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24권
〈무신론자의 미사(La Messe de l'athée)〉는 1836년 《파리의 크로니클(Chronicle of Paris)》 지에서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1836년 1월 18일에 한스카(Hanska) 부인에게 보낸 서신에서 발자크는 이 소설이 “단 하룻밤에 구상되고 집필되어 출판되었다”고 표현했다.
그 후 1837년에 《델로이 에 르쿠(Delloy et Lecou)》에서 발자크의 친구이자 화가인 오귀스트 보르제(Auguste Borget) 헌정으로 「철학적 연구(Études philosophiques)」 제12권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844년에 《퓌른(Furne)》에서 『인간희극』의 「파리생활 정경」으로 분류해 〈파시노 칸(Facino Cane)〉과 〈사라진(Sarrasine)〉 사이에 배열시켜 제10권으로 출간되었다. 1845년에 《퓌른》에서 개정되고 「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피에르 그라수(Pierre Grassou)〉와 〈금지(L'Interdiction)〉 사이에 배열된다.
오라스 비앙숑(Horace Bianchon)은 내과의사, 외과의사, 그리고 생리 이론학의 구조를 발전시킨 인물로서 커다란 명성을 얻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파리의 의과대학에 재학 중에, 비앙숑은 훌륭한 프랑스 외과의사인 데스플랭(Desplein) 밑에서 공부했는데, 데스플랭은 심지어 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뛰어난 의사며 교수라고 인정을 받는 인물로, 신과 같은 눈을 지녔다고들 했다. 그는 환자와 환자의 병을 직관력과 본능 또는 후천적인 능력을 통해서 알아내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보이기도 했고, 수술을 시작해야 하는 적절한 때와 시간을 결정할 수 있었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다가도 이상하리만치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성격으로 변하기도 했다.
데스플랭은 의학 분야에서 최고였기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죽을 때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남겨놓지 않고 가버렸다. 그는 중요한 발견, 발명이나 의학적인 돌파구를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극작가보다는 무대 위의 훌륭한 배우와 같았다. 극작가가 죽으면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공연되어 세상에 남게 되지만 배우가 죽으면 그 명성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데스플랭이 살아있을 때는, 결코 따라갈 수 없었던 그의 재능을 부러워하는 동료가 그의 흠을 찾아내 비판할 것들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그들은 데스플랭의 분위기나 성격에 대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괴이한 그의 행동들을 말할 수 있다. 한동안은 완벽한 옷차림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을 등한시하곤 했다. 또 어느 날은 마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도 그 다음 날은 도보로 여행을 이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스플랭에게는 최소한 좋은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비앙숑이었다.
대학시절의 비앙숑은 가난했고, 카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 지역의 허물어져 가는 기숙사인 방케 저택(Maison-Vauquer)에서 지내면서 수많은 힘든 경험들을 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힘이 넘쳤고 보상을 바라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했다. 또한, 그는 솔직담백했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심을 끌어내었다. 데스플랭은 특히 그를 더욱 편애하였고, 그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데스플랭은 자신과 함께 편히 지내도록 비앙숑을 불러들였는데, 그곳에서 넘쳐나는 환자들로 인해 비앙숑의 재정상태가 나아질 수 있었다. 어느 날, 비앙숑은 영양부족과 과로 때문에 심각한 병에 걸린 가난한 남자를 데스플랭에게 데려왔다. 치료를 끝낸 데스플랭은 장사라도 해서 생계를 이어가도록 그 남자에게 돈을 건넨다. 나중에 그 남자는 병에 걸린 자신의 친구를 데스플랭에게 데려와서,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의사는 데스플랭뿐이라고 말한다. 데스플랭은 자기의 손길이 필요한 다른 환자들보다도 가난한 남자의 친구를 오랫동안 치료하고 보살폈다.
의학공부를 마치게 된 비앙숑은 파리의 대형 병원 외과의가 되었는데, 그곳은 데스플랭이 근무한 곳이기도 했다.
어느날 아침 9시에 길을 건너던 비앙숑은 데스플랭이 쁘디리옹(Petit-Lion) 거리의 생-쉴피스(Saint-Sulpice) 성당으로 몰래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를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간 비앙숑은 무신론자라고 선언한 데스플랭이 제단 위에 무릎을 꿇고 미사를 드리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성스러운 미사를 드리고 난 뒤, 데스플랭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부를 한다. 비앙숑은 데스플랭에게 들키기 전에 교회를 빠져나간다.
바로 그날, 데스플랭은 비앙숑에게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디저트를 들면서 비앙숑은 의도적으로 대화를 종교 쪽으로 이끌어간다. 데스플랭을 자극하기 위해 비앙숑은 미사라는 것은 수치스러우며 우스운 행위라고 말해보지만, 데스플랭은 이에 동의하면서 나폴레옹의 모든 전투에서 얻은 피보다 더 많은 돈을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사는 6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교황의 생각이었으며, “이것은 내 몸이라”는 말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피를 보게 된 것은 성체 침례, 실제로 그리스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승리를 이끌려고 로마에서 만들어진 성체 축일로 인해 벌어진 것이며, 3세기 동안 교회가 교파분리를 하게 된 것이다.
3개월 후, 생쉴피스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던 데스플랭을 또 다시 목격한 비앙숑은 이번에는 그에게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면서 어째서 교회를 가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을 할 당시에 비앙숑은 다른 두 명의 의사들과 함께 있었다. 데스플랭은 무릎에 통증을 느끼는 신부님을 진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지만, 비앙숑은 데스플랭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데스플랭을 좀 더 가까이 관찰하기로 마음먹는다.
비앙숑이 데스플랭을 성당에서 목격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어느 날, 비앙숑은 아침 9시에 생쉴피스 성당 밖에 있었고, 훌륭한 의사라고 칭송받는 그 사람이 다시 교회에 나타나서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게 된다. 데스플랭이 떠나고 비앙숑은 교회 관리인에게 그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지 묻는다. 관리인은 데스플랭이 일 년에 4번씩 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미사도 데스플랭이 성당에 부탁해서 주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7년의 세월이 흐른다. 아직도 데스플랭은 계속해서 같은 날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마침내 비앙숑은 데스플랭을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함께 참석한다. 데스플랭은 비앙숑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도 없다. 교회를 나오면서 비앙숑이 그에게 미사에 참석하는 이유를 거듭 묻자 데스플랭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다른 많은 독실한 사람들과 같네. 표면적으로는 매우 독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도 나나 자네와 같은 무신론자와 같을 수 있다네.”
그들이 슬럼가인 카르트뱅(Quatre-Vents) 거리를 지날 때 비앙숑은 데스플랭에게 왜 일 년에 네 번씩이나 미사를 드리는지 묻는다. 데스플랭은 어떤 건물의 꼭대기를 가리키면서 그가 이곳에 살았을 때 벌어진 일로 인해 미사를 후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데스플랭은 그곳에서 굉장히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며, 당시엔 배고픔이 간절했었고, 돈, 옷, 신발, 침구류가 필요했으며, 모든 잔인한 상황들이 그를 극빈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혼자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학비나 생활비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아침식사로는 오래된 빵을 먹었고, 너무 가난해서 저녁은 이틀에 한 번씩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냈으며 어떤 때는 밤을 새우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느 날, 집주인이 그를 쫓아내서 바로 다음 날 빈털터리로 길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그는 집세를 마련할 돈이 없었다. 집주인은 데스플랭의 옆집에 기거하는 브르조(Bourgest)도 내쫓았는데, 그가 가난한 물지게꾼이라는 이유였다. 갈 곳도 없고 세간을 실어 나를 수레를 빌릴 돈도 없었던 데스플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걱정하며 밤새도록 방황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브르조가 자신이 빌린 수레로 그의 짐을 운반해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과 함께 살자며 새로운 숙소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장소를 찾아 떠났다.
방 두 개 달린 집을 찾은 그들은 그곳에서 매일 함께 식사를 하며 지냈다. 시간이 흘러서 브르조는 말을 사고 한 배럴의 물을 운반할 만한 충분한 돈을 모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학업을 끝내지 못해 힘들어하는 데스플랭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결심했다. 놀랍도록 자비로운 그에 대해 데스플랭은 이렇게 말했다. “그 남자, 나의 친구는 한 가지 임무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내가 가진 훌륭한 재능이 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던 것이지. 그는 나를 보살펴 주었고, 자신의 아이처럼 불러주었으며, 내가 책을 살 수 있도록 돈을 주었고, 내가 일하는 곳에 조용히 와서 나를 지켜보기도 하였으며, 상하고 영양가 없는 음식만으로 극빈한 삶을 살던 나에게, 건강에 좋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들을 제공하면서 엄마와도 같은 손길로 나를 보살펴 주었지.”
어느 날, 브르조는 데스플랭에게 자신의 친구와도 같았던 강아지를 기른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곳이든지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는데, 심지어 가끔 미사에도 같이 참석했다고 한다. 브르조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12년 동안 미사에 참석하면서도 그 강아지는 단 한 번도 짖지 않았다고 한다. 강아지가 죽은 뒤, 그는 신부님에게 강아지를 위해 미사를 올려달라고 했다. 그것은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로, 데스플랭도 절대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형 병원의 외과의가 된 데스플랭은 병원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그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둔탁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브르조는 데스플랭을 도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데스플랭은 자신의 월급으로 브르조가 그토록 원했던 커다란 물통과 말을 사주었다. 브르조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 후 브르조는 병을 얻게 되었다. 데스플랭은 그를 돌보았지만 2년 뒤에 병은 악화되었고, 데스플랭의 마법 같은 손길도 그를 살리지는 못했다. 브르조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것을 기억한 데스플랭은 생쉴피스 성당에서 매년 그를 위해 4번의 미사를 드리기로 결심했다. 게다가 데스플랭은 미사에 참석했고, 심지어는 위대한 신에게 기도를 드리기까지 했는데, 신이 죽은 뒤에 가는 곳을 마련해놓았다면, 완전한 삶을 지낸 사람들과 선량한 브르조를 기억한다면, 그리고 그가 어떠한 고통이라도 받게 된다면, 자신이 대신해서 고통을 받게 해주시고, 브르조가 천국이라 불리는 곳에 곧 들어가게 해달라고 말이다. 데스플랭은 만약 자신이 브르조처럼 신념과 믿음을 가졌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었을 것이라 말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는다.
데스플랭이 죽은 뒤에 비앙숑은 그가 무신론자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희망이란, 보잘 것 없는 사람(브르조)이 와서 행한 것처럼, 자신의 친구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환상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며 세속적인 사원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나라는 바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데스플랭의 진정한 위대함이 그의 위대한 의학적 능력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게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술을 행하는 선의에 있다는 내용과, 그러한 그의 위대함 뒤에는 브르조의 헌신적 지원이 뒷받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학문이 아닌 인간성이 인간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 줄거리 참고 문헌 : 〈무신론자의 미사〉(명작 다이제스트), 발자크 저, 이북코리아
▶ 작품 배경 / 분석 :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