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다~

by 홍탁

말구유에 새하얀 아기가 누워 있다. 그 주위로 서 있는 사람들 눈망울엔 경이로움과 기쁨이 가득 차 있다. 구세주가 오신다는 순수한 믿음 하나만으로 꽉 찬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다가오는 성탄엔 조그맣게 구유를 꾸며볼까 들렀던 가게에서 문득 지난여름 다녀온 가족여행이 떠올랐다.

뜨거운 팔월의 오후, 휴가차 묵었던 민박집에서였다. 바로 내 눈앞에서 미끌미끌하고 기다란 것이 쓰윽 지나갔다. 설마 뱀인가? 그러고는 1초도 안 되어 “뱀이다!” 하고 소리를 질러 가족들에게 알렸다. 제주 돌담집이었는데 살짝 열어둔 뒷마당 문을 통해 이놈이 들어온 것이다. 이제 휴가는 온데간데없고 뱀 잡기에 나서야 할 판이었다.
한낮의 불청객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구석에 몰린 뱀을 집게로 꾸욱 잡았다. 물컹한 게 잡혔다. 힘을 더 주었다. 아이들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뱀을 들어 올리자마자 잽싸게 마당으로 나가 돌담 밖에 놓아주었다. 가족 모두 환호성을 질렀던 그날, 사실 내 등에는 줄줄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일러스트 김민선


문제는 그 집에서 하루를 더 묵어야 하는 것이었다. 살짝 걱정이 들어 “얘들아, 무섭지 않을까?” 하고 물었다. 효준이는 지체 없이 외쳤다. “아빠~ 아빠가 잡았잖아! 그럼 괜찮은 거지.” 순순히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주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더 오래 가슴에 남는 여름이었다.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 그만큼 힘이 되는 일이 있을까. 효준이가 요즈음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가 있다. 두 달 전부터 다니고 있는 태권도장 관장님이다. 효준이는 퇴근한 아빠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그날 있었던 태권도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빠! 관장님이 나 다리 찢기 잘한대.” “아빠, 아래막기 보여줄게. 여기 서 봐.” 태권도를 하루에 50분 하는데 정말 그만한 분량의 얘기들을 쏟아낸다.
한번은 물어봤다. “효준아, 너 어떻게 잘하게 됐어, 발차기?” 스윽 미소를 짓더니 해준 말이 머리에 쏙 박힌다. “관장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돼.” 곁에 있던 아내가 웃으며 동영상 하나를 전송해준다. 파일을 실행하자 효준이 뒤로 열을 맞추어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관장님이 우렁찬 목소리로 “송판대 보세요!” 하자 효준이가 고개를 숙여 나무 송판을 뚫어지게 본다. “격파 준비!” “아이!” “격파!” 아이는 그대로 몸을 띄우더니 손날을 들어 수직으로 내리친다. 쩍~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난 송판 위로 아이는 격파 자세 그대로 잠시 정지해 있다. 순간, 터져나오는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 그 뒤로 당당히 퇴장하는 효준이를 보면서 관장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아이의 순한 믿음이 살포시 내 마음에도 옮겨온다.

밤이 깊었다. 이불을 걷어차며 가로 세로 잠든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슬픈 일 기쁜 일 굽이굽이 많았던 한 해를 돌아본다. 그러고는 딱 하나만 가슴에 남기자고 다짐했다. 순간 순간에 충실하자고. 그러면 감사하게 되고 좋은 일이 우리를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효준아~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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