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취의 맛에 눈을 뜨다 (2)

<독립을 처방합니다> 3-(2)

by 청풍명월
자취와 독립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내 생각에 자취는 대학생처럼 부모와 떨어져 살지만, 경제적 또는 심리적 의존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독립은 부모에게 의지하는 걸 그만둠으로써 시작하며, 온전히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이번 글의 제목을 ‘독립의 맛에 눈을 뜨다’가 아니라 ‘자취의 맛에 눈을 뜨다’로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초보 자취생이던 그때의 일기를 보면 시공간적 자유를 만끽하는 내용이 많다. 신나고 즐거운 일들 가운데 가족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도 있었다. 본가에서 떨어져 살면서 자유를 얻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본가와 분리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독립으로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내면적 자유라고 생각한다.

내면적 자유는 단순히 혼자 산다고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니다. 외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 생각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진정한 독립이란 내면적 자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혼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자유 중에서 백미(白眉)는 단연 내면적 자유다.

내면적 자유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 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어떤 외적 상황이 마음을 힘들게 한다면, 그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그 일로 신경을 계속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인식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 이러한 태도는 내면적 자유를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말처럼 쉽게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직장에서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집에 와서도 답답할 때가 있다. 직장은 애초에 내 마음대로 되는 곳이 아니다. 그걸 아는데도 정신적으로는 퇴근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직장에 영혼을 24시간 바치는 셈이다. 그렇게 피로해진 상태로 다음 날 출근을 하면 업무 효율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일이 해결되는 건 더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업무에 대한 감정을 끊어내고, 완전한 휴식을 취하는 걸 선택해야 한다. 지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컨디션 관리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우선한다면 내면적 자유도 저절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족은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나는 우리 가족이 화목하고 서로에게 친절하기를 바랐는데, 그렇지 못해 괴로워한 적이 많다. 가족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우리 집을 떠올리면 속상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내가 계속 본가에 있었다면 가족들의 갈등에 휘말려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혼자 산 지 7년 차가 된 지금은 내면적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아직 완전히 내면적 자유에 이르지 못했다. 앞서 내면적 자유는 내 생각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나에게는 왜 어려울까. 자취를 막 시작한 때의 일기를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시절의 나는 무언가 억압된 상태로 보인다.

지난 겨울부터 날 귀찮게 하던 오른쪽 귀. 드디어 이비인후과에 가서 고막에 귀지가 붙어 있었던 걸 알게 되었다. 나오는 길에 얼마나 시워언~ 하던지!! 지금도 엄청 시원하다^▽^
#오늘의 교훈 : 불편한 거 정말 잘 참는 나, 이제 제발 좀 참지 말자! - 2019년 4월 기록

귀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도 단순히 물이 들어가서 그런가보다 여기고, 몇 달이나 참는 나라는 인간을 확인할 수 있다. 불편함을 참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습관이 있음을 깨닫자, 그동안 내 안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그제야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것은 봇물 터지듯 솟구쳐 나왔다. 어떤 날에는 감정들이 휘몰아쳐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다. 보통 사춘기를 겪는다는 10대 시절에 나는 감동적인 영화에도 운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에 눈물을 삼키는 게 낯설어 스스로에게 놀란 날도 있다. 억눌러 왔던 부정적 감정들이 튀어나와 일기장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미워하던 나의 처절한 기록들이 가슴 아프다. 눈물로 적신 듯한 페이지 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난 억눌렀던 건가, 원래 그랬던 것인가. 난 나에 대해 뭘 아는가.
요즘이 더 사춘기같다... 내 감정과 기분에 민감해 진다는 건 좋은 신호다.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을 때면 혼자 사는 게 축복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우선으로 돌봐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의무감으로 누구를 챙겨 주거나 그를 위해 시간과 체력을 따로 배당할 필요도 없다. 외부에서 있었던 일로 마음이 심란할 때, 같이 사는 가족에게 불똥을 튀기지 않을 수 있다. 차분히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산다는 건, 매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면서 조금씩 성장할 기회를 준다. 다스림의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내면적 자유에 다다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인용문 출처: 정강민, <세네카 씨, 오늘 수영장 물 온도는 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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