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족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1)

<독립을 처방합니다> 5-(1)

by 청풍명월

‘그늘’은 내 가족을 생각할 때 연상되는 이미지다. 가족이란 커다란 기쁨과 깊은 슬픔, 또는 애증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째서 이런 모순적 단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을까. 서로 전혀 겹치지 않을 것 같은 양극단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아직도 나는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뜨거운 여름날 나무 그늘처럼, 어린 나에게 부모님은 세상의 위험한 것들을 막아준 울타리였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주었고, 학교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준 보호자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사 남매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해 보면,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은 분명하다.

밥 굶기지 않고 학교 졸업시켜 준 것에 만족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자의식이 강한 편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갔다 오면 친구 집에 비해 보잘것없는 우리 집이 불만족스러웠다. 친구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 감추게 되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부모님의 이름과 나이, 직업, 학력까지 조사했다. 부모님이 각각 국민학교, 중학교 졸업이라고 적힌 조사서를 제출하는 게 부끄러웠다. 가난한 집 딸이 아니라 잘 사는 집 딸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니, 기왕 바꿀 수 있는 거라면 잘 사는 집 아들이 되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이 아들을 원해서 낳았지만 셋째로 태어난 딸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큰집에 가면 나는 꼭지로 통했다. 큰집 어른들은 내 이름 대신 ‘꼭지야’라고 불렀다. 꼭지는 열매가 달려 있게 하는 줄기를 뜻한다. 남동생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한 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과도 같은 별명이었다. 그 주문이 효험이 있었는지 부모님은 아들을 봤다. 그러나 귀가 트이기 시작할 적부터 듣고 자란 꼭지란 단어는 어느새 내 정체성의 일부를 차지한 뒤였다.

남자아이의 탄생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그 이름은 서글프고 무겁다. 갓 태어난 여자아이의 본명을 지운다. 아들을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운다. 어릴 때는 그 의미를 몰랐음에도 나는 꼭지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열매를 얻고 나면 꼭지는 제 효용을 다 하기에, 말라비틀어져 버려지는 꼭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게 싫었다.

가난한 집과 원치 않은 별명은 내 어린 시절에 그늘을 드리웠다. 내가 태어난 날 엄마는 아들이 아닌 걸 알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 말은 어린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을 유발했다. 환영받지 못한 출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어 시간이 갈수록 서럽고 억울함이 쌓였다.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드는데 남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학창 시절 남자 아이들은 친구보다는 적에 가까웠다. 그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보상을 받은 것처럼 보여서 얄미웠다. 부모님이 남동생과 나를 크게 차별하며 키운 것 같지 않은데도 남동생을 예뻐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상장을 받아 온 때가 기억난다. 표창장이었는데 부모님은 굉장히 기뻐하며 집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상장을 붙여 두었다. 그걸 계기로 학교에서 뭐든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어 온갖 상을 다 받으려고 각종 대회에 나갔다. 시골의 작은 학교여서 교내 대회에서 상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교외 활동도 많이 해서 중학생이 되자 상장이 가득 쌓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장이 늘어나는 것과 달리 내 속은 메말라 가고 있었다. 공부를 성실히 해서 머릿속에 지식은 쌓여도 자존감은 바닥까지 갈 때가 많았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면 날아갈 듯 기뻤지만,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졌다. 내가 못나 보일 때 옆에 친구가 잘하는 것 같으면 시기심이 들었다. 나보다 잘난 아이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갉아먹었다. 모난 데 없이 사랑만 받고 자란 것 같은 아이, 얼굴이 예쁘거나 부유해 보이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해도 가슴 한쪽은 새까맣게 타는 것 같았다. 가난과 여자아이라는 약점이 낳은 열등감을 연료로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공부를 잘하고 상을 많이 받아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고, 무엇이든 잘해 내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몸부림쳤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 목매는 삶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본가와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진학했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넓은 세상과 맞닥뜨리자 잘나 보이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너무나 작아 보였다. 시골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열등감은 늘 따라다녔다. 당시 언니가 대구에 직장을 얻어 살고 있는 집이 있었는데, 거기가 우리 집인 척하기도 했다. 여전히 남자 학우들과는 서먹해서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나보다 잘난 여자 학우에 대한 비교도 멈추지 않았다. 연애를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나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다. 꾸미기 위한 화장품이나 예쁜 옷을 살 여유가 없기도 했다. 데이트할 돈은커녕 학기 중 생활비를 위해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수용적인 사람처럼 굴었지만, 나에게는 엄격한 심판관이었기에 늘 삶은 팍팍했다. 그래도 대학에서의 노력으로 운 좋게 원하는 직업을 얻었다. 나의 취직은 부모님께 큰 자랑이었다. 아버지는 합격 소식을 듣고 눈물까지 글썽였고, 엄마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무뚝뚝하던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봤다. 돈을 벌자 힘들게 사신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보탬이 되어 보람도 느꼈다. 그때의 가족이란 버거운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끌어내리는 족쇄 같기도 했다.

내 엄마는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다. 불안 때문에 자녀를 통제하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걸 본가를 떠나 살면서 뒤늦게 알았다. 십 년만 일찍 알았다면 엄마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일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취직 후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할 적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아주 강력해서 엄마의 요구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옷조차도 엄마의 마음에 드는 걸로 입고, 웬만하면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어쩌다 엄마에게 가시 돋친 비난을 들을 때면 마음이 잔뜩 쪼그라들었다. 자신을 잃고 위축되자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 들었다. 태어났을 때 꼭지로 불리던 아이는 그 이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십 년간 발버둥 치며 살았다. 결국 남은 건 꼭지와 별 다를 바 없는 껍데기였다. 제 모습을 잃고 말라비틀어져 버려지는 껍데기.

부모로부터 온전히 존중받지 못한 자녀는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 어떤 선택도 하기 힘들어 소위 ‘선택 장애’를 겪는다. 결정에 큰 부담을 느끼며, 고심해서 선택하더라도 그 근거를 밖에서 가져온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그냥 내가 맘에 들어서 정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게 두렵다. 누가 좋다더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 핑계를 댄다.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봐, 혹은 누가 나의 선택을 비난할까 봐 나오는 방어기제다. 늘 자신감이 없고 책임질 만한 선택을 회피하려고 한다. 선택을 미루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믿지 못해서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은 일단 의심하고 본다. 이런 과도한 경계심 덕에 큰 화는 면하고 살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과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건 상당히 외롭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속마음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꾹 눌러 담은 마음은 일기장에만 담아둔다.

남의 부탁은 들어주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나는 다른 이에게 부탁을 하기가 너무 힘들다. 늘 스스로 해야 인정받는다는 강박 때문일까. 한편으로는 부탁한다는 게 내 약한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껄끄럽다.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을 속으로 은근히 얕잡아본 적도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행복은 다른 세상 일처럼 멀리 느껴진다.

부모님이 만들어 준 그늘 덕분에 나는 자랐고, 그와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그늘이 자리했다. 그늘 안에서 생겨버린 그늘. 그늘의 양면성은 내 성장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는 잊지 않되, 이제는 내 삶의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늘에서 벗어나 따스한 햇살을 누리기 위해, 나는 독립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7년, 나는 한 번도 그 선택에 후회한 적이 없다. 혼자 살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어쩌면 가장 큰 장점은 가족과 보다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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