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처방합니다> 5-(2)
‘거리 두기’는 가족 사이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했던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마침 그때 나는 가족과의 거리 두기의 효과를 깨닫고 있었다. 거리 두기는 전염병 예방 목적뿐만 아니라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위해서도 유용하다. 왜냐하면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 받을수록 더욱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깊이 남은 상처는 오래 남아서, 아무렇지 않아졌다고 생각한 어느 날에 갑자기 나를 덮치기도 한다.
언니가 첫딸을 낳고 일 년 정도 지난 때였다. 언니가 딸을 데리고 본가에 오면 집안 분위기는 아기 덕분에 활기가 넘쳤다. 엄마에게 첫 손주였고 나에게도 첫 조카였기에 볼 때마다 사랑스러웠다. 해맑은 그 모습 그대로, 조카가 그늘 없이 자라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단체대화방에 엄마의 메시지가 뜬 걸 보고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ㅇㅇ(조카 이름)을 꼭지라고 불러라.’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단지 휴대전화에 뜬 글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가슴 속에 뭔가 뜨겁고, 무겁고, 불쾌한 그 무엇이 콱 막혀 버린 기분이었다. 잠시 탁 트인 곳으로 자리를 옮겨 한참 숨을 고르고 와서야 나는 알았다. 아직도 나는 꼭지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어린 시절 이후로 나를 꼭지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20년이나 지났는데도 꼭지란 단어는 내 기분을 이토록 상하게 했다. 다 큰 나를 서글픈 어린아이로 되돌려 놓았다. 이게 트라우마라는 건가. 그렇다면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러운 조카를 제2의 꼭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생각을 가다듬고 언니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꼭지의 뜻을 알려 주었고, 그 서러움을 표현한 시(詩)가 있으니 읽어 보라고 권했다. 김인숙 시인의 작품에 해설을 곁들인 기사의 주소를 보내 주었다.
만약에 엄마의 꼭지 발언을 옆에서 직접 들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아마 더욱 참담했을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엄마에게 평소처럼 잘해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속에 불이 났으니 그 불똥이 엄마에게 바로 튀어 나갔을 것이다. 엄마와 언성을 높이고 싸웠을지도 모른다. 그때 엄마와 떨어져 살고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거리 두기는 내 마음에 빨간색 경고등이 켜질 때마다 가족에게 불화살을 쏘지 않도록 해 주었다. 사고는 일어난 뒤에 후회하는 것보다 예방이 최우선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 유지가 필수적이다. 거리 두기는 가족들과 엉킨 채 큰 불로 번지지 않도록 도와 준 일등 소방관이라 생각한다.
바깥 활동이 어려웠던 2020년,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로 드로잉 클래스 온라인 수강을 시작했다. 그림에 도전한 건 처음이었는데,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완성한 작품을 사진 찍어 올리면 강사가 피드백을 해 주기도 했는데, 내 그림에 강사가 칭찬 댓글을 달아 준 걸 보고 매우 뿌듯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식물 드로잉 및 채색을 마무리하던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있던 때라 엄마는 본가에 올 때 고기를 사오라고 했다. 용건만 전하고 끊었으면 좋았을 걸, 엄마는 자꾸 나에게 뭘 하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집에서 취미생활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계속 묻는 엄마에게 그림 그린다고 했더니, 엄마의 말이 비수처럼 전화기를 뚫고 날아 왔다. 그림은 왜 그리냐, 네 언니가 잘 그리지, 네가 잘 그리냐고. 덧붙여 이런 말도 들었다. 그림은 돈이 많이 든다, 그럴 돈을 모아서 엄마에게 보태야 한다고...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돈이 드는 그림을 왜 하냐는 엄마의 말에 내 마음은 또 한번 크게 흔들렸다. 자존감이 원래 높지 않은데 또 한번 추락해 바닥까지 짓눌린 것이다. 화가 많이 났지만, 내 취미 활동에 간섭하지 말 것을 최대한 날카롭지 않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쏘아붙이지 않고 누그러뜨린 말투로 대응했다. 엄마는 먼저 전화를 뚝 끊었다.
집에서 뭐 하냐는 엄마의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피한 것은 엄마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본가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엄마가 내게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걸 벗어나는 순간 엄마는 내게 어김없이 상처를 주었다. 그런 이유로 엄마에게 그림 그린다고 말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림이라는 취미는 본가에 살았다면 아마 시도조차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림뿐만 아니라 어느 것도 엄마의 반대에 부딪힐까 봐 눈치 보며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혼자 살면서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활동을 하나씩 찾아 나가고, 기쁨을 느끼며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거리 두기를 통해 얻은 건, 누구의 말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려는 단단한 마음이다. 예전 같으면 상처를 받은 걸 계속 곱씹고 우울의 씨앗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림이 나쁜 짓도 아니고, 건강에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직면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취미에 대한 엄마의 말은 잘못되었다. 취미는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취미에 돈이 얼마나 들든 내가 결정하는 거고, 취미는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일은 5년 전 일인데, 지금 같으면 절대 엄마에게 내 취미에 대해 솔직히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에게 적당히 감추는 법을 안다. 솔직해야만 모든 관계가 원만해지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관계는 망가진다. 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 또는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게 관계의 윤활유가 된다. 이 모든 건 거리 두기를 통해 가능하다. 한지붕 아래 함께 사는 사람과는 거리 조절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는 선 넘는 참견에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돕는다.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가족 간에 서로 이해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확보해 준다. 내 마음에 불이 났을 때는 다른 이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가족과 거리를 두고 차분히 생각해 보면, 화낼 일이 아닌 걸 알게 된다. 화내고 싸울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만약 싸워도 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차분히 대화를 해볼 수 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어차피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본가에 가면 3일 정도 머무르다 내 집으로 돌아온다.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다는 걸 엄마도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다. 우리가 떨어져 살고 나서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걸 엄마도 인정했다. 어쩌면 우리는 멀어질수록 친절해지는 가족이다. 가끔 내가 장기 휴가를 얻으면 본가에 오래 있다가 가라고 거듭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의 말에 이제는 의연하면서도 한결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다.
두 달 만에 본가에 가는 날이다. 거리 두기의 힘을 마음에 다시 한번 새기면서, 본가에 잘 있다가 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가족과 싸우면서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함께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본가에 머무는 3일의 시간을 웃으면서 즐겁게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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