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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Feb 21. 2023

지하철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캐스트 : 서울 사람

환승 구간을 지나 2호선을 타러 갈 때에는 매번 신세계에 들어서는 기분입니다. 갑자기 인구 밀도가 달라지니까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2개의 이질적인 색상의 물이 서로 섞이지 않고 나뉘어 있는 모습이요.


몽롱한 아침 출근길,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눈앞에 계단이 나타납니다. 바다에서부터 출발해 강의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저는 승강장에서부터 쏟아지듯 내려오는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 승강장에 들어섭니다. 따로 힘들이지 않아도 빠르게 흘러가는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이 닿는 대로 가다 보면 승강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닐 겁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에도 700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의 지하철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가늠조차 어렵도록 많은 숫자입니다. 그중에도 2호선 이용객수는 압도적입니다.


2호선에서도 특정 지역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닮아있습니다. 저의 경우, 교대/서초/강남/역삼/선릉역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닮았습니다. 퍼석한 얼굴로 무난한 옷을 입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테일이 살아있습니다.


우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꼈고, 두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으며, 만성피로와 어깨 통증을 각각 눈 밑과 어깨에 달고 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그냥 사람들 소리가 싫어서 꼈고, 핸드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니 당연하고, 아직 카페인을 주입하기 전이라 만성피로는 도무지 감춰지질 않습니다. 어깨 통증은 거북목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갖춘 스펙이 아니겠어요.


어차피 인파 속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안 그래도 느린 알뜰폰 데이터는 아침 지하철에서는 더더욱 힘을 못 씁니다. 때문에 저는 주로 핸드폰 보기를 포기하고 2호선 열차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책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에서 비비언 고닉은 말했습니다. '거리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저는 그의 말을 약간 바꾸어 인용하고 싶습니다. '지하철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고요.


삶을 공연에 비유한다면, 지하철은 무대입니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 않습니까? 지질한 하루, 희망에 즐거운 하루라도 모두 공평하게 무대에 올려집니다.


캠코더를 들고 2호선 열차에 오른 저를 비춰봅니다. 여지없이 퍼석한 얼굴, 그리고 '2호선 그린'이 묻어있네요. 그러다가 갑자기 줌 아웃을 해요. 앞뒤좌우 모두가 카멜레온처럼 터덩터덩 소리를 내는 열차와 같은 색을 띠고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그 공연에는 '2호선 그린'같은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캐스트는 '서울 사람'입니다.


사실 ‘서울 사람’을 정의하는 건 서울에서 거주하는지 여부가 아닙니다. 삶의 한 부분이 이토록 활기차고 지극히 피로한 도시에 자리한 사람. 그가 바로 서울 사람입니다.


허무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선명한 색깔. 지하철 역을 중심으로 각기 목적지를 향해 퍼져나가는 그 색의 흔적들. 각양각색, 하지만 비슷한 색을 묻히고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고개를 들어 렌즈를 빤히 바라봅니다. 변하는 것 없이 공연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내일도 지하철에서 만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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