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그래도 탈출합니다 (2)

<독립을 처방합니다> 1-(2)

by 청풍명월

[일러두기] 본문에 인용한 기록은 제가 쓴 일기장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집은 완성되어 가는데 우리 가족은 갈라지고 있다.’ -2018년 9월 기록

2018년 봄, 드디어 아빠는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입주는 겨울이 다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부모님과 나, 동생까지 네 식구가 좁고 불편한 집에서 살아야 했다. 갈등이 끊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 모른다. 이번 글은 탈출의 배경 두 번째 이야기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부터 셋집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살던 집은 자가였다.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간 이후 몇 년째 집을 마련하기는커녕 변변찮은 셋집만 전전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에 대한 불만이 내 마음에 가득 찼다. 겨울이 오면 추위가 우울감을 더욱 깊어지게 했고, 분노는 종종 아빠를 향했다.

‘매우 짜증이 나고 답답한 날. 아빠한테 집 안 지어 준다고 투정을 부렸다. 내가 말을 안 하니 아빠도 말을 안 했다.’ -2017년 2월 기록
‘지금도 옆에 있지만 집 얘기만 나오면 날카로워지는 아빠를 대면할 자신이 없다. 그냥 두는 게 좋은 걸까? 싸워야 할까? 모르겠다. 정말.’ -2018년 1월 기록

지속적인 나의 요구에 아빠는 새집을 짓기 시작했지만, 그 전부터 깊이 파인 갈등의 골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새집의 완공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명분이 되었다.

‘그 날도 엄마 아빠의 대판 싸움질로 시작했다. 나도 화가 났지만 참았다. 새우 찌는 방법 차이로 싸우면서, 아빠는 엄마에게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해!”라는 구시대적 발언을 남발했다. 그냥 이젠 여기서 떠나고 싶고, 오롯이 혼자 쉬고 싶다. 외롭긴 하겠지만 더 이상 가족 때문에 스트레스 받기는 싫다.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아버지란 존재.’ -2018년 12월 기록

새 집에 입주한 뒤에도 가족과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데에는 아빠 말고도 동생이 한 몫 했다. 나와 동생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악화된 사건이 발생한 건 무더운 8월의 여름이었다. 에어컨도 없었던 집에서 선풍기로만 버티던 어느 오후였다.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려는 동생이 거실에 있던 나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바지를 입으면 비켜준다’라고 했더니 동생이 나에게 화를 내고 욕까지 했다. 당시에는 동생에게 모욕을 당한 것에 화만 냈지, 동생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 따윈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명이 있기에도 비좁은 거실이 문제였다. 나도 동생도 그저 집에서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가족과 따로 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동생도 나처럼 집에서 숨 쉴 공간이 필요해 가시를 세우던 고슴도치였을지도 모른다.

동생과의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았다. 엄마는 중재하기 위해 동생과 대화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아빠는 문제 해결의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 나의 심정은 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이제 이 집에서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나의 독립 이유와 의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아빠가 제발 집 좀 빨리 지어 줬으면 좋겠다. 이 집구석에서 숨쉬기가 정신적으로 너무나 숨막힌다.’


엄마는 연민의 대상일 때가 많았다. 엄마가 날 위해 준비해 둔 두유와 손질된 토마토, 삶은 계란 2개를 먹으며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나를 챙기는 수고로움에서 엄마를 해방시켜 주면, 우리 엄마도 행복할까.’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나에게 제공해 주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새집이 완공되면 분가해서 나 혼자 살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난 어느 날이었다. 가족들이 식사를 마치고 간 밥상 앞에서 엄마와 주고받은 대화는 이러했다.

엄마 : 오이 김치 남은 한 조각 먹고 국물도 다 먹어.
나 : 싫어.
엄마 : (잠시 후 또 강요) 국물 다 먹어라.
나 : 싫어. 왜 (가족들이 먹다) 남긴 거 내가 먹어야 해.
엄마 : 나도 먹었다.
나 : 왜 엄마랑 나만 먹어야 해.
엄마 : 혼자 살아도 먹어야 해. 아니면 버려.
나 : 나 혼자 먹던 건 괜찮아. 혼자 살 거야. 내가 엄마처럼 살길 바래?
엄마 : 혼자 살다 죽는다.
나 : 그렇게 말할 자격 없어.

내가 엄마의 뜻에 거슬리는 말을 할 때면, 엄마는 나에게 ‘죽는다’라는 저주를 하곤 했다. 그 말은 아빠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아빠는 엄마에게 ‘나랑 같이 안 살았으면 (엄마는) 죽었다’라고 말했었다. 엄마는 남편한테 들은 말을 그대로 딸에게 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당시에 나는 ‘엄마는 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마음을 크게 다쳤다. 나는 엄마의 소유물이 아닌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면 나를 억압하려고 한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엄마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 집을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독립한 후에 읽은 책 『여자는 미치지 않았다(렙 브래들리)』에서 이런 구절을 보고 엄마를 떠올렸다.

‘여성은 두려운 만큼 통제한다.’

엄마는 본인의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나를 과하게 통제하려 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불안 성향이 강한 엄마는 딸이 혼자 나가서 살겠다고 하니 걱정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나를 엄마의 말 잘 듣는 인형으로 곁에 두고 싶었지만,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 때문에 엄마는 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한 것이리라.


가족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8년, 새 집에 입주를 하기까지 가족에 대한 환멸을 지독하게 느꼈다. 어쩌면 나는 가족에게 기대를 많이 한 만큼 실망도 컸던 게 아닐까.

‘올해도 나와 우리 가족, 보금자릴 우선으로 살아야지.’ -2017년 1월 기록
‘사 년 간 번 돈 중 천만 원을 기초공사비에 쓰도록 아빠한테 보냈다. 남은 돈도 집에 쓸 것이다. 무얼 위해?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그 식사 시간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하면, 너무 소박한가.’ -2018년 3월 기록

삶의 목적이 우리 가족의 아늑한 보금자리 마련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전부 새 집 짓는 데 쏟아도 좋을 만큼, 당시의 나에게 집과 가족은 절대적 가치였다. 하지만 작은 균열이 모여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듯, 기대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아침에 엄마와 아빠의 다툼 소리에 잠을 깼다. 그 순간, 마법이 풀리고, 적나라한 현실이 닥쳐 온 기분.’
‘아침부터 주차 해 놓은 걸로 동거인*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운전을 못한다고... 나를 비난할 말이 그것 뿐이라 불쌍하다. 퇴근하고 나서는 집구석에 가기 싫어서 저녁도 안 먹고 차에서 잤다. 깨보니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동거인이라는 단어는 동생과 크게 싸우고 난 뒤에 일기를 쓸 때 동생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화목한 가정에 대한 이상과 꿈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모든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고 했던가. 꿈꾸던 삶을 찾아 나서기에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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