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마카르 총서 제18권

by 글섬

작품 배경


〈돈(L’Argent)〉은 1890년 11월에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연재된 뒤 1891년 3월에 《샤르팡티에(Charpentier)》와 《파스켈(Fasquelle)》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설로, 「루공-마카르 총서」의 제18권에 해당한다.

졸라로 하여금 돈을 거래하는 금융에 주목하게 한 것은 동시대의 거대 은행 ‘위니옹 제네랄(Union générale)’의 파산 사건이었다. 가톨릭 은행과 유대인 은행의 혈투에서 비롯된 이 파산 사건은 프랑스 전체의 여론을 들끓게 했고, 졸라는 금융이라는 경제활동에서 돈과 관련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작동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바로 이 직감의 산물인 〈돈〉은 아리스티드 사카르(Aristide Saccard)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파리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구체화되는 제2제정의 금융계에 초점을 맞추고 은행과 증권시장을 배경으로 한 금융자본주의를 그리고 있다.

〈돈〉의 증권시장 스토리는 두 은행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하나는 가톨릭 은행가 사카르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 은행가 군데르만(Gundermann)이다. 군데르만은 유대인 은행가의 상징인 제임스 드 로트실드(James de Rothschild)가 모델이라고 알려져 있다.

〈돈〉을 쓰기 위해 작성한 〈초안〉에서 졸라는 “돈을 공격하지도 옹호하지도 말 것. 돈의 세기라고 불리는 우리의 세기와 명예의 세기라고 불리는 옛 세기를 대립시키지 말 것. 많은 사람들에게 돈이 품격 있는 삶을 보장함을 보여줄 것. 돈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 돈은 위생이요, 청결이요, 건강이요, 심지어 지성이다.”라고 피력해 동시대의 지식인들과 달리 돈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던지며 돈의 빛과 그늘을 모두 그리고자 함을 밝히고 있다.

또한, 졸라는 〈초안〉에서 “유대인 문제가 주제의 바탕에 깔려 있음”을 피력한다. “왜냐하면 옛날이든 오늘날이든 유대인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고 돈 문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Diaspora)로 인해 원래 세습 받은 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토지와 무기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고리대금업,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금융업에 전문화되어 있었다. 이런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금융 이윤을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했었던 가톨릭 사회의 미움을 산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가톨릭과 유대교 사이에는 그리스도 수난 문제까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돈〉은 가톨릭교도와 유대인의 이러한 태생적 증오 관계를 돈을 중심 테마로 하여 묘사하고 있다.

아리스티드 사카르는 피에르 루공(Pierre Rougon)과 펠리시테 루공(Félicité Rougon)의 삼남으로,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의 파스칼이 그의 둘째 형이며, 〈쟁탈전(La curée)〉의 시도니(Sidonie)와 〈플라상의 정복(La conquête de Plassans)〉의 마르트(Marthe)가 여동생들이다. 〈쟁탈전〉에서 그는 큰 형인 외젠 루공(Eugène Rougon)의 권유에 따라 자신의 성을 루공에서 사카르로 개명한다. 사카르는 〈쟁탈전〉에서 강간당한 아가씨 르네(Renée)와 돈 때문에 재혼하고, 젊은 아내와 아들의 근친상간 역시 돈 때문에 묵인한 인물로, “돈밖에 모르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인간”, “사물과 사람을 녹여 돈을 주조하는 인간”이다. 〈돈〉은 〈쟁탈전〉 이후 약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 - 3


오전 열한 시, 사카르는 증권거래소 앞 샹포(Champeaux)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사카르는 바로 옆 테이블에는 앉은 증권 중개인 마조(Mazaud)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마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투기꾼들인 피유로(Pillerault), 모제(Moser), 살몽(Salmon)에게서도 냉정하다 못해 적대감이 느껴졌다. 불행을 초래한 마지막 토지 거래로 인해 몽소 공원 저택을 채권자들에게 넘기고 월세 아파트 한 칸으로 내몰리도록 파산했던 이후, 예전에는 당당히 군림했던 레스토랑이건만 이제는 사카르가 들어와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의 형 외젠 루공마저 동생이 파산하자 자신의 평판이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해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사카르는 처음 파리에 상경했던 시절보다 더 비참하게 느껴졌고, “결코 올라보지 못한 곳까지 오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한참만에야 사카르가 기다리던 위레(Huret)가 나타났다. 국회의원 위레는 내무부 장관 외젠 루공의 충복이었다. 사카르는 동생을 개인적으로 만나려 하지 않는 형에게 제삼자인 위레를 심부름꾼 삼아 최후의 도움을 청했던 참이었다. 그러나 외젠은 사카르가 프랑스를 떠난다면 총독 같은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제안해왔다. 결국 파리에서는 절대 사카르를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때, 레스토랑으로 군데르만이 들어온다. “은행 왕이요 증권거래소와 사교계의 지배자”인 군데르만은 예전에 몽소 평원 땅투기를 둘러싸고 사카르와 말다툼을 하고 서로 반목하게 된 육십대의 남자였다. “한 사람은 정열적이고 향락적이었던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검소하고 냉정하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에 양자는 사이좋게 지낼 수 없었다.” 군데르만을 본 사카르가 화가 치밀어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군데르만이 사카르에게 사업에서 손을 뗐다던데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순간, 격분한 사카르는 자신도 모르게 “2500만 프랑의 자본금을 보유한 금융회사를 차릴 생각”이라고 쏘아붙이고 나온다. 사카르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는 말이었지만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고 결심한다.


거리로 나온 사카르는 뷔슈(Busch)와 마주쳤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뷔슈는 메솅(Méchain)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뷔슈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정관리 주식 암거래였고, 그는 그녀를 통해 법정관리 주식을 모으거나 채무자들을 추적했다. 이윽고 메솅 아줌마가 도착했고, 사카르는 이내 자리를 떴다. 메솅 아줌마는 사카르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흥분했다. 그녀의 고모의 딸인 사촌동생이 열여섯 살 때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을 때 같은 건물에 살던 유부남에게 건물 계단에서 성폭행을 당했는데 남자는 합의금 명목으로 600프랑의 어음에 서명한 뒤 어음을 지불하지 않고 한 달 만에 사라졌고, 사촌동생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후 사촌동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거리를 배회하다 비참하게 죽었고, 그 바람에 사촌동생의 아들 빅토르(Victor)를 메솅 아줌마가 떠맡게 되었다. 그 유부남에 대해서는 어음에 ‘시카르도’라는 서명 외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었는데 메솅 아줌마는 그를 추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보았던 사카르를 빅토르가 판박이처럼 닮았던 것이다. 그러자 뷔슈는 사카르의 과거를 떠올렸다. 파리에 막 상경해 어려웠던 시절에 사카르의 첫 번째 아내의 성이 바로 ‘시카르도’였던 것이다. 게다가 어음에 남긴 서명의 필적 또한 사카르의 것과 일치했다. 뷔슈는 사카르를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라고 비난하고는 메솅 아줌마에게 사카르가 지금은 땅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적시를 기다리자고 말했다.


파산 후 아내가 죽고 사카르가 아들 막심(Maxime)의 집으로 피신하려 했을 때 막심조차 아버지를 자기 집에 거두기를 거절했었다. 그때 도르비에도(d’Orviedo) 대공 부인이 그에게 선뜻 헐값으로 도르비에도 저택 1층의 호화로운 방을 내주었다. 대공 부인은 남편인 대공의 재산이 주식 투기를 통해 순진한 가난뱅이들을 파산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며 번 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남편이 뇌출혈로 급사한 다음날부터 일체의 사교계 생활을 청산하고 오직 자선사업을 위해서만 살았다. 그녀가 노동 학교 사업에 몰두했을 때 빈자들을 위하는 그녀의 마음에 감복한 사카르가 회계를 자청해 몹시 양심적으로 일했던 인연이 있었다.


도르비에도 저택의 3층에는 엔지니어인 아믈랭(Hamelin)과 그의 누이 카롤린(Caroline) 부인이 살고 있었다. 서른여섯 살의 카롤린 부인은 “키가 크고 튼튼했고, 솔직하고 매우 고상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오빠인 아믈랭을 따라 파리로 와서 가정교사 일을 하며 오빠를 부양하다가 그녀의 훌륭한 재능과 지성에 반한 백만장자 양조업자와 결혼했는데 몇 년 후 남편의 의처증 때문에 겨우 스물여섯 살에 빈털터리로 이혼해야만 했다. 이후 아믈랭이 일하는 동방의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지내다가 구 년 만에 귀국했다. 그녀는 오라비가 공사에 전념하는 동안 다양한 독서를 통해 교양을 다졌고, 네 개의 언어를 구사했다. 귀국 후 아믈랭이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저축이 빠르게 고갈되면서 남매는 상당한 경제적 궁핍에 직면해 있었다. 사카르는 아믈랭에게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는 출자자들로부터 일거리를 얻어주었고, 이를 계기로 아믈랭 남매와 친밀해졌다.


어느 날, 사카르는 생활고를 토로하는 카롤린 부인에게 월급 300프랑으로 자기 집을 관리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카르는 여성의 부재로 집안일에 어려움을 절감했던 터였다. 그녀는 사카르의 수많은 집안일을 처리했고, 몹시 꼼꼼하게 회계를 봄으로써 지출의 절반을 줄였다. 그렇게 좀 더 친밀해진 관계가 이어지다 어느 날 밤 사카르는 우연한 계기로 그녀를 품에 안게 되었다. 서로 사랑하지도 않은 채 한순간의 감정으로 벌어진 일이라 카롤린 부인은 끔찍한 슬픔에 빠졌다.


아믈랭에게는 동방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절감했던 동방의 열악한 운송 수단에 착안한 동방 철도회사 사업이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아믈랭은 은광과 탄광까지 포함된 이 사업 구상에 대해 사카르에게 열변을 토했고, 사카르를 흥분시켰다. 결국 사카르는 이 사업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다. 2500만 프랑의 자본으로 출범할 주식회사를 위해서는 500프랑짜리 주식 5만 주를 미리 수용해줄 신디케이트를 창설해야 했다. 사카르는 그 회사의 이름을 “만국 은행(Banque Universelle)”이라 붙이고 곧장 마조를 찾아갔다.


마조는 사카르의 만국 은행에 대한 계획을 듣고는 소액 자본금으로 시작한다면 이내 곤경에 빠질 거라고 지적했다. 마조는 군데르만에게 부탁해보라고 조언했지만, 사카르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고 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마조의 사무실을 나선 사카르는 군데르만을 찾아갔다. 사카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반유대주의자였다. 금융계의 적수 군데르만에 대한 그의 증오는 군데르만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더욱 증폭되었다. 50세의 정력적인 은행가 사카르는 집요하게 돈을 추구하지만, 재물을 축적하기만 하는 수전노가 아니었다. 그가 축재에 몰두하는 진정한 이유는 재물을 소비하기 위해서, 그것도 과시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였다. 간단히 말해 사카르가 선호하는 것은 축재가 아니라 축제인데, 이런 면에서 군데르만은 사카르의 대척점에 섰다. 군데르만에게 가장 중요한 돈의 기능은 저장 기능이었다. 사카르와 달리 허구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열정과 술책이 아니라 논리와 진실에 따라 투자하는 군데르만에게 패배란 없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의 축적에서 찾는 군데르만은 이미 10억 프랑이라는 천문학적인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밀려드는 증권 브로커들과 주식 중개인들을 접견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군데르만은 한참 동안 사카르를 기다리게 한 후에야 사카르가 설명하는 만국 은행의 설립 계획을 들었다. 군데르만은 사카르의 파산을 확신하며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봉사는 당신의 신디케이트 창설을 막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카르는 분노로 몸을 떨며 군데르만의 집을 나왔다.


결국 사카르는 마조가 믿을 만한 사업가가 아니라고 지적한 데그르몽(Daigremont)을 찾아갔다. 사카르가 신디케이트 계획을 밝혔을 때 데그르몽은 사카르의 형 외젠 루공이 이 사업에 동참한다는 조건 하에서 사업 지원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드 보앵(de Bohain) 후작과 세디유(Sédille)까지 동참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사카르는 하는 수 없이 곧장 국회로 가서 위레를 만났다. 위레는 질색했지만, 사카르가 데그르몽이 이미 신디케이트 창설에 동참해 외젠의 정치적 영향력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위레를 이사회의 일원으로 임명할 거라고 약속하자 동요했다.


다음으로 사카르는 드 보앵 후작과 세디유를 연이어 만났다. 유명인사인 드 보앵 후작은 신생 회사들이 장식적 역할을 위해 이사회에 그의 이름을 올리려 앞다투어 삼고초려하는 인물이었고, 삼십 년 동안 자신의 실크 가게에서 성실하게 일한 세디유는 우연히 맛본 주식 투자의 이익으로 투기의 열정에 휩싸여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데그르몽이 동참했다는 말에 흔쾌히 동참을 결심했다.


사카르는 다시 데그르몽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위레가 방문했다. 이윽고 세 사람은 시가 500프랑짜리 주식 5만 주로 이루어진 자본금 2500만 프랑으로 금융회사, 즉 만국 은행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 은행가 콜프(Kolb)도 주주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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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악재로 인해 다섯 달 동안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사카르는 대공 부인에게 투자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카르가 그녀의 저택 안마당과 일층을 사무실로 개조해 사용하게 해달라는 청은 어렵사리 허락했다. 그리고 마침내 관련 법령 검토를 거쳐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었다. 사카르는 아믈랭에게 기술 고문 역할을 맡겼다. 카롤린 부인은 원인 모를 기이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결코 사카르를 불신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주식 투자란 결국 투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파리의 증권시장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소문에 따르면 성공이 너무도 확실했기에 사카르의 집은 만국 은행의 주식을 사고 싶어 하는 청탁인들로 가득 찼고, 인파는 나날이 점증해갔다. 마조도, 증권 브로커 마시아(Massias)도 그의 집을 방문했다. 장트루(Jantrou)가 사카르를 방문해 폐간을 앞둔 한 신문사 매입을 제안했다. 금융회사가 신문을 소유하면 언론을 이용해 막강한 힘을 얻게 된다고 지적하는 장트루에게 사카르는 신문사 매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산도르프(Sandorff) 남작 부인도 남편이 모르는 개인 재산을 투자하기를 원했고, 보빌리에(Beauvilliers) 백작 부인도 그녀의 딸 알리스(Alice)와 함께 사카르를 찾아와 알리스의 지참금으로 만국 은행 주식 매수를 청했다. 카롤린 부인의 추천으로 사카르를 찾아온 늙은 심부름꾼 드주아(Dejoie)도 그의 딸 나탈리(Nathalie)와 함께 방문해 한 푼 두 푼 어렵사리 긁어모아 마련한 나탈리의 지참금으로 만국 은행의 개인 주주가 되길 희망했다.


이틀 뒤 사카르는 만국 은행의 설립 증서를 받았다. 그 다음 주엔 창립 주주총회가 개최되었다. 약 4만 주를 대표하는 백스물두 명의 주주가 참석했다. 사카르는 엔지니어 아믈랭과 자기 명의로 각각 500주를 등록했는데, “대금 지불은 펜대를 놀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스무 명의 이사회가 구성되었다. 정관 규약에 따라 이사회는 연간 5만 프랑에 이르는 출석 수당 외에 수익의 10퍼센트를 받게 되어 있었다. 이사장으로 추대될 아믈랭을 비롯해 데그르몽, 위레, 세디유, 콜프, 드 보앵 후작, 사카르가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다.


한 달 뒤 11월 초순에 사치스러운 설비를 갖춘 만국 은행 개조 공사가 한창일 때 뷔슈가 사카르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사카르가 아니라 그의 관리인 카롤린 부인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사카르가 부재중일 때를 노렸다. 빅토르에 관한 뷔슈의 이야기를 들은 카롤린 부인은 사카르의 충격을 완화시켜주고픈 자애로운 마음에, 자신이 먼저 쪽방촌에서 기거하는 메솅 아줌마와 빅토르를 만나보겠다고 자처했다. 메솅 아줌마에 따르면 열두 살의 빅토르는 학교도 거부하고 도둑질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골치 아픈 아이였다. 쪽방촌의 불결하고 처참한 환경에서 빅토르를 마주한 카롤린 부인은 사카르에게 빅토르를 보여주기 전에 먼저 그를 몇 달 동안 노동 학교에 보내 재생의 삶을 살게 하기로 결심했다.


메솅 아줌마는 6천 프랑을 요구했다. 카롤린은 2천 프랑을 먼저 지불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녀에겐 돈이 없었다. 그녀는 막심을 찾아갔다. 그러나 막심은 이복동생 따위엔 관심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자 카롤린 부인은 궁여지책으로 그녀 자신이 막심에게 2천 프랑을 빌려야 했다. 다음 날, 그녀는 빅토르를 노동 학교에 입학시켰다.


카롤린 부인은 사카르의 과거사로 인해 역겨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에게도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이해하려 애썼고, 보호자 입장에서 빅토르를 정기적으로 만나러 다니다 보니 모성애가 생겨, 어느 날 그녀는 다시 사카르의 품에 안겼다. 그때부터 사카르는 밤마다 그녀를 가졌고, 그녀는 “깊이 있는 지성과 올바름으로써 거의 모성적인 애정으로 그의 힘겨움을 덜어주었다.”


아믈랭 남매는 말라리아로 돌아가신 친척 아주머니로부터 약 30만 프랑에 달하는 뜻밖의 유산을 물려받고 만국 은행 사업에 투자했다. 그 무렵, 파리 전역에 붙은 은광 채굴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광고 포스터는 사람들을 자극하고 열광시켰다. 만국 은행 주가가 폭등했다. 아믈랭이 철도 공사를 위해 동방으로 떠나고, 카롤린 부인과 사카르는 부부처럼 지냈다. 빅토르는 노동 학교에서도 갖은 악덕을 저질렀기에 그녀의 은밀한 불안과 고민은 깊어갔다.


장트루의 제안으로 만국 은행의 설립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사카르가 인수했던 가톨릭계 신문 ‘레스페랑스(l’Espérance)’의 사장 장트루는 만국 은행을 위한 광고를 폭넓게 조직했다. 그는 매호마다 사카르의 사업이 얼마나 훌륭한지 광고했고, 거대 정치, 문학 신문들에 일괄 청부 조건으로 일련의 호의적인 단평과 찬사로 가득 찬 기사를 싣게 했다. 사카르는 형 루공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채 위레가 레스페랑스에 루공에 대한 찬사의 기사를 기고하자 위레를 불러 노발대발하더니 정보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자기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6월 15일에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더니 프로이센이 기습 작전으로 작센(la Saxe)을 정복했다. 프랑스의 중립으로 인해 주가 하락세가 멈출 기색이 없더니 7월 4일에 청천벽력 같은 자도바(Sadowa) 전투 소식에 모든 유가증권이 일제히 폭락했다. 주식 매도 주문이 쏟아졌다.


7월 4일 저녁 여섯 시경에 사카르는 신문사에 들렀다가 상기된 표정으로 뛰어 들어온 위레를 만났다. 위레는 오스트리아 황제가 프랑스 황제의 뜻을 받아들여 베네치아를 프랑스에 양도하고, 프랑스 황제는 프로이센 황제와 이탈리아 국왕에게 휴전을 호소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 루공의 책상 위에서 기밀문서인 공문을 확인하고 달려온 참이라 다음 날 아침 신문에도 이 소식은 알려지지 않을 참이었다. 사카르는 위레에게 절대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한시바삐 매수 주문을 하러 증권 브로커와 장외 주식 중개인, 증권 중개인 들을 찾으러 달려갔다. 이튿날 아침 신문에도 아무런 기사가 나지 않자 사카르는 샹포 레스토랑에 들러 시세 폭락을 예상하는 피유로와 모제의 비관적인 푸념을 들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증시의 개장을 기다렸다.


이윽고 한 시 종이 울리고 증시가 개장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내려가던 증시가 어느 순간 갑작스런 매수를 시작으로 매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급기야 주가가 폭등했다. 한 시 사십오 분에야 전쟁 종식 소식이 터져 나왔고, 가공할 폭등이 시작되었다. 재앙에 가까운 폭등이었다. 재앙의 규모는 실로 엄청났다. 특히 유대계 은행이 끔찍한 손실을 입었고, 군데르만은 개인적으로 800만 프랑을 잃었다. 사카르를 비롯해 아믈랭과 위레, 데그르몽, 드 보앵 후작 등이 합법적으로 거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 시각, 거리에는 유럽의 맹주인 나폴레옹 3세를 찬양하는 물결로 가득했다. 그러나 의회에서는 프랑스가 묵인한 모든 것 덕분에 프로이센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카르의 이 첫 번째 승리는 전성기를 맞이한 제정의 개화와 일치했다. 루공은 증권거래소의 소동을 알고는 위레를 자기 곁에서 내쫓아버렸다.


두 달 뒤 9월, 군데르만에 대한 승리로 열정에 사로잡힌 사카르는 주주들에게 주당 10프랑의 배당금을 나눠주고 이사들에겐 10퍼센트의 수익을 지불한 뒤 이사회를 움직여 두 번째 증자를 받아들이게 했다. 새롭게 10만 주를 발행하여 기존 주주들에게 소유 주식만큼 할당함으로써 자본을 5000만 프랑에서 1억 프랑으로, 두 배로 늘렸다. 증자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750프랑이었던 주식이 사흘 만에 900프랑으로 치솟더니 12월이 되자 1000프랑을 돌파했다.


이 터무니없는 시세를 지켜보던 군데르만은 주가가 1500프랑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1500프랑에 이르자 정기거래 때마다 조금씩 만국 은행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그는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며 거대 은행을 위협하는 만국 은행이 저절로 균열이 생길 때까지 냉정하게 기다렸다가 마지막 한 방으로 무너뜨릴 작정이었다. 얼마 뒤 사카르가 초호화 신사옥을 짓고 싶은 열망에 대형 건물을 구입할 때 군데르만은 비밀리에 자본을 투입했다.


얼마 뒤 주식 정보를 빌미로 산도르프 남작 부인이 신문사로 찾아와 사카르에게 순순히 몸을 맡겼는데, 바로 그때 카롤린 부인이 신문사에 들렀다가 그녀가 사환으로 취직시켜준 드주아를 통해 두 사람의 밀회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카르를 사랑하고 있던 그녀는 너무도 뼈저린 아픔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은 채 조용히 신문사를 나섰다.


7 - 9


그리고 두 달이 지나도록 카롤린 부인은 혼자만의 고통 속에서 살았다. 질투가 눈과 귀를 열어준 이후, 사카르의 불법 행위가 계속되며 끊임없이 심화되고 있음을 깨달았기에 더욱 후회하고 자책했다. 그런데도 사카르를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그와 일상화된 내밀한 정사를 지속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불행하게 했다. 그렇게 매일 질투와 불행 속에 눈물짓던 어느 저녁에 불쑥 막심이 아버지를 만나러 방문했다가 혼자 울고 있던 그녀를 발견했다. 막심은 그녀에게 오직 돈만을 추앙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모든 과거사를 낱낱이 알려주며 아버지는 구제불능 인간이니 아버지한테 속지 말라고 조언한 뒤 돌아갔다.


막심으로 인해 심하게 동요된 카롤린 부인은 사카르가 오기 전에 오빠가 있는 동방으로 떠나려 당장 짐을 쌌다. 바로 그때 하인이 들고 들어온 편지 꾸러미 속에서 오빠의 편지를 발견했다. 아믈랭은 새로운 증기선의 완벽한 장비와 빠른 속도 덕분에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고, 은광에서는 본격적으로 은이 채굴되고 있으며, 자신이 곧 개통시킬 철도 사업에 대한 소식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불현듯 카롤린 부인은 “돈이란 내일의 인류를 자라나게 할 거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투기 없이는 풍요를 생산하는 거대 기업도 있을 수 없고, 욕망 없이는 후세도 있을 수 없다”는 사카르의 이론이 떠올랐다. “중독과 파괴를 초래하는 돈이야말로 사회적 생장의 효모였고, 인간들을 서로 가깝게 하고 대지를 평화롭게 할 대역사에 필요한 부엽토였다.” 돈을 저주하던 그녀였지만 비로소 돈에 대해 공포가 뒤섞인 경탄에 빠져들었다.


사카르가 돌아왔을 때 카롤린 부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미소로 그를 맞았다. 카롤린 부인은 사랑의 관능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연인을 공유하는 고통을 감내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그토록 자애로운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카롤린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카르가 고집스레 지은 만국 은행의 초호화 신사옥은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의 덫”으로 구경꾼들을 사로잡았다. 사옥의 성공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홍보 효과로 따지자면 장트루의 값비싼 광고를 능가했다. 사카르는 자본을 1억 프랑에서 다시 1억 5천 프랑으로 증식하고자 했다. ‘레스페랑스’는 야당에 합류하며 인기 있는 신문이 되어 만국 은행을 프랑스 방방곡곡과 전 세계에 알렸다. 게다가 벌써 프리미엄을 일구어 주주들에게 수익금을 배분한 만국 은행의 증자 소식은 온 나라를 흥분으로 들뜨게 만들었다. 보빌리에 백작 부인과 알리스는 마지막 남은 영지까지 전 재산을 투자했다. 모든 주주들이 시세가 더 올라갈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8월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아믈랭이 귀국했다. 사카르는 오누이에게 주주총회 표결 이전에 이사회가 동의해야 할 결의안들을 설명했다. 그는 만국 은행의 자본금을 2500만 프랑에서, 5000만 프랑, 1억 프랑, 1억 5천만 프랑으로 늘릴 때마다 기존 주주들이 매수를 거부한 주식을 명의 대여인을 통해 허구적으로 떠안아왔다. 게다가 사카르는 이번 증자 때는 주주의 유통에 필요한 돈 가운데 모자라는 2500만 프랑을 미리 결산한 연간 수익 3600만 프랑에 보충하려 했다. 아믈랭은 아직 이익이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전 결산 방식은 온당하지 못하니 가상의 배당금 말고 진짜 배당금을 줘야 옳다고 지적했다. 카롤린 부인 역시 서두르지 마시고 증자를 몇 개월 미루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카르는 예정보다 앞서 모든 신문에 결산을 발표해 요란하게 미리 예고하면, 주식 시세가 끝없이 오르게 될 것이므로 바로 그걸 노린 아이디어라고 흥분했다. 아믈랭은 명의 대여인이 과도하게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에 현금 보유액이 턱없이 부족한 현황의 위험성을 다시금 지적했지만, 사카르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세 3천 프랑을 공언하며 오누이를 압도했다.


사카르는 대부분의 이사를 매수해 이사회를 수중에 넣었다. 오직 데그르몽만이 그로부터 독립적이었는데, 그로 인해 사카르는 가끔씩 불안해졌다. 결국 사전 결산안은 이사회를 통과했고, 다음날부터 주주총회 관련 기사가 쏟아지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가는 순식간에 2000프랑에 달했다. 드디어 황금의 왕국에 군림하게 된 무한한 자부심으로 사카르는 자신의 신문에 루공 장관에 대한 비난 기사를 실으며 형에 대한 칼을 뽑아 들었다.


한편, 너무도 침착한 군데르만은 인내와 논리에 온 힘을 쏟으며 만국 은행 주가의 지속적인 상승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사카르를 그렇게 상승시킨 것도 그의 열정이었지만, 그를 몰락시킬 것도 그의 열정임”을 그는 확신했다. 승리에 도취된 사카르는 과시적 소비로서 권력과 명예를 드높이고자 나폴레옹 3세의 애인 드 죄몽(de Jeumont) 부인에게 하룻밤 화대로 20만 프랑을 지불했고, 이는 사교계에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카롤린 부인은 빅토르로 인해 막심에게 빌려온 2000프랑을 갚았지만, 나머지 4000프랑을 요구하는 뷔슈의 압박에는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뷔슈는 사카르에게 직접 편지로 어음에 대한 언질을 주었다. 사카르는 뷔슈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비로소 빅토르와 관련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롤린 부인이 선금으로 지급한 2000프랑을 듣고 대경실색한 사카르는 뷔슈에게 사기꾼이라고 맹렬히 비난하고는 곧장 카롤린 부인에게로 갔다. 사카르는 빅토르를 당장 데리고 와서 가정교사를 붙여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밀려드는 일에 치여 사카르는 빅토르를 데리러 노동 학교를 방문할 시간이 없었다.


아믈랭은 다시 철도 공사 현장으로 떠났고, 카롤린 부인은 혼자 남아 과열된 주식 시세로 힘겨워했다. 11월이 되어 주가가 2200프랑에 이르자 그녀는 오빠의 지시대로 사카르 몰래 1000주를 팔았다. 그리고 얼마 후 주가가 2500프랑에 달했을 때 카롤린 부인은 다시 1000주를 팔았다. 과도한 주식 열기를 우려한 매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거대 유대인 은행들은 만국 은행의 전진과 세력에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고, 군데르만은 가능한 한 빨리 이 위험한 맞수를 쓰러뜨려 광적인 열기를 가라앉히는 게 현명한 조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불어나는 손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식을 매도하고 있었다. 사카르는 패배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12월 초순에 주가는 2700프랑에 이르렀다. 유대인 은행들의 매도도 계속되었다. 카롤린 부인 역시 오빠의 지시에 따라 마지막 주식 1000주를 매도했다. 카롤린 부인은 비정상적인 주가를 정상화시키는 게 회사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카르는 계속해서 주가 3000프랑에만 집착했다. 그는 주식 매수를 통해 시세 상승을 유도하며 주식을 조작하고 있었다. 12월 21일, 마침내 주가가 3000프랑에 이르렀다.


10 - 12


12월 정기거래 결제 날이 되었다. 증권거래소의 중앙홀은 사람들로 가득 차 소란스러웠다. 사카르를 비롯해 드 보앵 후작, 세디유, 콜프, 위레는 물론이고 드주아, 장트루까지 모두가 증권거래소로 몰려와 마지막 시세 발표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군데르만의 매도가 1000만 프랑을 넘어섰다고 수군댔다. 그야말로 사카르와 군데르만의 “진검승부”였다. 투기꾼들은 매도와 매수로 나뉘어 열기를 더해갔다. 시세 발표가 있는 세 시까지 만국 은행 주가는 등락을 반복했다. 이윽고 마지막 시세가 전해졌다. 전날보다 30프랑 더 상승한 3060프랑에 달했다. 사카르는 승리의 영광 속에 의기양양하게 증권거래소를 나갔다.


이제 만국 은행 주가가 곧 붕괴되리라는 예상 속에 하락세 투자를 계속했던 하락세 투자자들은 파산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군데르만만은 상황이 달랐다. 그는 치명적 하락이 자신에게 승리를 안겨줄 때까지 시세 차손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현물 없이 주식을 매도할 수 있었다. 사카르는 끝없는 매수로 인해 금고가 비어갔다. 만일 하락이 현실화되면 이번에는 시세 차손을 지불해야 할 테고, 현금으로 주식거래를 할 수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이 정기거래 결제일을 연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카르와 군데르만의 결투는 파리를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고, 사람들은 혼란과 의혹 속에서 동요되었다.” “이 결투에서는 승자조차 자신의 피를 모두 쏟고 있었고, 돈을 건 가난한 투기꾼들이 사지로 몰리고 있었으며, 양자는 자신들이 쌓아놓은 파산의 잿더미 위에서 서로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정기거래 결제가 완료된 다음날인 1월 3일, 갑자기 만국 은행 주가가 5프랑 하락했다. 그러자 사카르는 상당량의 주식을 매수하여 이튿날 주가를 다시 30프랑 올려놓았다. 하지만 1월 5일에 다시 주가가 40프랑 하락했다.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날마다 주가는 등락을 반복했다.


사카르는 엄청난 주식 매수로 인해 돈이 바닥났고, 전투를 계속하기 위해 외국에서 할인 융통어름을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보를 입수한 군데르만은 적시라고 판단해 자신이 보유한 수십억 프랑을 출자해 대대적인 매도를 감행했다. 사카르는 데그르몽을 찾아가 추가 지원을 호소했고, 데그르몽은 사카르에게 투자자들을 동원한 대규모 추가 매수를 약속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군데르만의 대대적인 매도 정보를 접한 데그르몽은 사카르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부를 매도했다.


마침내 시세가 폭락하고야 말았다. 매도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장내에는 끔찍한 공황 상태가 형성되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대폭락이었다. 시세는 단숨에 1500프랑, 1200프랑으로 추락하더니 급기야 900프랑으로 내려앉았다. 대재앙으로 경악한 홀은 마지막 시세가 830프랑에 이르자 무시무시한 침묵이 감돌았다. 영문을 모른 채 궤멸을 지켜보던 사카르는 죽을 것처럼 온몸이 경직되었다.


공포에 질린 카롤린 부인의 급전을 받고 아믈랭이 파리로 돌아왔다. 만국 은행 주가는 이제 430프랑으로 내려갔다. 그럼에도 하락이 계속되며 시시각각 무너져 내렸다. 카롤린 부인은 주식 매도 대신 다른 방법을 동원했어야 했다는 회한으로 가득 찼다. 아믈랭은 사카르의 주식 시장 조작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사카르는 그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은 채 배신자들이 재앙을 초래했을 뿐, 곧 모든 것을 재건할 것이라고 여전히 낙관했다. 놀랍게도 군데르만은 만국 은행의 파산선고를 막기 위해 맨 먼저 원조를 제공했다. 이는 몰락을 지연시킴으로써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려는 술책이었다.


사실 내무부 장관 외젠 루공과의 불화가 가장 큰 악재로 작용했다. 루공을 비롯한 제정의 내각은 유대인 은행들과 긴밀하게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 검찰총장 델캉브르(Delcambre)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산도르프 남작 부인의 정부로, 사카르와 남작 부인의 밀회 현장을 덮쳤던 적이 있었기에 사카르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델캉브르는 루공이 사카르를 버리자 사카르가 법의 그물망에 걸려들 구실만을 찾고 있었다.


바로 이때 뷔슈가 재판소로 갔다. 그는 사카르가 강간으로 생긴 아이를 감금해두고 있다고 떠들썩한 스캔들을 일으켜 사카르로부터 돈을 받아낼 심산이었다. 뷔슈가 작성한 사기 혐의 고소장은 곧바로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되었다.


이튿날, 두 명의 경관이 사카르를 체포하러 들이닥쳤다. 바로 그 시각, 아믈랭도 체포되었다. 카롤린 부인 혼자 남아 욕설을 퍼붓는 모든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만국 은행의 파산으로 인한 주요 은행의 줄지은 도산 외에도 도처에서 개인 주주들의 비극적 참상이 드러났다. 지참금을 날린 탓에 딸 나탈리가 가출해버린 늙은 심부름꾼 드주아, 딸 알리스의 지참금은 물론이려니와 마지막 남은 영지조차 잃은 보빌리에 백작 부인, 삼십 년의 성실한 노동으로 일군 실크 가게의 파산을 선언한 세디유, 평생 모은 돈을 일거에 날려버린 “은퇴한 문지기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창백한 노처녀들, 편집증적인 지방 퇴직연금수령자들, 적선으로 빈곤해진 시골 사제들”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큰 참극을 맞이하는 이는 바로 돈과 돈을 매개해주는 증권 중개인 마조였다. 만국 은행의 파산으로 도합 1108만 프랑의 부채를 안은 마조는 가족애가 남다르게 깊었음에도 젊은 아내와 두 남매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에 만국 은행의 거의 모든 이사들은 주가가 붕괴되기 직전에 하락세 투자자들에게 가담함으로써 풍요롭게 자기 몫을 챙겼다.


주식 투자를 완강히 거부하고 오로지 자선 사업에만 몰두했던 도르비에도 대공 부인도 파산에 직면했다. 십 년에 걸친 대규모 자선사업으로 파산한 도르비에도 대공 부인은 카르멜 수녀회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도르비에도 대공 부인과 같은 헌신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선도 돈 문제의 결정적 해결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빅토르는 노동 학교에 봉사하러 갔던 알리스를 성폭행하고 알리스의 돈까지 훔쳐 달아났다. 카롤린 부인은 대를 이은 악행에 치를 떨었다.


예심은 너무나 더디게 진행되었다. 일곱 달이 지났다. 그사이 사카르는 감옥에서 모든 게 돈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결론짓고 다시 모든 것을 재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시 석 달이 흐른 뒤, 일반인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마침내 만국 은행 사건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아믈랭의 정직성도, 검사의 논고를 반박한 사카르의 영웅적인 태도도, 변호인의 감동적인 변론도, 두 피고인에게 각각 5년형과 3000프랑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루공은 이들을 보석으로 석방시켜 스물네 시간 내에 프랑스를 떠나도록 요구했다. 그리하여 사카르는 벨기에로, 아믈랭은 로마를 향해 떠났다.


다시 석 달이 흐른 뒤, 로마에서 작은 일자리를 구한 아믈랭이 카롤린 부인을 위한 가정교사 자리가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카롤린 부인은 파리를 떠나기 하루 전에 마지막으로 빅토르를 수소문했지만 “이리저리 쏘다니며 거리마다 부패의 효모를 뿌리고 다닐 그 꼬마 괴물”에 대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카롤린 부인은 4월의 싱그러운 봄이 불러일으키는 끝없는 쇄신의 힘에 다시 되살아난 희망과 활기를 느꼈다. 그녀에겐 더 이상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았고, 삶은 자연처럼 단연코 정의롭지도 고상하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아름다운 하늘과 부드러운 대기에 약동하는 생명의 힘 속에서 “삶의 영원한 희망과 함께 존재하는 기쁨”을 향유할 뿐이었다. 사카르의 말이 옳았다. “지금까지 돈이란 내일의 인류가 자라나는 밑거름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도처에 해독을 끼치고 파괴를 일삼으면서도 돈은 사회적 식물을 키우는 효모였고,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역사에 필요한 부식토였다.” “도대체 왜 사카르가 불러일으킨 비행과 죄악의 책임을 모두 돈에 전가해야 할까?”




분석


발자크의 소설 또는 플로베르의 소설은 인간의 정념을 둘러싼 드라마 뒤에는 으레 금전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졸라의 〈돈〉은 이런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차원의 돈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이 돈은 증권시장의 돈으로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돈, 이를테면 허구의 돈이다. 증권거래소에서는 투자의 손익을 물건은커녕 화폐로도 경험할 틈이 없다. 왜냐하면 거액의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다닌다고 해도 그것은 오직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기 때문이다. 사카르가 자신의 금고에는 언제나 “허구”만이 상주했다고 자책하는 것, 더 이상 “외관상의 거짓된 부”가 아니라 “돈방석 위에 군림하는 진정한 황금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도 모두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카르는 끝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허구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 졸라는 돈이 인간성 파괴의 주범이자 부패의 원인이지만 거꾸로 문명을 일구는 동력이자 진보의 밑거름이라고 역설한다. 그 점은 사카르와 아믈랭 남매가 시도하는 동방개척 사업에서 잘 드러난다. 동방개척 사업을 통해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부의 획득과 아울러 문명의 재건이다. 그들이 보기에 돈과 과학의 행복한 결합, 그것이야말로 동방의 민중, 나아가 세계만방의 인류를 구할 왕도다. 나태와 무지가 지배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유실되었던 황무지에서 “싱싱한 수액”이 솟구치며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것을 목격한 카롤린 부인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중독과 파괴를 초래하는 돈이야말로 사회적 생장의 효모였고, 인간들을 서로 가깝게 하고 대지를 평화롭게 할 대역사에 필요한 부엽토였다. 돈을 저주하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돈에 대해 공포가 뒤섞인 경탄에 빠져들었다. (중략) 일체의 선이 일체의 악을 만드는 돈에서 나왔다.”

소설의 종결부에서 만국 은행의 파산과 함께 무일푼이 된 카롤린 부인이 비논리적인 희망을 느낀다면, 그것은 바로 돈의 경이로운 생명력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서 카롤린 부인은 이렇게 자문함으로써 돈에게 면죄부를 준다. “도대체 왜 사카르가 불러일으킨 비행과 죄악의 책임을 모두 돈에 전가해야 할까?” 책임은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돈〉의 테제다. 요컨대 돈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탐욕에 빠지게 하고 악행에 물들게 하는 타락의 효모인 동시에, 희망에 부풀게 하고 선행을 베풀게 하는 문명의 동인이라는 것이 〈돈〉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 참고 문헌 : 〈돈〉, 에밀 졸라 저, 유기환 역, 문학동네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영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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