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빛을 향해 한 걸음 더 (1)

<독립을 처방합니다> 6-(1) 제2의 자아 발견, 운동으로 찾은 자신감

by 청풍명월

영화 ‘주토피아(Zootopia) 2’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나는 영화관을 즐겨 찾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다.

전편 ‘주토피아’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몇 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주디’가 나고 자란 토끼 마을을 떠나 새롭고 낯선 도시 ‘주토피아’로 향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늘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그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 ‘Try Everything’은 가사를 필사하고 외우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유독 이 장면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주인공에게 나를 투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봤던 2020년은, 내가 이십 년 넘게 살던 고향을 떠나 연고 하나 없는 도시에 정착한 지 1년이 된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좌충우돌 적응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주디는 주변의 무시에도 기죽지 않고 자신이 꿈꿔온 일을 당차게 해 나간다. 굴하지 않고 힘차게 세상과 부딪히는 그녀가 나에게 준 위로와 용기는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있다. 주제곡 ‘Try Everything’은 나를 향한 응원곡 같았다.

본가를 탈출하면서 직장을 막 옮긴 때가 생각난다. 낯선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이직한 곳은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또래 동료의 도움 덕분에 새로운 환경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회식이라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술자리 덕분에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낯을 가리고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한 편인 나에게 적당한 알코올은 마법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평소의 나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말 한마디 하기 전에 상대방의 반응을 몇 번이나 헤아려본 다음에 겨우 입을 떼거나 말을 삼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직장 생활이 늘 피곤하고 긴장의 연속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는 모두가 살짝 느슨해진다. 적당히 술이 오가면 모두 조금씩 들떠 있고, 나도 어디선가 용기가 솟아나는 걸 느꼈다. 그렇게 풀린 고삐가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다. 사람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웃는 게 즐거워졌다. 어느새 술자리에서 나는 웃음 유발자가 되어 있었다. 내게 이런 모습도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제2의 자아가 깨어난 것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는 노래방도 종종 갔다. 술이 들어가니 흥이 넘쳐 흘렀다. 배워 본 적도 없는 춤을 열심히도 췄다. 다음 날 근육통이 올 정도로... 지독한 숙취에도 나는 술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았다. 내가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도파민이 터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보다 했다. 또 신기한 것은 알코올의 힘을 빌려 사적인 이야기도 막 털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짝사랑 실패담이라든가, TMI(Too Much Information)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텐션은 또 왜 그렇게 높은지, 하루종일 일하고 나서 피곤할 법한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놀다가 늦게 귀가하면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이게 자유구나! 고된 직장 업무에도 좋은 사람들과 갖는 즐거운 술자리는 굉장한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술이 좋은 건지 사람이 좋은 건지, 운이 좋게도 그때는 둘 다 좋았다. 알코올을 해독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고, 나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술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그때 기록들을 보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당시 어울렸던 사람들 중에 지금도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시절 인연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추억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때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술만 먹고 다닌 건 아니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자,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했다. 친한 동료가 필라테스를 시작한다고 하길래, 그녀를 따라 등록할까 했다. 자상하게도 그녀는 우리 집 앞에도 필라테스 하는 곳이 있다며 알려 주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집과 가까운 곳이 최고다. 수강료가 조금 비싸더라도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곳에 등록했다. 그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

2021년 한 해 동안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 첫 번째가 바로 필라테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이어트가 잘 되는 운동은 아니지만, 자세 교정 효과가 있어 등과 허리가 펴졌다. 연말에 키를 쟀는데 키가 2~3cm 더 커져서 매우 놀라웠다. 무릎에서 종종 뚝뚝 거리는 소리가 난 적이 있었는데, 운동을 하니 증상이 없어졌다. 무릎이 아픈 게 뼈 문제가 아니라 무릎 근처에 근육이 부족하면 그럴 수 있다고 한다. 근육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이다.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내 몸에도 자신이 없었다. 뻣뻣하던 몸을 쓰니 온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엄청난 근육통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런데 두 세달 지나니 놀랍게도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근육통보다 활력이 더 커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려운 동작을 하고 나면 숨이 가쁘기는 했지만, 고통을 이겨 냈다는 자신감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잡생각을 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직장에서 퇴근해도 마음에 남아있는 찌꺼기 같은 것들이 운동하는 중에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당장 유지해야 하는 자세에 온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운동하고 나면 골치 아픈 일도 저만큼 멀어지고, 긍정적인 사고가 촉진되는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내 몸을 더 사랑하게 된 순간들이 가장 소중하다. 강사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쑥쑥 자랐다. 한때는 남보다 굵어 보이는 팔뚝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으나, 운동을 시작하니 튼튼한 내 팔이 자랑스럽고 든든했다. 근육이 조금씩 붙고 군살도 조금씩 정리가 되었는지 몸매도 훨씬 나아 보였다. 몇 달이 지나고 신규 회원이 들어왔다. 그녀가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되게 잘하시네요. 유연하시다’라고 할 때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내가 꽤 유연한 몸을 가졌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조금씩 옅어졌다.

새로운 경험은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깨닫게 한다. 회식이 괴로워 피하기만 했던 내가 신나는 술자리의 맛을 알게 되면서 사람을 좋아하고 흥이 많은 나를 발견했다. 저질 체력에 볼품없는 몸이라 생각했는데 운동을 시작하니 꽤 멋지고 건강한 내 몸에 감사하게 되었다. 두려움에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며 아직도 땅굴을 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라면, 작은 것부터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바란다. 가려져 있던 나의 빛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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