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취의 맛에 눈을 뜨다 (1)

<독립을 처방합니다> 3-(1)

by 청풍명월

우여곡절 끝에 집을 구하고 이사까지 하는 과정은 꽤 버거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혼자 살기 위해 도전한 것에는, 개인적 성향과 성장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나라는 인간은, 누가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이 우선순위가 되어버린다.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이나 욕구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는 것이다. 서른 해 이상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바꾸기도 쉽지 않다.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누구의 눈치 볼 것 없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호흡으로 숨이 쉬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혼자 있음에 충만함을 느끼는 것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나의 성장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위로 언니가 둘에 아래에는 동생이 있는 4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방이 단 두 칸이었지만 일곱 명이 살았다. 할머니와 부모님까지 어른 셋에 아이들 넷이 살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크자 부모님은 이사를 하셨지만, 내가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 기숙사에 갈 때까지 나만의 공간이란 걸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각자 자기 방이 있던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 공간 하나 없이 삼십 년을 살다가, 혼자 살기를 시작한 때의 해방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생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혼자 사는 것은 꽤 좋은 선택이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1순위로 대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타인의 요구에 밀려 저만치 처박혀 버렸던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꿈틀 기지개를 켜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누구의 무엇이 아닌 나와 처음으로 만난 기분을 느끼며, 익숙한 듯 낯선 내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나 자신과 친해지고 싶다면?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고 있는가? 가장 쉬운 방법은 경청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되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제 경청을 나에게 해 주면 어떨까.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일기 쓰기를 추천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쓰는 걸 어려워한다. 그 이유는 길게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기는 하루에 있었던 일을 전부 쓸 필요가 없다. 그저 하루를 떠올릴 때 기억에 남는 걸 쓰면 된다. 대신 꾸준히 써야 한다. 일기가 가장 빛을 발하는 건 차곡차곡 기록된 것들을 다시 읽어볼 때이다.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 나와의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 일기를 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내가 연결되면서, 보다 시야가 넓어진 자신을 경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산책이다. 나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을 때면 밖으로 나가 일단 걸으려고 한다. 어디든 걷다 보면 마음에서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그 의문을 따라 생각이 이어진다. 대부분 의문의 답은 내 안에 있다. 그 답을 찾아가는 데 산책은 큰 도움이 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고요히 귀 기울일 수 있는 조용한 자연 속에서 산책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 밖에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든가, 관심 가는 주제의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하는 것도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그저 편안한 장소에서 몰입할 수 있으면 된다. 자연스럽게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요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무엇이든 나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활동이라면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굳이 혼자 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활동이다. 그래도 혼자 사는 게 좋은 이유는, 활동 중에 방해받지 않을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난생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을 때가 생각난다. 우리 가족은 새집에 입주했고 드디어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거실에서 들리는 각종 소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지붕 아래 사는 한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가족들의 영향을 받아야 했다. 내 방에 있어도 항상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혼자 사는 삶은 자유를 선물한다.

먼저 시간적 자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외출 시간과 귀가 시간도 내가 정할 수 있다. 본가에 있을 때는 부모님의 요구에 맞춰 내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본가가 있는 시골은 자동차가 없으면 이동이 매우 어렵다. 운전을 못 하시는 엄마가 어디를 가자고 하면 따라나서야 했기 때문에 나의 시간적 자유는 늘 제한되었다. 지금은 혼자 모든 걸 계획할 수 있다. 솔직히 계획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무계획을 계획할 자유도 누린다. 아무 계획이 없는 주말에, 할 일을 실컷 미루다가 내킬 때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도 가능하다.

다음으로 공간적 자유. 집이란 공간이 맞춤옷처럼 편안해진다. 모든 물건을 나의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에 둘 수 있어, 편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좋아하는 물건들만 원하는 곳에 배치하는 재미가 있다. 취향에 맞는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 주는 행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예쁜 소품들과 의미 있는 선물들, 마음에 드는 엽서와 즐거운 순간이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나만의 공간에서 가장 좋은 게 있다면 아무래도 평온함이다. 평온은 조용하고 평안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소음에 민감한 편이라 혼자 사는 집에 TV를 두지 않았다. 누군가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가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때를 떠올려 보면 우리 집엔 TV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본가에서는 밤늦도록 늘 TV가 켜져 있었다. 귀가 어두워진 엄마는 TV 볼륨을 점점 더 높였다. 내방까지 들려오는 TV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던 걸 생각해 보면 역시 TV는 없는 게 낫다. 혼자 살면서 가끔 적적할 때면 라디오를 듣는다. 이 정도의 자극이 나에게 딱 맞는 정도라는 걸 안다. 혼자 지내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은근히 많다. 나에 대해 아는 게 늘어날수록, 그만큼 나를 긍정하고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이 참 기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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