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농문 교수님(이하 존칭 생략)의 <몰입>이라는 책을 읽으면,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방법으로서 몰입하는 법을 소개한다.
한참 전에 읽기는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용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황농문 교수는 자신이 재료공학 박사과정을 밟는 중에 ‘이 모든 것들이 내게 무슨 의미일까? 내 인생은 그저 논문 100편을 쓰고 죽는 삶이 될까?’라는 실존적 의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 실존적 의문에 사로잡히자 ‘재료공학 연구에만 매달리다가 죽을 삶’이 너무 공허하게 느껴졌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다가 ‘몰입’이라는 방법을 고안해냈다고 했다.
재료공학 연구를 자기 삶의 이유로 삼고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 다음, 그것을 중심으로 삶을 사는 것이다. 재료공학 연구가 그 자체로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라면, 재료공학 연구를 하면서 살아가는 삶에서 공허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일단 몰입대상을 설정한 후에, 구체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뇌를 몰입상태로 진입시킨다. 뇌를 한 가지 일에 골몰시키기 위해서,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하는데, 거기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 등도 포함된다.
몰입상태에 진입하는 시기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최대한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몰입대상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뇌를 거기에 적응시킨다. 일종의 명상과도 같이, 몰입대상으로 주의를 계속해서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몰입상태에 진입하게 되면, 그 몰입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내 생활을 오직 몰입(=이 경우 재료공학 연구)으로 단순화시키는 한편 몰입상태에 도움이 되는 단백질 섭취나 운동 등으로 몸상태를 관리한다.
황농문 교수가 고안한 ‘몰입’의 특징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이나 너무 어려운 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에는 쉽게 몰입할 수 있지만, 흥미없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일(예를 들면 공부나 일)에는 몰입하지 못한다. 그럴 때에, 그 몰입대상에 의식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나 자신을 몰입상태로 진입시키기 위해서 외부감각을 차단하고 내 의식과 그 몰입대상만을 남겨두고 명상하듯 골똘하게 그 몰입대상에 내 주의를 집중시키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한번 몰입에 진입한 후에는 그 몰입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계속해서 주의를 그 몰입대상에 집중시킨다.
나는 이것을 ‘인위적 몰입’이라고 명명하겠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운 몰입, 그러니까 황농문 교수가 하는 세밀한 방법들을 거치지 않아도 그냥 좋아해서 저절로 몰입하는 것과는 구별되니까.
어쨌든 그러한 ‘인위적 몰입’의 방법을 이용하면, 하고 싶지 않은 공부나 일에도 인위적으로 몰입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내가 그 책을 읽고 몰입을 시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대학시절에 했던 공부도 ‘인위적 몰입’과 비슷했다.
그저 적당히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내가 서울대에서 도저히 잘할 수 없다는 것을 2학년 1학기에 알게 되었기 때문에, 2학년 2학기에는 ‘적당한’ 수준 이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적당한 수준 이상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가는 괜찮은 길에 나도 들어서게 되면, 더 이상 외로움이나 초라함을 느낄 필요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고, 그 희망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믿고 의지했다.
나 자신을 몰입상태로 몰아넣기 위해서, 사람도 안 만나고 학교 도서관에만 상주하면서, 오직 모든 주의집중을 전공공부로 모았다. 처음에는 좀이 쑤시고 스트레스받고, 공부하기 싫고, 너무 어려워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버티고 앉아서 전공책을 찬찬히 읽는다. 아주 찬찬히 읽으면서 계속해서 주의를 모은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날 또 찬찬히 그것을 읽고, 이해되는만큼만 조금씩 정리하면서 계속 내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전공책들을 읽다보니까 조금씩 이해가 되었고 읽는 속도도 이전보다는 빨라졌다. 그러다가 중간고사를 보고, 또 다시 한달 정도 그런 식으로 공부하고, 기말고사를 봤다.
한 학기 동안 도서관에서 그렇게 계속 전공책을 붙들고 있으면서 무슨 도 닦는 것처럼 명상 비슷한 상태에서 계속 책에만 주의를 집중했다. (실제로 공부工夫의 어원이 불교에서 도를 닦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이렇게 하다보면 내 인생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듯이, 나는 공부를 하는 행위에 의지하면서 내 마음을 맡기고 매달렸다.
‘이렇게 하고도 4.0을 넘기지 않으면 이제 공부는 깔끔하게 포기하자’고 생각했는데, 그 학기 성적은 4.01이었다. 마치 나한테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도 공부해봐. 그렇지만 이렇게 미친 듯이 공부해도 겨우 4.0을 넘겼으니까, 쉽게 로스쿨에 가지는 못할거야.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해야할거야.’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그 학기를 거치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몰입상태에 진입해있었다. 황농문 교수가 말한 ‘몰입에 진입할 때의 고통스러운 시기’를 어느정도 거쳐낸 것이다.
그리고 무식하게 원서를 싹 다 읽고 통으로 수업을 암기하고 난리를 친 덕분에 머리가 트여서, 3학년 때부터는 공부가 훨씬 쉬워졌다.
그 전에는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중에서야 필기를 읽으면서 다시 이해해야 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곧장 이해가 되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멍 때리던 레포트과제는 받자마자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눈에 보였다. 또 원래는 논문 한 쪽 읽는데 한시간씩 끙끙거리면서 이해했는데, 이제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도 논문을 쓱쓱 읽었다.
머리가 트여서 공부가 쉬워지기도 했지만, 항상 몰입상태에 있으면 공부를 못할래야 못하기가 어렵다.
도서관에서 나와 집에 가는 길에도,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머릿속으로 하던 공부를 생각한다.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보면 여러 이론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갑자기 깨달아지고, 다른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지금 생각하는 것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깨달아진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것도 훨씬 재미있다. 2학년이 되어서 술자리도 새로 사람 만나는 것도 다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몰입해서 공부하는 데서 재미를 찾으니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 남은 학기에는 18학점, 20학점씩 들으면서도 거의 A+만 받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몰입하는 삶을 살면서, 나는 공허감을 잊을 수 있었다.
몰입은 확실히 공허감과 외로움을 없애준다. 그게 인위적인 방법으로서의 몰입이라고 하더라도, 몰입을 하는 동안에는 ‘의미있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공허감을 느낄 수가 없다.
그리고 몰입의 성과가 확실히 드러나니까 보상을 받는 재미도 있다.
매 학기말에 성적표를 받으면 다 A+이고, 성적장학금 나오고, 수업과제로 레포트 쓰면 우수레포트로 선정되고, 동문회에서 장학생으로 선정되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던 그 학회의 세미나를 이끌고, 졸업논문 쓴 것은 우수졸업논문으로 선정되어서 장학금받고 상을 받았다. 그렇게 몰입의 보상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나는 몰입을 권장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나는 ‘다시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몰입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한동안 격렬한 씁쓸함에 빠져들었다. 대학시절에 그렇게 공부에 몰입해서 살았던 나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나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몰라서, 몰입에 기대어서 공허감을 달래고 인생을 채우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 학부전공 공부는 끝나고 새로운 공부가 나를 기다렸는데, 다시 또 그것에 몰입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지긋지긋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갔고, 법학은 또 다시 너무 어려웠다. 또 수업 못 알아듣고, 또 너무 어렵고, 또 재미없었다. 로스쿨도, 변호사가 되는 것도, 또 아무 의미없게 느껴졌다.
그럼 나는 또 몰입을 시도해서, 법공부가 그 자체로 엄청나게 의미가 있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명상하듯 법생각에만 집중하는 그 몰입상태로의 진입시기를 거쳐서, 몰입상태에 진입한 후에도 계속적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거를, 또 해야하나?
그리고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면, 일에서도 또 똑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계속해서 몰입상태를 평생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일까?
대학을 졸업하면서 동양사학, 정치학에 대한 몰입상태에서 빠져나오고 보니까, 대학교 때 그렇게 의미를 두고 공부했던 모든 게 별로 의미 없는 것 같았다. 몰입상태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지만 몰입에서 빠져나오니까 별로 의미없게 느껴졌다.
로스쿨에서 공부를 또 그렇게 하려니까 현타가 왔다. 이번에는 법공부가 동양사학, 정치학 공부 대신 의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몰입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뭘하나.
그렇게하면 또 공허감을 달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서 평생 ‘인위적 몰입’에 의지하면서 살아야하나?
그다지 재미도 의미도 없는 것들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억지로 나 자신을 몰입시키는 걸 평생 반복하면서 살면, 내 인생에 의미가 생기나?
내가 대학교 저학년 때 느꼈던 공허감보다 훨씬 커다란 공허감이 나를 덮쳤고, 이전에 시도했던 ‘인위적 몰입’은 결국 공허감을 그 순간 달래주는 미봉책이었을 뿐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찾아온 공허감을 ‘인위적 몰입’같은 걸로 달래고 싶은 게 아니라, 차라리 그 공허감에 푹 잠겨서, 그 공허감의 끝까지 파고들어가서 정말 내 인생의 의미가 뭔지 찾고 싶어졌다.
나는 그렇게 다시 길을 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몰입하는 것에 의지할 수 없었기에,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깊은 공허감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