이 무사할 수 있었다. 연구 서류가 가득 채워졌던 서재의 장롱에는 이제 갓난아기의 하얀 배내옷이 들어있다. 파스칼의 연구, ‘제2제정하의 한 가문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가 가져왔던 긴장과 공포는 종교적인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서재의 고요한 평화 속에서 평정된다. 우연이기라도 하듯 작은 팔로 하늘을 가리키며 모유를 먹고 있는 아이가 인류에게 재생의 약속을 가지고 온, 성모 마리아의 팔에 안긴 어린 예수를 환기시키며 『루공-마카르 총서』는 막을 내린다.
파스칼 박사가 피력하는 신념은 졸라가 수많은 담론에서 동일한 호흡과 열정으로 개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졸라가 영감을 받으며 참조했던 당대의 과학자들과 사상가들, 베르나르(Claude Bernard), 루카스, 텐느(Hippolyte Taine), 르낭(Ernest Renan)의 믿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믿음의 철학적 출발점은 실증주의의 창시자 콩트(Auguste Comte)의 저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허구의 인물 파스칼은 형이상학에 대한 거부, 과학에 대한 유보 없는 신뢰, 과학이 가져올 혜택에 대한 열광, 인류의 사명에 대한 인식을 통해 때로는 과학주의라 불리고 때로는 실증주의라 불렸던 19세기의 한 ‘정신상태’를 대변하고 있다. 자연과 사회에는 어떤 아프리오리(a priori)한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류의 미래는 이성의 진보 속에 있다는 파스칼의 과학과 과학의 알리바이인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은 19세기 실증주의를 거슬러 올라가, 직접적으로 18세기 계몽 철학자들의 확신을 거쳐 데카르트의 보다 신중한 태도로까지 이어지는 합리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모든 사유 주체들에, 모든 민족에, 모든 시대에, 모든 문화에 동일하게 분배되어 있는 ‘자연의 빛, 이성’에 대한 신뢰는 근본적으로 낙관적인 미래를 상정한다.
한편, 과학과 단절되어 전설과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하녀 마르틴느가 전통적 신앙을 대변한다면, 관찰과 분석과 해부의 “잔인한 불빛”이 초래한 위안 없는 파괴에 분개하고 있는 클로틸드는 “과학에 지친” 세기말의 비합리주의를 대변한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진리를 향해 전진하는 과학의 응원가가 아니라 은은한 복음 성가와 함께 끝난다. 열렬한 반교권주의자이자 확신에 찬 공화주의자, “죄악과 거짓으로 점철했던 18세기 동안의 세월”을 누구보다 질타했던 작가의 모습과 “총서의 모든 철학적 의미를 요약”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가진 종교적 함의 사이에 놓인 거리에 우리는 당혹스럽다. 하지만 종교적 비유가 비단 소설의 끝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 전체에 포진해 있었음을 확인할 때, 우리는 소설의 마지막 장이 적어도 이 소설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음을 알게 된다. 소설 내내 삶은 신성한 어떤 것으로 간주되고 삶에 대한 믿음은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결국에는 고통으로부터 자양분을 제공받는다. 무엇보다 과학은 “신성한 이상”으로 간주된다. 과학은 언젠가 불구자를 걷게 만들고 결핵환자를 소생시키고 광인을 정상인으로 되돌리는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며, 어쩌면 전적으로 새롭고 우수한 인류를 “재창조”하는 “경이”가 가능할 수도 있다. 추론과 실험을 통해 전유한 진리가 기적을 일으키리라.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과학이 “죽은 사람을 소생시킬지?” 파스칼의 꿈은 과학으로 “보편적 행복, 지극히 복되고 지극히 선한 미래의 도시를 앞당기는” 것이며, 그는 자신의 믿음을 “사도신경(Credo)”이라 표현하는 등, 파스칼이 생각하는 지식의 이상은 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은 파스칼을 메시아로 간주한다. 한마디로 파스칼은 과학으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다. 〈파스칼 박사〉에 나타난 과학은 종교적 용어를 차용하고 종교의 프로그램을 자기 것으로 하면서 종교의 외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참고 논문 :
1. 〈졸라의 『파스칼 박사』에 나타난 마르틴느의 이미지〉, 홍상희(경성대)
2. 〈졸라의 『파스칼 박사』에 나타난 클로틸드 이미지의 양면성〉, 홍상희(경성대)
3. 〈이성의 신앙 고백 : 졸라의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 오영주(서울대)
4. 〈에밀 졸라의 『루공 가의 재산』 : 가족 소설에 내재된 어머니상〉, 조성애(연세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영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