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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Mar 28. 2024

#2 몰입에 대하여 (1)

즐겁고 혼란스러웠던 대학교 1학년은 금방 지나갔다. 즐거움은 사라지고 혼란스러움만 남았고, 즐거움이 사라진 자리는 대신 상실감이 채웠다. 

     

대학교 2학년 1학기에 나는 무언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학회에도 가입하고, 전공수업들도 신청하고, 이제 공부도 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뭘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들이 하라는 것들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2학년 1학기에 나름대로 대학생치고는 꽤 열심히 공부를 했다. 여전히 학교 사람들과 밥약속도 있었고 이런 저런 행사들도 참여하고 친구들과 수다떨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대학생치고 충실하게 공부했다.      


그러나 학기가 끝나고 나온 성적은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왜였을까? 답은 솔직히 뚜렷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덜 똑똑해서였다.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보다(그 중 내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다) 훨씬 성적이 안 좋았고, 재수강한 과목들조차 그 전과 똑같은 성적이 나왔다.

학점을 많이 수강했던 것도 아니고 15학점 수강했는데 그 중 6학점은 재수강이었다.      


어쨌든 2학년 1학기가 끝나면서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서울대에서 우수하지 않은 학생이라는 것을. 

단지 성적으로만 그걸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2학년 전공수업에서 다른 동기들은 수업을 잘만 알아듣는데 나 혼자 알아듣지를 못했고, 가입한 학회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토론하는데 나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매주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만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서울대에서 평균 혹은 평균이하인 게 그렇게 창피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그게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      


학교수업이며 학회며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뒤떨어진다는 게 너무 창피했고 내 미래가 불안했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를 다니는 게 괴로웠다.      


나의 멍청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었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전공수업을 매주 녹음해서 3시간짜리 수업을 5시간 걸려서 들으면서 받아적고, 그 다음에 받아적은 내용을 2~3번씩 읽었다. 


그렇게 하면 겨우 그 강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노력같은 뻘짓을 하면서 2학년 1학기를 열심히 보냈지만 막상 성적은 별로였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내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고, 대학교 수업도 못 알아듣는 멍청한 내가 답답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1학년 때에는 재미있었던 술자리며 동아리활동, 사람 만나는 것은 이제 재미가 없었고, 수업은 제대로 못 따라가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길을 잃었다.      


길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나는 가장 무난한 길로 가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이 괜찮은 길이라고 하는 길, 적어도 초라한 기분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만한 적당한 길. 나에게는 그게 로스쿨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2학년 2학기에 최선을 다해보고 4.0이 넘으면 로스쿨을 목표로 계속 열심히 하고, 4.0을 못 넘으면 그만두자는 나름대로의 결심을 했다.      


그런 결심이 서자, 나는 그 목표에 다시 매달릴 수 있었다. 삶이 공허하고 길을 잃은 것 같이 외로운 느낌이 들었기에, 그 목표에 의지했다. 마치 그 목표를 이루면 이 공허감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번에 최선을 다해보고 4.0을 넘지 못하면, 앞으로는 쓸데없는 노력하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내가 공부에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내버려둘 것이다.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나는 나름대로 결의를 다지고 그 학기를 시작했다.      


그 학기에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모른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도서관이 문을 닫는 11시까지 매일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나는 여전히 수업을 잘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내가 듣는 수업들의 강의계획서를 다 뽑아서 거기에 있는 참고도서며 논문들을 싹 다 읽었다. 그것들을 다 읽느라 매일 시간이 부족했다. 

한글반 한자반의 동양사학과 논문들, 정치학 영어원서들을 읽으며 너무 힘들어서 공부하다가 도서관에서 눈물을 흘렸다. 강의계획서에 적힌 전공책들이며 논문들을 다 정리하면서 읽고, 수업을 통으로 암기하면서, 내 마음이 거기에 온통 쏠리고 집중해서 더 이상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고 놀 수도 없었다.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를 하려니) 항상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어느새 나는 매일 공부 생각만 했다. 자주 만나던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약속에 자꾸 빠져서 친구들이 서운하다고도 하고, 사람들과 약속도 다 줄이고, 유난스럽게 공부를 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최선을 다해봐야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나는 사실 그렇게 몰입하는 것으로 내 공허감을 달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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