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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돌아가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어머니에 관하여

by 글섬

필립 케니콧 지음 / 정영목 옮김


필립 케니콧(Philip Kennicott)은 [워싱턴포스트] 예술 및 건축 평론가로, 2013년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한 작가이다. 다수의 클래식 음악잡지의 편집자로 일한 바 있고, 현재 [오페라 뉴스]와 [그라모폰]에 정지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고전 음악에 정통한 평론가이다.


평론에 대해 별다른 취향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몇 페이지 나아가기도 전에 차원이 다른 저자의 필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제야 저자의 이력을 확인해 보니 퓰리처상 비평 부문 수상자였다. 클래식 음반을 사면 내지 해설로 접하거나, 아주 가끔 음악 감상실에서나 뒤적여 보게 되는 음악 잡지 혹은 신문에서나 접하곤 했던 건축에 대한 평론이 퓰리처상 대상에 이를 지경이 될 수 있었다는 건 내 상식 밖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내 지적 수준으로는 이제껏 경험했던 그 어떤 에세이보다 단연코 월등한 글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맞서 싸워야 했던 많은 감정들을 편집하는 도구로써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택했다. 관계가 돈독하거나 애틋했던 부모보다 물리적, 정신적 학대의 가해자였던 부모의 사후가 감정적으로 훨씬 더 갈 길이 멀다. 심정적으로 부모와 대치 상태였거나, 부모가 악감정의 대상이었다면 이는 결국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뜻한다. 그런 부모의 죽음은 독립체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을 완전히 차단해 아주 오랜 시간 돌고 돌아야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암이 전열을 재정비"해 "이제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죽는 일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짐을 싸던 저자에게는 그래서 상실의 슬픔이나 두려움보다 훨씬 더 많은, 뭐라 이름지우기 어려운 다양한 양상의 양가적 감정이 몰려 들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 글의 원제가 <Counterpoint>, 즉 <대위법>이다. 저자는 어머니에 대한 숱한 양가적 감정들을 다루기 위해 본능적으로 바흐를 선택했다. 어머니와 바흐는 저자에게 오랜 시간 경외로운 아름다움과 동시에 정서적 난공불락의 양가적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두 난제를 교차해 파고들며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계기가 주어지기 전에는 도달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인간적, 음악적 두려움 들을 정면 응시하고 있다.





바흐는 훌륭한 여행 음악이기도 하다. 바흐의 CD 한두 장이 다른 음악 몇 시간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충족감을 주며, 그 어떤 음악보다 감정적으로 효율적이어서 빈 곳을 채우거나 덧붙일 필요가 없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바흐는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든, 일하든 놀든, 잘나가든 간신히 버티든 무기력하게 뒹굴든 모든 분위기에 맞는다. 그의 음악은 해변에서 나를 즐겁게 해주는 만큼이나 11월 말의 잿빛 사막 풍경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준다. 그곳에 있는 동안 베토벤, 브람스, 바그너를 틀지 않을 이유는 백 가지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바흐를 물리칠 이유는 한 가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


우리는 꿈과 야망에 관해 헛소리를 잔뜩 해대는 사회, 자기실현의 수사가 넘쳐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흔한 살 먹은 역도 선수가 자기 무게의 두 배가 나가는 벤치프레싱을 하고, 눈먼 등반가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부상한 참전용사가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다. 물론 가치 있고 영감을 주는 모험들이지만, 나이가 드는 것에 관해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갖추면 우리는 꿈을 버리게 된다. 나는 서른이 되었을 때 내가 절대 훌륭한 발레 댄서가 될 수 없음을 확실하게 알았다. 내가 한번도 애써 댄스 레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지만 더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몸이 발레 댄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할 시점을 지나버렸기 때문이었다. 마흔이 되었을 때는 절대 저녁에 난롯가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훌륭한 고전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합리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버리는 꿈 하나하나는 그때마다 또 한 번 필멸성에 대한 작은 암시로 우리를 찌르지만, 그렇다고 그런 꿈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실망과 불필요한 자책으로 쇠약해진 채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어리석은 정신으로는 영원한 후회 속에 살아가기 십상이며, 합리적인 꿈을 향해 감당할 만한 도전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의지를 동원할 수조차 없게 된다.


그러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배우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단히 합리적인 일, 꿈이 아니라 하나의 기획으로 보였다. (중략) 바흐를 더 잘 이해하고 싶었고, 나의 정신이 그의 음악을 소리의 벽이 아니라 소리들의 긴밀한 네트워크로 들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한지 알고 싶었다. 중년이 되면 "내가 아직도 이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젊은 시절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만큼이나 자아감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질 수밖에 없는 죽음과의 싸움에서는 우아하게 물러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음악은 우리 나이가 어떻든 터무니없어 보이는 끈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으며, 인생에서 끈기는 열쇠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그런 끈기가 거의 없었고, 내가 그런 결함을 물려받은 것이 걱정되었다. 한동안 나를 흔들어놓았던 애도가 낮은 배경소음처럼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바흐의 <샤콘>에서 나에게 그토록 신비하고 권위 있어 보이던 것의 기계적 작동을 <골드베르크 변주곡> 안에서 탐색해볼 만한 능력은 내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음악의 레버와 기어를 배우고 그게 나를 어디로 이끌지 한번 보리라, 나의 한계에 대한 더 고통스러운 자각에 이를 가능성이 크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교훈도 배우게 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나는 음악이 위로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지조차 확신이 없다. 가끔 사실은 내가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음악은 만족을 주기보다는 혼란을 일으키며 충족시켜줄 것 같은 바로 그 욕구를 늘려놓는다. 음악은 기껏해야 삶에서 더 고통스러운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뿐이다. 우리가 음악의 힘을 위로와 혼동한다면 그것은 엉성한 사고 때문이다. 위로는 세상 또는 삶에 관하여 마음 놓이게 해주는 진술,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도 할 수 없는 철학적 진술을 요구한다. (중략) 우리가 음악이 위로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음악이 너무 자주 종교의 하녀가 되어 중교적 관념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증폭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음악 자체는 어느 편인가 하면 우리의 생살을 드러내 우리를 고통, 향수, 기억에 더 예민하게 만든다.


대중음악은 소비되도록 기획되며, 진부화가 내장되어 있어 즉시 모든 곳에 도달했다가 빠르게 사라져버리곤 한다. 더 깊은 음악은 한동안 우리를 바닥나게 할 순 있어도 자신은 바닥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남은 인생 동안 날마다 바흐의 <샤콘>을 듣기를 바라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몇 년 또는 몇십 년 뒤 그 음악으로 돌아가도 그 힘은 그때 그대로다.


어머니는, 내 생각으로는, 폭력에서 평소의 선을 넘어버린 자신에게 화가 났고, 또 나는 눈물을 터뜨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는 최대한 존엄을 그러모았다.


나는 내 개인적 신화에서 이 순간을 기념비에 새겨놓았다. 내가 유년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 실제로 그 눈오던 날 바닥에 누워 있던 바로 그때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내가 그 일을 기억하기로 선택한 방식이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내 인생의 그 무렵, 아마도 그렇게 또 어머니에게 맞았던 다른 날, 어쩌면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맞게 되었던 날ㅡ훨씬 더 분했다ㅡ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은 아니라고, 바닥에 누워 울고 분노하는 지저분한 꼴을 보일 사람은 아니라고 마음먹었다. 그날 그 일이 있기 전 단테를 읽고 스스로 눈을 치울 의무를 떠안으면서 나는 독립적인 어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의 힘에 눌려 어린애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남은 어린 시절을 없애고 오로지 중요한 것에만 전념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것들이 예컨대 단테와 슈베르트 외에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특정 순간으로,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진 그 순간으로 나를 이끈 그 시시하고 너절한 삶보다 더 실질적인 삶이 책과 음악과 예술 속에 있다고 어렴풋이 느꼈다.


(추모 예배에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행복했던 때, 또는 행복해 보이려고 했던 때의 이미지들을 골랐고 이것이 어머니에 대한 우리 공통의 기억을 봉인하는 느낌이었다. (중략) 아무도 그녀의 삶의 나머지에 관해, 슬픔과 분노와 설명할 수 없는 격분에 관해, 기록한 적은 없지만 만약 녹취록이 있어 다시 읽게 된다면 늘 그녀의 짜증과 피로와 노여움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을 싸움과 말다툼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그게 좋았다. 죽음은 우리와 그녀의 관련을 끊었고 그와 더불어 그녀의 분노를 이해할 어떤 희망도 사라졌다. 우리가 그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녀의 나머지 삶도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따라서 영원히 우리를 당혹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 기억을 더 행복하고 더 이해 가능한 기억으로 대체하는 것이 뭐가 어떤가?


어머니가 죽은 그해에 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거의 포기했다. 음악을 들었고 콘서트에 갔고 새 녹음이 나오면 찾아 들었지만 몇 달 동안 피아노는 치지 않았다. 단지 바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인생'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인생을 탓하는 것은 마치 인생이 우리에게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것인 양, 핀볼이 범퍼를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어떤 기계적인 것인 양 구는 일이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피아노가 필요했으나 수많은 결심이 그렇듯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피아노 주위로 빠르게 모여들어 피아노를 억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내 경우 어머니가 며칠에 걸쳐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 <샤콘>의 짧게 되풀이되는 반복은 슬픔, 뭔가 원초적이고 위엄 있고 집요한 것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느낌을 흉내 내고 있었다. 이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상실 후에 찾아오는 어떤 것,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아는 데서 오는 혼란이라는 고무줄 같은 감각을 희미하게 알려주었다. 죽음으로 인한 첫 충격이 지나면 우리는 상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추어져 있던 것들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죽은 사람에 대한 대개는 제한적인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완성하고 그 사람을 우리 기억에 어떻게 고정하기 시작하는지 탐사하며 세상을 배회한다. 그러다 슬픔의 손아귀가 느슨해질 때 알고 있던 세계로 돌아가지만 그 세계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 때문에 바뀌어버렸음을 알게 될 뿐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서두를 열었던 아리아를 바흐가 끝에 반복할 때, 그것은 완전히 바뀌어 있다. 그것은 절대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강물과 마찬가지다. 바흐는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이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 음악을 당신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피아노 레슨에서) 한번은 충분히 숙달하지 못한 것을 치다가 계속 실수하고 음을 연달아 놓친 뒤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는 연주를 중단시켜다. "사과는 받아들이지 않겠어." 그가 말했다. 이어서 의도, 행동, 사과에 대한 논리 정연한 설명이 따랐다. 인간 행동에 관한 그의 엄정하고 합리적인 관점의 요약이었는데, (중략) 이런 것이다.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행동만 중요하다. 우리가 세상에서 행동하는 방식에서 우연은 없다.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는 말은 의미 없다. 자신의 진정한 동기를 인정할 만한 정직성이나 명료한 자기 인식이 없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늘 자신이 바라는 그대로 행동한다. 나는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을 놓쳤다. 그리고 나는 연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하지 않았다. 고로 나는 그에게 조잡한 결과를 가져가려 했던 것이고, 따라서 나는 그것으로 사과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과거의 네가 아니야." 아마 오직 선생만이 이런 논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과 너무 가깝고, 특정 순간의 정적인 기억을 동결한 스냅숏, 둘 관계의 어떤 이상화된 감각을 보존하는 이마고(imago, 상상 속에 완벽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 인물의 상)에 몰두한다. 좋은 선생은 부모가 너무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 즉 젊은 사람의 자유에 반드시 관심을 갖는다. 제자가 스승을 떠나 한동안 자유롭게 산 뒤에야 스승은 그들 관계의 성공을 판단할 수 있다. 아마 제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유를 얻은 뒤에야 자신을 가르친 사람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레슨 아닌 레슨에서 조가 얼마나 대화를 처리하는 데 능숙한지, 기를 죽이거나 잔인해지는 일 없이 해야 할 말을 잘하는지 놀랐다. 가르침의 큰 부분은 제자가 미숙하게나마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으로 나아가라고, 의심을 옆으로 밀어두라고, 부담 없이 전진하라고 허락하는 것이다. 조는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자기가 한 말을 반복하지 않고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 너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오랜 시간 어머니와 화해하지 못한 저자의 고통이 극도로 절제된 문체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저자의 어머니는 바이올린 전공자였지만 결혼과 출산이 이어지며 경력을 잃게 된 음악가로, 꿈에 대한 고통스런 상실감을 자녀들에게 가감없이 다양한 양태로 표현했다. 저자 역시 피아노 전공 문턱까지 갔던, 아주 오랜 시간 피아노를 상대로 투쟁했던 음악가였는데, 그에게 음악이 예술이기보다는 고통이자 투쟁에 가까웠던 데에는 어머니의 완벽에 대한 집착과 분노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대학 때 아버지를 잃었던 절친에게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넸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그냥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죽음이 모든 걸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 가족 부양을 거부했던 자유인으로 가족 모두의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때는 모호하게만 들렸던 그의 대꾸가 나 자신이 아버지 장례식을 마주하자 비로소 선명해졌다. 미움도 슬픔도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오랜 시간 아버지는 물론이고 나 역시 풀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관계와 나에 대한 아버지의 부당한 태도를 이제 항구적으로 외면해야만 한다는 의아함이 먼저였고, 그 다음이 분노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 받았던 다른 형제들보다 더 오랫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붙잡고 애를 먹었다. 아버지를 분류할 항목이 내겐 없었고, 그게 그렇게 새롭게 억울했다. 애도는 결국 나 자신을 향한 길고 고단한 길이었다.


저자가 40년 가까이 사사해온 조 페니모어에 대한 기록도 비교적 상세히 포함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내재했을 것 같다. 자신의 존엄을 훼손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도의 과정에서 오랫동안 두려움으로 외면해 왔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마주했을 때 그의 존엄을 되찾아준 스승은 반드시 거쳐야 할 표지였을 것이다.


세상에서 은퇴하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치고 싶었다. 흰머리를 단정히 묶고 피아노 앞에 앉아 서른 곡을 매일 하나씩 연주하는 노년을 그려왔다. 하지만 나의 피아노는 늘, 언제나, 인생을 탓하며 멈춰 서기 일쑤였기에 이제는 거의 한낯 꿈으로 분류될 기로에 놓여 있었는데, 저자가 발군의 필력으로 곡의 분석을 뛰어넘어 인수분해보다 더한 분해와 해체를 반복한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완전한 포기로 나아갔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자, "바흐는 기쁨, 또는 치유, 또는 말로 포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감정적 체념과 마주하게 해준다. 그것은 일반적인 시간 감각의 바깥에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 있기 수백 년 전에 존재했으며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할 것이고 우리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것은 경이로울 만큼 기진하게 하며 완벽하게 아름다우므로," 아무래도 도전해보는 게 옳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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