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세크

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20권

by 글섬


작품 배경


〈곱세크(Gobseck)〉는 1830년에 출판된 중편 소설로, 『인간희극』의 「사생활 정경」 중 일부이다. 이 소설의 초안은 1830년 3월 6일 《라 모드(La Mode)》 지에 실린 〈고리대금업자(L'Usurier)〉라는 콩트이다. 같은 해 8월에는 《르 볼레르(Le Voleur)》 지에 실린다. 발자크는 이 글을 바탕으로 같은 해에 《마담-들로네(Mame-Delaunay)》에서 〈방탕의 위험(Les Dangers de l'inconduite)〉을 출간한다. 이 단편 소설은 〈고리대금업자〉, 〈소송대리인(L’avoué)〉, 〈남편의 죽음(La mort du mari)〉 등 세 가지 소제목을 달고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récits dans le récit)〉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후 1835년에는 《마담 샤를-베쉐(Madame Charles-Béchet)》에서 「파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곱세크 아저씨(Papa Gobseck)〉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1842년 《퓌른》 판에서 〈곱세크〉로 제목을 변경해 「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출간되었다.


이 소설에서 곱세크는 19세기 초의 ‘고리대금업자’이며 ‘구두쇠’이고, ‘어음’과 ‘황금’의 화신이다. 곱세크는 『인간희극』에서 악인으로 분류된다.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의 악인 보트랭(Vautrin)조차 곱세크에 대해 “제 아비의 뼈로 도미노 놀이 패라도 만들 수 있을 지독한 녀석”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며, 곱세크는 “마치 파리의 형리가 의사이듯이 은행가”이며, “재정의 단두대”로도 묘사된다.


사실 발자크는 곱세크라는 인물을 하나의 전형으로 정식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곱세크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서 독자들에게 그를 모순되고 상충하는 인물 곱세크로 소개하고 있다. 곱세크는 “구두쇠이며 철학가이고, 저열하고 동시에 숭고하다.” 이 소설에서 독자들은 곱세크라는 인물의 모호함과 불가해성에 직면하게 되고, 더불어 고리대금업자이면서 자본가가 쥐락펴락하는 돈(자본)의 위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고리대금업자임과 동시에 ‘원칙’이 있는 자본가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곱세크〉 이야기는 화자가 세 명의 청자와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직접 화법으로 전해진다. 즉, 주요 등장인물이면서 동시에 화자인 데르빌(Derville)이 젊은 시절 자신의 멘토였던 늙은 고리대금업자 곱세크에 대하여, 그리고 드 레스토(de Restaud) 백작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소설 같은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곱세크〉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왕정복고시기(la Restoration)인 1816~1830년에 진행되는데, 이 이야기는 단 하루 밤 동안 데르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1829년에서 183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어느 날 새벽 한 시, 드 그랑리외(de Grandlieu) 자작부인의 살롱에는 늦은 시각까지 손님 두 분이 남아있었다. 그 중 한 명의 젊은 미남자가 괘종시계 소리를 듣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자작부인 집안과 허물없이 지내는 가족의 친구 한 명인 소송대리인 데르빌(Derville)만 남게 되었다. 그제야 자작부인은 딸 카미유(Camille)에게 다가갔다. 카미유는 방금 떠난 미남자가 타고 간 이륜마차 소리에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자작부인은 딸의 이러한 처신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 남자는 무일푼의 젊은 청년 에르네스트 드 레스토(Ernest de Restaud) 백작이었다. 에르네스트는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Anastasie de Restaud)의 아들로, 그의 어머니는 낭비벽이 심하고, 막심 드 트라이유(Maxime de Trailles)와 불륜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인물이다. 카미유는 에르네스트와 사랑에 빠져 있었는데, 자작부인은 에르네스트의 집안을 못마땅하게 여겨 카미유의 사랑을 걱정하며 딸을 나무란다.


모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르빌이 카미유를 위해 에르네스트를 감싸고 나선다. 데르빌은 에르네스트가 최근에 집안의 유산을 전부 물려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증해주며, 그랑리외 자작부인 모녀에게 에르네스트 드 레스토 백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여기서 발자크는 화자로 선택한 데르빌을 통해 〈곱세크〉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에게 데르빌의 양심적인 인간성과 그의 성실함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녀(그랑리외 자작부인)의 집에서 파리의 일개 소송대리인이 그 여자와 그리도 친근하게 말을 나누고 자유분방한 태도로 처신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놀라운 일을 설명하기란 쉽다.” (중략) “이 소송대리인은 매우 정직한 사람인데다가 박식하고 겸손하고 또한 점잖아서 그랑리외 집안에 허물없이 드나드는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드 그랑리외 부인에 대한 품행 덕분에 그는 포브르 생-제르맹의 최고의 가문들로부터 높게 평가받고 신용을 쟁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심가라면 이용했을 만한 그러한 호의를 악용하지 않았다.”


발자크는 데르빌에 대한 설명에서 왕정복고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을 모두 함께 고려하고 있다. 1814년 12월의 루이 18세의 왕령(혁명가들에 의해서 몰수된 재산이지만 국가에 의해 매각되지 않은 재산을 귀족들에게 돌려주라)은 상당수의 분쟁을 일으켰다. 이 왕령이 의도했던 바는 루이 18세가 다수의 귀족을 자신의 충실한 지지자로 복권시키면서, 혁명기의 끔찍하고 슬픈 재앙이 야기한 불행한 일들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매각되지 않은 재산’이 문제였는데, 왜냐하면 그 재산이 공유지에 해당할 수도, 왕권의 일상 혹은 특별 영지에 위치할 수도, 혹은 공공기관에 이미 기부된 재산에 해당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왕정복고시기에 <곱세크>의 화자인 데르빌이 그랑리외 자작부인의 재산 복원 사건을 수임하여 소송대리인의 능숙하고 뛰어난 솜씨로 왕정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다. 이 소송에서 그가 보인 행동은 귀족진영으로부터 찬사를 받지만 데르빌은 “다만 정직한 인간의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데르빌에게는 “소송대리인의 근성”이란 것이 없다. 다시 말해 데르빌은 그저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기성의 무질서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다.


데르빌은 우선 자신의 이웃이었던 장-에스테르 반 곱세크(Jean-Esther Van Gobseck)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1816년에 데르빌은 이웃인 곱세크를 처음 만난다. 데르빌은 당시의 곱세크를 이렇게 묘사한다. “창백하고 희끄무레한 그 얼굴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림원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달의 얼굴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는 그의 얼굴은 마치 도금이 벗겨진 은빛의 그 무엇을 연상케 한다고나 할까요? 그 고리대금업자는 자기의 곱슬거리지 않은 곧은 머리카락들을 정성들여 빗어 넘겼는데 그 직모는 희끗희끗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마치 탈레랑의 것만큼이나 꿈쩍하지 않는 냉정한 그의 얼굴 윤곽들은 청동으로 주조된 것처럼 보였지요. 꼭 족제비눈처럼 노란색을 한 그의 작은 눈은 눈썹이 거의 없었고 그는 햇빛을 싫어했었지요.”


데르빌은 젊은 학생 법률 사무원으로서 곱세크의 법적인 문제를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에 곱세크는 데르빌과 흉금을 터놓고 지내게 된다. 곱세크는 모든 인간 사회를 한마디로 축소시킨다. 바로 ‘황금’이다. 곱세크는 “나를 찾아온다는 건 그 자체로 몹시도 절박한 상황이라는 걸 뜻하지. 이내 파산할 예정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뜻이지. 잔뜩 궁지에 몰려 채권자 떼거리한테 쫓기고 있는 신세란 말이지.”라고 말한다.


곱세크는 데르빌에게 레스토 백작의 저택을 방문했던 일을 들려준다. 곱세크가 백작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 이 고리대금업자는 의도적으로 카펫에 진흙을 잔뜩 묻혔다. 곱세크는 “난 말이지, 부자의 카펫에 진흙이 묻는 게 좋더라고.”라고 말하고는, 그날 보았던 백작부인에 대해, “그 모든 사치스러움과 어수선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위화감 뒤로 그녀를 기다리며 천천히 고개를 쳐드는 빈곤이란 놈을 나는 보았지. 그녀는 그 놈의 송곳니를 이제 슬슬 느끼기 시작했던 거야. 피로에 지친 그녀의 얼굴은 과거 축제의 유물들이 흩어져 있는 공간의 전형이었어. 원래는 서로 밀착되어 조화로웠던 것들이 전날 밤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바람에 그날 아침에는 겉만 번지르르한 채 뿔뿔이 흩어져버렸던 거야.”라고 말하며 백작부인을 경시해버렸다. 당시 그녀는 어떤 수상쩍은 인물과 아내의 거래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남편 몰래 곱세크에게 천이백 프랑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은밀하게 넘겨주었다.


시간이 흘러 데르빌은 법률 사무원에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데르빌은 곱세크에게 대출을 요청하러 갔는데, 곱세크는 데르빌의 회사를 인수하고 싶어 한다.


데르빌은 곱세크를 방문한 이유를 밝히기도 전에 그가 찾아온 이유를 단박에 간파했기에 데르빌은 몹시 놀란다. 그러나 곱세크는 일단 데르빌의 얘기를 들어보더니 데르빌에게 보통은 대출금의 50~500%를 상환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데르빌은 아연실색한다. 곱세크가 일단은 금리를 13퍼센트로 내려주었다가 나중에 15퍼센트로 인상하겠다고 제안하자 데르빌은 동의한다. 대신에 가끔씩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고, 매주 2번씩 만나 사업을 의논해주고, 10년 이내에 상환하는 조건이다.


데르빌은 근면 성실한 가게 주인 파니 말보(Fanny Malvaux)와 결혼했는데, 그녀를 소개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곱세크였다.


어느 날, 데르빌은 막심 드 트라이유(Maxime de Trailles)의 조찬회에 초대를 받는다. 드 트라이유는 데르빌에게 곱세크가 5만 프랑이 필요한 젊은 귀족 부인을 도와줄 수 있도록 자신과 곱세크의 중개자 역할을 해달라고 청한다. 드 트라이유는 데르빌의 안내로 레스토 백작부인을 대신해 곱세크를 만나러 간다. 드 트라이유는 이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에게, “만약 낭비벽이 심한 사람들이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겠소? 그러니 당신과 나는 영혼과 육체처럼 한 몸인 셈이죠.”라고 말한다. 곱세크는 이 말에 동의한다. 그러더니 드 트라이유의 동료들이 어음을 몹시 낮은 가격에 발행하는 바람에 드 트라이유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드 트라이유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그는 곱세크에게 확실한 담보물을 제시한다. 그건 바로 레스토 백작부인의 집안 대대로 유물로 내려오는 보석들이었다. 곱세크는 이 보석들을 감정해보고는 몹시 흡족해 했다. 구입 당시엔 30만 프랑을 호가했을 보석들이었던 게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브라질산 다이아몬드가 시장에 새로 공급되면서 공급 과잉 상태였기에 곱세크는 8만 프랑을 제시한다. 당시 데르빌은 곱세크에게 백작부인은 남편인 백작의 통제 하에 있는 입장이니만큼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조언한다.


곱세크는 결국 백작부인에게 5만 프랑짜리 수표를 써주고 이 보석들을 기어이 손에 넣는다. 막심 드 트라이유는 곱세크를 악당이라며 비난한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드 트라이유는 결국 고리대금업자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영국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1816~1820년의 레스토 백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 트레이유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스토 백작이 곱세크를 찾아온다. 그는 비로소 아내가 집안 유물을 곱세크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격분하여 곱세크와 말다툼을 벌인다. 당시 프랑스 법률상 백작부인은 남편의 권력 하에 있었기에 데르빌은 백작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작이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때문에 데르빌은 백작에게 보석들의 감정가를 판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 거래의 합법성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봐야 주장을 입증하기 어려워 패소할 테니, 소송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조언하며 곱세크와 합의하시라고 종용한다.


결국 백작은 곱세크에게 다이아몬드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돌려받기로 합의한다. 다음 날, 백작은 데르빌을 찾아와 곱세크에 대해 자세히 물어본다. 데르빌은 곱세크에 대해 “구두쇠이며 철학가이고, 저열하고 동시에 숭고한 사람이죠. 만약 제가 어린애들을 남겨놓고 죽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그를 그 애들의 후견인으로 정할 겁니다. 나으리, 저는 제 개인적 경험에 기초해서 바로 이렇게 곱세크를 이해하고 있지요.”고 답하며 백작에게 백작부인의 방탕한 생활로부터 가문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의 재산을 곱세크에게 ‘신탁유상증여(fidéicommis)’로 비밀리에 맡기라고 권유한다.


또 다시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저녁에 곱세크는 데르빌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의 철학에 대해 말한다. “인생은 말이지, 기술이자 전문직이야. 사람들은 모두 고난을 통해 자신들의 사업을 비로소 파악하게 되지.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면 탄성이 생기며 그제야 비로소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게야.” 곱세크는 무수한 경험을 통해 세상에서 유일한 힘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의 힘이며, 인간의 모든 정념을 그 쪽으로 안내하는 지표가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곱세크는 “그들이 인생을 보고 있는 곳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그 존재를 보도록 하지”라고 말하면서, 그 스스로 그 사람들 너머 저 위에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는 시선을 위치시킨다. 일종의 현자의 시선으로 그는 인간의 모든 허영심들의 진가를 알아보는데, 세상의 허영심들, 예술의 허영심, 과학의 허영심 등의 모든 인간의 허영심들을 알아본다.


마지막 이야기는 드 레스토백작이 쇠퇴해가는 시기인 1820년에서 1824년 사이의 이야기이다. 1824년 겨울, 백작이 죽어가는 가운데 그의 아내는 백작의 유서를 애타게 찾는다. 이 무렵, 백작 부부는 서로 말조차 섞지 않고, 아들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을 할 지경이었다. 백작의 병환 소식을 들은 데르빌이 병문안을 갔지만, 백작부인이 그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결국 백작이 숨지고, 백작부인은 백작의 유서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발칵 뒤집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데르빌은 즉시 하인을 보내 치안판사를 불러와 백작의 신탁유상증여를 곱세크의 재산으로 돌려놓는다. 단, 백작의 아들인 에르네스트를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돈과 엄청난 보물들을 확보해준다. 덕분에 지금 에르네스트가 카미유와 결혼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1824년부터 1829년에 곱세크는 부호가 된다. 1829년 말경에 곱세크는 선물 받은 물건더미가 부패해가는 방 바로 옆 자신의 방에서 죽는다.


데르빌의 이야기가 끝나고, 무대는 다시 1829년에서 183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날 그랑리외 자작부인의 살롱으로 돌아온다. 데르빌의 이야기를 듣고 난 자작부인은, “좋아요. 친애하는 데르빌, 우리는 그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우리와 같은 집안이 드 레스토 씨의 어머니와 사돈을 맺기 위해서는 그가 대단한 부자가 되어야 해요.”라고 말하며 카미유와 에르네스트의 결혼이 큰 무리가 없겠다고 판단하고 비로소 안심한다.




분석


발자크가 이 소설을 통해 비판하려는 대상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이다. 1829년경 왕정복고시대에 귀족들은 모든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불행히도 귀족은 그리 쉽게 획득되지 않았다. 돈이 귀족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돈만 있다면 몰락한 귀족들과 부르주아와의 정략결혼도 가능했다. 요컨대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었다. 발자크는 당시 돈에 굴복하는 귀족의 모습을 그랑리외 자작부인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자작부인은 에르네스트의 집안 상황을 구실로 카미유와 에르네스트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그보다는 분명히 자작 집안이 무일푼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19세기 초에 ‘자본’ 개념의 변동이 시작된다. 이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곱세크〉 이후인 1838년의 〈뉘싱겐 상사(La Maison Nucingen)〉에서 볼 수 있듯이, 차츰 자본은 파리의 쇼세-당탱(Chaussée d’Antin) 거리의 대은행가들의 수중으로 집중되고 그때부터 시중에서 사용되는 자본의 개념을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발자크가 〈곱세크〉를 집필하던 시기였던 1830년 7월 혁명 이전에 이미 자본과 돈이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발자크의 상상의 산물인 문학의 세계에 이미 도입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발자크 연구가들은 <곱세크>에서 장차 발자크 세계의 독창성을 만들 모든 것을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중대한 농축물”을 알아보고 있다.


곱세크는 사건이 진행되는 왕정복고(La Restauration) 시기에 외면상으로 귀족인 드 레스토 가문을 파산시킨다. 상기해보면 곱세크가 비밀리에 수호하게 되는 젊은이 에르네스트의 복원은 그가 성년이 되는 1830년 이후를 향해 준비되었다. 곱세크는 젊은이 에르네스트 드 레스토 백작을 보호하는 수호신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수호신의 면모는 종결부에서만 나타난다. 1789년 대혁명 이후 곡물장사로 부르주아가 된 고리오 영감의 딸과 앙시엥 레짐의 귀족 계급에 해당하는 드 레스토 백작의 결합은 역설적으로 왕정복고시대에 서서히 무너져 간다. 금융가이며 철학자인 곱세크 앞에서 마치 무관심이라는 부동의 동상 앞에서처럼 드 레스토 가문의 드라마가 진행된다. 곱세크의 존재는 무대 뒤편에서 그 결과들, 파멸을 뜻하는 고리대금업자, 돈의 힘을 표상하는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법이 없는, 지옥에 의해 빚어진 인간”인 피도 눈물도 없는 곱세크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곱세크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없는 사람이며 감정 없는 계산은 늘 승리한다. 그리고 이 둘 간의 대비는 개인의 재산을 파산시키는 인간의 욕망 놀이를 더 인상적이며 특히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바로 돈의 힘에 대한 독자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곱세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비쩍 마르고 자그마한 늙은이는 데르빌의 눈에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하였고, 공포감을 일으킬 정도였다. 왜냐하면 곱세크는 데르빌의 눈앞에서 “황금 권력의 화신으로 구현되는 환상적인 인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것이 돈에 귀착된다는 말인가?”라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잠 못 이루던 소송대리인 데르빌은 흥미롭다. 발자크는 데르빌을 통해서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오염되지 않은 젊은이의 표상을 『인간희극』에서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 발췌 논문 : <곱세크의 불가해성과 귀족의 복원 : 발자크의 중편소설 『곱세크』>,

김인경, 서울여자대학교, 2014년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발췌한 논문의 저자가 번역한 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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