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장편소설 /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by 글섬

읽은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간만에 신간 코너에 쏠렸다. 반질반질한 새 책 내음에 마음이 팔려 한참을 뺐다 꽂았다, 신이 났다. 서가에 늘어선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면서 어렵사리 세 권을 추리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남은 책이다.


목차는 총 3부로 나뉜다. 루브르, 오르세, 보부르. 각각 고전주의, 인상주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그 아래 세부 목차들은 화가들의 풀 네임으로 나열되어 있다. 나름 미술 애호가를 자부했건만 낯선 작품들이 즐비하다. 클래식도 그렇지만 미술도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들에는 한계가 여실해서 애써 찾지 않으면 늘 보던 거, 늘 듣던 것만 접하게 되기 십상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저자의 심미안은 소중하기 그지없다. 루브르는 말할 것도 없이, 오르세도 보부르(퐁피두 센터)도 그 방대함과 대작들의 위용에 눌려 관람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작품들이 숱하다. 하물며 작품들과 그 시대상에 얽힌 세부 정보까지야.


파리 체류 시절에 파리 미술관 투어를 매주 주관해줬던 미학 전공자 지인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누누이 강조했었다. 그런데 다분히 나의 관점에서,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덜 느낀다. 마치 시어를 조각조각 분석한답시고 행간은 고사하고 대주제인 제목마저 잃게 되는 우리네 정규 교육의 시 문학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일테면 프란시스코 고야의 동물 사체 그림의 경우 배경 지식 없이는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 그나마도 고야의 명성이 아니었다면 그림 감상에 1분도 내어주지 않을 대표적인 작품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그림들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거기에 손녀인 모나의 눈을 통해 새로이 얹혀지는 다각적 시선은 손색없는 덤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분석과 다분히 개인적인 시선, 이게 바로 저자가 우리에게 전해주고픈 예술에 대처하는 자세일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처럼 초록창 이미지를 검색하면 너무나 익숙한 그림들이 도열한다. 같은 화가의 그림인 줄 모르고 좋아만 했던 작품들을 이제야 하나의 바늘 귀를 통과시키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술관인지 도서관인지 분간이 어려워 마냥 즐겁다. 안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새삼스러워지는 덕분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독서 분량은 거뜬히 초월할 수 있다.


그런데 실명의 위기에 처한 모나의 눈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천부적 심미안과 상실의 트라우마 극복의 상징으로서 모나의 눈은 예술 저 너머로까지 확장된다. 소설과 비소설을 넘나드는 이 책만의 고유한 흐름과 박학다식한 전문 지식에 탄복하다가 문득,


사는 게 억울해지면 미술관에 가자. 거기서 그들이 들려주는 머나먼 생의 편린에 귀기울이다 보면 이내 억울함이 덜어진다. 아름다움으로 남겨진 그들은 말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고. 모든 게 내 맘 같지 않아 힘든 것 같아도 사실은 내 맘도 모르겠어서 아름다움보다 먼저 숱하게 추했었다고.

모나처럼 거기서 단 하나의 작품만 가슴에 담고 돌아오자. 그 작품이 내게 오기까지 숱한 오열을 건넜다는 걸 기억하자. 고통과 아름다움이 실은 하나의 그림이었다는 것을, 견딤이란 그 자체로 그렇게 아름다운 것임을.







"19세기 전체에 걸쳐 새로운 그림 애호가 층이 나타나지. 예술에 대한 접근이 민주화된 거야. 이 부르주아 고객층에겐 돈과 공간이 있었지만 당연히 제후, 국가, 교회가 지녔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재력은 아니었어. 그래서 이들은 다른 주문을 하지. 전쟁이나 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규모 작품보다는 좀더 소박하고 금전적으로 접근 가능한 작품을 선호하는 거야. 조밀하게 구성된 초상화, 풍경화, 일상의 사건들을 다룬 그림, 마지막으로 정물화가 있지."

"그러면요 하비,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만 그려달라고 주문한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아, 그건 아니고, 그보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지. 샤를 에프류시라는 당시의 대수집가가 아스파라거스 한 단이 그려진 그림을 주문했어. 화가는 8백 프랑에 그림을 넘겼고. 마네의 그림 한 폭이 수백만을 호가하는 오늘날에는 우스운 액수 같지만 전혀 시시한 금액이 아니었단다. 당시 평균 일급이 약 5프랑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 작품(지금은 독일에 있단다)을 받고 몹시 흡족했던 샤를 에프뤼시는 마네에게 천 프랑을 보냈지! 그러자 마네는 재치와 기발함, 관대함을 발휘해서 화폭에 이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를 따로 그린 뒤, 그 수집가에게 이런 말을 곁들여 보냈어. '선생에게 보낸 아스파라거스 단에서 하나가 빠져 있었소'. 마네는 따지고 보면 이 화폭에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보게 만들어. 그저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 혹은 평범한 탁자의 한 부분, 그리고 그걸로 그림을 그려서 선물하는 소소한 관대함이 있을 뿐이야. 약간의 관대함이 발동한 덕에 그 사물들이 그림 한 장에 담겨 선물로 제공될 수 있었지. 하지만 이 작품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바로 그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야말로 삶의 매력을 이룬다는 점이란다.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만으로 삶은 충분히 빛을 발해. 우리가 지나쳐버리는 이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없다면 사물은 그저 사물에 불과할 거야. 뭔지 모를 것 하나만 있어도 사물들은 갑자기 그윽해지지. 영국인들의 표현 중 '적은 것이 더하다Less is more'라는 말이 완벽한 한 줄 요약이 되겠구나." (307페이지)




"플랫폼에서 그림을 그려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낸 모네는 그 기회를 활용해서 일곱 가지 버전으로 이 역 내부를 그렸어. 철도노동자들에게 부탁해서 기관차가 증기를 뿜어내게 만들거나 앞으로 가게 하고 뒤로 물러서게도 하는 등 여러 장면을 만들어냈지. 화가가 연출가로 변신한 셈이야. 그것도 기차를 배우로 등장시켜서! 모네는 같은 주제를 연속해서 다루기를 좋아했단다. 미세한 변화들을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해서였지. 빛, 색, 분위기의 변화, 하늘과 대기의 변화, 드리운 그림자들, 뚜렷해지거나 흐려지는 부피감의 변화. 많은 미술사가가 '연작'이라는 것을 발명한 게 모네라고 생각해. 1892년과 1894년 사이에는 특히 루앙 대성당 정면을 마흔 개의 버전으로 그렸어. 그 성당을 바라보면서 그는 선언했지. 모든 게 변한다, 돌마저. 여기서도 마찬가지야. 공간의 예술이어야 할 회화가 흘러가는 시간의 표현이 되지. 근본적으로 이 작품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건 고대의 사상가,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유명한 문장과 같아. '모든 것은 흘러간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타 레이Panta thei라고 해." (318페이지)



사실 유년기의 가르침이란 바로 이것, 상실이었다. 유년기 자체의 상실부터가 그렇다. 유년기를 잃어버리면서 유년기가 무엇이었는지 배우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항시적으로 잃을 것임을 배운다. 잃는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감각의, 강렬한 존재감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임을 배운다. 흔히 성장이란 획득한 것을 쌓아가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경험, 지식, 물질의 획득. 하지만 그건 허상이다. 성장은 상실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건 삶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건 매초 매분 삶에게 작별을 고할 줄 알게 되는 일이다. (60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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