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장편소설 / 위즈덤하우스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140쪽)
형도 성공작이에요.
(151쪽)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형은 작품이에요... 그리고 나도 작품이에요. 인간은... 작품이에요. 못 다 쓴 메모를 적듯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152쪽)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185쪽)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래도 그렇게는 살지 않는 사람들... 그래도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얘기 속에서... 나는 문득 그녀를 떠올렸었다. 세상엔 분명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었고, 나도 그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는 생각이다.
(320쪽)
정성껏 봉한 편지를 품고 걸어가던 그 길을... 그 길의 끝에 서 있던 빨간 우체통의 작은 틈새를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까스로, 마치 신체의 일부를 떼어낸 느낌으로 나는 편지를 밀어 넣었고... 툭, 그 느낌에 비해 결코 가볍다고도 무겁다고도 말할 수 없는 통 속의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종이의 무게가 아니라 마음의 무게가 내는 소리였고... 나는 비로소 스스로의 모든 걸 운명에 맡긴 기분이었다. 기억하는 편지의 마지막 문장 역시 다음과 같이 짧고, 간결한 두 줄의 문장이었다. 오로지 진실인 이유로 평범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었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341쪽)
참으로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글이다.
도저히 리뷰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흔히는 현실감이 떨어진다이고, 십분 봐줘서 낙관적이라거나, 아주아주 관대하게는 현학적이라거나 우아하다거나 한,
그러나 대체로는 그저 무능하거나 매우 이상한 사람일 뿐이었던 나 자신이...
나도 별이 아니었을까
싶어지는 책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생긴 대로 사느라 세상과 반목하는 나 자신을 향해
실은 잘 지내지 못해.
라고 중얼대는 매일매일을 쓸쓸히 쓰다듬어주는 책이다.
실은 아름다운 나 <자신>을 위해 꼭 읽었으면 하는,
읽고 나면 적어도 한 뼘쯤은 더 아름다워질,
스러져만 가던 나의 빛을 향해 고개가 끄덕여질,
이미 구입했는데도 한 권 더, 한 권 더, 여러 차례 더 사재기 하고픈,
다 읽어버린 마지막 장이 아까워 느리게느리게 책장을 덮고 쓸어 내리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