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처방합니다> 4-(1)
야근할 상황에 놓인 회사원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저는 1인 가구라 저 없으면 집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얼른 퇴근하겠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듣고 마치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제껏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집에 가족이 있어서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익히 들어보았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도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할 당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1인 가구는 혼자서 바깥사람과 안사람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바깥사람과 안사람은 보통 남편과 아내였다. 바깥사람은 출퇴근을 하며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 안사람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우리 부모님 세대에겐 당연한 풍경이었다.
오늘날은 혼자 사는 게 비교적 흔한 사회가 되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이 36%를 넘어섰다고 한다. 기존의 바깥사람과 안사람이 해왔던 일은 한 명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두 사람의 일을 한 명이 해야 하니, 이에 따른 어려움과 고민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먼저 바깥사람으로서 어려움은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이란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가족이 여럿일 경우 가장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면 가정은 위기에 몰린다. 그래서 옛날 아버지들은 온갖 수모를 견디며 밖에서 돈을 벌어 오기도 했다. 가장의 하루 일당에 달린 입이 몇 개인가 생각하면 한시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을 것 같다.
전통적 가장에 비해 혼자 사는 사람의 무게는 가벼워 보인다. 그래도 가장은 가장이다. 가장이 일을 그만두면 이 집은 유지되지 않는다. 집을 빌린 거라면 월세를 매달 내야 한다. 다달이 나가는 공과금과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보험료 납부와 저축까지 한다면 한 인간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이 든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나 하나지만 잘 먹여 살리려면 매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터로 가야 하는 게 가장의 숙명이다. 앞날에 대한 고민도 피할 수 없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1인 가구 가장의 큰 장점은 직장생활이 너무 괴로워 그만두고 싶을 때 딸린 식구가 없다는 것이다. 실직해도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니까 퇴사의 부담이 아무래도 적다. 혼자 살면 일을 쉬더라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길을 찾아서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기 좋은 때는 바로 혼자 살고 있을 때이다.
안사람으로서의 어려움은 바로 의식주에 필요한 생활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의, 식, 주로 가사 활동을 나누어 볼 때, 먼저 의복 관리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서 좋은 점이 많지만, 철이 바뀔 때마다 옷을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고, 철이 지난 옷은 세탁해서 잘 보관해야 한다. 옷의 양을 줄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매년 입을 옷이 없어 고민이 되는 미스터리한 현상 때문에 옷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는 일이니 할 게 뭐 있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교육할 만큼 나는 살림의 고수가 아니므로 길게 말하지 않겠다. 옷의 색이나 종류에 따라 세탁을 신경 쓰고, 세탁물을 널고 개고 옷장에 넣는 것까지의 과정은 손이 많이 간다. 게다가 옷과 수건을 따로 세탁하고 이불까지 빨면 어느새 소중한 주말이 사라진다.
다음은 식사 준비의 문제이다. 사실 나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고민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존경스럽고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부럽다. 혼자 살면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은데, 그러다 보면 배를 채워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일이 생긴다. 혼자라도 잘 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밥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양을 갖춘 식사를 나에게 잘 챙겨줘야 한다.
자취를 처음 시작할 때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먹을 때는 편했지만, 뒤처리까지 생각하면 배달을 멀리하게 된다. 찜닭이나 떡볶이는 혼자 먹기에 양이 많아 남을 수밖에 없는데, 남은 걸 냉장고에 넣어놓고 나중에 맛있게 먹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남은 음식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게 점점 마음이 불편해진다. 포장에서 나오는 엄청난 쓰레기도 지구와 환경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자극적인 음식에 속이 편치 않아서, 이제 배달 음식은 손님이 올 때를 제외하고 시키지 않는다.
자취 경력이 오래된 사람은 요리를 곧잘 한다는데, 나는 여전히 요리를 위한 활동이 모두 재미를 찾을 수 없는 노동같이 느껴진다. 장보기, 재료 다듬기, 익히기, 담기, 뒷정리까지 떠올려 보면, 먹는 잠깐의 즐거움에 비해 너무 오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난다. 그러다 보니 간편식을 찾게 되고, 레토르트 식품이나 밀키트를 활용하기도 한다. 맘에 드는 가게의 음식을 포장해 와서 먹기도 하고, 요즘은 집 근처에 맘에 드는 반찬 가게가 있어 애용하고 있다. 부디 반찬 가게 사장님이 오래 영업해 주시기를 바란다.
의식주를 위한 가사 노동의 마지막은 집 관리의 기본인 청소의 문제이다. 잦은 야근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다고 해도 청소는 해야 한다는 게 신기하다. 최대한 흐린 눈을 하고 미루어 봐도, 어차피 누가 해주지 않으니 내 몫이다. 특히 화장실 청소는 너무 귀찮지만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라서, 적당히 나와 타협하는 기술이 늘어가는 것 같다. 쓰레기는 줄이려고 늘 노력하지만, 매주 분리배출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쓰레기는 쌓여있다. 혼자 사는 사람으로서 쓰레기를 더 줄이고 싶어 지금도 노력 중이다.
그래도 청소하고 나면 상쾌함과 보상처럼 주어지는 뿌듯함이 있다. 그것이 나를 독립적인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본가에 있을 때는 엄마가 해주는 밥과 빨래를 당연하게 여겼고, 청소조차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 몸은 조금 고단할지언정 훨씬 만족스럽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면 나도 그에게 의무감이 생기게 된다. 미숙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고 활기 있게 만들어 준다.
집 관리의 심화 과정도 있다. 집에 무언가 고장 났을 때 수리하는 것이다. 이전에 살던 집은 30년 된 아파트였다. 어느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변기 아래 부분과 바닥 사이를 메워주는 시멘트가 떨어져나간 걸 보고 정말 난감했다. 겉으로 보기에 변기가 바닥에 뜬 모양새라서, 그 틈으로 변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을까봐 조마조마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해결 방법이 있었다. 백시멘트를 사다가 물에 개어 변기와 바닥 사이를 메우는 작업을 혼자서 해냈다. 이외에도 전구 갈아 끼우기, 샤워 호스 교체하기 등을 수행하기도 했다. 참 좋은 세상이라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따라할 수 있다. 공구가 없으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웬만한 건 빌릴 수 있다.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경우 스스로 고쳐보면 별 게 아니구나 싶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혼자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도전 과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고 나면, 능력치가 상승하는 기분과 엄청난 성취감이 선물로 주어진다. 어쩌면 혼자 산다는 건 성장의 기회가 열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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