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이라지만

by 글섬

나를 책망한다.

현실로 랜딩하지 못하고 저도 모를 곳을 헛돈다.

하루도 빠짐없이 도망치는 나를 묶으려 거울을 내민다.

총기를 잃고 서리 가득한 얼굴을 마주한다.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곳이 어디이길래 자꾸만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니라는지 스스로도 궁색하다.

가속화를 식히려 잠시 멈췄던 곳에서 엔진이 꺼져 버렸다. 그런데 편안했다. 그러면 안 된다. 아직은.


팔에 힘을 꽉 주고 유턴한 현실은 정차 구역에다 주차한 기분에 매일같이 불안하다.

연휴에 농담처럼 반복된 사는 게 뭐냐는 질문에 죽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는 거라고 심드렁하게 답을 한 뒤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나 바깥을 향해 있던 그 단어가 정작 나를 향해 돌아서자 마치 처음처럼 허둥댄다. 이것도 저것도 어떤 것도 나에 대한 적절한 책임 같지 않다. 어쩌면 너무 소중해서 드는 생각일 터인데 피로감만 명징하다. 별로 다르지 않은 오늘임에도 새로 받은 오늘마다 길을 떠나는 기분은 그래서일 테다.


뭐가 든지 모르는 봇짐이 무겁다.

이건 생활인지 길인지 오늘인지 나 자신인지

알고 싶지 않아

무람없는 내게 더더더 관대해지는

나를 책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