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소설
삼겹살이 다 익을 때까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결혼이란 적령기에 옆에 있던 사람과 하는 것이며, 돈을 모으려면 꼭 해야 하지만 돈을 모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죽음만큼이나 미룰수록 좋지만 사람 구실을 하려면 하긴 해야 하며, 요새 젊은 친구들은 책임감이 없어서 어려운 일이지만, "시발 그냥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며 분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삼겹살을 소금과 쌈장에 번갈아 찍었고 비타민A와 루테인 섭취를 위해 삼추쌈도 꼭꼭 씹어 먹었다. 옥신각신하던 유부남들은 전화를 받다가 하나둘 집에 들어갔고 그도 덩달아 귀가했다. 그는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결혼에도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어려웠다.
- 90~91페이지, [전조등] 중에서
사랑은 걷잡을 수 없는 정열일까. 견고한 파트너십일까. 둘 다일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왜 사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부재를 느낄 수 있는지. 걔였는지 쟤였는지 이름과 얼굴은 지워졌어도 촉감과 온도와 음향, 아득한 형체로 남은 것들. 지나간 애인들은 대체로 얼간이거나 양아치였고 그때는 괜찮은 놈이라 믿었는데 돌아보면 영 아니었다. 한두 명쯤은 제법 괜찮은 놈이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함께 사랑을 밝혀낼 수도 있었을까. 만약 가장 좋은 인연이 이미 지나갔다면, 바보처럼 내가 알아보지 못했고 이제 열화판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라 생각하면 울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수도.
- 51페이지, [롤링 선더 러브] 중에서
그 뒤 정상에서 보낸 십오 분은 어떤 카메라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맹희는 "저는 조맹희인데요"로 시작해서 "저는 여기 와서 제일 관심 가는 사람이......"로 말을 이어갔다. 우엉은 진지하게 들어줬지만 물론 그에게도 그의 이유가 있었다. 상투적이지만 정중해. 우엉 당신, 거절도 마음에 들게 하게. 다만 이제 산 아래로 바위가 굴러떨어질 차례.
- 66페이지, [롤링 선더 러브] 중에서
단편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세상 모든 바다], [롤링 선더 러브], [전조등],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보편 교양], [로나, 우리의 별], [태엽은 12와 1/2바퀴], [무겁고 높은], [팍스 아토미카], 총 9편의 단편을 포함한 소설집이다. 단편 제목에서 이미 느껴지는 바와 같이 그야말로 젊은 작가이다. 기존 소설에서 다루기 난해해 했던 K팝이나 팬덤 문화, TV 프로그램 [나는 솔로] 등의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교차 적용해 MZ세대 감성을 날카롭게 직진한다. 뿐만 아니라 공교육과 부동산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비롯해 유행과 통념과 개성 같은, 하나의 실에 꿰기 어려운 소재들을 개인이라는 하나의 바늘 귀로 날렵하게 통과하는 솜씨가 유감없다.
일찌기 평범함을 이토록 지극히 평범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평범함과 익명성은 김기태 작가의 핵심 무기인 듯하다. 대부분의 인물들에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름을 얻은 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요 소재로 삼은 인물이다. 그로 인해 인물이 소재를 앞지르지 않음으로써 인물은 보편성을 획득하고 소재에는 대중성을 부여한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어쩐지 한껏 안쓰럽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평범한 그들이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래서 아마도 분명 내일도 죽도록 애를 쓰는데도 끝내 도달하지 못한 보편성이 읽혀서였다. 매일 기를 쓰고 노력해도 늘 문턱 앞일 뿐인 보통의 젊은 그들. 그리고 우리. 그리고 나.
인용문 중 첫 문단을 지인이 보내준 카톡에서 읽고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저 문단 하나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지만 9편의 소설 하나하나에 모두 날카로운 바늘로 바위를 꿰고 지나는 듯한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젊은 세대를 공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점이다. 작가가 젊든 젊지 않든, 필력이 좋든 좋지 않든, 요즘의 젋음을 이토록 적확하고 치열하게 꿰뚫는 시선은 접해본 적이 없다. 김기태 작가는 문장부터 미묘하게 젊다. 설정은 완전하되 서사는 간결하다. '너네는 어쩌다 이렇게 좆같아졌어?', "와아 개멋있어.", "하나님 메롱.", "오늘 꼭지 열어!" 같은 비속어들을 차지게 날리는 씩씩함 뒤로 깊숙이 베인 상흔처럼 처연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그야말로 개멋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후반부로 가면서 살짝 물리는 듯했다. 굵고 짧은 문장이 작가 특유의 검이었건만 다소 단선적인 문장 흐름이 주는 피로감이었던 것 같다. 이토록 영특하기 짝이 없는 작가인데도 글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긴 호흡의 소설로 좀 더 밀도감 높은 문장을 직조해내길 고대해 마지않는다.
인용문들을 옮겨 적으며 생각했다. 흠, 하나도 다르지 않군. 이제 곧 이순에 다다를 나이에도 젊은 그들이 난감해 하는 질문과 고충들 중 뭐 하나도 시원하지가 않다. 오히려 살아갈수록 더 오리무중이다. 다만 이제는 대부분 산 아래만 같아서 언제나 굴러떨어질 바위를 기다리는 심정이라는 것만큼은 선명하다. 그런데 말이다. 평범함에도 여태 도달하지 못한 우리가 이제 방금 겨우 바위를 올려두고 내려온 산마루에서 다시 바위가 굴러떨어질 것을 익히 알고 두 다리와 두 눈에 힘을 주고 서서 바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그런 게 보편의 삶이라는 게 참으로 지긋지긋하게 근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