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에세이
윌 로저스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한참 지나 돌아보면 여전히 의자 위에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내가 뭔가 노력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뇌가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도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으니 뭔가 실천하고 있다고 여긴다. (27~28페이지)
[무엇을 만복적으로 하느냐가 우리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나는 '성격'을 '누군가가 무심코 하는 반복적 행동의 조합'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습관은 무심코, 의식하지 않은 채 하는 판단과 행동들이다. 이것이 모여서 태도가 형성되고 나아가 성격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결국 좋은 습관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척 다른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59~60페이지)
'우울'은 말 그대로 우울한 것,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이 난 상태다. 이때는 사람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다. 누가 다가오면 움츠러든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게 편하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다가와도 관계에 수반되는 주고받음 자체가 부담스럽다. 조금 노력을 기울이면 더 많은 걸 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버거운 상태다. 그에 반해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신호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으로 해소되거나 줄어든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는 나아졌다가 집에 돌아오면 다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우울한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확연히 다르다. 우울한 사람이나 외로운 사람이나 혼자 있는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우울한 사람은 누가 올까 불안하고 만나면 부담스러운 반면 외로운 사람은 누가 곁에 없을까 불안하고 함께하면 즐겁고 평온해지며 누군가를 애타게 원한다. 외로움은 적어도 누군가를 만나 소통하고 관계를 가질 에너지는 있다는 걸 뜻한다. (중략) 이에 반해 '고독'은 환자 있음을 인정하는 것,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92~93페이지)
첫 번째와 세 번째 인용문을 신문에서 읽었다. 각기 다른 필자가 이 책의 글을 각각 인용한 컬럼이었다. '아무튼' 시리즈는 이미 김겨울 작가의 [아무튼, 피아노]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시리즈였기에 읽기도 전에 이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내공에 놀랐다. 정신의학 전문의가 20년째 매년 책을 내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누구나 매년 책을 내면 이 정도 필력이 생기나? 라는 의문이 들 만큼 유려한 문장에 더욱 놀랐다. 물론 대학병원 교수님이시다. 무릇 교수라 함은 정기적으로 논문을 써야 하는 사람을 뜻하며, 이는 읽고 쓰는 게 직업이자 달관의 경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창작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이다. 게다가 온종일 진료하는 의산데? 퇴근만 하면 푸욱 삶은 시금치처럼 늘어져 버리는 나에 비한다면 저 세상 텐션만 같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달리기도 하신단다. 이쯤되면 포기다. 아, 그냥 태생이 다른 유형의 인간인가 보다, 라고. 인류애적 방어기제다. 어쩔 수가 없다.
최근에 아주 가까운 지인이 책을 냈다. 벌써 두 번째 발간이다. 그 역시 교수이자 아티스트여서 시간에 쫓기는 게 일이다. 강의에, 초대 강연에, 심사에, 공연에, 몸이 열 개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거의 매주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고 해서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몸을 좀 돌봐 가면서 스케줄링을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었는데 자기 분야의 창작도 부족해서 또 다른 분야의 창작이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바로 사랑.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느냐의 문제다. 사랑을 하면 집중력은 저절로 솟구친다. 사랑을 하면 간절해지니까. 사랑이란 뭔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움직인다. 특히 내 마음속의 온 우주가 열린다. 흠, 이렇게 쓰고 보니 이거야말로 부럽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마지않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게.
그런데 말이다. 여기엔 행간이 있다. 사랑과 행복이 평행선상에 있지 않다는 뜻밖의 사실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사랑을 좇아 열의를 다해 괄목할 만한 결과물을 얻는 삶이 꼭 행복하지만은 않다. 물리적 한계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프면 누구나 불행하다. 주어진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게 바로 함정이다. 게다가 사랑은 흔히 열망을 동반한다. 열망은 채워지지 않는 본질의 것이다. 모두가 익히 아는 이름, 일종의 공인으로 살면서 시도하는 모든 분야에서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은 열정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정작 그들은 그로써는 만족하지 못한다.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일들로 늘 쫓기듯 사느라 스스로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해 더욱 불행하다.
그에 반해 보통에는 평범함이 주는 행복이 일상을 강물처럼 흐른다. 어쩌면 그건 반복된 포기로 인한 것일 수도, 애초에 낮은 기대치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애초에 그릇이 작은 사람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쨍하게 떠오르는 태양 같은 행복이 아니라 호수나 강물처럼 잔잔히 고이는 행복을 놓치지 않는 여유가 보통의 삶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사용하면서 보통의 삶에도 미달인 나는 행복감만은 보통의 선을 훨씬 상회한다. 인류애를 발휘한 자기 위안이 아니다(확실하냐고 묻지 마시라. 그건 반칙이다.). 그건 나 자신을 파악해서 얻은 값진 결과물이기에 세상의 눈으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나로서 충분한 마음. 그건 사랑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장착하기 힘든 무기이다.
제목 때문에 얼핏 그렇고 그런 명언들 모음집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저자의 직업적 경험치와 전문지식에다 발군의 필력까지 동원해 조화롭게 밀고 당기는 힘이 상당하다. 그 덕분에 읽는 동안 생각의 길이 여러 갈래 열려 독자 스스로 위로와 평안에 다다른다. 저자가 인용한 명언들은 그저 고명에 불과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곧바로 책을 주문한다. 분명 다시 읽고 싶을 그 어느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