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에필로그 - 이사를 앞두고 -

<독립을 처방합니다> 7. 나를 일으켜준 독립 처방의 시간

by 청풍명월

슬퍼질 때 일기를 썼다. 집에서, 조용히, 혼자. 거실에 놓인 책상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나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 시간들이 나를 키워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 준다는 느낌이 편안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마음에도 한 줄기 햇살이 머무는 시간이었다. 푹 쉬고, 잘 먹이고, 산책할 기운이 마법같이 생겨났다.

일기장은 내 곁에서 묵묵히 지지해 주는 반려와 같은 존재였다. 나조차도 잊어버린 내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담아 두었던 일기장은 수년이 지나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 일기장을 뒤적이다 보면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사적인 기록들에 기대어 글을 썼고, 지금 이렇게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고 있다. 그 기록들이 아니었다면 무엇이 나를 이끌어왔는지, 내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게 다 휘발되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소중한 그 기억들을 되살리고 있다.

본가에 살던 시절의 나는 꽤 치열했다. 일, 연애, 가족 무엇하나 만족하는 게 없었고, 마음은 황량했으며 이따금 왜 이렇게 괴로운지 알 수 없었다. 그 처절한 기록을 다시 보니 내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다. 어두운 터널과 같은 시간을 지나 이제는 빛이 있다는 걸 알고 나아갈 수 있으니까. 빛이란 밖에 있지 않다. 빛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에서 나온다. 이대로도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20대까지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구했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인정받으려 눈치를 보다 보니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몰랐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내가 내 마음을 외면했으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혼자 살면서 나를 1순위로 대우해 주는 연습을 시작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걸 선택하고, 나의 부족한 점도 괜찮은 점도 모두 다 인정하려고 노력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인정. 그것이 30대 초에 혼자 살면서 세운 원칙이다.

혼자 사는 것은 가족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었다. 불안과 통제 성향이 있는 엄마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니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엄마를 대할 때 내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요령이 생겼다. 떨어져 살다 보니 싸우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고, 엄마도 내게 말을 조심하니 사이가 이전보다 나아졌다. 가끔 불쑥불쑥 감정이 올라오긴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성찰을 유도한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당장 얼굴을 맞대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관계 회복에 도움을 준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가족들을 다시 보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아빠도 동생도 엄마도 각자 살아내기 힘들었던 시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내가 피해자라 생각할 적에는 한없이 서글프고 억울했지만, 글을 쓰면서 한걸음 멀리 바라볼 기회가 되었다. 가난한 시절에 어떻게든 살아 내려고 애쓰던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가족이 안쓰러운 한편 지난 세월을 무탈하게 견뎌 내 주어서 고마운 마음도 든다.

독립 처방은 제2의 인생을 열어 주었다. 나를 미워하지 않고 보듬어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살면서 생기는 과제를 해결하면서 어려움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존감이 회복되자 가족을 향한 뒤틀린 시선을 거두고 바로 보게 됐다. 왠지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나에게 가만히 물어볼 수 있다. 두려움에서 비롯한 불편한 감정들이 지나가기까지, 다른 일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걸 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불안은 사그라진다.

독립 처방으로 얻은 것은 자기효능감, 회복탄력성, 그리고 함께 살기에 적합한 능력이다. 혼자 사는 데 ‘함께 사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하면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려 한다. 혼자 살면서 집안일을 해결하며 느낀 것은, 나라는 인간의 품위 유지를 위해 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가에 있을 때 부모님의 노동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생활 노동의 힘듦과 가치를 안다는 건 가족에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감사 표현은 모든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혼자서 하기 힘들었던 걸 가족과 함께 하면 더 수월하고, 혼자서 못 한 일도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독립은 ‘나를 어른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사람은 이제 둘이서도, 더 나아가 셋이서도 살 준비가 된 것이다. 혼자 있어 본 사람이 함께 사는 이의 소중함을 더 잘 안다.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과 나란히 걸을 수 있다. 결혼에도 면허증이 있다면, 혼자 있어 본 경험을 통해 자신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함께 하는 반려자에게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집은 내가 혼자 살기 시작한 두 번째 집이다. 이다음은 둘이서 살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나는 이제 혼자만의 삶에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상을 조심스럽게 꿈꾸고 있다. 혼자서도 괜찮게 살고 있기에 둘이 산다는 게 두렵고 걱정이 많이 된다. 함께 산다는 건 예상 밖의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외칠 수 있다. ‘혼자 살아봐서 참 다행이야.’라고.






<독립을 처방합니다>를 마무리합니다.
독자님들의 마음에 와닿는 글이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다음 글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2025년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따스한 2026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만나요.

청풍명월(淸風明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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