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처방합니다> 6-(2) 배움과 취미 확장 ‘나 가꾸기’ 사랑법
새로운 도전은 빛나는 순간을 선물해 준다. 배움과 취미 활동만큼 순수한 몰입감과 뿌듯한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다. 시골을 벗어나 혼자 살기 시작한 나는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원했다.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해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나를 좀 더 기쁘게 해줄 수 있게 되었다.
배움과 취미 활동은 ‘나를 가꾸기’ 위한 것이다. 무채색의 그림에 색을 입히는 것과 같다. 일하고 쉬기만 하면 인생은 별 재미가 없다. 관심 있는 걸 배우고, 좋아하는 활동을 꾸준히 하면 보다 다채로운 삶을 살 수가 있다. 내 삶을 다양한 빛깔로 채워 나가는 것, 즉 ‘나 가꾸기’가 스스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음이 힘들었을 때 가장 위로가 되어준 목소리는 자우림의 김윤아 님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자우림 콘서트 표를 예매한다. 노래가 좋은 건 물론이고, 윤아 님이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들이 큰 울림을 준다. 지난 콘서트에서 윤아 님이 들려 준 ‘황무지 출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곡 ‘샤이닝’을 듣고 난 다음이었다. ‘샤이닝’은 왜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윤아 님이 말했다. ‘샤이닝’의 가사처럼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있다는 괴로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마음이 황무지인 그런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다고.
그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저요!’라고 크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윤아 님은 지금 ‘저요!’ 한 사람은 제외라고, 황무지 출신들은 저렇게 말 못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저요!’는 외치지 못했지만, 양손을 뻗어놓고 있었다. 나는 절반의 황무지 출신인가. 콘서트 다녀와서 다음 해의 목표를 추가 수정했다.
내 마음 잘 가꾸기.
황무지가 되지 않도록,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서 초록초록한 생기로 가득 채우기.
좋은 노래도 많이 들려주고, 맛있는 영양분도 듬뿍 제공하고
따뜻한 햇빛과 신선한 물을 머금은 친구들을 키워야지.
위기가 찾아와도 의연히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도록.
나를 가꾸는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숲 체험’이다. 시립 평생학습원 홈페이지에서 토요일 오전에 하는 강좌 중에 ‘나를 찾아가는 감성 숲 체험’이라는 특강을 봤다. 추첨제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되었다.
눈부신 오월의 봄날,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숲의 한가운데를 거니는 시간은 정말 힐링이었다. 황금같은 주말 아침에 늦잠을 포기할 만큼 자연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 컸다. 토요일 오전 2시간 동안 숲 해설을 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풀과 꽃, 나무 이야기와 숲 생태계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수강생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고, 나도 열의를 갖고 참여하게 되었다. 이름을 아는 식물들이 늘어 갈수록, 푸릇푸릇한 생명들이 내 휴대전화 앨범에 차곡차곡 저장될수록, 내 마음에도 싱그러운 봄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치자나무의 꽃향기를 처음 맡아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다른 곳을 산책하다가 치자꽃을 발견했을 때의 벅찬 감동도 떠오른다. 몰랐던 꽃의 진한 향기를 알게 되는 건, 나만 아는 삶의 비밀을 가슴에 품은 기분이다.
몇 년 동안 살았던 이 도시에 이렇게 멋진 도시숲과 공원이 많은지 몰랐다. 이 강좌 덕분에 알게 된 많은 장소들은 내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훌륭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 자연을 만나러 산책을 나가면, 떠다니던 먼지들이 차분히 가라앉아 맑아진 내면의 눈이 생긴다. 시야가 맑아지면 나한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보이고, 그토록 어려워 보이던 일도 별 게 아닌 것이 된다. 자연 속에서의 산책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특효약이다.
날씨가 궂은 날 밖에 나가기 힘들다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배움과 취미도 무궁무진하다. 나는 코로나가 심하던 시기에 온라인으로 그림을 배웠는데, 예술 치료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다. 드로잉 클래스를 신청하면 그림 도구가 집으로 배송이 온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그림을 그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른이 넘어 붓을 들자, 채색의 즐거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그림을 완성해 내었을 때의 커다란 보람이 나를 치유해 주었다. 무력감과 우울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고, 강사의 칭찬을 받으며 자존감도 키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눈앞에 결과물이 있다는 것이 큰 기쁨과 성취감을 선사해 주었다. 지금도 집의 중심에 자리한 내가 그린 그림은 나를 기분 좋게 해 준다. 나라는 사람이 꽤 멋지다는 걸 일깨워 준다.
도자기 공예(이하 도예)도 재미있게 배운 경험이 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분야라 망설여졌는데, 친한 동료가 추천해 준 덕분에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잔잔한 라디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흙을 조물조물 만지는 2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부드러운 흙의 촉감이 즐거웠고,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몰입하다 보면 세상 근심이 다 멀어지는 것 같았다. 흙을 빚고 있지만 다들 자신의 내면을 고요히 응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 일종의 명상이나 수련 활동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도예 선생님은 말씀을 많이 하시지는 않았지만 좋은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열심히 빚은 흙의 표면이 자꾸 갈라지길래 선생님께 여쭤봤다. 흙으로 모양을 만든 다음 겉에 물을 살짝 바르면 표면이 매끄러워진다. 물을 발랐는데도 계속 갈라진다고 하니, 선생님은 내 손을 지그시 잡아보고는 손에 열이 많아서 그럴 거라며 장갑을 챙겨 주셨다. 서른 해 넘게 살도록 나는 내 손에 열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 어느 날은 머그잔을 만들려고 하는데 자꾸 밥그릇처럼 만들어졌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모양을 고치고 손잡이까지 달고 나니 그럴듯한 머그잔이 완성되어 기분이 참 좋았다. 서툴지만 내 힘으로 만든 도자기는 불가마에서 단련되어 내 곁으로 왔다. 퇴근 후에 피곤한 상태로 집중하며 작업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힘들어도 은근히 기대되는 도예 시간, 차분한 마음으로 빚어낸 도자기들이 자랑스럽다. 도자기 공예 결과물들은 지금도 집안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도예를 배우러 다니면서 알게 된 나의 장점도 있다. 초벌한 도자기에 색을 칠하는 날이었는데, 바닥은 빼고 칠해야 하는 걸 모르고 전부 칠해 버렸다. 도자기 밑바닥을 슥슥 닦아주시는 선생님께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 선생님이 내게 ‘긍정적이시네요’라고 말했는데 내가 ‘아니에요, 여기 와서만 그래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가 ‘거짓말이에요. 일할 때도 긍정적이에요’라고 말해 주었다. 평소에 나는 긍정적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내가 긍정적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나 내게 긍정적이라고 말해주니 정말 그런가 싶고, 그동안 내가 긍정적으로 변한 걸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기도 했다. 또 칭찬을 받으면 괜히 머쓱해져서 부정부터 하고 보는 내 습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칭찬해 준 사람이 보여준 호의를 고이 받아들이고, 감사하다는 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숲 체험, 그림, 도예 외에도 붓글씨(캘리그라피), 전화영어, 타로카드도 배워 봤다. 올해는 한국무용에 도전했는데 잘 맞는 느낌이 들어 계속 배워 보고 싶다. 원데이 클래스 형식의 꽃꽂이와 베이킹도 몇 번 해봤다. 요즘 재미있게 참석하고 있는 건 드럼 교실이다. 드럼은 몇 년전부터 배우고 싶었기에 문화센터에 수강 신청한 적이 있다. 당시(2021년) 방역패스 적용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 6개월이 지난 경우 부스터샷을 맞아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취소했었다. 드럼을 시작하게 된 건 작년부터인데, 드럼의 장점은 악보를 보는 법을 잘 몰라도 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 악보는 어지러워서 보고 치기에 겁이 나는데, 드럼은 반복되는 리듬이 많아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외우거나 익혀서 칠 수 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드럼은 초보자로서 잘 치지 못해도 배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에 맞춰 드럼을 신나게 두들기다 보면 둥둥 울리는 드럼 소리가 심장에 뜨거운 에너지를 가득 채워 준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와서 드럼을 치다 보면 신기하게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든다. 드럼은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싶은 취미이다.
배움이 있는 삶은 생기로 충만하다. 같이 활동할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도 즐길 취미가 참 많은 세상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열린 기회가 더욱 많을 것이다. 취미에 쓸 돈이 없다면 굳이 큰돈을 쓸 필요 없다. 지역의 평생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 무료 또는 최소의 비용만으로 양질의 교육을 접할 기회는 의외로 많다. 나는 도서관, 문화센터, 시립기관 홈페이지를 종종 방문한다. 주말에도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 제법 있다.
배움과 취미 활동은 황무지에도 푸른 싹을 틔우고 꽃이 피게 한다. 생명의 초록빛이 깃들면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마음 다스리는 일과 더불어 나를 잘 가꾸는 일은 평생토록 해야 할 일이다. 나를 나로 잘 지켜내는 것.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 알 것 같다. 배움을 통해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치유받는 경험이 쌓이면 어제보다 강해진 내가 있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비바람처럼 찾아오더라도 튼튼히 뿌리 내린 꽃나무들은 나를 지켜줄 것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꽃과 나무를 심어 볼까? 행복이라는 열매가 가득 열린 꽃나무가 눈앞에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식목일.
나무는 심지 못했지만 뭐라도 심어야지.
나에 대한 사랑.
이것이 무럭무럭 자라려면
나를 칭찬해 주기
예쁘다고 말해주기
비교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열심히 하면 나도 튼튼한 한 그루가 될 수 있을까
화려한 꽃이 피지 않아도 돼
건강하고 생기가 느껴지는 나무가 되고 싶어
바람에 흔들려도
뿌리까지 나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어떤 상처와 고통에도
의연한 나무가 되겠다
[다음 글] 6. 빛을 향해 한 걸음 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