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해 여름, 첫 만남 (2)

솜털 같은 자존감으로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by 청풍명월

다행히도 소개팅 다음 날 저녁에 애프터 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앞으로 2주 연속 주말 근무라서 20일 후에 만나자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듣고 말았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서 그날은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원도남이 근무 순서를 바꿔보겠다고 해서 다행히 만남을 1주일 앞당길 수 있었다.

연애에 요령이 없는 나는 20일 뒤에 만나자고 하면 ‘네, 그때 만나요~’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20일 후에 만나면 처음 본 사람과 같은 기분일 것 같았다. 최대한 가까운 시일에 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동안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해도 썸 타는 사이에 20일의 공백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길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더 빨리 다시 보고 싶으니 근무 일정 조정이 가능하냐고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의 자신감은 그 정도의 용기를 낼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 당시의 일기를 보면 그때의 나는 20일 후의 만남이라는 걸 마치 헤어짐의 씨앗인 것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원도남을 놓치고 싶지 않은 조급한 마음이 위기 경보를 발동시켰다. 불안을 다스리는 게 연애에서도 꼭 필요하다는 걸 그때부터 인지했다면 덜 힘들었을까. 20일을 차분히 기다릴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내가 순조로운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불안은 자존감을 좀먹는다. 원도남에게 연락이 오면 뛸 듯이 기뻤다가, 연락이 오지 않는 것 같으면 혼자 땅굴을 팔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내가 먼저 연락을 하면 될 것을 그때는 그게 쉽지 않았다. 연애에 있어서 지극히 수동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원도남은 이런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는 머뭇거리던 나에게 선톡을 해 주는 사람이었다.

나를 땅굴 파지 않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나의 자존감은 정말 솜털 같아서 조금만 아닌 쪽으로 바람이 불면 그 쪽으로 흩날려 버린다.
‘오늘은 내가 먼저 연락해 봐야지’ 마음 먹었을 때 그의 선톡이 와있는 기분은,
한 순간에 봄바람이 부는 듯 마음이 살랑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흔들리는 건 내 문제다. 이 사람은 나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고 있는데, 제발 혼자 땅굴 좀 파지 말자.


다시 시작된 일상, 일을 마치고 병원에 갔다가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원도남의 메시지를 받으면 누군가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그와 나누는 문자가 기다려졌다. 이전에 소개받았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대화가 기대되는 느낌이라 신기했다.


아침에 문득,
나를 떠올려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힘으로 버틴 하루.


처음 본 날로부터 2주 뒤, 두 번째 만남을 기다리면서 나는 새 옷을 마련했다. 검정 원피스가 나의 매력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여름에는 검정 옷을 거의 입지 않지만, 퍼스널 컬러 진단을 믿고 나에게 잘 어울린다는 검정색 옷을 골랐다. 더워 보이지 않기 위해서 가벼운 소재에 짧은 기장의 원피스였다. 그 옷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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