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22권
〈고리오 영감(Père Goriot)〉은 발자크가 1834년 사셰(Saché)에서 집필하기 시작한 소설로, 《파리 리뷰(Revue de Paris)》 지에 발표된 후 1842년에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인간희극』의 「사생활 정경」의 일부로, 『인간희극』이라는 독특하고 진정한 문학적 건축물의 토대를 마련하는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지방의 가난한 귀족의 후손으로서 화려한 상류사회를 동경하며 파리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후원자가 될 여성을 찾는 야심가, 으젠 드 라스티냑(Eugène de Rastignac)과, 한때 백만장자 부인을 잃고 두 딸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지만 자신은 빈털털이가 되고 병이 들어 죽는 제면업자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그리고 자신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철저하게 아버지의 부를 이용하고는 병든 아버지에게 냉담한 불효녀 두 딸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요 테마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수전노인 고리오 영감의 일방적인 부성애이고, 다른 하나는 라스티냑이라는 주인공이 어떻게 파리라는 부패하고 위선적인 도시에서 악의 세계로 빠져드는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의 자본주의와 과정에서 드러나는 '돈'의 문제를 보케르(Vauquer) 하숙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당대 프랑스 사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을 보케르 하숙집에 끌어들임으로써 당시 프랑스 사회의 양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자연주의를 넘어선 사실주의를, 즉 현실에 대한 참다운 반영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돈의 논리이다. 돈은 모든 인물을 지배하여 가족관계마저도 왜곡시킨다. 이러한 내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의 위력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시사해 준다.
제1장 고급 하숙집
파리의 그 어느 구역보다도 음침한 뇌브 생트 주느비에브(Neuve-Sainte-Geneviève) 거리의 아래쪽에 보케르 하숙집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거리에서 40년 전부터 하숙집을 운영해온 보케르 부인이 이 하숙집의 주인이다. 쉰 살쯤 되는 보케르 부인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로, 그 어떤 불행도 동정하지 않는 단호함을 지녔다. 보케르 하숙집은 다락방이 딸린 사층 건물로, 정면은 파리에 있는 여느 집들에 비해 천한 인상을 주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창문마다 붙어 있는 덧문들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서 들쑥날쑥하다. 아래층 첫 번째 방은 문으로도 사용되는 창문이 도로에 면해 있는데, 이 방을 통해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식당의 끈적끈적한 찬장 위에는 더럽혀진 병들과 두꺼운 도자기 접시 무더기들이 쌓여 있고, 구석에는 하숙인들이 더러운 수건들을 넣어두는 상자가 놓여 있다.
이 하숙집에는 일곱 명의 하숙인들이 살고 있다. 이 집에서 가장 좋은 이층 방에는 육군 출납 지불관의 미망인인 쿠튀르(Couture) 부인이 빅토린 타유페르(Victorine Taillefer)라는 젊은 여인과 함께 살고 있다. 삼층에 있는 두 방 중 한 방에는 마흔쯤 되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구레나룻을 염색하고 검은 가발을 쓰고 다니는 전직 도매상인이었다는 그의 이름은 보트랭(Vautrin)이었다. 사층에 있는 네 개의 방 중에는 고리오 영감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탈리아식 국수와 전분을 만드는 전직 제면업자가 살고 있었다. 나머지 두 방에는 주로 가난한 학생들이 철새처럼 드나들곤 했는데 당시엔 법학 공부를 하려고 파리로 상경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으젠 드 라스티냑이었다. 그의 집에서는 이 청년에게 일 년에 천이백 프랑씩을 부쳐주느라 온갖 고생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얼굴빛이 하얗고 머리카락은 검었으며 두 눈은 푸른색이었다. 그의 풍모와 태도와 습관적 몸가짐을 미루어볼 때, 그는 귀족 출신임에 틀림없다.
하숙인들은 저마다의 괴로운 사연을 안고 파리라는 큰 대양에서 견디기 위해 보케르 하숙집에 머물게 된 처지였다. 이들 중 빅토린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딸이 자기 곁에 있는 것을 거부하며 재산마저 전부 아들에게 넘겨주고는 그녀에게는 해마다 육백 프랑만을 보내주는 불행에 처해 있었다. 빅토린의 어머니는 옛날에 먼 친척인 쿠튀르 부인 집에서 살다가 절망 끝에 죽었는데, 그 뒤로 쿠튀르 부인이 빅토린을 친자식처럼 돌보아주었다. 불행하게도 쿠튀르 부인은 과부 재산과 연금밖에는 가진 게 없었다. 빅토린은 해마다 어머니를 용서해달라고 아버지에게 갔지만 언제나 문은 가혹하게 닫혀 있었다. 빅토린은 아버지와 오빠를 비난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들 두 사람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는 자가 바로 보트랭이다. 그는 타인과 자신 사이에 있는 장벽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눈에 띄는 호의와 끊임없는 친절과 쾌활함을 내보였지만, 그의 눈은 엄격한 재판관처럼 모든 문제와 모든 양심과 모든 감정의 밑바닥가지 꿰뚫어보는 듯했기에 때때로 사람들은 그의 성격에서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 또한 그는 이따금 신랄한 풍자로 법률을 비웃었고 상류 사회를 공격하며 그 사회의 모순을 비난하길 좋아했다.
보통 이런 집단에는 불쾌감을 일으키며 끝없이 조롱당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보케르 하숙집에서는 고리오 영감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각종 사치품과 값비싼 의복과 고급 은식기들을 쓰며 비싼 하숙비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선금으로 지불했던 그는 해가 갈수록 재산이 점차 줄어드는 듯하더니, 급기야 삼층 싼 방으로 이사하고는 겨울에 불도 지피지 않았다. 이 무렵부터 보케르 부인은 ‘고리오 씨’라고 부르던 호칭을 ‘영감’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영감의 방에 젊은 여인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이 때문에 고리오 영감은 각종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하숙집에 온 지 삼 년째 막바지에 고리오 영감은 경비를 줄이기 위해 사층으로 올라갔고, 담배 없이 지냈으며, 머리에 염색도 하지 못했다. 남모를 슬픔에 빠진 그의 얼굴은 날마다 조금씩 더 음울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가 영락없이 늙은 난봉꾼이라고 생각했다.
1819년 11월 말경, 으젠 드 라스티냑은 법대에서 예비 과정을 다녔기에 공부를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여성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주목했던 그는 여성 후견인들을 정복하기 위해 사교계에 나갈 생각을 했다. 야심에 가득 찬 이 청년은 백모에게서 친척들 중에서 그의 사교계 진출에 도움이 되어줄 만한 인물을 소개받았다. 백모가 소개해준 친척은 파리 사교계의 여왕들 가운데 한 명인 보세앙(Beauséant) 자작 부인이었다. 백모의 소개 편지를 받은 자작 부인은 그를 무도회에 초대해주었다. 이 무도회에서 으젠은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한 사람으로 소문 난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Anastasie de Restaud) 백작 부인을 단박에 사랑하게 되었다. 으젠은 그녀에게 자신이 보세앙 부인과 사촌간이라고 말해서 마침내 그녀의 집에 초대받았다.
그날 새벽, 으젠이 무도회에서 새벽 2시경에 돌아와 마음이 들떠 이런저런 망상에 젖어 있을 때 고리오 영감 방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열쇠 구멍에 눈을 대고 방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고리오 영감은 도금한 접시와 화려하게 조각된 은그릇들을 밧줄로 감으며 탄식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하숙인들은 고리오 영감이 이른 아침부터 금은 세공 상점에 은그릇들을 파는 걸 목격했다는 보트랭의 증언을 듣는다. 또한, 하인을 통해 고리오 영감이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 백작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확인한다. 약속 어음이 들어 있는 편지였다. 사람들은 고리오 영감이 틀림없이 백작 부인의 환심을 사려고 가진 걸 모두 그녀에게 바치는 난봉꾼이자 색골이라고 확신한다.
으젠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다음날 곧장 레스토 부인 댁으로 향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살롱으로 가던 길에 으젠은 복도 끝에 있는 문이 열리며 레스토 부인과 고리오 영감이 입 맞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계단 출구를 통해 정문을 향하는 고리오 영감을 목격한다. 여러 정황들로 인해 흥분한 으젠은 그만 큰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백작 부인에게 방금 전에 “고리오 영감”을 봤다고 말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냉담해진 레스토 부인은 퉁명스럽고 쌀쌀하게 그를 내치다시피 했고,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으젠은 고리오 영감만 탓하며 성질을 부리다 홧김에 보세앙 자작 부인 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으젠은 고리오 영감의 숨겨진 사연을 듣게 된다.
대혁명 전에는 단순한 제면 직공이었던 고리오 영감은 수완이 좋고 절약가였으며 기업 정신이 왕성한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 회전이 빠르고 현명해서 파리에 식량이 부족했던 공황시대에 뒷거리를 통해서 시세보다 열 배 이상으로 밀가루를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인내심 강하고, 행동파에, 정력적이고 기민한 그에게 그의 아내는 종교적 찬미와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아내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죽었다. 이후 주변 상인들과 농민들이 숱하게 제안해온 재혼 혼처들을 모두 마다하고 그는 오직 두 딸들에게만 헌신했다. 그는 딸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많은 돈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는 큰딸은 레스토 가문에, 작은딸은 왕당파이며 돈 많은 은행가인 뉘싱겐(Nucingen) 남작에게, 자기 재산의 반씩을 지참금으로 챙겨서 시집보냈다. 그리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제면업자였는데, 제정 시대를 지나 보나파르트 때까지는 그의 두 사위가 장인을 못마땅해 하지 않더니, 부르봉 왕조가 복귀하자 딸과 사위들은 급기야 그의 장사를 언짢아했다. 오 년 동안의 간청 끝에 마침내 그는 상점의 주식과 마지막 몇 해 동안의 이익금을 가지고 물러나는 데 동의했다. 보케르 하숙집에서 기거하게 되었을 때 두 딸들은 그를 자기들 집에 찾아오지도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절망한 나머지 이 하숙집에서 칩거하게 되었다.
고리오 영감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란 이런 거지요. 우리 마음은 보물 같아서 단번에 이 보물을 쏟아버리면 우리는 끝장나지요. 돈 한 푼 없는 사람보다도 자기감정을 전부 드러내 보인 사람을 우리는 더 용납하지 않지요. 이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주어버렸어요. 그는 이십 년 동안 그의 오장육부와 그의 사랑을 모두 바쳤고 모든 재산을 하루아침에 바쳐버렸어요. 딸들이 레몬을 꽉 짠 다음에 레몬 껍질을 길모퉁이에 던져버린 것이나 같아요.” 그리고 보세앙 자작 부인은 으젠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자! 라스티냑 씨, 세상이란 이런 거예요. 여성들이 얼마나 깊이 타락했는지 헤아리게 될 거예요. 출세하고 싶지요? 당신에게 관심 가진 여인이 아무도 없다면, 당신은 사교계에서 아무것도 아니지요. 당신에게 젊고, 돈 많고, 우아한 여성이 필요해요. 당신이 진실한 감정을 가졌다면 보물처럼 숨겨두세요. 결코 그것을 남이 알아채게 해서는 안 돼요. 만약 그러면 당신은 파멸이에요.”
자작부인 댁에서 돌아온 라스티냑은 출세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고는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저축한 돈을 아버지 몰래 부쳐달라는 간절한 편지를 보낸다.
제2장 사교계에 입문
라스티냑의 고향에서 어머니와 두 여동생들이 돈을 부쳐준다. 고향에서 보내준 돈을 받는 라스티냑을 보고 보트랭은 그에게 적나라한 출세주의를 설교하더니, “원칙이란 없고, 사건들만 존재하는 것이오. 법이란 없고, 상황만이 존재하는 것이오. 뛰어난 인간은 사건과 상황에 결합해서 그것들을 이끄는 것이지.”라며 치밀한 범죄 계획을 짜서 라스티냑을 유혹하려 한다. 요컨대, 빅토린 양이 지금은 무일푼에 초라해보여도 그녀의 오빠만 사라지면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유일한 상속인이니, 자신이 그녀의 오빠를 제거해주면 나중에 라스티냑이 그녀와 결혼한 후에 자신에게 일정 몫을 떼어달라는 제안이다. 빅토린은 고지식한 성품인데다 라스티냑에게 이미 반해 있으니 문제될 게 하나 없다고 덧붙인다. 라스티냑은 물론 거절하지만, 보트랭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차 없는 현실주의, 세상의 현상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반항심으로 젊은 라스티냑에게 반도덕적인 현실주의를 고취시킨다.
라스티냑은 고리오 영감에게서 작은딸 델핀이 자주 가는 무도회에 대한 정보를 얻고는 보세앙 부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보세앙 부인이 그를 데리고 간 오페라 극장에서 라스티냑은 드디어 뉘싱겐 부인을 소개 받는다. 라스티냑은 뉘싱겐 부인을 공략하기로 결심한다.
극장에서 돌아온 라스티냑은 고리오 영감 방을 찾아가 딸 얘기를 들려준다. 가난한 하인방보다 못한, 처참한 방에서 고리오는 딸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는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는 신을 이해했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는 딸들을 더 사랑하고 있소.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만큼 아름답지 못하고 내 딸들은 나보다 더 아름답기 때문이오.”라는 말로 딸들에 대한 거룩한 부성애를 표현한다.
라스티냑은 뉘싱겐 부인 댁을 방문해 그녀의 마차를 타고 공원을 산책한다. 그녀는 라스티냑에게 백 프랑을 건네며 가까운 도박장을 다녀오라고 종용한다. 라스티냑은 그녀의 말에 복종한다. 그가 초심자의 행운으로 천 프랑이 넘는 돈을 따서 그녀에게 가져다주자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하더니 은행가인 뉘싱겐 남작은 그녀에게 너무도 인색해서 모든 경제권을 틀어쥐고 아내에겐 단 한 푼도 주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라스티냑은 그녀의 교태에 현혹되고 그녀를 향한 사랑에 도취된다.
하지만 델핀은 자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라스티냑을 마음껏 조롱하며 즐기고 있었다. 으젠 입장에서는 자존심 때문에 자기의 첫 싸움을 패배로 끝내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파리 전체가 뉘싱겐 부인이 그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처음 만난 날 이상으로 진전되지 않았다. 급기야 라스티냑은 어리석은 분노에 빠져들어, 양심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보트랭이 제안했던 빅토린과의 결혼 가능성을 생각해보기에 이른다.
제3장 불사신
결국 라스티냑은 보트랭과 결탁한다. 보트랭은 지인을 동원해 빅토린의 오빠를 모욕해 결투를 유발하고, 빅토린에게도 라스티냑이 그녀에게 완전히 반해 있다고 부추긴다. 보트랭의 지인이 빅토린의 오빠와 결투를 벌이기 전날 밤, 라스티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바로잡으려 한다. 이때, 고리오 영감이 라스티냑에게 실은 델핀이 그를 위해 새 아파트를 장만해 가구까지 새로 들여 놓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델핀이 그에게 선물한 고급 시계를 전해준다. 라스티냑은 당장 델핀에게 달려가기 위해 고리오 영감에게 그를 대신해 빅토린의 아버지를 만나 한밤중에 잠시 그를 만나달라고 청해달라고 부탁한다. 내일 아침의 결투를 만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라스티냑과 고리오 영감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보트랭이 라스티냑과 고리오 영감이 마시는 술에 수면제를 타서 둘 다 곯아떨어진다.
다음 날 아침, 빅토린 오빠가 결투하다 부상을 입고 죽기 직전이라는 전갈을 듣고 빅토린이 급히 아버지 댁으로 달려간다. 결국 빅토린은 막대한 재산의 상속녀가 된 것이다. 잠시 후 하숙집에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보트랭을 체포하러 온 것인데, 알고 보니 보트랭은 징역수들의 두목으로, 통칭 ‘불사신’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탈옥수 자크 콜랭(Jacques Collin)이었다. 보트랭은 체포되어 연행되고, 라스티냑은 보트랭의 악행에서 벗어난다. 보트랭이 끌려간 직후, 고리오 영감이 마차를 타고 나타나 라스티냑을 태워 델핀이 그를 위해 장만했다는 새 아파트로 향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 아파트와 가구들, 우아한 실내장식들이 모두 고리오 영감의 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오로지 딸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고리오는 델핀을 라스티냑과 행복하게 살게 해주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영속 연금 공채를 팔아 그 돈으로 라스티냑의 집과 가구들을 장만했다. 델핀은 지금 남편을 상대로 지참금을 되찾기 위한 소송 중이었기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리오는 델핀이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며 뛸 듯이 기뻐한다.
다음 날 라스티냑은 보세앙 자작 부인으로부터 뉘싱겐 부인과 그를 자작 부인 저택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초청하는 초대장을 받는다. 라스티냑은 초대장을 들고 델핀을 만나러 간다. 라스티냑은 델핀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내일 이사를 앞두고 달콤한 꿈에 젖는다.
제4장 아버지의 죽음
다음 날 고리오와 라스티냑이 이사하려고 짐꾼을 기다리다가 라스티냑이 잠시 자기 방으로 올라간 사이에 뉘싱겐 부인의 마차가 하숙집 앞에 멈춘다. 델핀은 하숙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아버지에게 남편과의 소송에 대해 의논한다. 남편이 델핀에게 그녀의 돈을 이제 막 시작한 사업에 투자한 상태이니 일이 년만 참아주면 맹세코 두 배로 늘려서 돌려주겠다며 소송 취하를 애원하면서 울며불며 호소하는데, 그녀가 알아보니 남편이 새로 벌인 사업이 이미 파산 지경이었다. 고리오와 델핀이 절망에 젖어 있는데, 레스토 부인의 마차가 하숙집 앞에 멈춘다. 레스토 부인 역시 정부의 막대한 부채를 막아주느라 집안 유물인 다이아몬드를 고리대금업자 곱세크에게 팔아버렸고, 이 사실을 레스토가 알아버렸다. 때문에 그녀로서는 정부의 사랑밖에는 남은 게 없는데 그 정부가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갈 처지여서 또 돈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레스토 부인은 고리오에게 영속 연금을 어떻게 했냐고 묻고, 고리오가 라스티냑의 아파트를 장만하는 데 썼다고 답하자 자매는 서로를 비난하며 다투기 시작한다. 고리오는 어떻게 해야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절망하고 자책한다.
이 모든 얘기를 듣고 있던 라스티냑이 보다 못해 보트랭에게 주려고 써 놓았던 어음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그러자 레스토 부인은 얼굴이 새파래지며 그가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모두 듣고 있었다는 사실에 격분해서는 온갖 비난을 퍼붓는다. 이때, 충격을 이기 못한 고리오가 쓰러진다. 그러나 레스토 부인은 기절한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가버린다. 그러나 이내 돌아오더니 깨어난 아버지에게 라스티냑의 어음에 서명해달라고 청한다.
딸들이 돌아가고, 고리오 영감을 진찰한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진단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에 오페라극장에서 만난 델핀에게 라스티냑이 고리오를 걱정하자 델핀은 걱정 말라며 오히려 그를 안심시킨다. 델핀은 온통 내일 열리는 보세앙 부인의 무도회 생각뿐이다. 라스티냑도 이내 고리오를 잊고 그녀와의 단꿈에 젖는다.
그러나 하숙집으로 돌아와 보니 고리오의 상태가 위독하다. 그 사이에 레스토 부인이 또 다녀갔는데, 그녀가 내일 무도회에서 남편이 눈치 채지 못하게 집안 유물인 다이아몬드를 반드시 걸고 가야 한다고 애원해서 고리오가 곱세크에게 종신 연금을 저당 잡혀 돈을 마련해주었고, 그 과정에서 상심이 더해져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고리오는 라스티냑에게 내일 딸들이 마음 편히 무도회에 갈 수 있도록 자신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다음 날, 고리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된다. 결국 라스티냑이 델핀에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리러 달려가지만, 델핀은 아버지는 무도회가 끝난 다음에 보러 가면 된다며 라스티냑이 무도회 차림으로 오지 않았다고 타박한다. 라스티냑은 비통하고 절망적인 마음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세상이 진흙탕의 바다라고 생각한다.
성대한 무도회가 시작되고, 고리오는 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죽어간다. 무도회에서 돌아온 라스티냑이 딸들의 집에 사람을 보내지만, 레스토 부인은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있고, 뉘싱겐 부인은 무도회에 다녀온 피로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 있어 올 수 없다는 소식만 하인들을 통해 듣게 된다. 고리오는 드디어 딸들이 보고 싶다고 부르짖더니, 라스티냑에게 “내 딸들은 나의 악덕이었고, 그 애들은 나의 정부, 요컨대 모든 것이었지!”라고 고백한다. 단말마의 고통 속에 오지 않는 딸들을 애타고 부르며 그는 자신의 사랑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의식한다. “내 오장육부를 항상 열어 보인 습관 때문에 내가 해준 모든 일의 가치를 그 애들은 모르는 거야. 그 애들이 내 눈알을 파내겠다고 요구하면, ‘그래 파내라!”하고 나는 말했을 거야. 내가 너무 어리석지.“하고 그는 울부짖는다. 라스티냑은 델핀에게 선물 받은 시계를 저당 잡혀 고리오의 수의를 마련한다. 그리고는 레스토 부인과 뉘싱겐 부인 댁으로 직접 달려간다. 그러나 두 여자 모두 남편과의 불화가 심각해져 아버지의 임종을 마다한다.
결국 고리오는 숨을 거둔다. 그 순간, 레스토 부인이 도착해 아버지가 죽은 걸 알고는 기절해버린다. 라스티냑은 그녀의 하인에게 그녀를 뉘싱겐 부인 댁으로 데려가라고 부탁한다. 라스티냑이 두 사위에게 장례비용을 부담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끝내 아무 소식이 없었기에 다음 날 아침에 그는 직접 사망 신고를 하러 가야만 했다. 결국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고리오의 관을 바라보며 라스티냑은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장례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고리오의 관은 미사도 없이 장의사에게 보내진다. 결국 고리오의 시신은 라스티냑이 싼 값을 치른 시트에 싸여 묘지에 안장된다. 마지막 순간, 매장꾼들이 관을 덮으려 흙을 몇 삽 퍼서 던지다가 말고 라스티냑에게 돈을 요구한다. 라스티냑은 곁에 있던 친구에게 돈을 빌려 값을 치른다.
라스티냑은 이제 완전히 깨닫는다. 그에게는 가정이 속임수같이 보이고, 보트랭의 예로 보면 반항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는 속세의 철칙인 투쟁을 선택한다. 묘지의 언덕 위에서 파리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그리고는 사회에 도전하려는 첫 행동으로, 뉘싱겐 부인 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고리오 영감〉은 1819년 11월 말에 시작되어 1820년 2월 21일 고리오 영감의 장례가 치러지는 날까지 약 3개월의 기간 동안의 이야기로, 프랑스 왕정복고(La Restauration) 체제가 그 시대적 배경이다. 따라서 프랑스 대혁명이 빚어 놓은 사회,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정을 겪으면서 급격히 변화한 프랑스의 사회구조를 광범위하게 반영하고 있다.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대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19세기 초반 전체의 사회적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부르 쌩 제르맹의 대귀족들은 이제 7월 혁명에 의해 멸망하고 말 운명에 놓인 영광의 마지막 빛을 향유하고 있다. 보세앙 부인 댁의 무도회는 바로 그 덧 없는 불꽃놀이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고리오 영감은 유일하게 이 귀족사회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 그 자체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 기억을 되살려 주는 불편한 존재 고리오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라스티냑을 제외한 모두가 바라고 있다. 모두가 눈앞에서 없어져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대상인 고리오 영감을 통하여 진정으로 겨냥되고 있는 것은 바로 망령처럼 다시 나타나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나폴레옹 시절의 기억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한 니콜 모제의 해석은 탁월하다. “고리오에게는 나폴레옹을 상기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구체계의 귀족계층이 한동안 덧없는 찬란한 옛 광영을 되찾아 소생함과 때를 같이하여 이 늙은 제면업자가 불가피한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은 퇴위당한 황제가 고난의 길을 가는 과정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또한, 고리오와 두 딸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세 계층 간의 관계를 명백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고리오는 혁명 이전에는 그저 국수공장의 노동자에 불과했다가 대혁명 이후 점차 부르조아지의 반열로 상승한다. 그러나 만년에는 다시금 명백한 하층민의 신분으로 복귀해 사망한다. 반면에 그의 첫째 딸은 대귀족과 결혼했고, 둘째 딸 델핀은 바야흐로 상승일로에 접어들게 될 자본 부르조아인 은행가와 결혼했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보아 레스토 부인은 이미 득세하고 있는 귀족계층에 편입되어 있고, 뉘싱겐 부인은 아직도 보세앙 부인 댁 무도회에 초대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르조아지 계층에 속해 있다. 고리오 영감을 매장한 뒤 라스티냑이 선택한 쪽은 미래에 득세할 계층인 뉘싱겐 부인 댁이다. 고리오 집안의 갈등은 바로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 간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의 비극은 무엇보다도 정열의 비극으로 보인다. 『인간희극』의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하나의 정열에 사로잡힌 편집광적인 인물들의 한 유형이 고리오라고 할 수 있다. 권력, 돈, 도박, 발명, 혹은 애욕이 그 편집광적 인물들의 정열의 대상이 되어, 그들을 사로잡고 그들의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인간희극』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다. 고리오 영감은 딸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정열의 노예가 되어 처참하게 파멸하는 인간 유형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고리오에게 그 어떤 숭고한 정신적 천성이 있어서 땅 위에 사는 다른 인간을 초월한 경지의 천사들에 가까운 어떤 존재로 승격시켜 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발자크의 소설 기법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인물 재등장〉 기법이 처음으로 시도된 작품이 바로 〈고리오 영감〉이다. 발자크는 이 기법을 평생 즐겨 사용한다. 그 어느 소설가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 기법을 만들어낸 〈인물 경제학〉의 대가인 발자크는 주인공들을 여러 소설에 등장시켜 그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쌓아올린다. 발자크는 이 기법을 통해 한 세대의 살아 있는 벽화의 연속성을 엿본다.
▶ 작품 배경 : 아래의 문헌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 줄거리 : 아래의 문헌을 참고해 제 임의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1.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저, 박영근 역, 민음사.
2.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저, 이동렬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 분석 : 논문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김화영, 고려대학교, 1986)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