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망한 소개팅 -과거 편- (1)

내가 소개팅에서 10번 이상 망한 이유

by 청풍명월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나에게는 이게 첫 번째 연애이다. 20대도 아니고 30대 중반인데 모태 솔로였다는 게 자랑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 경험이 없는 게 죄는 아니니 이쯤에서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원도남은 내 첫 남자 친구이고,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 중에 처음으로 성공한 경우이다. 그동안 나갔던 소개팅 횟수는 기억에 남는 것만 세어 봤을 때 열 번은 넘는 것 같다. 전부 다 망한 소개팅이지만, 몇 자 기록해 보려고 한다. 소개팅에서 잘 만나 짝을 이룬 사람들 이야기는 흔하니까, 실패한 소개팅 이야기도 조금 해보려 한다.

첫 번째 소개팅은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 했다. 같은 과 언니가 좋은 사람이라며 주선해 주었고 학교 앞 양식집에서 처음 만났다. 너무 옛날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매너가 좋은 분은 맞았던 것 같다. 그러나 스무 살의 나는 누구와 연애를 할 만큼 괜찮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로맨스물이 심어 준 환상 때문에 그의 외모만 보고 실망을 했다. 현실의 사람을 볼 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였던 것이다. 로맨틱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잘생긴 남자를 내심 기대했는데, 평범한 그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주선해 준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겉모습 외에 보는 눈이 없었던 내가 어느 날 복학한 선배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선배와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먼저 말도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마음만 앞서서 그의 생각이 어떤지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동아리에서 공연을 하는 날에 작은 케이크를 선물했는데 그의 반응이 왠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거리를 두고 더 이상 말도 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는 내게 그저 욕망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의 내면에 다가갈 생각은 못하고, 그의 외모에 이끌려 트로피처럼 내 옆에 세워두고 싶었던 것 같다.

취업 후에 한 소개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사람의 내면을 보는 안목이 없었으므로 외모밖에 볼 줄 몰랐다. 안타깝게도 외모가 맘에 들었던 사람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매력적이었지만 그의 기준에 내가 별로였는지 따로 연락은 없었다. 나도 굳이 그에게 연락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연락이 오면 한 번 더 만나 볼 의향은 있었던 것 같다. 이렇듯 나의 20대 시절 소개팅이란 외모가 가장 중요했다. 일단 외모가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냉정해지기도 했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직업이 좋은 남자를 소개 받은 적도 있다. 누가 들어도 알 만한 공기업에 연봉이 나의 몇 배인 만큼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잘난 사람이 겸손의 미덕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그와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있자니 어린 시절부터 내게 잠재되어 있던 콤플렉스가 발동한 나머지 그가 재수 없게 느껴졌다.

내 콤플렉스는 출생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남자아이를 원하는 가정에 세 번째 딸로 태어났다. 남자아이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에 열등감 또는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보다 우월하게 보는 사회 속에서 열등감을 느꼈다. 부모가 원한 남자아이가 아니라 여자아이라는 점에서 죄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자아이를 경쟁 상대로 인식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자아이들을 이겨야 했다. 학업 능력을 통해 남자아이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느라 애쓰는 10대 시절을 보냈다.

20대가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래 남자 사람은 내게 경쟁 상대이자 적이었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남자 사람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가혹했다. 연애를 즐기는 대학 동기들을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남자들을 보면서 속으로 나보다 우월한지 아닌지 평가를 하고 있었다. 나보다 우월한 남자라 판단하면 묘한 질투와 동경심이 일었다. 반대로 나보다 우월한 점이 없다고 판단하면 속으로 그를 경멸하고 무시했다.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는 장거리에도 불구하고 세 번 만났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외모도 괜찮았고, 성격도 나랑 잘 맞았다. 그는 두 번째 만남에서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없었다. 장거리를 극복할 만큼 좋아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남자를 소개해 준 친구가 내 마음이 어떤지 물어봤을 때, 나는 ‘세 번은 만나봐야 알지’라며 확실한 대답을 미루었다.

세 번째 만남의 날이 되었다. 친구가 내 말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달한 모양이었다. 그는 그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낙담한 것 같았다. 나는 세 번째 만남을 기다리면서 그와 앞으로 잘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는데, 그의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내 말을 직접 듣기도 전에 그가 혼자 판단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오해를 풀기 위해 설명을 했어야 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그 사람과의 인연을 끝내고 후회했다. ‘나도 당신이 마음에 들지만, 내가 아직 확신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말하지 못한 게 가슴에 남았다.

섣불리 그 남자에게 내 말을 전한 친구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세 번은 봐야 안다’라는 내 말은 엄연한 평가가 전제된 것이다. 그는 내게 확실하게 호감을 표했고, 그에 대한 답을 기다리는 중에 내가 자신을 평가자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쓰렸을까. 그런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고 내 자존심만 부리며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었다.

30대가 되어 나이가 찼으니 결혼 상대를 찾아 보려고 소개팅에 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평가자로서의 태도는 포기하지 못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희생이 따른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내가 희생을 감수할 만큼 잘난 남자인지 평가하기 위해 더욱 깐깐한 잣대를 들이밀기도 했다. 30대 초반까지 내가 버리지 못한 집념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사귈 남자는 나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해야만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집념을 버릴 때까지 콤플렉스에 대한 많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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