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으로 출퇴근하는 K-직장인의 비애
2호선은 초록색으로 표시됩니다. '2호선 그린' 저는 그 초록색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그만큼 아이코닉하거든요.
강남구에 근무하는 직장인은 '2호선 그린'을 보지 않고는 방도가 없습니다. 365일 눈을 가리고 다니지 않는 이상은요.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겨우 붙잡고 버티는 손잡이도 '2호선 그린'. 기력을 다 소진하여 고개가 하염없이 바닥을 향하는 바람에 몇 번씩 마주치는 바닥까지. 모두 같은 색입니다. 녹록지 않은 일상이 반복되는 만큼 몸에 그 색이 스며듭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심장의 색깔은 '2호선 그린'이라고.
정말입니다. 심지어 쉽게 숨겨지지도 않습니다. 며칠 전엔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워낙 친한 친구들이기도 하고, 취업을 하고 1년 만에 만난 것이라 조금 신나 있었습니다. 근무지가 강남이 아닌 친구 2명은 약속 장소와 가까워서 먼저 만나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2호선을 타고 도착했을 때, 친구들이 제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 나게 웃더니 말했습니다. "야, 너 완전 K-직장인 다 됐다!"
2호선으로 출퇴근하는 K-직장인. 저도 이들 중 하나가 되었음에 가끔은 안심하고, 또 가끔은 진저리가 났습니다.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과 함께 테헤란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서 고용주가 부르는 곳에 향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정말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이대로 사는 게 정답은 아닌 것 같은데' 생각했다가 이렇게 살지 않으면 제 한몫의 생활마저 지탱하기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환멸과 체념을 느낍니다.
이들 중 하나이길 간절히 바랐던 취준 시절도 떠오릅니다. 그때의 저는 2호선을 타고 면접을 다니며 나를 뽑아달라고 읍소했으니까요. 그중 하나라도 합격해서 2호선으로 출퇴근하게 되면 천지개벽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검토 요청이니, 확인 요청이니, 작업 요청이니 양해 부탁이니... 여전히 읍소하러 다니니까요. 물론 그 대신 근로소득이 생기긴 해도 월말마다 고정지출과 함께 빠르게 사라지니 결국엔 다르지 않습니다. 우울한 생각이지만 정말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2호선으로 출퇴근하는 K-직장인이 된 것에 기뻐야 할지 슬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알 수 없으니 이제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강남구와 그 권역을 오고 가는 지하철을 타는 삶, ‘2호선 그린’이 싫어졌습니다. 마주치면 불편해서 호흡이 가빠옵니다. 머릿속으로는 알아요. 현재 제 삶이, 제 자신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지, ‘2호선 그린’은 죄가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