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당원들

풍속생활연구 - 군인생활정경 제1권

by 글섬

작품 배경


〈올빼미당원들(Les Chouans)〉은 1829년에 《위르뱅 카넬(Urbain Canel)》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발자크가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한 첫 소설이라는 점에서 『인간희극』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출판업, 인쇄업, 활자주조업 등 모든 사업에서 실패한 후, 오로지 문학을 통해 권력과 부를 획득하겠노라 결심하고 야심차게 내 놓은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인 것이다. 비록 소설의 판매는 부진하였지만, 작가 발자크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발자크는 1827년부터 〈르 가(Le Gars)〉라는 제목의 올빼미당원들의 반란에 대한 작품을 구상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28년 브르타뉴(Bretagne)의 푸제르(Fougères)를 방문하고 나서부터이다. 1828년 9월 1일 발자크는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포므뤨 장군(général baron Gilbert de Pommereul)에게 브르타뉴에서의 체류를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는 9월에서 10월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푸제르에 체류하면서 내전을 경험했던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고, 그 지방의 지형과 풍속 등을 조사한 후 집필에 몰두한다.


몇 달 간의 집필 끝에 1829년 3월 28일, 〈마지막 올빼미당원 혹은 1800년의 브르타뉴(Le Dernier Chouan ou la Bretagne en 1800)〉가 탄생한다. 초판은 같은 해, 《위르뱅》에서 출간된다. 이후 1834년에 《비몽(Vimont)》에서 재출간할 때는 〈올빼미당원들 혹은 1799년의 브르타뉴(Les Chouans ou la Bretagne en 1799)〉로 제목이 변경된다. 1845년 《퓌른》 판에서 〈올빼미당원들〉로 다시금 제목이 변경되고, 「군사생활 정경(Scènes de la vie militaire)」으로 분류되어 『인간희극』 제13권으로 출간된다.


올빼미당의 반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은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열광적인 찬미자였던 발자크가 월터 스콧을 뛰어넘는 역사소설가가 되고자 했던 소망이 담긴 작품이다. 이 역사소설은 가명으로 청년기 작품들을 써대던 발자크가 실명으로 발표를 시도한 첫 번째 소설이다. 정염과 배반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엮어지는 이 소설은 이념적으로는 대립하지만 사랑에 빠진 운명의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여주인공은 공화파 첩자인 마리 드 베르뇌유(Marie de Verneuil)이며,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체포할 임무를 맡은 반란 왕당파 대장인 몽토랑(Montauran) 후작이다. 비극적인 결말은 청렴한 공화파 사령관인 윌로(Hulot)의 투입과 더불어, 특히 밀정 코랑탱(Corentin)의 파렴치한 개입으로 유발된다. 그 모든 것은 나폴레옹의 권력 장악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발자크는 이 소설의 집필 당시, 장 줄리앙 사바리(Jean-Julien Savary)의 역사서 〈방데군과 올빼미당원들의 전쟁(La Guerre des Vendéens et des Chouans)〉과, 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의 역사서 〈프랑스 혁명사(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를 참조했다. 그는 “순전히 이야기체의 역사를 지양하고 에피소드에 불과한 과거의 사건들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하며, 1793년에 일어난 실제 사건인 올빼미당의 반란에서 이 소설의 소재를 끌어 왔다.


올빼미당의 반란은 1793년부터 루아르 강 북쪽의 브르타뉴, 멘(Maine), 앙주(Anjou), 노르망디(Normandie) 등에서 여러 차례 걸쳐 일어난 반혁명 운동으로서 루아르 강 이남의 ‘방데전쟁(Guerre de Vendée)’과 함께 ‘서부전쟁(Guerre de l’Ouest)’이라 불린다. 특히 1793년 10월 17일 숄레(Cholet)에서 대패한 방데군이 최후의 결전을 위해 루아르 강을 건너 북쪽으로 행진을 감행하면서 올빼미당과 결합한 이후 두 군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19세기 프랑스 역사에서 서부전쟁은 귀족과 사제들이 순진한 민중을 선동하여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혁명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킨 “반혁명(contre-révolution)”으로 기록되었다. 대혁명을 현대 프랑스 역사의 시작으로 보는 정통 혁명사가들에게 서부전쟁은 귀족들의 망명지였던 영국과 가까운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에 역행하는” 사건이며, 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부속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냈을 뿐 아니라 양쪽 진영 모두에서 잔인함과 난폭함이 극치에 달했던 만큼, 공화국이나 제정에게는 물론 왕정에게도 서부전쟁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치스런 기억으로서, 프랑스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였을 것이다. 특히 정치적이고 조직적이었던 방데 전쟁에는 명예로운 반항의 이미지를 부여한 반면, 올빼미당의 반란에 대해서는 경멸적인 시선을 던졌던 것이 사실이다. 방데군과 달리 올빼미당의 경우 밀매업자들이 주동이 되고 농민과 영세 수공업자들 그리고 하층 귀족들로 구성된 반란군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빼미당의 반란에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올빼미당원들〉에는 발자크의 다른 작품에 비해 실제 사건에 대한 언급이 많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허구적 사건, 실제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서로서로 뒤섞여 서술된다. 혁명 당시의 주요 사건들, 즉 왕의 시해(1793), 교회와 귀족의 재산 국유화(1789), 메시도르(Messidor) 10일의 법령(1799), 영국군과 망명귀족 연합군의 키베롱(Quiberon) 만 상륙(1795), 테르미도르(Thermidor) 9일의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실각(1794), 오쉬(Hoche) 장군에 의한 평화 협정(1796), 프뤽티도르(Fructudor) 18일의 쿠데타(1797), 유럽의 반불동맹, 이탈리아 북부에서의 연이은 패전, 나폴레옹의 귀환과 브뤼메르(Brumaire) 18일의 쿠데다(1799) 등이 역사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알랑송(Alençon)에서의 마차 약탈 사건은 소설의 소재를 제공하고, 푸앙세(Pouancé) 근처 종세르(Jonchère) 성에서 이루어진 방데군과 올빼미당 지휘관들의 회합(1799년 9월 14일)은 비브티에르(Vivetière) 성의 회합으로 변형된다.


실제 인물들 역시 허구적 인물들과 만난다. 올빼미당 측의 경우, 코트로(Cottereau), 피슈그뤼(Pichegru), 샤티옹(Chatillon), 샤레트(Charette), 베르니에(Bernier) 신부 등의 실존 인물이 몽토랑 후작, 퐁텐(Fontaine) 백작, 귀댕(Gudin) 신부, 귀아(Gua) 부인 등의 허구적 인물과 뒤섞인다. 혁명파 측의 경우에도 로베스피에르, 당통(Danton), 카르노(Carnot), 탈레랑(Talleyrand), 모로(Moreau), 푸셰(Fouché), 에두빌(Hédouville), 나폴레옹(Napoléon) 등의 실존 인물이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윌로, 메를(Merle), 제라르(Gérard), 코랑탱(Corentin) 등의 허구적 인물들과 공존한다.




서부지역 최후의 반란 당시의 한 일화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은 브르타뉴 지방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우선 브르타뉴의 지방적 특성을 묘사함으로써 왜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곳에서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반혁명운동이 지속되었는지를 이해시키고자 한다. 브르타뉴는 지리적, 민속학적, 문화적으로 아주 독특한 지방이다. 우선 지리적으로 브르타뉴는 영국과 가까운 국경지대에 위치한다. 민족적으로는 켈트족에 가까우며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1532년의 일이나, 그 이후에도 브르타뉴는 오랜 시간동안 고유의 풍습과 전통을 고수하며 독립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브르타뉴는 지형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되어 있었다. 땅은 척박했고, 협곡과 급류와 호수와 늪으로 둘러싸여 제대로 된 길도 운하도 없었다. 편견에 사로잡힌 그곳 사람들은 거칠고 사납고 무식하고 광신적이다. 미신적이기도 하다. “빛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빛의 열기를 받지 못하는 그 지방은 불타는 화로의 한 가운데에 있는 어둡고 검은 얼어붙은 석탄과도 같다.”는 공화국 장교 제라르의 지적을 통해 작가는 계몽주의와 혁명의 빛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봉건적 풍습을 유지하면서 무지몽매한 상태에 있는 브르타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지형적 특성과 열약한 도로망 때문에 혁명군은 일시에 반혁명군을 토벌할 수 없었다. 그곳의 지형은 올빼미당의 게릴라전에 유리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정규군의 전투가 아닌 경찰과 외교술이 필요했다. 무기가 아닌 유혹의 전략을 통한 전투의 필요성으로부터 이 소설의 일화가 탄생한다.


1799년 6월 28일, 총재정부(Directoire)는 1억 프랑의 공채를 발행하는 동시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전선에서 패배한 군대에 보충병을 보내기 위해 10만 명을 징집하는 혁명 7년의 메시도르 10일 법령을 공표한다. 올빼미당은 전선이 어지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오쉬 장군의 평화 협정 이후 3년 동안 지속된 평화를 깨고 다시 투쟁을 시작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내전에 투입할 군대도 돈도 없던 정부는 서부지역의 징집병들을 전선에 보내는 대신 내전에 투입한다. 서부지역의 반란군을 서부지역 현지에서 징집한 군대로 진압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이 명령은 “총재정부의 나약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동시에 혁명군에 끌려가는 징병군들의 느린 발걸음을 설명해준다.”


1799년 9월, 푸제르 지역에서 마옌으로 호송되는 징집된 병사들에게는 유니폼도 없다. 대부분이 농부들인 그들 중 몇몇은 맨발이었고, 목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양가죽을 옷 대신 걸치고 있었으며, “파괴되었다기보다는 사라져버린 종교를 상징하는 위험한 물건”인 묵주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현대문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게다가 이 군단은 “특별히 올빼미당과 싸우는데 투입될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전선에 투입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 고장 사람들과 싸우러 가는 그들은 마치 감옥에 끌려가는 죄수와도 같다. 고향 땅을 떠나지 않으려는 그들은 왕을 살해하고 교회의 재산을 탈취한 자들을 위해 전선에 나가 싸우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차라리 자신의 땅에서 죽기를 택했던 것이다.


마옌(Mayenne) 주와 일에빌렌(Ile-et-Vilaine) 주에 주둔한 혁명군의 총사령관 윌로 장군은 병사들이 신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걱정한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의 혁명과 내전으로 모두 지쳐 혁명의 이념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국가는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발자크는 혁명의 원동력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음을 한탄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총재정부의 무능에 있다. “위대한 사상이나 애국심 혹은 공포에 의해 집행되던 공화국 법령은 이제 더 이상 그 무엇으로도 지지받지 못했기에 수백만 프랑과 병사들을 만들어냈지만, 국고로 들어간 돈은 한 푼도 없었고, 군대로 들어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혁명의 원동력은 미숙한 사람들의 손에서 쇠퇴하고 있었다.” 반불동맹으로 유럽 전체가 프랑스와 적대관계에 있는 등 국제정세는 점점 프랑스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총재정부는 내부의 갈등으로 군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만토바(Mantoue), 트르비아(Trebia), 노비(Novi) 등 이탈리아 북부 전선에서의 연이는 패배는 그 결과이다. 부관 제라르는 “국가의 이념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며 현 상황을 한탄한다. 윌로는 국가의 위기를 구해 줄 유일한 장군으로 나폴레옹을 지목한다. 그러나 그보다 학력이 높은 지식인 제라르는 보나파르트의 등장으로 인해 혁명이 끝나버릴 위험이 있음을 경계한다.


병사들이 뒤처지던 모습을 지켜보던 윌로의 눈에 낯선 병사 한 명이 눈에 띈다. 투박한 차림에 몸집이 커다란 그는 그다지 영리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장교들은 그를 징집병으로 여겼지만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윌로는 낯선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봤지만, 그는 바보 같은 답변만 늘어놓는다. 윌로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가시덤불과 잡풀들로 가득한 그가 바로 올빼미당원이며, 따라서 산울타리 뒤로 적들이 잠복해 있음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그 낯선 남자는 말쉬-아-테르(Marche-à-terre)로, 야만적이고 광신적인 올빼미당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윌로는 냉정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제라르에게 그를 심문해보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살해하라고 지시한다. 그런 다음, 윌로는 도로 양쪽으로 정찰병을 보내고 주변 지형을 살펴보며 올빼미당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다음 순간, 말쉬-아-테르가 갑자기 올빼미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유사한 소리의 휘파람을 분다. 여기서 작가는 밀매업자들이 밤에 매복이나 위험 등을 알릴 때 코트로(Cottereau) 형제를 모방하면서 사용하던 올빼미 휘파람 소리로부터 ‘올빼미당’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제라르가 말쉬-아-테르를 죽이려 하지만, 윌로가 말쉬-아-테르를 적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하자며 저지한다. 잠시 후 멀리서 올빼미 소리가 들린다. 윌로가 정찰병들의 보고를 받는 동안 말쉬-아-테르가 다시 한 번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내더니 순식간에 그를 감시하던 병사들을 가격한다. 이와 동시에 숲속에 잠복해 있던 올빼미당원들의 기습이 시작된다. 윌로는 뛰어난 지략과 판단력으로 3백 명의 올빼미당을 상대로 백 명도 안 되는 병사들을 지휘해 팽팽한 접전을 벌인다. 양쪽 모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윌로는 올빼미당의 지휘자가 말쉬-아-테르가 아니라는 걸 알아챈다. 올빼미당을 지휘하는 자는 25살가량의 “날씬한 몸매에 빛나는 눈과 하얗게 빛나는 목을 가진 금발의 미남”, 몽토랑 후작이다. 윌로가 몽토랑을 공격하려 하자 올빼미당원들이 그를 수호한다. 접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푸제르에서 지원군이 도착하자 불리해진 올빼미당원들은 노련하게 퇴각한다. 치명상을 입은 올빼미당원 한 명이 그들의 지휘자 이름이 “르 가”(Le Gars)라고 실토한다.


의문의 아름다운 여인 마리 드 베르네이가 머문 여관에 귀아 부인과 그의 아들이 들어온다. 귀아 부인은 겨우 38세 정도로 추정되었기에 25살 정도로 보이는 그녀의 아들과 모자지간이라기엔 어색하다. 게다가 귀아 부인의 행동도 어머니라고 보기 힘들다. 귀아 부인은 올빼미당의 지휘관 샤레트의 정부로, 샤레트는 바로 전날에, 올빼미당이 나폴레옹의 암살을 꾀하기 위해 화약을 실은 마차를 폭발시키려 했던 마차 약탈 사건을 진두지휘하다 전사했다. 귀아 부인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승리를 위해서는 살인이나 약탈 등 비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여인이다. 교회와 귀족의 재산을 다 빼앗아 간 혁명정부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리와 귀아 부인은 서로의 매력을 한 눈에 알아보고, 서로에게 극도의 질투심을 느끼며 서로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탐색하고 의심한다. 알고 보니, 귀아 부인의 아들이라는 남자가 바로 ‘르 가’인 몽토랑 후작이었다. 마리는 그에게 한 눈에 반한다.


마리는 사실 경찰부 장관 푸셰가 보낸 밀정이다. 그녀의 임무는 윌로 장군의 임무와 다르지 않다. 즉, 올빼미당 지휘자인 몽토랑 후작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무기는 총이나 칼이 아닌 유혹이라는 전략이다. 그녀를 지원하기 위해 비밀경찰 코랑탱도 함께 보내진다. 그런데 공화주의에 대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정치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 사실 그녀가 그 임무를 수락한 것은 30만 프랑의 돈 때문이었지만, 열정에 대한 목마름과 위대한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녀는 이미 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첫 만남부터 그녀는 후작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는 이제 그를 넘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받기 위해 그를 유혹한다. 이렇듯 그녀에게는 사랑이 이념에 우선한다.


몽토랑 역시 마리에게 반하지만, 귀아 부인의 의혹은 집요하다. 올빼미당원들 사이에 마리가 파리 창녀였다는 소문이 떠돌자 몽토랑은 그녀를 냉대한다. 마리는 소문을 부인하지만, 결국 피신하기에 이르고, 이로 인해 올빼미당원들은 윌로의 병사 65명을 학살한다.


마리는 피신해 있던 민가에서 올빼미당원들이 대토지를 소유한 농부들과 부르주아들에게 가하는 끔찍한 고문을 목격한다. 회의감이 든 마리는 몽토랑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와 과거를 고백한다. 베르네이 공작의 사생아였던 마리는 일찍부터 세상과 맞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죄책감으로 수녀원에 들어가 돌아가신 뒤 그녀의 생부인 베르네이 공작이 그녀를 데려갔고, 그녀에게 유산을 남겼지만, 공작이 죽자 사치와 향락에 젖어 살던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하고 그녀의 유산을 독차지했다. 마리는 70세 노인의 간병인 격으로 보내졌는데, 이를 두고 파리 사교계에서는 마리가 노인의 창녀라고 생각했고, 이에 당황한 노인은 마리를 돈 한 푼 없이 버려두고 파리로 떠나버렸다. 이후 마리는 로베스피에르의 라이벌인 당통과 결혼했지만, 남편마저 또 다시 그녀를 빈털터리로 남겨둔 채 사망했기에 마리는 지금과 같은 음모자의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몽토랑과 마리는 결혼을 결심한다. 그들은 푸제르에 있는 마리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몽토랑은 주례를 맡아줄 신부와 증인들을 구하러 떠난다. 그 사이에 마리의 배신을 눈치 챈 코랑탱이 마리에게 몽토랑이 귀아 부인에게 보낸 연서를 보여주며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고 속인다. 격분한 마리는 윌로에게 몽토랑이 자신의 집으로 오기로 했다고 고발한 뒤, 자신의 집으로 간다. 윌로의 지시로 병사들이 마리의 집에 숨어든다. 그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몽토랑을 대면한 후에야 코랑탱의 속임수였음을 알아차린 마리는 뒤늦게 자신의 성급한 행동을 몹시 후회한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더 없이 행복한 첫날밤을 보낸다. 아침이 되자 마리는 몽토랑에게 윌로의 병사들이 이미 잠복해 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몽토랑을 살리기 위해 병사들의 표적이 되기를 자처한다. 마리는 몽토랑에게는 올빼미당원 옷을 입히고 자신은 몽토랑의 옷을 입고는 함께 도주하려 하지만, 두 사람 다 총에 맞아 숨진다.




분석


올빼미당 반란의 근본적인 요인이 만성적인 가난과 지역의 낙후성에 있다면 그것이 촉발된 직접적 원인은 성직자민사기본법과 모병제에 있었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오직 국왕과 신에만 봉사하면서 자신들의 땅에 머물러 살고자 했다. 그런데 혁명정부와 공화국은 자본주의의 도입과 더불어 산업화를 지향했다. 교구를 중심으로 성직자의 지배하에 있던 농민들은 공화국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교회 재산을 박탈하자 국가에 대해 분노했다. 1790년 7월 12일, 국민의회는 강력한 반대를 물리치고 성직자민사기본법을 가결하였고 8월 24일 루이 16세의 비준을 받았다. 이 종교헌장은 구체제 하에서의 교구를 83개 도에 일치시키고, 교회 재산을 몰수했으며, 주교와 사제는 일반 공무원 신분이 되어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게 했다. 모든 성직자는 이 헌장을 준수한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들은 서약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성직자민사기본법은 선서서명성직자와 선서거부성직자 사이의 분열을 초래했다. 많은 경우 혁명을 지지하고 혁명의 성공을 확신했던 제3신분의 성직자들은 초기 기독교의 평등사상과 혁명의 평등사상에서 유사점을 느끼면서 선서에 서명을 했다. 〈루이 랑베르(Louis Lambert)〉의 르페브르(Lefèvre) 신부나, 〈시골의사(Le Médecin de campagne)〉의 장비에(Janvier) 신부 등 발자크 작품에 등장하는 선서서명신부들은 그런 복음정신을 지닌 열린 사람들이다. 혁명정부는 선서거부성직자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 결혼을 강요당했을 뿐 아니라 해외로 추방되거나 10년의 징역을 살기도 했다. 성직자민사기본법이 생각보다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자 혁명정부는 1791년 4월 21일 법령과 5월 7일 법령을 통해 선서거부성직자에 대한 관용적 조처를 취하였다. 그러나 이 타협책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제 선서거부성직자는 박해를 견뎌낸 승리자가 된 반면, 선서서명성직자는 배교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박해와 모욕과 구타, 심지어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


선서거부성직자들은 신도들을 광신으로 이끌면서 반란을 선동했다. 올빼미당의 반란을 선동하는 귀댕 신부가 주관하는 야외예배는 언뜻 보아 초기 기독교의 순수함을 간직한 것처럼 보인다. 마리는 그 순수한 모습에 매료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지한 백성들을 선동하여 학살을 부추기는 그 예배는 “저주받은 예배”이다. 그는 “종교와 국왕을 위해 싸울 때 당신들의 영혼은 구원 받을 것”이라고 역설하며 징집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이용하고 약탈을 정당화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학살을 부추긴다. 그는 올빼미당원들이 한 명의 혁명군을 죽이면 한 번의 면죄부를 부여받는다고 믿게 한다. 신부의 설교는 성녀의 출현이나 중풍환자의 기적, 부활에 대한 확신에서 절정을 이루면서 반란에 성전의 의미를 부여한다. 예배 장면을 목격한 마리는 그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회를 타락시키고 있음에 분노한다. 그러나 동시에 무지한 백성들에 대한 사제의 영향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발자크의 보수적 성향은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역사관을 배제하지 않는다. 발자크는 중앙집권적인 권력의 효율적인 통치를 통해 프랑스라는 국가의 발전과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던 작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혁명의 정신이기도 하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이 품고 있던 이상에 동의하는 발자크의 이러한 역사관은 1832년 정통파로의 정치적 전향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발자크는 올빼미당의 반란에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발자크가 묘사한 올빼미당의 반란에는 고귀함이 전혀 없다. 무식하고 야만적이다. 그것은 광신도들의 탈선일 뿐이다. 그들의 반란은 도둑질이요 약탈이다. 사실 10년에 걸친 서부전쟁 동안 반란군 뿐 아니라 공화국 진영에서도 약탈이 성했으며,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가 이어졌다. 특히 1793년과 1794년에 걸쳐 혁명정부는 방데의 “근절(extermination)” 정책을 수행하면서 포로와 민간인 2천여 명을 산채로 루아르 강에서 수장시키거나 총살하는가 하면 “지옥종대(les colonnes infernales)”를 파견하여 집단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공화파군대에 의한 잔혹행위는 방데군이나 올빼미당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잔인했고 규모도 컸다. 그러나 발자크는 공화국 진영의 잔혹 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올빼미당원들의 잔혹성과 야만성에만 주목한다. 특히 방데전쟁에 대해서는 그래도 명예로운 도전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 반해 올빼미당의 반란에 대해서는 가혹하기 짝이 없다. 발자크에 의하면 방데군이 전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약탈을 했다면, 올빼미당원들은 약탈을 위해 전쟁을 했다. “방데의 영웅적인 시대는 끝났으며”, 올빼미당원들에게 “왕정과 종교의 몰락은 약탈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게다가 신부들은 그들의 약탈행위를 정당화한다. 귀댕 신부는 “우리의 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교회를 파괴하고 종교를 박해하는 혁명파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약탈을 부추긴다. 비브티에르 회합 도중 공화국 병사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후 전리품을 나누어 가지고 그들의 시체를 연못에 던지며 즐기는 병사들의 모습에 방데군의 지휘관 퐁텐 백작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야만적인 병사들에게서 아무런 희망을 기대할 수 없음을 한탄한다. 몽토랑 후작마저도 자신의 조직에 대해 회의적이다.


발자크는 올빼미당 측의 인물들에 대한 가혹한 평가에 비해 공화국 병사들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이다. 공화국 장교들의 묘사를 통해 자부심 강하고 충실한 공화국 군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윌로 장군의 경우, 공화국에 헌신하는 그는 애국주의의 전형으로서 공화국의 생생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는 신중하지만 용감하다. 전선 경험이 풍부한 그는 적군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는다. 부하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적군의 명예도 소중히 지킬 줄 아는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음에도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이상을 구현한다.


윌로 주변의 인물들, 제라르, 메를, 귀댕은 공화국 이념에 충실한 애국자들이다. 그들은 프랑스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그들은 단지 프랑스 영토를 수호할 뿐 아니라 문명과 빛과 자유라는 고귀한 이상을 전파한다는 사명감도 지니고 있다. 공화국 장교들의 우월성은 비브티에르 성에서 만난 귀족들과 비교할 때 더욱 돋보인다. 귀족들에게는 섬세함과 재치가 있을 뿐이지만, 공화국 병사들에게는 단순함과 위대함과 진정한 헌신이 있다. “이미 잃어버린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귀족들 앞에 나타난 두 명의 공화국 장교는 “단호한 용모로 회합에 모인 사람들을 제압했다.” 그들의 모습은 “귀족적이고 관례적인 문구와 예절로 인해 왜소해진 귀족들의 얼굴”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은 에너지 넘치는 젊은 공화국을 상징한다.


젊은 시절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역사관을 견지했던 발자크가 진보와 자유라는 공화주의적 가치를 배제하고 완전한 독재를 이룬 나폴레옹에 대해 열광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발자크에게는 통합이 중요했다. 그리고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발자크에게 중요한 것은 힘과 권위가 있는 위대한 국가 프랑스였던 것이다. 국가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비열한 비밀경찰마저도 용인된다. 그리하여 “사무실 깊숙이 처박혀서 평화를 위한 비밀을 간파하는” 푸셰마저도 위대한 인물이 된다. 자코뱅이든, 보나파르트든, 국왕이든 상관없다. 발자크에게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이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통합이었던 것이다.



▶ 참고 사이트 :

1. ABC북 맛보기 사전, 도서출판창해 편집부

2. 영어판 위키피디아

3. 영어판 야후 〈발자크의 인간희극 개요〉

▶ 발췌 논문 : 〈『올빼미당원들 혹은 1799년의 브르타뉴』와 혁명에 대한 발자크의 역사관〉,

송기정(이화여자대학교)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발췌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한 것이거나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이거나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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