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해 여름, 첫 만남 (1)

인연을 붙잡기 위해 꼭 필요한 건 용기와 자신감!

by 청풍명월

소개팅은 첫 만남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건 외모이므로 화장, 헤어 스타일, 옷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미용에는 크게 관심 갖고 살지 않아 온 터라 근처 문화센터에서 퍼스널 컬러 강좌까지 수강했다. 나는 가을 웜 다크라는 진단이 나왔다. 평소 파스텔 톤의 색감을 좋아해서 그런 옷을 많이 샀는데, 진단에 따르면 그건 나와 안 맞는다고 한다. 검정색 계열의 어두운 옷을 새로 구입할 계획을 세웠다.

화장품도 나의 퍼스널 컬러에 맞는 제품으로 골라서 써 보았다. 평소에는 귀찮아 질끈 묶고 다니던 머리를 풀어 보니 어깨를 넘어서는 웨이브 스타일이 가능했다. 옷, 신발, 가방, 머리, 화장까지 전부 신경 쓰려니 온몸이 피곤했지만, 오랜만의 소개팅은 설렘 반 기대 반이었다.

드디어 첫 만남의 날이 다가왔다. 유월의 마지막 토요일, 약속 시간 5시가 가까워지자 너무 긴장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 식당 내부는 조용했고,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그를 기다렸다. 빗줄기가 흐르는 창문 밖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더 일찍 왔으나 식당 문 여는 시간까지 들어올 수 없다는 말에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먼저 결제를 해야 식사가 나오는 곳이었는데 멀리서 운전해 온 그를 생각해 식사 비용은 기꺼이 내가 냈다.

원도남의 첫인상은 썩 마음에 들었다. 얼굴이 내가 선호하는 둥글둥글한 느낌이었다. 목소리도 좋고 사투리를 쓰지 않아 말투가 부드러웠다. 나는 경상도 지역에서만 살아왔고 나도 사투리를 쓰지만, 경상도 특유의 강한 억양과 거센 말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마음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 만났지만 그동안 문자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 받은 느낌 그대로였다. 대화를 잘 받아주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식사하고 카페 갔다가 나올 때는 이미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네 시간이나 낯선 사람과 단둘이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날 밤 집에 도착해서도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톡을 주고 받았다.

원도남과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진 게 아니라서 이대로 까일까봐 걱정도 되었다. 그는 소개팅 다음 날인 일요일에 주선자와 점심 약속이 있었고, 다른 지인과도 만나기로 했다고 해서 연락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썸 탈 때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심리학 관련 책도 읽었다.

고맙게도 주선자가 원도남의 속마음을 귀띔해 주었다. 그는 나와 다시 만날 마음이 있었는데, 헤어질 때 내가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라고만 말해서 내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고 했단다. 그의 생각에 내가 예의 바르고 친절한 건지, 그에 대한 호감이 있는 건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솔직히 네 시간 동안 밖에서 처음 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집 생각이 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게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지 먼저 물어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가 혹시라도 상대방이 난감해할까 봐 선뜻 용기 내지 못했다. 자신감을 갖고 좀 더 용기를 내서 표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면 땅굴을 파는 버릇이 있었다. 상대방에 비해 내가 부족한 점을 누가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는 습관 탓에 자신감이 자꾸만 떨어졌다. 자신감 부족은 인연을 맺지 못하게 방해했다.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조급하게 굴고, 헛된 기대를 품었다가 혼자 실망하는 일도 있었다. 호감을 표현하는 데 서툰 나는 상대의 마음을 지레짐작하여 좌절하기도 했다. 그런 짓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고, 이번에는 좋은 인연을 꼭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늘 내게 알맞은 조언을 건네 주었다. 김달 작가의 에세이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기술>을 읽었는데 참 좋은 내용이 많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을 나보다 우선순위로 해버리면 사랑을 키워나가기가 힘들다. 땅굴을 파는 걸 그만두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란 걸 스스로 인정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의 참뜻을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다음 글] 3. 그해 여름, 첫 만남 (2)

매거진의 이전글2. 원도남, 상도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