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선 Feb 18. 2023

안녕하세요, 서울 사람입니다

대단한 도시에 사는 대단히 애매한 사람

마치 아이돌 인사말 같지 않습니까? 어쩐지 머쓱하네요. 작게 웃음이 나옵니다. 그래도 인사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사람입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태어나고 동작구와 영등포구를 빈번하게 오가며 자랐습니다. 어디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렀다고 보기 애매하지만, 넓게 보면 하여튼 저는 서울 토박이가 맞습니다.


토박이라기엔 진정성 측면에서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 이건 비밀인데... 남대문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그것이 다 불에 타버렸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초등학생이었죠. 마찬가지로 동대문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실물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매학교에서 온 일본인 교환학생 친구를 데리고 투어를 다닐 때 따라서 가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야, 이게 동대문이구나!”


외국인과 나란히 서서 자국의 문화재를 보고 신기하다 외치는 서울 사람, 그게 바로 접니다. 그런데도 어디 나가면 '서울 토박이' 이름표가 붙어요. 거, 역시 별 거 아니구나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서울은 면적이 작은 편입니다. 절대 크지 않지만, 태어나서부터 발 딛고 돌아다닌 ○○동, △△동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저의 온 세상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서울에 태어나서 강산이 두 번 바뀌고 남을 시간이 지나온 건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그 환경에서의 시간은 누적되면 될수록 '세계란 이런 것이다'하는 저의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를 본격적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입니다. 그때 저는 서울을 떠나 타 지역에 있는 대학에 갔습니다.


입학 후 초반에는 신입생 단톡에서 모두가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어? “ 하고요. ”서울에 살아 “라고 답하면 또 꼬리 질문이 들어옵니다. ”어 나도 서울인데, 서울 어디? “ 그렇게 서로 서울 어디인지 묻습니다. 한 번은 상대가 ”나는 혜화 쪽에 살아 “하고 답했는데, 저는 그게 어디에 있는 동네인지 몰라 벙쪘고, 그 친구는 제가 혜화를 모른다는 것에 꽤 당황해했었습니다. "대학로, 대학로 몰라?" 정말로, 몰라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인식하는 세계는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분명 '서울 사람'이지만 '서울 사람'이라기엔 애매하고 어색하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역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했던 만큼 제가 가진 것 중 가장 견고한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자네는 어디 사람인가 물으면, 서울이요 뚝딱 하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는데... 그랬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더군요. 뭔가... 애매했습니다.




"나는 어디 사람이지?"라는 질문은 "나는 어디에 소속된 사람이지?", "나는 누구지?" 하는 질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습니다.


애초에 서울 사람의 정의가 무엇일까요? 서울 사람은 뭐가 어떤가요? 대한민국에서 서울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일까요?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은 왜 생겼을까요? 왜 많은 사람들이 비싼 집값과 물가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살아갈까요? 저는 왜 서울이 좋고, 왜 서울이 싫을까요? 그러면서도 왜 서울에 살기를 욕망할까요? 왜 하필 서울일까요?


이렇게까지 고민하게 만들다니, 서울도 참 대단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저는 대단한 도시에서 사는 대단히 애매한 사람이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이어나가다 보면 질문 하나 두 개쯤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