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장소들을 사랑한 순간부터 서울은 내 고향이 됐다
자주 가던 후카바가 있었어. 어두운 지하, 눅눅한 방석, 졸졸 물 흐르는 소리, 타닥타닥 숯 태우는 소리 들리는 곳. 술 마실 때 후카를 피우면 훨씬 금방 취하는 거 알아? 목도 금방 쉬긴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은 내가 후카바에 가자고 조르면 그건 또 무슨 재미냐며 신기해 하거나 진짜도 아닌 걸 뭐하러 하냐며 핀잔을 줬어. 그럼 뭐 어때, 재미있는데. 제일 싼 맥주 한 잔에 후카를 사서 피웠어. 사과 맛이 무난해서 자주 피웠는데 가끔 블루베리를 하자는 친구가 있어서 양보했던 기억이 나. 블루베리는 향이 너무 인공적이라 별로였는데.
여러 명이서 후카를 피울 때 재미있는 건, 호스가 하나뿐이라 순서대로 돌아가며 피워야 한다는 거야. 각자 하나씩 받은 소라 모양 플라스틱 조각을 호스 끝에 끼워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고, 그러다가 눈치껏 다음 사람한테 넘겨줘야 했어. 나 또 피우고 싶은데, 앞에 사람이 너무 오래 피우면, 대화를 듣는 시늉만 하면서 연기 뱉는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어. 대체로 눈치 있는 사람은 그 한번을 마지막으로 호스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다시 또 순서가 돌아가고.
평소에는 맥주를 마셔도 그렇게 취하지 않는데 그때는 그렇게 빨리 취해서 신기했어. 친구들이랑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안주 삼아 깔깔 웃고, 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애들도 있고, 연기 뿜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계속 조르는 애도 있고. 피우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목이 칼칼해져서 힘없이 늘어져있다가 술이 좀 깨면 이제 집에 가자며 일어났어.
가게 이름이 엄청 길었어. 매번 검색할 때마다 애를 먹었지. 얼마 전 가게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검색 결과 없음' 여섯 글자만 보여지더라. 정말 없어졌을까? 내가 잘못 검색한 걸지도 모르지. 그 계단을 내려가면, 그 장막을 걷으면, 여전히 거기 있을지도... 무엇이 정말이든지 나는 그곳에 다시 가지 않을 거야. 더 찾아보거나 확인하지 않았어. '검색 결과 없음', 이 여섯 글자에서 끝을 맺으려고.
그때는 베레모, 노르딕 가디건, 회색 코트, 길게 늘어진 은색 귀걸이 같은 것들을 좋아했어. 하루는 그렇게 입고 인천에 겨울 바다 사진을 찍으러 갔어. 서울부터 인천까지, 뻥 뚫린 공항철도 하나만 믿고 무작정 떠났어. 바닷바람이 그렇게 매서운 줄은 몰랐지. 결국 바다 구경은 잠깐 하고 지쳐서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어. 친구랑 둘이 덜덜 떨면서 공항철도를 타고, 1시간 걸려 홍대입구역에 돌아갔어. 카레 우동을 먹겠다고 말이야.
보상 심리 때문이었는지. 평소엔 비싸다며 많이 올리지도 못하던 토핑들을 대범하게 주문하고 따끈한 카레우동과 어울리는 시원한 맥주도 마셨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그때 우리는 곧 죽어도 홍대에 가는 애들이었어. 웃긴 건 누구도 홍대에 살지 않았다는 거야. 그 친구는 잠실에, 나는 영등포에 살았으니까.
공연 보러 가는 날이면 꼭 그곳을 들렀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느긋하게 걸어 공연장으로 향할 생각으로. 낡은 회색 철문을 힘껏 열 때까지 계속 궁금했어. 오늘은 또 누굴 만나게 될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예외 없이 모두 그 가게에 모여 있었어. 삐걱거리는 나무 책상, 빼곡히 쌓인 만화책과 독립출판물, 빛바랜 공연 포스터, 조용히 반짝이는 미러볼, 여기저기 진하게 묻은 카레 냄새, 비슷한 모양의 사람들.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카레를 먹었어. 좋아하는 노래가 흐르면 그걸 시작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어. 사실 늘 똑같은 이야기였는데도 지칠 줄을 몰랐어. 하면 할수록 신이 나서 더 떠들었어. 입으로는 지겹다고 말해놓고 눈은 웃고 있었어.
동네 사랑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드나들던 그 가게는 이제 없어졌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래. 단골들은 각자 자리로 사라졌고, 우리는 더이상 우리가 아니게 됐네.
당연하다는 듯이 태어나서 당연하다는 듯이 살았어. 내가 살아온 모든 곳이 부모님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서울이 내 고향'이라고 말하면 꼭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더라. 그러다 스무 살에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로 떠나면서 모두가 당연하게 서울 사람이던 곳에서 벗어났어. 대학을 다니면서 비로소 내가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인지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가 속한 곳, '내 고향'을 찾고 싶어졌어.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한 첫번째 동네가 홍대였어. 집 근처에서는 입지 못할 옷을 입어도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행인 1’로 존재할 수 있었거든. 나는 점점 대범해져서 온갖 색을 입어보며 무엇이 내 것인지 알아갔어. 홍대는 그러기에 아주 적합한 동네였어. 2000년도 초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 묶어두고 제 구역을 넓히고 또 넓히는 곳이니까. 종종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과연 어디까지가 홍대인가?’ 하는 말이 생각나네. 이러다 강북이 다 홍대라고 불리게 되는 거 아니냐면서 웃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장소들을 사랑하던 순간부터 서울은 내 고향이 됐어. 꼭 내 명의로 된 무언가에만 '내 것'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지.
그 장소들이 사라진 건, 어쩌면 차라리 잘 됐다 싶어. 누구는 그때 날 보며 좋아하는 것들을 뜨겁게 좋아할 줄 아는 모습이 부럽다고도 말했지만, 나는 부끄러웠어. 뭐든 처음이라 알고 있는 게 적었을 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무모한 걸 하면서도 무모한 줄 몰랐기 때문에. 이 동네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더없이 괴로워졌어.
그때 그 단골들이 어디선가 다시 모인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지만 나는 영영 가지 않으려고. 되살리고 싶지 않아. 되살려질 리가 없으니까. 비슷하게 만들어봐도 같지 않을 거니까. 그건 이미 거기에서 사라졌으니까. 무엇보다 그게 기억으로만 존재할 때 안전하다고 생각하니까.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낼까 가끔 생각해.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또 만나지 않겠어. 그때 그곳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한 데 묶여 있으니까. 우리는 서로 닮았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잖아. 그럼 언젠가 새로운 곳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날이 오면 우리 어디서든 만나. 서로 알아보면 눈인사를 나누자. 못 알아 본대도 원망하지 말자. ‘언제 참 좋았지’ 같은 말은 하지 않기로 해. 가버린, 오지 않을 것들은 놓아버리고 그때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