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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지음 /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by 글섬

결국 나는 지독한 변화 속에서 하루하루 깊숙이 다가오는 모든 생경한 불편함들을 받아들였고, 곧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살아 있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게 되었고, 세상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금주를 하기 전에는 내가 우주의 완벽한 중심인 것 같았다. 그런데 술을 끊고 나니 광대한 세계 안에서 나는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허탈했다. 하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며,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내가 아는 것은 매우 적고, 나는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롭게, 더 깊이 연결되었다. 침묵을 발견했고, 고요를 경험했고, 나 자신에 대해 '괜찮다'고 느꼈다.(28, 29페이지)


물론 편안함과 편리함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인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를 늘 진보시키지만은 않았다. 점점 과도하게 편안하고 충족함이 넘치는 환경에만 머물렀던 우리의 지난날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이제 인류는 심오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할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다. 마땅히 겪어야 할 경험들은 더 이상 우리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어졌다.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을 변화시켰고, 그 방향이 늘 최선은 아니었다. (40페이지)


인간의 마음은 프레젠테이션을 망치는 것 같은 결과를 과대평가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앞의 미시간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과거에 사회적 실패란 부족으로부터 추방당해 자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이 진화적 메커니즘은 이제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삶에서 정말로 위대한 것은 결코 완전한 성공이 보장되어 있을 때 오지 않습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실행하더라도 실패 확률이 높은 도전에 참여하는 것, 그런 상황에 과감히 뛰어드는 행동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애주고, 내 안의 잠재력을 알게 해주죠." (76페이지)


이 주제와 관련해서 미국의 선도적인 신경과학자인 더글러스 필즈Douglas Fields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필즈는 미국 국립 보건원NIH의 뉴런을 연구하는 신경세포학 분과 선임 연구원이다. 그에 따르면,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을 경험할 때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변환된다. 즉, 방금 일어난 일과 그로 인해 벌어질 일, 그리고 다음에 유사한 상황을 맞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한데 묶어서 기억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미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뇌는 미래에 유사한 경우가 생겼을 때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가치 있는 경험들을 기억에 저장한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도전의 종류가 다른데 비슷한 효과를 얻었다는 것은, 그 안에서 공통괸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했다는 뜻이 됩니다. 수영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기르면 당연히 달리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될 겁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장혈관계의 지구력은 좋아지겠죠. '단련'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정신력으로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90페이지)




제목에서 끼쳐 오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는 비문학을 문학처럼 구성하는 재주가 남다르다. 단언컨대 비문학서 중에 가장 빨리 읽힌 책이다. 비문학이 재미 있기까지 한 건 반칙 아닌가.


어쩌면 모든 서술이 직접적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설득력이 강할 수도 있겠다. 저자 스스로 알콜 중독이었다가 이를 극복했고, 이러저러한 취재 과정에서 5주 동안의 북극 생존 체험을 위해 무려 6개월 동안 극한의 실외 운동으로 체력을 끌어 올려 몸소 북극으로 향했다. 단순한 취재기가 아닌 체험기를 기저로 하고 있기에 독자로선 함부로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다. 해본 적 없는 걸 해본 적 있는 사람이 주장하는 데는 반론이 어렵다. 하긴 명색이 '편안함'의 '습격'인데.


하지만 제아무리 체험기라도 글 자체에 매력이 없다면 주제를 꺼내기도 전에 손절 당하기 십상이다. 문장 자체도 내공이 팍팍 느껴질 만큼 유려한 데다 단락과 챕터 구성도 상당히 밀도 있다. 단락마다 차례차례 다음 단락을 끌어주는 장력이 수준급 밀당꾼이다.


그리하여 손쉽게 자기성찰에 이르게 해준다. 비스듬히 앉아 읽고 있었다면 허리를 곧추 세우게 되고, 사나흘쯤 운동을 빼먹은 채 읽고 있었다면 책을 덮고 기꺼이 운동화를 신도록 독려한다. 각자 누리고 있었거나 어쩌면 습관이 되어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던 자신만의 '편안함'을 자각하게 한다. '습격'까지는 아닐지라도 조준 정도는 될 만한 '편안함'들을 반추하게 된다. 무엇보다 적정선의 불편함을 습관화해 점차 자신의 한계치를 늘려감으로써 결국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는 주장에는 정말이지 무한 수긍한다.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어린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저 논리를 적용했었다. 공부란 아직 한계치가 유연하거나 무한한 대상자가 다양한 영역의 이론을 동시다발적으로 학습함으로써 엉덩이와 생각의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교육현장에서는 기껏해야 고입, 대입, 무슨무슨 시험 통과가 목표치로 제시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인지하고 있던 기존의 한계치를 경신해낸다. 요컨대 한 번 자기 자신을 이겨본 사람은 다음 번 목표나 도전 앞에서도 쉽게 굴하지 않는다. 번번이 자신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뤄낼 확률이 커진다. 바로 이것이 공부의 가장 큰 쓰임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건강한 신체 수련도 좋고 자발적 불편함을 통한 마음 수련도 좋지만 이를 위해 신석기, 구석기 수렵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비교는 아무래도 억지스럽게 여겨진다. 더군다나 전날의 과로로 인해 피로가 더께진 채 읽고 있는 상태라면 다소 억울해지기까지 한다. 이보다 더 어떻게 불편해지란 말인가 싶어지면서 말이다. 스트레스 포화 상태로 온갖 IT 기기들에 온종일 시달리는 현대인들로서는 저자가 핸드폰 끄고 북극 생활로 심신 정화를 도모하는 과정은 그저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바가 단순히 그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온갖 불편과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노력하는 성실함이랄지 꾸준함이랄지 뭐 그런 항구적 기준의 올바름을 덕목으로 치부해왔다. 긴 세월 '한계를 넘어'가 모토였다. 하지만 문득 물어본다.


편안하면 왜 안 되는가. 한계를 넘지 못하면 어떠한가. 매번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고 갱신해내는 것조차 어쩌면 재능일 수 있다. 재능이란 타고난 능력을 말한다. 말하자면 개인차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 너무 편안하면 못 쓴다. 옷이 많을수록 입을 옷이 없듯이 누릴수록 오히려 누리지 못한다. 그저 편안하게만 방치하는 건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죄악이다. 딱 한 번 선물 받은 생을 제대로 누려볼 재미를 빼앗는 것이니. 하지만 누군가는 매일 하는 운동이 활력이 되는 반면에 누군가는 매일 운동하다가는 앓아 누울 수도 있는 법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에게 적정한 편안함과 불편함을 적절히 안배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따라서 과체중이나 약물 중독, 우울이나 불안 장애 등 현대인의 숱한 위기들에 대처하기 위해 편안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은 절반은 옳다. 나머지 절반은 개인차를 고려한 중용의 힘에 따른다.


그러니 소크라테스는 얼마나 위대한가. 세상만사 저 자신을 아는 게 우선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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