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그날 타임라인에서는 저마다 최애의 데뷔를 위해 절박하게 움직이며 잔뜩 초조해하고 있었고, 나는 거의 포기 상태였다. 그날의 방송은 생방송 무대로 이뤄졌고, 무대가 끝나면 득표 순위가 발표되며 데뷔 인원이 정해질 예정이었다. 응원하던 이가 마지막 무대에서 센터가 되었을 때에는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 같아 기뻤고, 모든 참가자가 나란히 서서 단체곡 “꿈을 꾸는 동안”을 부를 때에는 눈물이 났다. 언제나 이런 벅차오르는 순간들에 약했다. 그런 사람이 나뿐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아는 이들은 이런 포맷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돈을 벌었다.
프로듀스48이 방영하던 때는 아직 트위터를 할 때였다. 타임라인에 바쁘게 올라오는 소식들을 보며 나도 천천히 스며들었다. 모든 줄거리를 따라갈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않았지만 짧은 클립 영상만으로 관심 가는 무대 영상을 시청하고 눈에 띄는 사람을 응원하게 됐다. 프로그램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절대 보지 않거나", "욕하면서 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고 나는 후자에 속했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비롯한 걸그룹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느낀 불쾌함은 셀 수 없이 많다. 출연자 대다수가 10대, 20대 초반이라는 점. 꿈을 볼모로 잡아두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경쟁하도록 만드는 자극적인 연출 방식. 그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연출자와 대중들. 금방 누군가를 악역으로 가둬 비난하고 뒤쳐지는 사람들을 아낌없이 조롱했다. 절박한 사람을 조롱하는 만큼 우월감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로듀스48은 기존의 시리즈들과 달리 사람들이 열광할만한 요소를 또 하나 갖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어디가 더 나은 곳인지 떠드는 일이었다. 프로듀스48은 일본에서 AKB48, NMB48, HKT48(이하 48)로 활동하던 일본인 참가자들과 한국 엔터테인먼트사의 연습생들이 모여 경연을 거쳐 한일 합작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대중들은 한국의 연습생 시스템과 일본의 AKB를 비롯한 걸그룹 시스템을 두고 어디가 더 나은지 비교하는 일에 열광했다. 아이돌로서 성공했을 때의 수입과 시장 규모 등등을 이유로, 한국의 시스템이 더 우수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양쪽 모두 여성 혐오가 팽배한 환경이라는 점에서 찝찝한 결론이었지만 최애의 데뷔를 필사적으로 응원해야 한다는데에는 다들 비슷한 마음인 듯 했다. 데뷔가 뭐라고. 내 데뷔도 아니고 남의 데뷔가 뭐 그리 대수라고 싶지만, 그땐 타임라인 속 모두가 잔뜩 한을 먹고 있었다.
48 출신 멤버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멤버의 "일본 탈출"을 위해 문자 투표를 하고 지하철역에 투표를 독려하는 광고를 걸었다. 나 또한 좋아하던 참가자 중 하나가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의 데뷔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참가자들의 꿈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열악함과 하나로 묶어 외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한국 시장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홍대입구역 9번출구 앞 전광판, 그 비싼 자리에 걸린 광고를 볼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방송날, 응원하던 연습생이 제일 마지막 등수인 12등으로 데뷔 인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름이 불리자마자 눈물을 터뜨리고 힘겹게 소감을 말했다. 나도 덩달아 울며 기뻐했다. 오랜 시간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를 응원한 일이 보람있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꿈에 그리던 데뷔를 하고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프로그램 PD가 순위를 조작한 것이 밝혀졌다. 여러 번 이어져온 시리즈인 만큼 오랫동안 순위 조작 의혹이 있어왔는데, 그 의혹들이 모두 사실로 밝혀진 거다. 많은 이들이 조작으로 인해 탈락하고 말았던 참가자들을 동정했고, 그들을 대신해 데뷔 멤버가 된 이들을 솎아내려 혈안이 되어있었다.
순위 조작이 사실임을 알았을 때, 그 당시 무대를 보며 느낀 감정들이 모두 조작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내게는 결국 그저 지나갈 감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어떨까.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자주 의심하게 되는데 대중까지 나서서 열성적으로 의심하고 나아가 비난까지 쏟아낸다.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웃어야 하는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때부터 나는 눈치를 봤다. 그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이들이 미디어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대중들은 쉽게 여성 연예인들을 미워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이 사회는 그런 방식으로 내가 사랑하던 이들을 삼켜버렸다. 좋아하던 음악을 더는 듣지 못하는 건 그들이 가고 빈 자리에 남은 내가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이 좋고 공연이 좋다. 하지만 사랑하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꾸 절벽으로 내몰아지는 모습을 가만 지켜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