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이 뜻대로 안된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돌아보기를
소개팅에도 권태기가 있을까. 어떤 시기에는 누가 주선해 주겠다고 나서도 거절을 몇 번 했다. 더 이상 소개팅에서 보이는 모습만으로 내 가치를 평가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스펙만 가지고 한두 시간 만에 서로를 판단하는 일에 염증이 났다. 내 스펙이 누가 봐도 자랑할 만한 것이라면 달랐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로 소개팅에 대한 반감이 일기도 했다.
어르신이 주선해 주시는 경우에는 결혼 전제의 만남이라는 압박감이 들어서 거절한 적도 있다. 주선자의 아드님이 한의사인데 아들 친구인 한의사를 소개해 주시겠다고 했으나,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그리고 한의사 정도 되는 사람이 나를 왜 만나겠는가 하는 생각도 한 것 같다. 언젠가부터 소개팅이 나의 외모부터 사회경제적 위치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느낌에 거부감이 들었다.
몇 번 거절하다 보니 계절이 바뀌었다. 봄도 왔으니 오랜만에 소개팅에 나가 보기로 했다. 오월의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이나 나나 서로 반하는 일 따위 없는, 뻔한 소개팅의 과정을 한번 더 통감하면서 집으로 왔다. 그에게 연달아 연락이 왔지만, 내 대답은 시원찮았다. 그 남자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 마음이 시큰둥했다. 누굴 새롭게 만나는 일에 기대감이 들지 않았다. 연애고 뭐고 귀찮고, 그냥 조용한 곳으로 혼자 여행이나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때에는 갑자기 너무 연애가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소개팅 주선을 부탁한 적도 있다. 그때 소개 받은 사람은 지금 생각하면 최악인데 당시에는 외로움에 눈이 멀었던지 괜찮아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남자는 나에게 외롭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와 술도 마시면서 속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자주 끊기는 그의 연락을 기다렸으나, 그는 답을 하지 않았다. 톡이 씹힌 상태로 그와의 인연은 허무하게 끝났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 곁에 둘 필요 없는데, 그때는 왜 그를 붙잡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심하게 외로울 때 소개팅을 하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쯤 되면 소개팅이란 나와 맞지 않는 건가,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기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음 질문이 아닐까?
‘나는 내가 남자라면 나랑 사귀고 싶을까?’
이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긍정적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나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괴로워했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사람도 나를 안 좋게 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타인을 평가하듯 다른 사람도 나를 평가한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더욱 떨어졌다. 내가 나를 예쁘게 봐 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예쁘게 본단 말인가?
독립 처방의 효과는 내가 이대로도 괜찮다는 확신을 찾은 것이다. 혼자 살아 보면서 지금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만나서 그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 더 행복해질 준비가 된 것이다. 이제 나는 비로소 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남자라면 나랑 사귀고 싶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제까지 소개팅에서 쓴맛을 보았던 경험을 나눠 보았다. 나는 또래 남자 사람에 대한 두려움, 평가를 당한다는 느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소개팅에서 인연을 찾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시작하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를 연애 상대로서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다음, 나는 소개팅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글을 썼다. 그 글을 원도남을 만나는 그날 아침에 한번 더 읽으며 다짐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 그 글은 아래와 같다.
나는 다짐한다.
하나. 남자 사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내가 좀 마음 상하더라도) 믿어 보기로 하자.
올해 나의 목표 중 하나는 ‘나를 믿어주고 다른 사람의 진심을 믿어보기’이다. 나를 좋게 봐 주고 소개해 준 주선자의 진심을 믿는다. 일단 거기서 나는 믿음을 굳건히 함으로써 소개팅남을 믿어 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인복이 꽤 괜찮았다는 믿음이 있으니, 이번 소개팅을 통해 새로운 좋은 인연이 생길 거라고 믿어 보자.
둘. 평가를 당한다는 느낌에 대한 두려움은 <소개팅 심리 수업>의 저자 ‘닥터 고양이’님의 말로 극복해 보자.
-소개팅 나갈 때 추천 마음가짐 : 상대는 나를 평가하려고 소개팅에 나온 게 아닙니다. 나와 똑같이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어서 나온 사람이죠. 그 마음을 읽어주세요. 내가 원하는 사람인지도 눈을 크게 뜨고 보면서요. ‘잘 해야겠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소개팅 상대도 좋은 인연을 만나러 이 자리에 왔을 뿐, 나처럼 거절이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저자의 말처럼 ‘잘 해야겠다’는 부담을 버리고 ‘난 너에게 보여줄 게 아주 많아. 그런데 아주 천천히 보여줄 거야’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생각하자.
셋.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내가 남자라면 나랑 사귀는 거 해볼 만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그 사람이 힘들 때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솔직히 크게 자신은 없지만, 서로 힘들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 주는 관계를 위해서 노력할 의지가 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란 건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고, 그들이 나를 좋게 봐 주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봐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와 같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내 옆에 있으면서 행복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눈을 낮추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완벽한 사람을 찾는 것만 아니라면 눈을 낮출 필요는 없다. 다만 내 눈에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 눈에도 좋아 보이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이미 애인이 있거나 결혼을 했을 수 있다. 짝이 있는 남자들은 원래도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그를 더 좋은 남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좋은 사람을 찾기보다는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을 찾아서 나만을 위한 좋은 남자로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디선가 봤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써놓고 매일 보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살아오면서 내가 어떤 이에게 호감을 느꼈다면 그의 어떤 점 때문인지 메모해 보자.
나의 경우는 남녀 불문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나 어린이에게 선뜻 친절을 베푸는 사람, 식당 종업원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예의 바른 사람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기울어졌다.
또한 자기 인생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자기 일상과 건강, 체력과 감정을 돌볼 줄 알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고, 잘못한 일에는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모는 절대 빠뜨릴 수 없다. 외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먼저 보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게 좋다. 어떤 이는 얼굴이고, 키가 가장 중요한 사람도 있고, 다부진 어깨를 보는 사람도 있다. 원하는 요소를 나열하고 우선순위를 매겨 보자. 나의 경우 인상이 진하지 않되 동글동글한 이미지, 내 눈에 귀여워 보이는 얼굴이 1순위였다. 1순위에 해당하는 것만 충족해도 소개팅에서 다음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 취향이 무엇인지 선명해진다. 그 취향에 부합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을 믿는 게 중요하다.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만났다면 내가 그에게 어울릴 만한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다른 누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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