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마카르 총서 제19권
작품 배경
〈패주(La Débâcle)〉는 1892년에 발표된 소설로, 『루공-마카르 총서』 제19권에 해당한다. 소설은 나폴레옹 3세가 프러시아와 벌인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군이 퇴각하는 것으로 시작해 중반 이후부터는 파리 코뮌의 내용을 담고 있다. 〈패주〉에서 졸라는 전투에서 패한 군인들의 무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파리 코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대지〉에서 아내와 땅을 잃고 군으로 복귀한 장 마카르(Jean Macquart)가 하사관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프랑스가 심각한 외교적 긴장 후에 프로이센(Prussia)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던 1870년 여름에 시작된다. 프랑스군은 베를린(Berlin)까지 곧장 동쪽으로 군대를 진군시켜 빠른 승리를 거두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프로이센 군대는 프랑스 군대보다 먼저 라인강(Rhine)을 건너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고 프랑스를 침공했다.
아내와 땅을 잃고 농민 세계에 실망해 하사관으로 군대에 복귀한 장 마카르는 선량한 마음과 헌신적인 태도로 장병들의 존경을 받는다. 장 마카르가 소속된 프랑스군은 라인강 계곡의 남쪽으로 진군했다가 알자스(Alsace) 지역에 주둔했던 또 다른 프랑스군이 보주(Vosges) 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진군한 프러시안 군에 완패했다는 소식에 전투를 치러보지도 못하고 벨포트(Belfort)로 퇴각해 파리(Paris)를 거쳐 랭스(Reims)로 퇴각한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군은 시간 소모가 많고 부적절한 작전으로 인해 우왕좌왕하느라 사기가 떨어지고 피로감이 가중된다. 퇴각로를 따라 식량과 장비를 적재적소에 이동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프랑스군의 조직체계가 차츰 와해되어 간다.
장의 군대는 랭스로 이동했다가 그곳에서 다시 프랑스 동북부 도시 메츠(Metz)로 진군할 예정이었는데, 메츠에서는 또 다른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군에 포위된 상태였다. 이에, 프로이센군을 피해 퇴각로를 북쪽으로 변경한 장의 군대는 벨기에 국경 근처 뫼즈(Meuse) 강 계곡에 위치한 스당(Sedan) 인근에 당도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장은 장병 모리스(Maurice)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장과 모리스는 이데올로기 면에서 대립되는데, 장은 질서와 지혜가 지배하는 프랑스를 원하는 반면, 모리스는 부정과 불평등을 척결하기를 열망해 혁명을 꿈꾼다. 스당에는 모리스의 여동생 앙리에트(Henriette)가 살고 있다.
스당에서 장의 군대는 프로이센군에 포위된다. 프로이센군은 스당을 둘러싼 언덕에 포병대를 포진시켜 스당을 포위함으로써 프랑스군을 계곡으로 몰아 진퇴양난에 빠뜨린다. 프로이센군의 위력적인 대포 공격을 받고 사면초가의 지경에 이른 프랑스군은 포위망을 뚫지 못한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앙리에트의 남편 바이스(Weiss)는 프로이센군이 마을을 침공했을 때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프로이센군과 싸우다 숨진다. 결국 프랑스군은, 대포를 동원해 프랑스군은 물론이고 스당 시민들까지 절멸시키겠다는 프로이센군의 위협에 굴복하고 만다. 스당에 주둔했던 프랑스군과 황제까지 모두 전쟁 포로가 된다. 1870년 7월 19일 선전포고를 했던 나폴레옹 3세가 마침내 9월 2일에 8만 명이 넘는 프랑스 군대와 함께 항복한 것이다.
장과 모리스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탈출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장은 앙리에트의 도움으로 그녀의 이웃집에 몸을 숨기고, 앙리에트는 겨울이 되기까지 내내 장의 부상을 치료해준다. 한편, 모리스는 곧장 파리로 이동하는데, 그해 겨울과 이듬해 1871년 초봄까지 파리는 프로이센군에 포위당한다.
스당 함락 소식과 함께 황제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민중들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파리의 민중들은 황제를 폐위시키고 제3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뒤 국민방위군을 결성해 결사항전을 선언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을 갖춘 프로이센군에게 그들이 저항할 수 있었던 시기는 고작 수개월에 불과했고, 이듬해인 1871년 1월 28일 그들은 결국 항복하기에 이른다.
패전국 프랑스는 1871년 2월 프로이센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국민의회를 소집했는데,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있던 왕당파 의원들은 프로이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왕정복고를 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은 2월 8일 프랑스 전역에서 실시된 선거로서, 왕당파가 60퍼센트가 넘는 의석을 확보한 반면 공화파는 20퍼센트를 겨우 넘기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파리만은 달랐으니 공화파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미 한 번 민중의 힘으로 국가 권력을 무너뜨린 바 있는 파리 시민들은 이러한 보수파의 움직임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자 베르사이유 정부는 국민방위군의 무장 해제를 명령하고 3월 18일 수비대가 보유하고 있던 대포를 철거하고자 한다. 이에 노동자가 중심이 된 민중들은 저항했고, 3월 26일 그들이 중심이 되어 치른 선거에서 혁명파가 승리를 거두고 정부를 구성한다. 이것이 바로 파리 코뮌(Paris Commune)이다.
바로 이러한 시국에 부상을 치료하고 파리로 돌아온 장은 베르사이유 정부군에 다시 입대한다. 정부군은 일주일 동안 잔학한 학살극을 연출하면서 파리 코뮌을 파괴하고 폭동을 진압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장은 코뮌군에 속해 있던 모리스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장은 자신이 치명상을 입힌 코뮌군이 모리스였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모리스가 죽어가는 사이, 두 달 이상 오빠와 연락이 두절된 앙리에트가 파리를 향해 출발한다. 앙리에트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장은 군대를 따라 파리를 떠난다. 이후 장의 거취는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에서 다시 거론되는데, 그는 프로방스(Provence)에서 멜라니 비알(Mélanie Vial)이라는 시골 여자와 결혼해 살아간다.
〈제르미날(Germinal)〉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설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며 종결된다. 파리는 온통 불타오르고, 장은 절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여인을 동시에 잃었지만, 저자는 새롭게 밝아오는 여명처럼 제정이라는 썩은 가지를 처단한 뒤의 새로운 희망을 피력한다. “장은 그토록 고통스럽고 참혹한 가운데서도 프랑스 전체를 재건해야 하는 위대하고도 고단한 사명을 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패주〉는 1870년의 보불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의 혼돈과 고통 속에서 집단적인 움직임과 개인적인 운명이 교차하는 소설 기법이 일품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방대한 사료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역사적인 다큐멘터리로서의 성격도 강하다. 그러나 전쟁의 진행에 대한 인간들의 무지와 오해, 그리고 잔인하게 부상당한 채 죽어가는 시체들의 ‘자연주의적’인 묘사가 주된 줄거리를 교란시켜, 역사의 필연보다는 무의미와 우연성, 그리고 그 속에 던져진 인간의 조건을 보여주는 듯하다. 따라서 이 작품은 매끈한 서사 담론과, 나아가 현실의 재현, 즉 미메시스를 문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에서 졸라는 전쟁의 서사를 통해서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무의미성, 그 속에서 꼭두각시처럼 같은 역사적인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나약함을 그려내고 있다.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영어판 위키피디아
▶ 참고 논문 : 〈『패주』와 『제오르지크』에서의 역사와 반복〉, 정예영(서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