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혼자 사는 사람의 사소한 고민거리 (2)

<독립을 처방합니다> 4-(2)

by 청풍명월

전화벨이 울린다. 또 엄마다. 지금 밖에 나와 있으니,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이럴 땐 가끔 엄마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몇 년째 혼자 살고 있는 나는 엄마가 있는 본가와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혼자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엄마에게 나는 그저 불안감을 유발하는 존재다. 혼자 사는 여자니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소식을 전해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럴 때는 통화로 나의 안전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 엄마가 보기에 나는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결혼을 종용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딸이 혼자 사는 게 못내 걱정스러운 엄마는 내게 보호자를 만들어주고 싶은가 보다. 그래서 어느 날엔 갑자기 낯선 남자의 사진을 들이밀면서 만나보라고 했던 것일 테다.

이른바 ‘결혼 적령기’의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번 보고 말 사이나 직장에서만 보는 남이라면, 흔한 참견으로 여기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님이 결혼에 관해 묻는 말은 무시하기가 어렵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현재 결혼 의사가 없음을 부모님께 표현하면 ‘네가 뭐가 모자라서 결혼을 안하냐’라는 말을 듣는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결혼을 안 한 자식은 마치 하자 있는 물건이 되는 것 같다.

부모님의 기대가 무겁게 느껴지고 사회적 시선이 따갑게 거슬리더라도, 혼자 사는 걸 고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혼자 살면서 ‘이대로 괜찮을까?’ 생각했던 적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오면 괜히 불안한 마음에 집의 모든 공간을 열어보고 구석구석 무사한지 확인한 적이 있다. 내가 없는 사이에 혹시 무언가 침입하지는 않았는지,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걱정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아플 때는 더욱더 외로움이 사무친다. 다치기라도 하면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 있다. 추운 날에는 사람이 주는 온기가 더욱 그립다. 가끔 가족들이 와서 건너편 방에 재우면 뭔가 마음이 놓인 적도 있다. 혼자 잠이 오지 않을 때 긴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 나라에서 여자 혼자 사는 게 어려운가, 아니면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게 더 어려운가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도 답을 내릴 수가 없다. 혼자 사는 것도 누구와 함께 사는 것도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어린 시절 이 나이쯤이면 결혼했을 거라고 여겼던 3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와 맞춰가며 살아갈 자신은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프란치스카 무리 작가의 저서 <혼자가 좋다>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다. 10장과 11장에 걸쳐 ‘이브’와 ‘릴리트’에 대해 소개한다. 이브와 릴리트는 여성의 안에 존재하는 두 인격이다. 이브는 애착을 원하고, 남자를 동경하는 특성이 있다. 파트너 중심적인 이브와 달리 릴리트는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다. 남성에게 복종하기보다 반항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프란치스카 무리 작가는 이브와 릴리트 모두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여성성이라고 말하며, 둘에 대해 알아가고 친숙해지는 기회를 제공한다.

상대적으로 어떤 특성이 더 강한지 알아보기 위해 작은 테스트를 할 수 있다. 가로 두 칸, 세로 여러 칸이 있는 표를 만들어서, 첫 칸 위에는 ‘파트너 관계에서 바라는 점’을 쓰고, 옆 칸에는 ‘싱글 라이프에서 좋아하는 점’이라고 쓴다. 그리고 조용한 시간에 세로 칸들을 채운다. 아래는 내가 직접 테스트해 본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파트너 관계에서 바라는 점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내 편이 있다는 안정감

내가 볼 수 없는 내 모습에 대해 깨닫게 해 주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관계

애착 욕구의 충족, 위기 상황에서 조력과 응원을 받는 든든함

심심할 때 말동무 해 주는 친구이자 지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

사회가 요구하는 과제를 달성했다는 느낌

싱글 라이프에서 좋아하는 점

자유와 해방, 오롯이 나만을 위한다는 만족감

혼자 하고 싶은 걸 실컷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

누구에게 빚지는 것 없이 떳떳하게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치장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마음 내키는 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기동력. 빠르고, 간편하며, 효율적임

5년 전에 작성한 내용이지만 지금도 유효한 것들이다. 내면의 이브와 릴리트 중에 누가 더 우세한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혼자서도, 누구와 함께여도 괜찮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조용히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혼자 살길 잘했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자신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은,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도록 튼튼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한다. 혼자 사는 내가 하자가 있는 물건처럼 취급되는 걸 거부할 수 있다. 결혼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란 말을 하는 엄마의 말을 의연히 넘길 수 있다. 중요한 건 나의 가치관이다. 내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꿋꿋이 나아갈 힘이 있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예상치 못한 과제들과 끊이지 않는 고민들이 존재한다. 당장은 나를 막아서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발전을 이끌어 준다. 과거에 대단해 보였던 문제도 지나고 나면 사소한 고민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의 어려움은 별것이 아닐 수 있다. 삶의 어려움은 혼자 살든 누구와 같이 살든 항상 발생한다. 혼자 살면서 겪는 문제가 같이 산다고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경제적 능력이 있는 성인이라면 혼자서 충분히 살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1인 가구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니, 혼자 살고 싶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걸 알아가는 기쁨과 성장하는 즐거움이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다음 글] 가족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1)

매거진의 이전글4. 혼자 사는 사람의 사소한 고민거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