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처방합니다> 1-(1)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일상을 벗어난 체험이나 달콤한 휴식을 위해서? 맞는 말이지만 나는 ‘우리 집의 안락함을 더 절실히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집 밖에서 먹고 즐기는 건 하루나 이틀이면 족하다. 여행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편안한 우리 집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집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그 말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일주일 중에 내가 집에만 있는 날은 평균 하루뿐이다. 여행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 밖에서 어느 정도 활동을 충분히 해 주어야 집 안에서 더욱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나는 집 밖을 좋아하는 집순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집을 좋아하게 된 건, 7년 전에 감행한 본가 탈출 덕분이다. ‘감행’은 ‘과감하게 실행함’이라는 뜻으로, 본가 탈출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번 글에서는 탈출의 배경 첫 번째를 다루려고 한다.
분가가 어려운 건 일단 처음에 부모님께 나가 살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때 죄책감은, 특히 집안이 넉넉하지 않거나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면 더욱 극심하다. 나의 경우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본가에 돌아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3년쯤 지나 일상에서 부모님과 부딪히는 일들이 잦아졌다.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그 때, 내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결국 난 엄마 아빠를 버리지 못해서, 모험을 할 용기가 없어서, 여기 웅크린다.’
이 문장에서 죄책감이 드러난 단어는 ‘버리다’이다. 그 시절의 나는 부모님을 떠나 나만의 공간에서 사는 걸 잘못처럼 여겼다. 왜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끼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성격 때문이라고 하면 답이 될까.
당시 우리 가족은 방 두 칸에 거실과 부엌, 화장실 하나가 있는 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 겨울이면 보일러에 쓸 기름을 아끼려고 집 뒤편에 간이로 만든 아궁이에 물을 끓여 썼다. 부모님이 불을 때서 가마솥에 물을 끓이면, 그 물을 담은 통을 부엌에 들여 주었다. 나는 그 통을 화장실로 옮겨서 찬물과 섞은 다음 그 물로 매일 씻었다. 거실에는 난방을 위해 등유 난로가 있었고, 밤에는 난로를 끄고 전기 장판을 사용했다. 커피포트로 데운 물로 양치를 하고, 엄마는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을 끼고 찬물에 설거지를 했다. 기름 보일러를 마음껏 트는 건 우리 집 형편에 사치였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렇게 살아온 나는 취직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이 방식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오래된 집에서 보이는 곰팡이와 부엌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괴상한 벌레들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쥐들이 달리기를 하는 천장 밑에서 누워 있으면서 이게 악몽이라면 깨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저 나는 단열이 잘 되는 집에서 보일러를 틀어 훈훈한 방과, 수도꼭지에서 온수가 나오는 화장실을 꿈꿨다. 내가 원하는 건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집에서 휴일을 보내는 거였다. 한밤중에 퇴근해서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집에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파트로 이사하는 걸 강하게 거부했고, 우리 가족이 살 만한 주택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했다. 아빠는 집 짓는 일을 한 적이 있어서, 내가 비용을 보탤 테니 새집을 짓자고 했으나 아빠는 그마저도 쉽게 수용하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쌓여 가면서도 내가 분가를 하지 못한 것은 엄마 때문이다. 이 열악한 집에 엄마만 두고 갈 수 없어 그 집에서 더 버티기로 했던 건,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아니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부모님이 여기저기 아픈 일이 잦아졌고 병원 진료를 받거나 입원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분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해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에 대한 강한 열망이 그 시절의 나를 절망하게도 했고, 희망을 품게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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