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처방합니다> 6-(3) 나를 알아가는 여행, 독서와 글쓰기
10년 전의 나를 지금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대로도 괜찮아, 자신을 믿어 줘.’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던 그 시절의 나는 많이 괴롭고, 또 외로웠다. 남을 부러워하는 내가 싫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며 나를 미워했다. 내가 너무 미워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슬픈 감정을 속 시원히 말할 사람도 없어서 일기장에만 썼다. 이십 대에 대학 졸업과 취업을 해내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어째서 자신을 믿지 못한 걸까.
나를 믿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는 것처럼. 믿음이 가는 사람이어야 좋아할 수도 있다. 그 단순한 진리를 나에게 적용하기가 꽤 오래 걸렸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 그것은 혼자 살면서 비로소 시작된 기적이었다.
나를 알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내게는 독서와 글쓰기가 지금도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새로운 도시에 이사 와서 좋았던 것은 규모가 큰 중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내에 자리한 중앙 도서관은 둥지를 본떠 만든 아름다운 신축 건물이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아서, 도서관에 가면 늘 마음이 편안했다. 바깥의 소음과 차단된 조용한 공간은 그 자체로 나에게 기쁨이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때 필요한 회원증 비밀번호가 집 비밀번호와 동일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서관이 나의 정신적 안식처로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책을 찾았다. 누구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을 짊어지고 도서관에 가면 신기하게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책을 만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The Middle Passage)>는 죄책감이라는 어둠에 갇혀 있던 나를 꺼내 준 책이다.
-책을 읽고 죄책감에 대해 정리한 것-
두 가지 유형의 죄책감이 있다. 먼저 사회 유지를 위한 벌로서의 죄책감이고, 다른 하나는 ‘발병하는’ 죄책이다. 전자는 나의 잘못으로 생기며, 아프지만 나를 성장하게 한다. 반면 후자는 마치 질병처럼, 잘못한 것도 없는데 발생한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원치 않았던 여자아이로 태어났고,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죄책감이 생긴다. 그리고 병처럼 나를 좀먹는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게 옥죈다.
태어나 서른 해 동안 따라다닌 어두운 그림자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이 죄책감의 근원은, 부모에게 외면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설명이 크게 와닿았다. 두려움과 불안의 이유를 알게 되자 죄책감과도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죄책감은 힘을 잃었다.
지난 여름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 외가에 가기로 한 적이 있었다. 출발 전날 저녁, 엄마는 외가에 안 갈 거라고 통보하며 어떤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아도 받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지만, 오히려 장거리 여행을 안 해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자 죄책감이 올라왔다. 엄마와 따로 지내면서 죄책감을 많이 끊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에게 화내는 걸 못 해서, 나에게 화내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에 무력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때 <박상미의 가족 상담소>라는 책을 찾아 읽었다. 전자책이라 휴대전화에서 열람이 가능한 게 다행이었다. 여러 가족의 상담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 집만 이렇게 답답한 건 아니구나 싶어 위로가 되었다.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도 메모하면서 무력감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적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죄책감 들게 하는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 나는 좀 더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침착하게 대처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좋은 책을 읽으면 자극을 받고, 귀한 깨달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글을 쓰게 된다. 독서의 완성은 글쓰기라는 말이 있듯이, 책의 메시지를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글쓰기이다. 거창하게 쓸 필요는 전혀 없다. 종이와 펜 대신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 휴대전화 메모장을 켜서 책 제목과 기억에 남는 내용만 간단히 적어도 된다. 이렇게 조금씩 쓰는 습관이 쌓이면 내 감정과 생각에 관해 쓰는 것도 수월해진다. 처음부터 글을 쓰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으므로, 책을 통해 내 마음을 비추어 본다면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인지행동요법’으로 쓰이는 방법이 글쓰기이다. 특히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려운 시험을 앞두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쓴 사람들이 시험 결과도 유의미하게 높아졌다고 한다. 심리적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글로 쓰기만 해도, 긴장과 스트레스가 완화된다는 게 놀랍다. 글을 쓸 때 ‘생각한다’, ‘느낀다’ 등과 같은 사고와 이해에 관련된 언어를 쓰면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된다고 한다. 언어화를 통해 감정이 객관적으로 분석이 되면서 차분해지고, 감정 조절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글을 쓴다는 건 나에 대해 알기 위한 지름길이다. 처음부터 긴 글을 쓰려고 하다가는 백지의 압박을 못 견디고 포기하기 쉽다. 그러니 휴대전화 메모장을 활용해서 매일 조금씩 내 마음 관찰 일지를 써 보길 권한다. 바쁜 일상이지만 내 마음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봐 준다면 자신과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나 자신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일기 쓰기를 추천한 바 있다. 특별히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 있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한두 문장으로 남겨 놓으면 된다. 오늘 하루 잘 지냈는지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 보는 건 어떨까. 정 쓸 말이 없으면 셀프 칭찬을 해주는 것도 좋다. 듣고 있는 노래 가사나, 오늘 받은 문자 메시지를 적어 봐도 괜찮다. 매일 다른 한 가지 질문에 답하도록 구성된 일기장도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다. 종이가 아니라 휴대전화 앱으로 일기를 쓸 수도 있어 더욱 간편하다. 내가 나와 대화하려는 시도, 그것이 나와 조금 더 친해지는 기회가 된다. 나에게는 그런 사소한 기록들이 모여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쓸 기반이 되어 주었다.
혼자 살면서 공허할 수도 있었던 시간에 독서와 글쓰기는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특히 마음을 다스리는 데 이만한 처방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난제였던 가족 갈등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독서와 글쓰기의 힘으로 마음이 진정됨을 경험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심리적 독립에 큰 기둥이 되어 주는 건 여전히 독서와 글쓰기이다.
제목에 쓴 ‘빛을 향해 한 걸음 더’는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빛’이란 자기 확신이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반짝반짝하니까. 낯선 곳에서 일하고 혼자 살면서 시작한 도전은,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다양한 배움과 취미 활동은 긍정적 자아상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그늘진 곳을 햇빛으로 말려서 뽀송하고 가벼운 삶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건, 나를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근거 있는 믿음이 바로 자기 확신이다. 어떤 어둠 속에서도, 자기 확신이라는 빛이 있다면 헤쳐 나갈 수 있다. 누구보다 든든한 내 편은 바로 나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참고 자료] 홋타 슈고,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p.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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