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독서

by 선 화

이 책을 읽으면 달리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임홍빈, 문학사상, 2009.


# 이것은 내 운명

p.73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고 하면 감탄하는 사람이 있다. "무척 의지가 강하시군요"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칭찬을 받으면 물론 기쁘다. 욕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그런데 의지가 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은 그처럼 단순하게 되어 있지는 않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계속해서 달리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주위의 누군가에게 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달리는 것은 근사한 것이니까 모두 함께 달립시다." 같은 말은 되도록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만약 긴 거리를 달리는 것에 흥미가 있다면, 그냥 놔둬도 그 사람은 언젠가 스스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고, 흥미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권한다고 해도 허사일 것이다. 마라톤은 만인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다. 소설가가 만인을 위한 직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거나, 요구를 받아 소설가가 된 것은 아니다(만류를 당한 적은 있지만). 느낀 바가 있어 내 멋대로 소설가가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군가 권한다고 해서 러너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될 만해서 러너가 되는 것이다.

공감도 되고 한편으론 뜨끔하는 문단이다. 나는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몰입'이다. 모든 걸 잊은 채로 지금에 빠져든다.


'호흡과 움직임, 생각의 흐름과 내면의 파동'


모든 것이 뒤엉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은 차분해지고, 움직임은 곡선이 된다. 생각의 흐름은 물 흐르듯 흘러가고, 내면의 파동은 잔잔해진다. 그렇게 이들은 조화를 이룬다. 몰입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 나는 멈출 수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는 중요치 않다. 지칠 때까지 해야 한다. 때론 지쳐도 한다. 물론 고통스럽다. 하지만 과정의 고통보다 이들을 하지 않을 때의 고통이 더 크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동의한다. 내가 계속해서 운동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와 맞기 때문이다, 적어도 남들보다 그 순간을 다른 순간에 비해 '덜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단련한다. 사실 내 주변의 모두가 같이 느끼고 알았음 한다. 이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용기와 희망을 얻었고, 더 많은 이해와 배려를 배웠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권유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실 알고 있다. 아무리 권해도 이들이 원치 않으면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패션에 대해 깊이 알려주고 관심을 가지라고 한다면, 나 또한 그다지 관심을 깊이 가지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론 자제해야겠다..ㅎ



# 忍(참을 인)

p.103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어본다. 아무것도 없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곤, 김치와 계란이 전부다. 그러곤 생각한다. '딱 오늘까지만 배달 음식을 먹을까? 지금 돈이면 딱 오늘까지만 배달 음식을 먹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말이지..' 그러곤 배달 어플을 누른다. 먹고 싶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어플 구석구석을 뒤진다. 배가 고픈데, 생각보다 당기는 음식은 없다. 왜냐면 어제도, 그제도, 엊그제도 배달 음식을 먹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건 먹기 싫다. 하지만 회는, 초밥은, 족발은 너무 비싸다. 그렇게 휴대폰을 쳐다본 지 10분, 20분, 30분이 지났나? 나는 정신을 차린다. 다시 냉장고를 열어본다. 여전히 냉장고엔 김치와 계란뿐이다. 어제 먹었던 햄버거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리곤 깨닫는다. 아니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너무 맛있는 햄버거도 매일 먹으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물린다. 굶주림을 해결하면 회도, 초밥도, 족발도 생각나지 않을 거다. 오늘은 오랜만에 계란프라이 그리고 김치랑 밥을 먹어야겠다.



# 하루키적 사고

p.115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하루키의 말에 동의한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앞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백 가지가 된다. '오늘은 돈 버느라 바빴으니까, 오늘은 여행 가는 날이니까, 오늘은 꼭 마무리해야 할 공부가 있으니까.' 하지만 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기로 다짐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책을 읽기로 다짐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딱 이 한 가지의 이유가 나를 오늘도 책상 앞에 앉게 해 준다.


p.127
만약 이와 같은 거장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문학의 역사는 지금처럼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든다면, 셰익스피어, 발자크, 디킨스..... 그러나 거장들은 어디까지나 거장들이다. 그들은 뭐라고 해도 예외적인, 신화적인 존재들이다. 거장이 될 수 없는 세상 대부분의 작가들(물론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은 많든 적든 재능의 절대량의 부족분을 각자 나름대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여러 측면에서 보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소설을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 써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향에서 자신을 보강해 가느냐 하는 것이 각자 작가의 개성이 되고 특징이 된다.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개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보자.


p.258
개개인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가 납득이 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으면 된다. 하지만 개인의 기록, 순위, 타인의 평가는 온전한 경험과 개인적인 느낌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무엇을 배웠는지, 내가 무슨 경험을 했는지 느껴야 할 순간에 앞을 가로막는다. 시야를 가린다. 과시욕을 자극하고, 열등감을 키우기도 한다. 더 나아가 경험의 끝에 공허함을 느낀다.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쓴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낄 때가 있다. 솔직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가 무섭기도 하다. '내 경험이 누군가의 비웃음거리가 되면 어떡하지?', '내 글이 누군가에겐 수준 낮은 글 따위로 평가되면 어떡하지?'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덮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는 금세 사그라든다. 왜냐하면 진짜 중요한 것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 경험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것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해 있겠지.



# 매일 무언가를 한다는 것

p.146
그러나 그녀들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멋있다. 이렇게 해서 세계는 확실하게 어어져 가는 것이로구나, 하고 소박하게 실감한다. 그것은 결국 인류 대대로 내려오는 전달 사항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에게 뒤에서부터 추월을 당해도 별로 분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나에게는 나에게 적합한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넷플릭스를 보며 쉐도잉도 해보고, 유튜브에 '영어 잘하는 법'을 검색해보기도 한다. 거창하게 영어 공부 계획표를 작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동기부여를 얻기는커녕, 이러한 생각이 든다. '아..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해야 저 수준까지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을까?' 그러고는 다른 재밌어 보이는 영상을 클릭하고 괜스레 딴짓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영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사실을 망각해 버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생각한다. '아, 영어 공부해야 하는데.. 영어 잘하고 싶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무언가 하고자 할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그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이러한 이유를 주로 '조급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페이스를 생각하지 못한 채, 남들의 달리기 속도와 실력에 발걸음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조급함을 이겨내는 것'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달리기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자신의 성질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채,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한 채,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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