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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1998년 이후

리움미술관 / 홍콩 M+ 공동 기획

by 글섬

지난 30년 동안 내게 설치 미술의 푯말이 되어준 작가 이불의 전시회를 보고 왔다. 오매불망 기대해 마지 않았던 전시였던 만큼 실망의 우려도 컸었건만 나의 기우 따위는 무식의 여파일 따름이었다. 이제껏 꽤나 많은 이불의 작품들을 이미 관람했다고 자신했는데 터무니없는 자신감이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는 평면작 시리즈인 〈퍼듀(Perdu)〉와 〈무제(취약할 의향–벨벳)〉은 평면의 캠퍼스에 다양한 재료들을 시도해 회화와 조각의 중간 어디쯤, 그러니까 결국 회화도 조각도 아닌 오직 이불만의 평면 미술을 구현하고 있어 이미 봤던 작품이든 아니든 이불의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희귀한 기회였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수준급 전시로 아주 오래 전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자코메티전 이후 간만에 미적 샤워로 전신을 흠뻑 적신 하루였다.


명절 연휴긴 했지만 온종일 상당히 많은 비가 내렸던 날이었고, 무엇보다 국내의 이불 작가에 대한 인지도를 감안하면 예약까지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오판이었다. 외국인 인파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더 인지도가 높은 작가였음을 간과했던 죄로 여기가 한국인지 유럽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외국인 인파에 섞여 한참 동안 긴 줄을 견딘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1층 전시관을 들어서자마자 대규모 거울 설치 작업 〈태양의 도시 II〉에 압도된다. 1층 전관에 걸쳐 광대하게 펼쳐진 거울이 갖은 각도로 균열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며 들여다본 금이 간 거울 표면에 거울의 균열대로 함부로 잘리거나 이어 붙여지는 나의 얼굴이 투영된다. 흠칫하다. 지금 나는 어느 면의, 어느 각도의 거울로 나를 비추고 있던가. 나는 나인데 거울의 존재에 따라 끝없이 조각난다.


너를 봐. 세상이 아무리 제멋대로 너를 조각내도 속지 마. 갈라진 세상의 금과 관계없이 너는 너야. 그래야 해.


그리고 가없이 이어지던 거울의 균열 끄트머리 즈음에 작가의 노래방 연작〈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I〉이 버티고 서 있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한참 동안 줄을 서 기다리다 들어선 노래방에서 다시 흠칫한다. 좁은 단색의 내부에 단 하나의 스크린에는 어디서 설정한 건지 알 수 없는 화면이 배경으로 깔리고, 반드시 그래야 하는 듯한 노래 가사가 자막으로 지나간다. 양옆으로 뚫린 아주 작은 둥근 창에는 이미 한껏 조각난 〈태양의 도시 II〉가 또 다시 창문 크기로 잘린 채 떠 있다. 그 작위적이고 편집적인 공간에서 오직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그러자 온통 내 목소리로 뒤덮인다. 내가 부르는 노랫소리 외엔 아무것도 없다. 창밖으로 도시가 몇 조각이 나든 화면이 뭘로 바뀌든 내 목소리만 차오르는 세계라니. 세상의 속도보다 거대한 자아의 중력이다.


세상이 내지르는 균열과 자기만의 방에 갇히는 편협에 대해 생각한다. 그 자체로 철학이다.


지하 전시장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개수의 작품들이 나름의 의도에 따라 즐비해 있다. 하지만 1층 전시에 너무 많은 심신을 빼앗긴 상태인 데다 작가의 의도가 너무도 깊고 넓어 감히 따라가지 못한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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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특히 '잃어버린 시간'을 형상화한다는 〈퍼듀(Perdu)〉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시간의 망각을 연상하자 숱한 이야기들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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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du는 프랑스어로 '잃어버린'이라는 뜻의 과거형 형용사인데,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는 쉽게 미화하게 되는 우리네 단면으로도 읽힌다.


그리고 나로선 도무지 헤아려지지 않았던 문제작 〈무제(취약할 의향–벨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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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아름다울 뿐, 어떠한 의도의 제목인지 한참을 서 있어도 다다르지 못한다. 그런데 며칠 뒤 여전히 질문 중인 내게 한 지인은 이런 감상을 내놓았다. 판이한 재료인 벨벳의 평면에 그토록 뾰족한 금속의 재료들이 서로 섞이기 위한 '취약할 의향'이 아니었겠느냐고. 이우환 작가 식으로 말하자면 결국 '관계항'이었던 셈이다.


관람을 종료하지 못하고 한참을 두서없이 전시관을 배회한다. 보고 또 봐도 다다르지 못할 작품들이 태반이지만 그것들의 중앙에 물끄러미 서 있기만 해도 전신으로 흘러 넘치는 나와 우리, 우리와 사회, 어제와 오늘과 미래, 인간과 문명, 문명과 예술, 이질과 동질 등 무수한 철학으로 아득히 충만해진다. 살아낼 힘이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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