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21권
〈서른 살 여인(La Femme de trente ans)〉은 1829년~1842년에 집필된 소설로, 화가 루이 불랑제(Louis Boulanger)에게 헌정되었다. 이 소설은 1842년 《퓌른》 판본에 이르러서야 최종 제목을 선정해 출판하게 되는데, 그 전까지 발자크가 텍스트를 끝없이 수정하면서 중간에 산발적으로 출판하기도 하고, 여러 장을 추가하기도 했던 이력을 고려하면 이 소설의 정확한 출판 연보는 추정하기 어렵다.
1830년에 발자크는 《라 실루엣(La Silhouette)》 잡지에 〈투렌느 전경(Une vue de Touraine)〉을 서명 없이 실었다. 이 소설은 나중에 〈서른 살 여인〉 제1장의 주요부분이 되는데, 1831년에 완성되어 〈랑데부(Le Rendez-vous)〉라는 제목으로 문예지 《르뷔 데 뒤 몽드(Revue des deux Mondes)》에 발표된다. 같은 해 〈나폴레옹의 마지막 재고(La Dernière Revue de Napoléon)〉라는 제목의 소설이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에 발표되는데, 이 소설은 〈서른 살 여인〉의 맨 첫 부분이 된다. 1831년에 《파리 리뷰(Revue de Paris)》에 실린 〈두 번의 만남(Les Deux Rencontres)〉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나중에 〈서른 살 여인〉의 제5장이 되는데, 중간에 〈신의 손가락(Le Doigt de Dieu)〉이라는 제목으로 수정되었다가, 이후 〈서른 살 여인〉 제4장의 전반부가 된다. 1832년에 《파리 리뷰》에 실린 〈서른 살(À trente ans)〉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제3장이 되고, 같은 해에 발자크가 제4장에 〈속죄(L'Expiation)〉를 추가해 《마담 에 들로네-발레(Mame et Delaunay-Vallée)》에서 이 모든 소설들을 모아, 전체 제목은 따로 붙이지 않은 채 「사생활 정경」으로만 분류해 출판된다.
1834년 《마담 샤를-베쉐(Madame Charles-Béchet)》에서 중심인물들의 이름과 내용을 수정하고, 〈격류의 골짜기(La Vallée du torrent)〉와 〈미지의 고통(Souffrances inconnues)〉을 추가해 〈같은 이야기(Même histoire)〉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이후 1837년 《베르데(Werdet)》에서 출판할 때와, 1839년 《샤르팡티에(Charpentier)》에서 출판할 때 다시 한 번 텍스트가 수정된다. 1842년 《퓌른》 판본에 이르러서야 이 모든 소설들을 하나로 묶으면서 〈서른 살 여인〉라는 제목이 선정된다.
결국, 〈서른 살 여인〉은 제1장 〈첫 번째 실수(Premières fautes)〉, 제2장 〈미지의 고통(Souffrances inconnues)〉, 제3장 〈서른 살(À trente ans)〉, 제4장 〈신의 손가락(Le Doigt de Dieu)〉, 제5장 〈두 번의 만남(Les Deux Rencontres)〉, 제6장 〈죄를 지은 어머니의 노후(La Vieillesse d'une mère coupable)〉로 구성된다. 제1장에서는 사촌지간인 줄리 드 샤스티옹(Julie de Chastillon)과 빅토르 데글르몽(Victor d'Aiglemont)의 결혼 실패, 줄리와 아서 그렌빌 경(Lord Arthur Grenville)의 플라토닉 사랑이, 제2장에서는 아서의 죽음으로 인한 줄리의 고통이, 제3장에서는 줄리와 샤를 드 방드네스(Charles de Vandenesse)의 만남이, 제4장에서는 여동생 엘렌(Hélène)에 의한 어린 샤를 데글르몽(Charles d'Aiglemont)의 죽음이, 제5장에서는 어느 살인마와 달아나버리는 엘렌의 이야기가, 제6장에서는 줄리의 죽음이 다뤄진다.
1813년 4월, 줄리는 병든 아버지와 함께 나폴레옹의 군대 사열에 참석한다. 러시아 원정에서 대패한 직후였지만, 친위대는 여전히 장엄한 사열을 보여준다. 이때 줄리는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 달려온 젊고 늠름한 부관 빅토르 데글르몽 대령의 화려한 모습에 매혹된다. 아버지는 대령에게 매혹된 줄리의 마음을 알아채고 걱정스럽게 머리를 내젖는다. 그 젊은 부관은 결코 줄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14년 3월, 데글르몽은 아내 줄리와 함께 투렌(Touraine)에 도착한다. 데글르몽이 마샬 술트(Marshal Soult) 장군과 함께 영국과의 베아른(Béarn) 전투에 참전하러 가면서 줄리를 그의 고모인 리스토메르-랑동(Listomère-Landon) 백작부인에게 맡기기 위해 투렌에 온 것이다. 백작부인은 70대 노파로, 철부지 조카의 어린 아내를 측은하게 여겨 줄리를 살뜰히 보살펴주고, 줄리도 그녀를 따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줄리의 부부 사이에는 이미 불화가 싹트고 있었다. 줄리가 남편에게서 뭔가 부족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투렌에 억류되어 있던 젊은 영국 귀족이 줄리에게 매료된다. 그러나 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줄리를 보기 위해 말을 타고 줄리 주변을 그저 스쳐지나갈 뿐, 이들 두 사람은 따로 만나지는 않는다.
1815년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루이 18세가 등극한다. 전쟁이 끝나자 데글르몽 대령은 아내를 파리(Paris)로 불러들인다. 줄리가 마차를 타고 파리로 향해 가던 중에 오를레앙(Orléans)에서 프러시아 군(Prussians)이 마차를 세운다. 이때, 젊은 영국 귀족 아서 그렌빌 경이 영국군 군복을 입고 나타나 줄리의 여행 서류를 손쉽게 처리해준다. 이 무렵, 빅토르의 고모가 숨진다.
생각이 짧은 빅토르 데글르몽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재정 적자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경제 상황에 대해 일체 말하지 않는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그를 매우 신중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줄리는 그의 이러한 태도 이면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817년, 빅토르와 줄리의 딸 엘렌이 태어난다. 이 무렵, 줄리와 빅토르는 각 방을 쓰고 지냈고, 빅토르는 다른 여자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줄리는 남편의 마음을 훔쳐간 여인이 세리지 부인(Madame de Sérizy)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세리지 부인이 줄리를 사교 파티에 초대하는데, 이곳에서 줄리는 아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아서를 발견하고 잔뜩 예민해진 줄리는 신경쇠약증에 걸려버린다. 이때, 아서가 그녀를 도와 치료해주겠다고 자처하고 나선다. 아서 경은 의사였던 것이다. 그는 줄리를 도와 신경쇠약을 치료할 수 있다고 데글르몽 후작부인을 설득한다. 데글르몽 후작도 동의한다.
얼마 후 줄리는 아서 경의 보살핌으로 병세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고, 두 사람의 애정도 무르익어 갔다. 때문에 줄리는 병세가 호전된 만큼 이제는 아서 경을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줄리는 아서 경에게 몹시 끌렸기에 그를 계속 만났다가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아서 경은 영국으로 돌아간다.
2년 뒤 어느 날, 남편이 사냥을 나가 집을 비운 저녁에, 아서 그렌빌 경의 편지가 줄리에게 전달된다. 영국으로 돌아간 줄로만 알고 있었던 아서 경이 여전히 파리에 머물고 있었으며, 심지어 지금 상당히 위독한 상태라서 죽기 전에 그의 유일한 사랑, 진정한 사랑인 줄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서 잠시만 줄리의 집에 들렀다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서 경은 줄리의 남편이 며칠간 사냥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서 경이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로 줄리를 만나러 와, 두 사람이 격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사냥이 취소되어 후작이 불시에 귀가한다. 당황한 줄리는 아서 경을 벽장으로 밀어 넣고는 거칠게 문을 닫아버린다. 남편이 돌아와 사냥이 취소되었다고 말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줄리가 벽장을 다시 열었을 때 너무 놀라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줄리가 아까 벽장문을 닫을 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아서 경의 손가락이 문에 끼어 으스러진 것이다. 아서 경은 손가락이 부러졌는데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고 참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서 경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서 경의 죽음 후 줄리는 양심의 가책으로 또 다시 우울증에 시달린다. 줄리는 딸을 데리고 투렌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생-랑주(Saint-Lange) 고성으로 이주한다. 그 지역의 늙은 사제가 줄리를 자주 방문해준 덕분에 줄리는 우울증이 다소 호전된다. 사제가 되기 전에 그는 하루 만에 워털루 전투에서 세 아들을 모두 잃었다. 그런 사제에게 줄리는 “어머니라면 응당 딸아이의 행복을 지켜보는 게 삶의 즐거움일 텐데, 저는 그런 어머니로서의 욕망조차 없습니다.”라고 말해 사제를 놀라게 한다. 줄리는 사실 엘렌이 남편의 딸이기 때문에 엘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머니 된 도리로서 엘렌을 돌봐줄 뿐이다.
시간이 흘러 줄리는 우울증이 호전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이제 서른 살이 된 줄리는 피르미아니(Firmiani) 부인이 초대한 대규모 저녁 파티에서 샤를 드 방드네스(Charles de Vandenesse)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이내 서로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을 때, 줄리의 남편이 언짢은 얼굴로 걸어 들어와, 그들이 껴안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만, 어깨를 약간 으쓱할 뿐이다.
그리고는 장면이 급전환되어 많은 시간이 흐르고, 엘렌이 어린 남자아이 샤를(Charles)을 데리고 강으로 간다. 어느 순간, 엘렌이 샤를을 강으로 밀어버린다. 샤를이 익사한다. 이 장면을 통해 어린 샤를이 아마도 샤를 드 방드네스와 줄리의 사생아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엘렌은 어머니가 간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줄리는 간통죄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데글르망에게는 이제 두 아이가 더 있다. 그는 아벨(Abel)과 모이나(Moïna)와 함께 놀아주는 “좋은 아빠”이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때마침 하인들은 외출하고 없었기에 데글르망 후작이 문을 열어준다. 방금 전에 나이든 모니(Mauny) 남작을 도끼로 살해하고 도망쳐 온 남자가 서 있다. 그의 위협으로 후작은 하는 수 없이 그를 집안으로 들여 방에 숨긴다. 그런 다음, 후작은 그를 찾으러 온 헌병대에게 그를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한다. 엘렌이 살금살금 기어가 그가 숨어 있는 방안을 훔쳐본다. 그러더니 그 방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엘렌은 어머니 줄리가 엘렌이 “의무의 자식”인 남편의 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무심하게 대하자 그 살인자와 달아나기로 결심한다. 후작과 줄리는 참담한 심정이지만, 엘렌은 기어이 살인마를 따라 집을 나선다. 그들이 떠나고 후작이 서둘러 헌병대를 불렀지만 달아난 자들을 찾을 수 없었다.
“후작과 그의 아내가 부지불식간에 엘렌을 빼앗아버린 남자가 행사한 그 불가사의한 영향력에 저항해보지도 못하고 큰딸을 잃어버린 그 끔찍한 크리스마스 밤은 마치 운명이 보낸 경고 같았다. 후작은 주식 중개인의 실패로 인해 파산했다. 그는 아내의 재산을 빌려 잃은 돈을 되찾아보려다가 파산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프랑스를 떠났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어느 날 후작은 미국에서 온 스페인 배에 타게 되는데, 갑자기 그 배가 악명 높은 해적 빅토르(Victor)와 그의 연인이자 역시 해적인 엘렌이 이끄는 해적선을 만난다. 회한의 눈물이 떨어지고, 후작은 해적의 돈을 모두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후작은 다시 부자가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엘렌 역시 줄리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다.
또 다시 많은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백작 부인이 된 딸 모이나는 알프레드 드 방드네스(Alfred de Vandenesse)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그는 사실 샤를 드 방드네스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면 모이나의 아버지도 샤를 드 방드네스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에 결국 그들은 근친상간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해 줄리는 함구하고 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어머니로서 속죄의 노후를 보내던 줄리는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선택한다.
이 작품을 통해 발자크는 새로운 심리학적 유형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작품 사전(Dictionnaire des œuvres)〉에서는 “발자크의 작품들 중에서 이른바 최악의 구성, 최악의 여성상, 최악의 서술인 〈서른 살 여인〉으로 발자크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사실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발자크는 서른 살의 여인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줄리 드 샤스티옹은 잘생긴 장교 빅토르 데글르몽에게 반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아이의 섬세한 영혼과 빅토르의 본질적인 저속함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을 몹시도 반대했지만 허사였다. 몇 달 뒤,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러나 줄리는 이제 남편에 대해 성격 차이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혐오감까지 더해져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이자벨 밀레(Isabelle Miller)는 좀 더 짤막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813년 줄리 드 샤스티옹이 혈기왕성한 빅토르 데글르몽 대령과 결혼했을 때 그녀는 고작 일 년 뒤에 결혼의 고통으로 눈물 흘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발자크는 결혼, 여성의 성욕, 여성의 감정에 대해 여성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요컨대 여성의 관점에서 결혼이란, 청춘의 육체적 욕망, 성급한 환멸, 그리고 성적 쾌락과 욕구불만(오르가슴 부족)까지 모두 포함한다. 발자크는 강간에 가까운 성적 난폭함에 대해, 이는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지한 젊은 신부들로서는 이중으로(육체적, 심리적) 감내하는 폭력에 불과하며, 여자의 욕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남편이 여자의 몸을 그가 원하는 대로만 다루기 때문에 젊은 신부들은 육체적 쾌락이 더욱 혐오스러워지게 된다고 말한다. 줄리 데글르몽도 남편 빅토르 데글르몽의 성적 충동에 복종하는데, 이 빅토르 데글르몽에 대해 발자크는 줄리에 비해 한참 부족하고 열등하게 묘사하고 있다.
결국, 빅토르의 고모인 리스토메르-랑동 백작부인은 젊은 데글르몽 부인의 속마음을 간파하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줄리가 실망감으로 흔들리고 있구먼. 빅토르의 무능을 깨닫는 데 단 하루, 단 하룻밤이면 충분했겠지. 줄리가 그걸 깨달았다면 이미 모든 게 끝난 일이야. 그렇다면 머지않아 조카의 결혼생활이 불행해지겠어.” 이는 줄리가 이내 성생활의 난폭함을 발견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강압적인 성적인 수동성에는 수줍음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내밀한 의학적 문제가 추가된다. 여기서 발자크는 생식기 염증(자궁염)에 대해 간략하게 암시한다. 발자크로서는 기혼 여성의 이런 어려움들이 그녀들의 사회적 신분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어쨌든 사랑하지만 증오하는 남편들, 여성의 성적인 문제와 감수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형편없는 남편들의 “무능”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발자크는 제1장에서 부부생활의 환멸이 공적인 생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보여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주인공은 사적인 고통으로 인해 오히려 이 “무능한” 남편에게 득이 되는 공적인 평판에 부응하게 되고, 그녀에게 일종의 체면이 부과된다. 구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가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에서 이미 제기했듯이 간음, 성적 고통과 같은 주제는 문학에서 가장 흔한 주제이다.
발자크는 모든 『인간희극』에 나폴레옹의 전설을 포진시켰다. 〈서른 살 여인〉에서 그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전투(1805년 12월 2일 나폴레옹 1세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동맹군을 격파한 전투. 이 전투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대야전(大野戰)으로 나폴레옹의 전성기를 상기시키는 전투이다.)에 대해 “훈련이 끝나자 부관은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 황제 앞에 서서 명령을 기다렸다. 이 순간, 그는 줄리로부터 불과 20보 정도 되는 거리에서, 황제가 이끄는 군대 앞에서,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제라르(Gérard)가 라프(Rapp) 장군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매우 흡사한 태도로 서 있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독일(Allemagne) 원정(1813년)에 대해서는, “1813년 13일 일요일이었다. 그 다음 날 나폴레옹(Napoléon)은 이 운명의 원정을 떠났고, 이 원정에서 베시에르(Bessières) 장군과 뒤록(Duroc) 원수를 연이어 잃었으며, 잊지 못할 루첸(Lutzen) 전투와 바우첸(Bautzen)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베르나도트(Bernadotte)(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원수. 후에 샤를 14세(Charles XIV)라 칭하고, 스웨덴 및 노르웨이의 왕(1818-44)이 되었다.) 원수의 배신으로 오스트리아(Autriche), 작센(Saxe), 바비에르(Bavière)에게 배신을 당해 참혹한 라이프식(Leipsick)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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