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19권
〈베아트릭스(Béatrix)〉는 1839년 8월 《르 시에클(Le Siècle)》 지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같은 해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처음에는 〈강요된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이 소설은 두 단계로 나뉘어 출판되었는데, 간통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인간희극』의 「사생활 정경」 중 하나로, 『인간희극』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상이 그려져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펠리시테(Félicité)라는 인물은 발자크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에게서 영감을 얻어 구상한 인물이고, 베아트릭스(Béatrix)는 마리 다굴(Marie d' Agoult) 백작부인이 그 모델이며, 로슈피드(Rochefide) 후작부인의 연인인 음악가 젠나로 콘티(Gennaro Conti)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에게서 영감을 얻어 구상한 인물이다.
발자크는 처음 두 장(제1장과 제2장)을 할애해 무대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제1장에서는 당시 브르타뉴(Bretagne)의 시대적 배경을, 제2장에서는 게닉(Guénic) 가족을 묘사한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혁명과 “시민 왕” 루이-필립(Louis-Philippe)을 내세운 오를레앙(Orléans) 왕가를 둘 다 거부하여 지방 자치권을 주창하며 약 1,200년 동안 프랑스와 싸워온 지역이다.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프랑스의 다른 지역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은 매우 특별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매우 첨예한 문화 환경 속에서 프랑스의 위대한 남작 가문인 게닉 가족이 있다. 게닉 가족은 전통적인 저항 세력으로, 브르타뉴가 다른 프랑스 지역과 마찰을 빚을 때마다 어김없이 무기를 들고 일어나 전투를 진두지휘하거나 전투에 동참한다. 말하자면,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게 게닉 가족의 좌우명이다. 게닉 가족은 게닉 남작과 그의 아내, 그의 아들 칼리스트 뒤 게닉(Calyste du Guénic), 그의 누나 제프린 뒤 게닉(Zéphirine du Guénic), 그리고 충실한 하인 마리오트(Mariotte)와 가슬랭(Gasselin)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펜-오엘(Pen-Hoël) 양과 올가(Halga) 기사가 게닉 가족을 방문한다. 이들은 남작 가족과 어울려 카드 게임을 하다가 남작의 아들 칼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남작 가족과 두 손님 모두, 칼리스트가 비록 부유하긴 해도 평민인 펠리시테 데 투슈(Felicité des Touches)와 교분을 나눈다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펠리시테는 ‘카미유 모펭(Camille Maupin)’이라는 가명으로 이미 유명해진 여류작가이자 음악가이다. 그녀는 평민이고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데다, 칼리스트는 아직 성년에 이르지도 못한데 반해 그녀는 칼리스트의 어머니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여인이다.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칼리스트를 남작부인 혼자 기다리고 있다. 새벽 1시경이 되어서야 칼리스트가 들어온다.
칼리스트는 가족들과 대면할 때마다 자신의 머리를 짓눌러 오는 과거의 무게를 떨쳐버리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칼리스트의 부모와 그의 늙은 고모처럼 뼛속까지 카톨릭 신자인 사람들에게 열정이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이런 나이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과 국왕, 그리고 자신들의 재산뿐이다.” 반면에, 펠리시테는 부모와 후견인이 모두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대부분 독학으로 터득했지만, 재산만큼은 게닉 가족 못지않게 유복하다.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게닉은 펠리시테와 함께라면 그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그러나 칼리스트에게는 경쟁자가 있었는데, 바로 문학평론가 클로드 비뇽(Claude Vignon)이다. 그는 펠리시테에게 끈질기게 구애하는 인물이다. 펠리시테는 뜻하지 않게 남자들의 애정을 가지고 노는 타입의 여자라, 클로드와 칼리스트는 그녀의 관심을 두고 경쟁하듯 서로를 질투한다. 그런데 펠리시테는 예전에 이미 칼리스트에게 젊은 남자와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바 있기에, 클로드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진심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 펠리시테가 칼리스트에게 그녀의 친구인 후작부인 베아트릭스 드 로슈피드(Béatrix de Rochefide)가 보낸 편지를 보여준다. 펠리시테는 베아트릭스에 대해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피부가 하얀 금발의 미녀인데 아이를 버리고 음악가 애인인 젠나로 콘티(Gennaro Conti)와 도망갔다가 지금은 콘티와의 애정이 시들한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베아트릭스와 그녀의 애인 콘티가 자신의 집을 방문해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베아트릭스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때 펠리시테의 분위기가 마치 칼리스트가 베아트릭스에게 반해버리기를 바라는 사람만 같다. 때문에 칼리스트는 아름다운 베아트릭스를 만나도 전부터 이미 그녀에게 홀딱 빠져버린 것만 같았던 나머지, 막상 베아트릭스를 대면했을 때는 그의 과도한 관심이 다소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이러한 심리적 상황 속에서 게닉 가족이 칼리스트의 배우자로 점 찍어둔 샤를로트 케르가루에(Charlotte Kergarouet)가 그녀의 어머니와 펜-오엘 양이 함께 탄 마차에 칼리스트와 베아트릭스, 펠리시테까지 합승하게 되는데, 칼리스트가 소꿉친구인 샤를로트를 약간 냉정하게 대하자 샤를로트를 비롯해 그녀의 어머니와 펜-오엘 양은 당황하고, 이를 전해들은 게닉 가족은 칼리스트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해 혼란스러워 한다.
이들 중에서 혼란스럽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펠리시테이다. 그녀는 베아트릭스와 칼리스트가 서로 열렬히 사랑에 빠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칼리스트에게 자신과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이처럼 보이면서 베아트릭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척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그리고는 베아트릭스에게도 은밀히 칼리스트와의 열애를 조장한다. “두 여자의 결투 예선 같았다. 휴전 없는 그녀들의 결투는 양측 모두의 덫, 페인트 모션, 거짓된 관용, 기만적인 자백, 교활한 자신함에 의한 공격이었다. 한쪽은 사랑을 숨기고, 또 다른 쪽은 사랑을 드러냈다. 카미유의 기만적인 말들의 날카로운 칼날이 친구의 마음속을 뚫고 들어가 독을 뿜었다.”
칼리스트와 펠리시테와 베아트릭스의 다소 과열된 삼각관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칼리스트는 자신의 조언을 따르면 베아트릭스가 그의 것이 될 거라는(아마도 솔직하지 않은) 펠리시테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 듯했다. 대신에 그는 베아트릭스에게 남몰래 편지를 보내어 바보처럼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여주어 부질없이 어머니를 실망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칼리스트와 두 여자가 함께 크루아직(Croisic)으로 놀러갔다가 험준한 해안선 주변에 이르렀을 때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칼리스트와 베아트릭스 단둘이 특히 위험한 지점에 이르렀는데, 이때 칼리스트가 강렬하게 구애하자 베아트릭스가 저항한다. 그러자 화가 난 칼리스트가 그만 베아트릭스를 절벽에서 던져버린다. 베아트릭스는 10피트 가까이 되는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다가, 다행히 그녀가 입고 있던 드레스가 폭이 매우 넓어서 중간 지점에서 무언가에 걸린다. 인근에서 이를 목격한 펠리시테가 하인을 불러 사다리를 구해오라고 지시한다. 정신을 차린 칼리스트와 하인이 베아트릭스를 구해내어 기절해 있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런데, 칼리스트의 폭력에 대한 베아트릭스의 반응은 놀라웠다. “베아트릭스에게 칼리스트의 광포한 사랑과 미친 행동은 결코 저항할 수 없는 벼락처럼 다가와 그녀의 모든 본성과, 심지어는 가장 완강한 고집까지 바꿔버린다. 그녀는 내심 스스로 온순해짐을 느낀다. 참되고 순수한 사랑이 그 부드럽고 맑은 온기로 그녀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미롭고 다정한 감정으로 가득해져 스스로가 확장되고 고양됨을 느꼈다.” 그러나 칼리스트의 미친 행동이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어서, 베아트릭스는 그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한결 촉촉해졌음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와 함께 도망칠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반면에 펠리시테는 칼리스트가 자신의 조언을 무시하고 베아트릭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칼리스트에게 정말이지 어리석은 멍청이라고 대놓고 비난한다. 그리고는 콘티에게 연락해 한시바삐 와보라고 재촉한다.
그리하여 콘티가 펠리시테 저택을 방문해 칼리스트와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한다. 콘티는 자기가 파리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기 때문에 베아트릭스를 버릴 핑계를 찾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칼리스트는 기대와 승리감에 도취된 나머지, 약삭빠른 이 음악가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베아트릭스에 대해 품고 있는 자신의 희망들을 죄다 주저리주저리 말해버린다. 콘티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그리고는, 몹시도 급작스럽게 콘티와 베아트릭스가 함께 떠나버리고, 칼리스트는 홀로 남겨진다.
베아트릭스가 콘티와 함께 갑자기 떠나버린 뒤, 칼리스트는 상사병이 들어 속수무책 상태가 된다. 그 상태가 어찌나 심각했던지, 그의 아버지마저 병이 나고 가족 모두가 절망적인 상태가 된다. 칼리스트는 샤를로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니, 이제 그를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고 조언해주며 그녀를 떠나보낸다. 이 와중에 그의 아버지가 결국 병환으로 숨을 거둔다.
장례식이 끝난 후, 칼리스트의 어머니가 펠리시테에게 아들을 좀 만나달라고 부탁한다. 펠리시테는 칼리스트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하고는 그를 데리고 파리로 가서 그랑리외 공작부인의 19세 딸 사빈 드 그랑리외(Sabine de Grandlieu)와 결혼시킨다. 칼리스트를 위해 최선을 다한 펠리시테는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칼리스트는 젊은 아내를 데리고 브르타뉴로 돌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칼리스트가 겉으로는 치유되었지만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다는 걸 간파한다. 사빈은 아마도 이전 사랑과 관련된 상처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생활이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사빈은 친정 식구들에게 편지로 남편과의 기묘한 관계를 알린다. 그들 부부는 형제나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던 게다.
사빈은 펠리시테가 머물고 있는 수녀원을 방문한다. 펠리시테는 사빈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녀는 사빈에게 칼리스트가 다시는 베아트릭스를 만나지 않을 테니 어떻게든 견뎌보라고 조언한다.
사빈은 남자아이를 낳아 양육에 헌신한다. 아내가 양육에 전념하는 동안 칼리스트는 극장을 드나들며 베아트릭스를 만난다. 결국 위험의 순간이 도래한다. 베아트릭스가 칼리스트에게 콘티가 그녀를 버려서 이제 자유롭다고 귀띔해준다. 그렇지만 베아트릭스는 그 사이 얼굴색이 흐려지고 눈은 깊이 패여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다. 칼리스트는 그녀의 호의를 즐기고는 있지만 이제 또 다시 베아트릭스와 사랑에 빠져 곤두박질치고 싶지는 않다. 그는 이제 젊은 여인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사빈은 이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젊고 생명력 넘치고 아름다운 자신보다 무려 12살이나 많은 여자에게 남편을 뺏겼다는 건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가. 칼리스트의 속마음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그가 이제는 옛사랑일 뿐인 늙어빠진 나쁜 여자와 놀아나느라 가정과 아내와 아들을 등한시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느낀 사빈은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공작부인으로서 재력과 인맥을 두루 갖춘 그녀의 어머니는 사빈의 결혼생활을 바로잡기 위해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고, 결국 사빈은 남편을 되찾게 된다.
발자크는 작품 속에서 수많은 여성을 등장시켜 깊이 있게 탐구하였다. 그의 여성 인물들은 항상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작가는 그 뒤에 숨은 비밀을 발견하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들을 그린다. 그러나 그녀들 중 상당수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사랑한 남자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운명이 엮이는 부분이 이 작품의 가장 빼어난 부분이다.
우선, 펠리시테 데 투슈. 문학계에서는 카미유 모팽(상당 부분 조르주 상드를 모델로 하고 있다)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그녀는 젊고 순진한 칼리스트 뒤 게닉에게 반해 있다. 칼리스트는 유서 깊은 게닉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이다. 그러나 칼리스트가 약혼녀 샤를로트 드 케르가루에를 멀리하고, 파리의 귀족 부인이며 음악가 콘티의 애인인 베아트릭스 드 로슈피드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 펠리시테 데 투슈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베아트릭스는 그녀의 사랑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콘티는 예전에 펠리시테의 애인이었지만, 베아트릭스가 그를 빼앗아버렸다. 그리고 칼리스트가 펠리시테를 멀리하기 때문이다. 펠리시테는 질투를 승화시켜 칼리스트를 결혼시킴으로써 그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녀의 배려로 선택된 사빈 드 그랑리외가 조롱당하고 절망으로 내몰린다. 여태까지 칼리스트를 거부해왔던 베아트릭스가, 칼리스트가 결혼한 순간부터 그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덕망 있는 여자의 사소한 술책들’의 스토리이다. 이 부분은 1844년에 발표되었는데, 신문소설의 요구에 따라 윤리적이 되려는 결말의 반어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앙상하고 심줄까지 드러나며,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마르고, 시들었으며, 두 눈은 서글퍼 보이는 로슈피드 부인은 그날 저녁 〈아르티클 파리(Article Paris)〉라는 잡지에서 보았던 대로 교태 넘치는 치장을 하여 자신의 조로한 폐허의 모습을 한껏 꽃피웠다. 버림받은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숫처녀처럼 꾸며보기로 작정했다. 흰 천을 휘감아, 화가 지로데가 너무나 시적으로 그려낸 오시안풍의 처녀들을 떠올리면서.”
- 본문 중에서
일종의 ‘팜프 파탈’을 표상하는 베아트릭스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로, 바로 그래서 남자들이 그녀에게 욕망과 환상을 품는다. 다시 말해, ‘눈속임’과 ‘은폐’로 남자를 조종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부류의 여자들은 타자가 필요 없는, 스스로 충족되는 욕망의 구조인 나르시시즘으로 특징 지워질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완전함을 상기시키는 이러한 퇴행적인 특성이 남성들에게 매혹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비로움과 나르시시즘의 기저에는 근본적인 결여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베아트릭스는 사실 빈약한 몸과 버림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그녀의 열등의식과 복수심이 발현되는 인물이다. 이 복수심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여인들의 진정한 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팜므 파탈’의 모티브와 흔히 얽혀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여성에게서 오는 이런 위협 역시 남성적인 거세 컴플렉스가 만들어낸 것으로, 여성이 자신에게 결여된 남근을 탐낸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결국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상은 남성 문화가 그녀를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베아트릭스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녀의 위력이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것은 남성의 자기 환멸일 뿐이다. 발자크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바라보면서도, 남성들의 환상,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여성상을 해체시키고 있다.
〈베아트릭스〉를 읽고 또 읽어보면, 정열의 작가이며 초상화가이고 풍경화가인 발자크의 재능과 힘찬 다양성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1830년, 그는 베르니 부인과 함께 낭트(Nantes) 근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이 작품에서 엮어지는 사랑의 여로(旅路)를 위한 필연적인 배경이 되었다. 서른 살, 그리고 마흔 살 여인이 되는 베아트릭스는 펠리시테, 칼리스트, 사빈과의 관계를 통해서 발자크의 사회적 비전을 대신 표현한다. 요컨대 베아트릭스를 통해서 서술되는 것은 부부계약에 대한 견해로서, 당대 프랑스의 부부계약은 너무나 불합리해서 아내를 간통으로 내몰며, 그럼으로써 여자를 죄인이자 희생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펠리시테처럼 독립적인 여자나, 사빈처럼 사랑스러운 아내조차도 그런 제도 때문에 뭉개지고 만다. 그래서 상처받은 펠리시테는 허망하게 수녀원으로 도피하며, 사빈은 다시 남편을 정복하기 위해 통속극에나 어울리는 술책들을 부리게 된다. 잔혹한 유머가 빈번하며, 때로는 보기 드물게 강도 높은 감동을 담아낸 〈베아트릭스〉는 『인간희극』의 대작들 중에서도 가장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 중 하나이다.
▶ 발췌 논문: 〈발자크 소설에 나오는 세 명의 "팜므 파탈": 베아트릭스, 발레리, 그리고 푀도라〉,
정예영, 한국불어불문학회 연속간행물, 2010년 3월
▶ 발췌 사이트 : ABC북 맛보기 사전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발췌한 논문의 저자가 번역한 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