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파리생활정경 제2권
〈페라귀스(Ferragus)〉의 원제는 〈페라귀스, 데보랑 비밀결사〉였다. ‘데보랑(Dévorants)’은 ‘게걸스레 먹다, 탐욕스레 먹다, 삼키다, 탕진하다, 괴롭히다’ 등의 의미를 지닌 ‘데보레(dévorer)’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된 명사로, ‘게걸스레 먹는 자, 탕진하는 자, 괴롭히는 자’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데보랑은 악당 혹은 탕아 등으로 의역되어 〈탕아들의 두목〉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13인당이 귀족들로 구성된 반면에 데보랑 조직원들은 노동조합원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 사이에는 계급적 동질성이 없다. 그러나 귀족이건 노동자건 모든 형태의 단결로부터 생긴 집단의 힘은 강력할 터, 작가는 조직원 간의 은밀한 결합이 부여하는 연대성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발자크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예수교, 프리메이슨단, 수도회, 카르보나리당, 그리고 황제 측근들의 비밀결사대 등 온갖 종류의 비밀결사가 난무했다. 발자크는 당시의 그러한 사회적 현실에 기대어, 예루살렘 성전을 짓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동조합의 역사적 기원과 자신의 상상력을 잘 결합시킴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역사적 현실에 근거한 허구,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허구를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1819년 2월 저녁 여덟 시 반, 근위대 기병 장교인 오귀스트 드 몰랭쿠르(Auguste de Maulincour) 남작은 비외 오귀스탱(Vieux-Augustins) 가로 접어들기 위해 무심코 솔리(Soly) 가로 들어섰다. 솔리 가로 말하자면 파리에서 가장 좁고 불결한 거리였다. 그는 그 거리에서 마주 오던 여인이 아는 여인임을 알아봤다. 그녀는 그가 남몰래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클레망스 데마레(Clémence Desmarets)로, 이미 결혼한 여자였기에 희망 없는 사랑이었다. 그녀가 이 시간에 이런 진창 같은 더러운 길에 있다니! 그는 그녀가 골목 끝에서 한 건물 안으로 황급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다급한 발걸음이 수상쩍었다. 그녀가 사라진 건물을 살펴보니, 좁고 누런 색조를 띤 더럽고 보잘 것 없는 건물이었다. 그는 성스럽고 순결한 그녀가 남편을 배신하고 부정을 저지른다는 생각에 분노에 휩싸여 그곳에서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골목 끝에 서 있던 마차에 올랐다. 그는 마차를 따라 뛰었다. 마차가 어느 꽃집 앞에 멈춰 서더니 여인이 내려 꽃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나와 자기 집 쪽으로 재빨리 걸어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장 소중히 여겼던 그녀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고통스러웠다.
오귀스트의 조부는 돈을 주고 파리 고등법원 판사직을 산 후 고등법원장까지 지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한 그의 아들들은 모두 군에 들어갔고, 결혼을 통해 궁정 귀족이 되었다. 대혁명 때 이 집안은 몰락했다. 그러나 재산을 상속받은 고집 센 노부인 하나가 망명을 거부하고 감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가 실각하자 출옥하여 재산을 되찾았다. 그녀는 1804년에 몰랭쿠르 가문의 유일한 혈육인 손자 오귀스트 드 몰랭쿠르를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귀족사회의 예절을 가르쳤고, 남편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모두 그에게 상속하고자 했다. 왕정복고 시절이 오자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오귀스트는 근위대 소속 부대로 들어갔고, 스물세 살에는 근위대 기병 중대장이 되었다. 사교계의 생리에 훤한 할머니 덕분에 그는 그런 대단한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시절의 젊은이들은 여느 시대의 젊은이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나폴레옹 제정 시대의 추억과 망명 시절의 추억 사이에서, 궁정의 오랜 전통과 부르주아의 성실한 교육 사이에서, 종교와 가면무도회 사이에서, 두 개의 상이한 정치적 신념 사이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왕정이 잘못하고 있음에도 왕의 의사를 존중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맹목적인 이들은 모든 권력을 허약한 손 안에 움켜쥔 질투심 많은 늙은이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왕정복고 때 돌아온 망명 귀족들은 젊은이들을 무시했다. 오귀스트 역시 할머니인 몰랭쿠르 남작부인과,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파미에(Pamiers) 주교 대리의 시대착오적인 교육으로 인해 바보로 보일 정도로 수줍고 순수한 청년으로 자랐다. 감수성이 지나쳐 플라토닉한 사랑을 원했던 그에게 찾아온 첫사랑은 하필 그런 사랑이 딱 질색인 여인이었다. 그는 첫사랑의 실패로 인해 더욱 몽상적이 되었고,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함을 한탄하게 되었다. 마음에 참담한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을 이해해줄 여인을 찾던 중에 어느 사교계 파티에서 아름다운 클레망스를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바로 그 여인이 늦은 저녁에 솔리 가의 한 음침한 건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던 것이다.
밤 10시가 되자 그는 문득 그녀가 오늘 밤에 뉘싱겐(Nucingen) 부인 댁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할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서둘러 옷을 입고 무도회장으로 갔다. 예상대로 그녀가 무도회에 나타났다. 방금 전에 꽃집에서 봤던 머리 장식을 달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뉘싱겐 남작의 증권중매인 쥘 데마레(Jules Desmarets) 씨였다. 증권중매인 사무소에서 일하던 데마레 씨는 결혼 전에는 재산이라고는 빈약한 사무원 월급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검소했고 시간을 아꼈으며 쾌락을 멀리했다. 그의 고매한 인격과 겸손함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쥘 데마레는 클레망스라는 가난한 사생아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결혼 후, 클레망스의 어머니가 쥘 데마레에게 증권중매인 직책을 사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줄 후원자가 있다고 제안해, 그는 사장의 직책을 샀다. 덕분에 쥘 데마레는 사 년 만에 막대한 연금을 가진 자산가가 되었고, 몇 년 후 장모는 숨졌다. 쥘 부부의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은 사교계에서 최고의 상찬을 받을 정도였다. 클레망스는 오로지 남편만을 위해 치장하는 것을 좋아했고, 무도회에서도 남편 이외 그 어떤 남자와도 춤을 추지 않았다. 이렇듯 완벽하게 행복한 쥘 부부였기에 오귀스트의 사랑의 고통은 더욱 컸다.
오귀스트는 쥘 부인에게 다가가 그녀를 솔리 가에서 봤다고 말했다. 쥘 부인은 아무런 동요 없이 자신은 오늘 외출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그녀의 태연함에 오귀스는 더욱 분노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부터 오귀스트는 변장을 하고 비외 오귀스탱 가와 솔리 가를 배회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남의 집 처마 밑으로 피신했다. 잠시 후 어떤 남자가 처마 밑으로 들어왔는데, 대단히 위협적인 얼굴이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거지였지만 눈에서는 심오한 통찰력이 번뜩이며 심오하고도 냉정한 사유의 소유자임을 말해주었다. 나이는 예순 정도 되어 보였고, 손은 하얗고 깨끗했다. 이윽고 소나기가 그쳤다. 그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오귀스트도 처마 밑을 떠나려다가 발밑에서 방금 전 그 남자가 떨어뜨린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 겉봉에 ‘페라귀스 씨께, 그랑 오귀스탱 가, 솔리 가 모퉁이’라는 주소를 발견한 오귀스트는 그 남자와 쥘 부인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편지가 봉인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는 편지를 읽어보았다. 남자에게 배신당한 한 여인의 참담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이다(Ida)라는 여인의 서명이 있었다.
오귀스트는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지를 찾아가 그 건물 수위에게 편지를 전달한다는 핑계를 대고 통과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아까 그 남자가 실내가운 복장으로 문을 열었다. 문틀 너머로 쥘 부인이 보였다. 쥘 부인은 오귀스트를 보자 얼굴이 하얘졌다. 오귀스트는 남자에게 편지를 돌려주고 쫓겨났다.
물증을 확보한 오귀스트는 다음날 당당하게 쥘 부인을 만나 비밀을 캐물으려 마차에 올랐다. 당시 파리는 건축열에 휩싸여 곳곳이 공사 중이었는데 오귀스트가 탄 마차가 한 석조 건물 공사 현장 앞을 지나치는 순간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마차 위로 떨어졌다. 하인은 죽고, 마차는 완전히 부서졌고, 오귀스트는 타박상을 입고 며칠간 자리에 누웠다. 열흘 뒤, 몸이 회복되어 마차를 타고 외출하던 중에 마차 바퀴의 차축이 부서져버렸다. 오귀스트는 또 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단골 마차 수리공을 불러 원인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원래의 차축이 감쪽같이 바꿔치기 되었다고 했다. 연이은 사고에 오귀스트는 두려움과 동시에 오기가 치밀었다. 그는 이제 쥘 부인 생각뿐이었다. 그는 아버지 같은 주교 대리에게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파미에는 약삭빠르고 민첩한 하인 쥐스탱(Justin)에게 지시해 숨은 적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일주일 후, 쥐스탱은 페라귀스는 본명이 아니고, 본명은 그라티앵, 앙리, 빅토르, 장 조제프 부리그나르(Gratien, Henri, Victor, Jean-Joseph Bourignard)이며, 예전에 건축업을 했던 상당한 부자로, 데보랑 비밀결사의 수장이라고 보고했다.
그날 저녁, 오귀스트는 무도회에 갔다가 첫사랑의 오라비를 만났다. 오귀스트는 우연찮게 첫사랑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게 되었고, 그녀의 오라비는 이에 굉장한 모욕을 느껴 결투를 청했다. 이 결투로 오귀스트는 옆구리에 총상을 입었다. 총상을 입고 쓰러진 오귀스트의 귀에 쥘 부인을 의심하지 말라는 경고가 들렸다. 첫사랑의 오라비는 페라귀스의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파미에는 오귀스트를 대신해 파리 경찰국장을 찾아가 진상 규명을 청했고, 며칠 뒤 경찰국장은 부리그나르라는 자가 이십 년 간의 사역이 부과된 도형수로, 호송 중에 도망쳐 파리로 와서 모든 수사망을 피해가고 있어 경찰이 십삼 년 동안이나 그를 추적하고 있지만 허사였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오귀스트는 일명 페라귀스로 불리는 그라티앵 부리그나르가 자신의 거처에서 사망했다는 경찰청장의 편지를 받았다. 오귀스트는 비로소 안심하고 다시 무도회에 참석했다. 오귀스트가 쥘 부인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그의 팔을 잡더니 낮은 소리로 경찰을 끌어들였으니 이제 파멸할 거라고 경고하고는 사라졌다. 오귀스트는 그 순간에 자신의 곁을 지나가던 마르세(Marsay)를 붙잡아 사라지는 그 남자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마르세는 그 남자가 푼칼(Funcal) 씨라는 매우 부유한 포르투갈 사람이며 포르투갈 대사관에 머물고 있다고 알려준다. 바로 이때, 오귀스트는 쥘 부인을 보았다. 증오심에 휩싸인 그는 그녀에게 달려가 벌써 세 번이나 죽을 뻔했다고 추궁했다. 때마침 그녀의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오귀스트는 쥘 데마레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시라고 말한 뒤 나갔다.
쥘 데마레는 의혹에 휩싸였다. 쥘 부부는 결혼 후 처음으로 냉기가 흐르는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 클레망스는 남편에게 오귀스트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며 그저 미친 사람 같으니 모든 걸 잊어달라고 간청했다. 쥘은 차마 아내에 대한 의혹을 드러낼 수 없었다. 부부는 여느 때처럼 정답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클레망스가 한밤중에 잠에서 깼을 때 쥘은 거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쥘은 사랑하는 아내를 믿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그러자 클레망스는 남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고백하며 결백을 맹세했다.
다음 날 쥘은 증권거래소에서 퇴근하려다 그를 기다리던 오귀스트와 마주쳤다. 오귀스트는 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말했다. 쥘은 집으로 돌아와 하인을 통해 아내의 외출 여부를 확인했다. 아내는 외출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하인은 외출하고 돌아오셨다고 답했다. 쥘이 의혹에 휩싸여 있을 때 하인이 편지 한 통을 전했다. 오귀스트의 할머니인 몰랭쿠르 남작부인이 손자가 정신착란 증상이 있으니 손자의 말에 괘념치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쥘이 의혹을 떨쳐버리려는 순간, 어떤 여자가 찾아왔다. 자신을 이다라고 소개한 그녀는 쥘 부인을 가리키며 쥘에게, 부인이 매일 페라귀스를 보러 온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코르셋을 만드는 가난한 여공이었는데 페라귀스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며 부디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지 마시라고 애원했다. 이다가 돌아가자, 클레망스는 무너지듯 오열하면서도, 생사가 걸린 비밀이라 결코 발설할 수 없다고 버텼다. 쥘이 아내의 기만을 질책하자 그녀는 그만 기절해버렸다. 한밤중에 정신이 든 클레망스는 남편에게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다. 이틀 후에는 모든 걸 털어놓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 쥘은 몰랭쿠르 남작부인이 보낸 편지를 들고 오귀스트의 집을 찾아갔다. 남작부인은 그런 편지를 쓴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오귀스트는 모든 비밀을 직접 들으시라며 쥐스탱을 찾았지만, 놀랍게도 쥐스탱은 간밤에 마차에 치어 숨졌다. 사실 오귀스트도 앓고 있던 중이었는데 독극물을 먹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쥘은 하인에게서 마님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러 나갔다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쥘은 하인에게 앞으로 집에 오는 편지는 전부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하인이 쥘에게 마님 앞으로 온 편지를 전해주었다. 그러나 편지는 암호문으로 되어 있었다. 쥘은 그 편지를 들고 외무부에서 비밀 공문을 해독하는 일을 하는 친구 자케(Jacquet)를 찾아갔다. 해독된 편지는 클레망스에게 사랑의 힘으로 견뎌내자며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자신의 은신처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쥘은 편지에 적힌 은신처 주소를 찾아갔다. 그곳은 이다의 노모가 사는 집이었다. 쥘은 노파를 매수했고, 노파는 내일 아침 아홉 시까지 쥘이 페라귀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도록 페라귀스의 옆방 벽에 구멍을 뚫어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케가 감쪽같이 밀봉해준 편지를 짐짓 모른 척하고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아내는 남편의 믿음에 감동해 기뻐하며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외출하고 돌아와 점심 때 모든 진실을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직전에 쥘은 노파의 집으로 가서 벽에 뚫린 구멍을 확인했다. 잠시 뒤, 아내의 발소리가 들렸다. 지켜보니, 페라귀스는 바로 클레망스의 아버지였다. 생부가 도형수라는 걸 알면 쥘에게 버림 받을까 두려웠던 클레망스는 이를 숨겼고, 페라귀스는 딸을 위해 포르투갈 백작으로 신분 세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포르투갈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익혔다. 쥘이 결혼 직후에 장모가 그에게 증권중매인 직책을 사라고 대주었던 후원금은 바로 페라귀스가 보내준 돈이었다. 오늘이 바로 페라귀스가 완벽하게 포르투갈 백작 푼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모든 서류가 완비되는 날이었기에 이제 사위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노파가 이다가 남긴 유서를 보고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이 소리에 클레망스가 달려와 남편을 보고야 말았다. 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쥘은 범죄자처럼 그곳에서 도망쳤다.
쥘이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 시내를 배회하다 뒤늦게 집에 들어갔을 때 하인은 클레망스가 초주검이 되어 돌아와 몸져누웠고, 의사가 다녀갔는데 위중하다고 전했다. 아내는 큰 충격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저녁 때 의사가 다시 왔는데, 마음의 병이 너무 깊어져 그렇지 않아도 위중했는데 자꾸만 외출을 해서 몹시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녀는 겨우 기운을 차리더니 남편에게 온종일 혼자 있고 싶다고 애걸복걸하여 남편을 내보냈다. 남편이 없는 사이에 그녀는 종부성사를 받았다. 쥘은 오귀스트를 찾아갔다. 오귀스트는 독극물에 중독되어 다 죽어가고 있었다. 오귀스트의 할머니도 슬픔에 빠져 이미 숨진 뒤였다. 오귀스트의 어긋난 열망과 호기심이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그 다음 날에 클레망스는 남편의 손에 편지를 쥐어주고는 마지막 숨을 거뒀다. 그녀의 편지에는 남편을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으며 아직도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행복하게 죽겠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아버지의 존재를 알려주셨고, 어머니의 임종 자리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났으며, 도형수였던 아버지의 존재가 남편에게 알려지면 자신의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웠다고, 결국 남편을 믿지 못한 대가로 이렇게 죽는다고 쓰여 있었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클레망스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어달라고 청하며, 그들의 사랑의 추억이 담긴 모든 것은 태워달라고 유언했다.
클레망스의 입관식에서 쥘은 페라귀스를 만났다. 페라귀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한순간 쥘에게 분노의 눈길을 보냈다. 쥘은 치명적인 절망으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는 입관과 장례 절차를 모두 자케에게 일임했다. 그는 자케에게 아내의 시신을 묘지에 묻고 싶지 않다고, 아내를 화장한 재를 소장하고 싶다며 어떻게든 시신을 화장할 수 있게 처리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당시 파리에서는 화장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파리의 끔찍한 관료주의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다. 자케는 우선 경찰청장을 찾아가 원칙대로 청원서를 제출했다. 경찰청장은 난색을 표하며 여드레 후에야 상부로 올리는 보고서가 완성될 거라는 답을 주었다. 쥘은 자케가 속한 외무부를 통해 내무부에 요청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내무부 면담 약속이 보름 후에야 잡혔다. 그러자 자케는 외무부 장관의 특별 비서를 통해 내무부 장관의 특별 비서와 교섭해 만남을 성사시켰다. 그는 외무부 장관의 친서를 들고 내무부 장관을 면담했지만, 내무부 장관은 죽은 아내의 시신 소유권을 남편에게 부여하는 법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심각한 논의를 거쳐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한다고 답했다. 자케는 결국 법적으로 처리하느라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라리 부인의 시신을 묻을 곳의 면장에게 읍소해야 할 일이었다. 파리라는 도시에서는 그 무엇도 관료적 인습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자케가 이를 쥘에게 전하자 쥘은 이틀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 무렵, 센강변에 위치한 마을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어 장례가 치러졌다. 이다의 시신이었다. 마을 사제는 자살한 그녀의 시체를 성당에 받아들이는 것도, 그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리하여 이다의 시신은 초라한 관에 담겨 장례식도 없이 마을 성당 뒤에 있는 작은 묘지에 곧바로 매장되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릴 무렵,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이 묘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졌다.
며칠 후,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쥘의 집에 왔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커다란 단지 하나를 쥘 부인의 방에 가져다놓고 사라졌다. 단지 위에는 “사랑하는 딸의 유해를 슬픔에 잠긴 사위에게 돌려준다.”라고 쓰여 있었다. 쥘은 페라귀스의 신출귀몰한 능력에 놀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내의 유지를 다 이행하고 사업을 정리한 후, 증권중매인 직책을 팔고 파리를 떠났다. 그때까지도 행정부 관리들은 여전히 한 시민이 아내의 시체를 소유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토론 중이었다.
〈페라귀스〉는 본질적으로 파리의 드라마이다. 발자크는 소설 곳곳에서 1820~1830년 당시의 파리를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파리의 거리를 묘사하고 행인들의 발걸음을 추적하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19세기의 프랑스 풍속연구가 발자크에게 파리는 인격과 감정, 그리고 신체를 가지고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발자크의 파리에는 각각의 집과 거리가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 거리의 건물, 지나가는 행인, 마차, 서 있는 사람, 상점, 이 모든 것은 파리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기호이다. 19세기 후반의 근대도시 파리에 대한 연구는 매우 활발한 반면, 1820년대와 1830년대의 파리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며 역사적 사료 역시 귀한 편이다. 따라서 〈페라귀스〉는 소설적 가치만큼이나 왕정복고 시대의 근대화 과정에 있는 파리를 보여주는 도시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다고 하겠다.
파리의 모든 구역은 그 고유의 계급적 특성을 지닌다. 생 제르맹(Saint-Germain) 구역에는 정통 귀족들이 살고, 쇼세 당탱(Chaussée d'Antin) 구역에는 신흥 부르주아들이 살며, 탕플(Temple) 가 근처의 마레(Marais) 지구에는 가난한 수공업자들이 모여 산다. 이렇듯 파리 사람들은 각각의 공간적 질서를 따른다. 〈페라귀스〉의 비극은 인물들이 그 공간의 규칙을 어김으로써 발생한다. 생 제르맹 구역에 사는 근위대 장교 오귀스트 드 몰랭쿠르 남작이 “일생 중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우연”에 의해 어둡고 불결한 솔리 가에 가지 않았더라면 살해당하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며, 쥘 부인 역시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어울리지 않는 그 길에 있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코르셋 만드는 여인 이다 그뤼제는 신분에 맞지 않는 부르주아의 아름다운 저택을 방문한 대가를 치르고 죽는다. 쥘의 경우 아내에 대한 의심 때문에 하층민들의 구역인 앙팡 루즈(Enfants-Rouges) 가를 들락거리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고통을 겪게 된다.
도시의 특성은 역사를 반영한다. 소설의 시간적 무대인 1819년이나, 소설이 창작된 1833년은 프랑스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기였고, 공간적 배경인 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겪었다. 도시가 변화하듯이 그 내부에 존재하는 공간의 법칙도 변화한다. 〈페라귀스〉는 공간의 변화에 따른 권력의 이동 양상을 보여준다. 파리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고, 그와 더불어 권력도 움직인다. 생 라자르(Saint Lazare) 가에 있는 뉘싱겐 남작의 저택에서 열린 무도회의 찬란함은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권력까지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귀족으로부터 부르주아로의 권력의 이동은 오귀스트 드 몰랭쿠르와 쥘 데마레의 대결을 통해 드러난다. 구체제의 귀족정신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노인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귀스트는 근대화의 뒤편에서 조용히 몰락해가는 귀족계급을 상징한다. 반면에,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쥘의 방식은 오귀스트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염탐하지도 탐구하지도 사색하지도 않는다. 그는 행동한다.
〈페라귀스〉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19세기 전반에 존재했던 세 개의 정치체제를 상징한다. 13인당의 수장 페라귀스의 절대적인 권력은 나폴레옹의 제1제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오귀스트 드 몰랭쿠르는 근위대 소속으로 부르봉 왕가에 충실했던 귀족의 전형이다. 뉘싱겐 은행의 증권중매인인 쥘 데마레는 7월 혁명을 주도한, 상승하는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다. 그러나 세 개의 권력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무대에서 사라진다. 오귀스트는 죽임을 당하고 페라귀스는 시체와 다름없는 노인으로 전락하는 반면, 부르주아인 쥘 데마레는 파리를 떠난다. 7월 왕조의 시작 단계인 1833년, 이 글을 쓸 당시 발자크는 1848년의 혁명과 루이 필리프의 추락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발자크는 대혁명 이후에는 그 어떤 권력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 발췌 문헌 : 〈13인당 이야기〉, 발자크 저, 송기정 역, 문학동네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문헌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하거나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