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린

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18권

by 글섬


작품 배경


〈오노린(Honorine)〉은 1843년에 발표된 장편소설이다. 애초엔 3부로 구성되어 1843년에 《라 프레스(La Presse)》 지에 실렸던 이 소설은 1844년에 《포테(Potter)》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재출간되었다. 이후 1845년에 《퓌른》 판으로 『인간희극』의 「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출간되었다.


발자크는 이 소설에서, 〈서른 살의 여자(La Femme de trente ans)〉와 〈버림받은 여인(La Femme abandonnée)〉에서 이미 취했던 액자 소설의 형태를 다시 취하고 있다.




이야기는 제노바 여인의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시작된다. 제노바(Genoa) 출신의 오노린은 프랑스 국경을 초월해 보기 드문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여인이다. 제노바와 파리를 배경으로 하나의 이야기 안에 여러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러 명의 프랑스인들이 오노리나 페드로티(Onorina Pedrotti)와 결혼해 제노바에 살고 있는 프랑스 총영사를 방문한다. 옥타브(Octave) 백작의 전 비서관이었던 모리스 드 로스탈(Maurice de l'Hostal) 총영사는 이들에게 백작과 백작의 아내 오노린(Honorine)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모리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법을 전공했던 모리스는 정치인인 옥타브 백작의 비서관이 된다. 모리스는 가끔씩은 백작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긴 하지만 백작의 인품을 매우 존경한다. 모리스를 아들처럼 아끼고 신뢰하는 옥타브 백작은 모리스에게 지금까지 난파선에서 사망한 걸로 알려진 아내 오노린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는다. 백작은 아내가 작별의 편지를 쓰고 연인과 함께 달아나버리기 전에 오노린의 마음에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고 자책한다. 오노린은 연인을 위해 남편을 저버렸는데 그 연인은 또 그녀를 저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있다. 백작은 아내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기에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작은 모리스에게 오노린을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다며, 아내가 사라진 뒤 7년 동안 매일 밤 아내의 집을 찾아가 창가의 불빛을 바라보다 커튼이 드리워지고야 돌아오곤 했다고 토로한다. 백작은 연인의 아이를 가진 오노린에게 익명으로 산파를 대주고 남몰래 갓난아이를 돌본다. 그러나 아이는 7개월 만에 숨을 거두고 오노린은 수개월 동안 생사를 헤맨다. 겨우 정신을 차린 오노린은 자력으로 생활비를 벌며 홀로 살기를 원한다. 말하자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자 백작은 아내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꽃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생-모르(Saint-Maur) 가에 위치한, 정원 딸린 아름다운 집을 구해 살게 한다. 백작은 아내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아내가 모르게 익명으로 그녀를 보살핀다. 오노린이 꽃을 가꾸고, 꽃 장식 만드는 일로 점차 생기를 되찾기 시작하자 백작은 정원사를 구해 오노린에게 보낸다. 물론 정원사 비용은 아내 몰래 백작이 충당한다. 뿐만 아니라 신중하고 입이 무거운 고뱅(Gobain) 부인을 가정부로 고용해 아내에게 보낸다. 세상물정 모르는 오노린은 정원사도 가정부도 백작이 고용한 사람이라는 건 까맣게 모른 채 자신이 제공하는 턱없이 적은 돈으로 일하고 있다고만 믿고 있다. 백작의 이러한 정성 끝에 결국 오노린은 이제 자력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행복해졌다.


이윽고 백작은 조심스럽게 오노린에게 편지를 보내본다. 그러나 오노린은 그의 글씨체를 알아보고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는다. 평소에 오노린의 일상생활 같은 건 고뱅 부인을 통해 상세히 듣고 있지만, 오노린은 백작이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고뱅 부인에게도 함구하고 있기에 백작은 오노린의 속마음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그래서 오노린이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버릴까 봐 두려웠던 백작은 모리스에게 오노린이 살고 있는 저택에 연해 있는 집으로 이사해 오노린과 친구가 되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모리스가 오노린과 친해져 백작에게 돌아가라고 그녀를 설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모리스는 여자에게 입었던 상처 때문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정원사로 둔갑해 오노린의 정원사 거처로 들어간다.


어느 날 고뱅 부인이 오노린에게 정원사 모리스가 정원에 담장을 두르고 싶어 한다고 전한다. 그러자 오노린은 모리스에게 만나자고 청한다. 고뱅 부인이 오노린에게 모리스를 소개하는 것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노린과 모리스는 꽃과 정원에 대한 서로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분을 쌓아간다. 오노린은 모리스의 가짜 직업을 철석 같이 믿고, 마침내 그를 저택으로 초대한다. 그들은 함께 조화를 만들고 책도 읽으며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까지 이야기 나누게 된다. 삶에 혐오감이 생긴 오노린은 오로지 꽃을 매만지는 일에서만 위안을 얻고 있지만, “다가올 변화”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백작의 부탁으로 오노린과 친분을 쌓고 있는 모리스는 그녀가 기대하고 있는 이 변화에 대해 사랑하는 아이를 잃어버렸던 그녀가 다시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독려한다. 마침내 모리스는 자신이 오노린의 자아를 일깨워줄 수 있다고 확신하고, 그녀가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백작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밝힌다. 모리스는 오노린이 백작에게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모두 털어놓는다면 주의 깊게 들어보고, 필요하면 그녀가 백작을 피해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회유한다. 오노린은 수녀원으로 가겠다고 버틴다. 모리스는 오노린이 백작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타당한 이유를 댄다면 그녀의 도피에 동의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오노린은 지금 백작에게 돌아간다는 건 매춘부가 되는 것과 같다고 답한다. 이제 그녀가 백작에 대해 품을 수 있는 감정은 존경과 존중뿐,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노린은 모든 걸 털어놓아봤자 무슨 말을 들을지 뻔히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에 편지를 써서 남기고 떠나버린다.


여기서 총영사는 하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오노린이 남긴 편지의 사본을 프랑스 여행객들에게 직접 보여준다. 원본은 모리스가 비밀리에 백작에게 넘겨주었다. 편지에는 종교적, 법률적으로 그녀가 백작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쓰여 있다. 백작이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사회도 그녀를 받아줄 것이다. 백작에게 돌아가 그에게 사회적 지위와 행복한 삶을 부여하고, 아울러 결혼생활과 어머니로서의 삶도 받아들이는 게 그녀의 마땅한 의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체험했고, 또 여전히 기억하는 그녀로서는 그러한 삶은 거짓이자 자기기만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이제 그녀가 백작에게로 돌아간다는 건 정숙한 백작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창녀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백작에 대한 눈물 어린 회개를 감추고 떠나야 했다고 쓰여 있다.


모리스는 오노린을 붙잡을 수 있었다. 모리스는 그만 오노린과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오노린과 함께 하는 삶은 단조로움보다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오노린은 이상적인 사랑을 원했지만 불가능했고,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 그녀와 모리스의 진정한 사랑이 의무를 넘어설 수 있었다면 연인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무를 넘어설 수 없었던 그는 비서관을 그만두고 제노바의 상속녀인 오노리나와 결혼한다.


내심 마음이 끌렸던 백작의 사촌 아멜리(Amelie)와 오노린의 차이점에 대해 모리스는, “아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지요. 결혼이란 열정을 배제한다는 사실을, 사랑이라는 폭풍 위에는 결코 가족이라는 건물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불가능한 사랑을 꿈꿔본 후에야, 그 무한한 충동과 변덕을 통해 이상의 고통스러운 기쁨을 맛본 후에야 나는 이전의 내가 얼마나 평범한 현실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죠.”라고 말한다.


모리스는 오노린을 찾아가 그녀가 남기고 간 편지에 대한 백작의 답장을 가지고 왔으니 부디 이번만은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이 편지에서 백작은 오노린이 자기가 5년 전에 보냈던 편지를 읽었다면 자신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오노린이 관계 변화를 원치 않는 한 그녀를 친구처럼, 여동생처럼 여기며 살기로 결심했다며 이를 위해 포부르 생-오노레(faubourg Saint-Honoré)에다 새 집까지 마련했다고, 그곳에서 오노린은 원하는 모든 걸 누리며 자유롭게 살게 될 거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냥 계속 생-모르 가에 머물며 생계를 꾸려가기로 결정한다. 대신에 그녀는 백작의 방문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녀는 결국 백작에게 돌아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사랑, 종교, 연민”이 그녀를 그 어떤 사랑의 이상으로부터 떼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믿으면서 그 믿음과 상반되게 산다는 것은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다. 오노린은 남편 곁에서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오노린은 모리스에게 백작마저 죽으면 그녀의 아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분석


총영사의 이야기에서 발자크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여성의 죄악(간음)에 대해, 나폴레옹이 국가와 종교의 법을 구분한 이래 관용의 경향에 대해, 결혼 파탄을 부정하면서도 여자를 밝히는 신학자들의 간음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소설의 말미로 다가갈수록 발자크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한다. 모호해질 수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정교하게 다듬어가며 구성을 이어간다. 백작에 대해서 발자크는, 그가 하는 “행위들은 사회적 인간의 최고 법률로 이해된다. 그는 비밀스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가다가 신앙이 가득한 순교자처럼 고요한 눈으로 미래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백작은 우리의 고난에 대한 척도가 우리 자신에 있다고 말한다. 오노린의 경우, 백작부인의 역할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백작을 연인이 아니라 친구로서 사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신체와 영혼은 위선으로 시들어간다. 모리스는 오노린이 여성으로서의 역할에 잘못을 저지른 뒤 스스로의 인격을 중시하게 되어 이제는 사고나 감정 없이 여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간파한다. 발자크는 오노리나에 대해서나, 모리스와 오노린에 대해서, 또한 처음엔 오노린과 함께 살고 있는 옥타브의 사촌 아멜리(Amelie)에게 끌렸던 모리스의 마음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설정하고 있다.





▶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 번역

▶ 볼드 처리된 부분은 원작의 표현 그대로를 번역해 인용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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