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독서

by 선 화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박병덕, 민음사, 1997.


무수히 많은 여정 속에서 나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있다. 시간의 개념은 까마득히 잊은 채, 모든 것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대로, 그저 멀리서 관조하고만 있을 때가 있다.


유치원을 다닐 때 영어로 많은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했던 순간이 지나간다.

친구들 앞에 서서 발표하기도 싫은데,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한다게 아주 최악이었다. 또한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당연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대회에 참여를 했어야 했기 때문에, 억지로 글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강렬히 남아있다. 글을 쓰는 동안에 선생님과 많은 갈등이 있었다. '왜 내가 한국에서 영어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하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도저히 그 많은 영어 문장을 다 외워서 발표할 자신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면서 몇 반이 짱인지를 겨루던 순간이 지나간다.

그때는 축구를 잘하는 것이 곧 힘이었다. 사실 별개로 축구 자체를 상당히 좋아했었다. 그래서 내 발밑에는 항상 축구공이 있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나름의 신경전도 벌였었고, 다투기도 하였으며, 하나가 되기도 했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정말 모든 걸 다 잘하는 학생이었다. 승부욕이 강한 탓이었을까, 그래서인지 나 또한 공부도 곧잘 하는 학생이었다. 그 친구에게 뒤처지지 않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하루종일 PC방에서 게임만 하던 순간이 지나간다.

중학생 때는 게임이 전부였다. 내 나이 또래는 다들 한 번씩 해봤을,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굉장히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게임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내 인생을 매진했었다. 공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게임', '게임', '게임'이었다.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면서도 어떻게 게임을 잘할지 고민하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PC방으로 달려갔으며, 집에 와서는 부모님 몰래 다시 컴퓨터를 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게임'이 도대체 뭐였길래 나를 그 지경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고등학생 때 한 여자아이를 좋아했던 순간이 지나간다.

그때는 그 여자아이랑 사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정도로 많이 좋아했다. 괜스레 안 하던 공부도 그 친구와 같이 있기 위해 연필을 잡았고, 그 아이 집 앞에 볼 일이 있다는 핑계로 데려다주곤 하였다. 그리고 우리 집 앞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고 괜히 집 앞까지 데려와서 빵을 사준 뒤, 다시 그 아이의 집까지 데려다준 적도 있다. 학교에서는 괜히 계속 말을 걸고 싶어서, 죽어도 나가지 않았던 아침 자습을 신청했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와 잘되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까.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노력을 다했던 만큼 후회는 없었다.


그 여자아이에게 다시 연락이 왔던 순간이 지나간다.

20살, 놀랍게도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사실 고등학교 내내 나를 좋아했다고 한다. 사실 그때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제서야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 거지?" 그러나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여전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린 연애를 시작했다.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느꼈다. 함께 있을 때는 그녀밖에 안보였다. 그랬던 순간이었다.


군대를 가기 전 친구들과 마지막 술 한잔을 하던 순간이 지나간다.

사실 이때부터 나 스스로 바뀌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며 나를 괴롭히던 시절이었다. 괴로웠다. 당연히 괴로웠다. 생각과는 다르게 여전히 나는 밤새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공을 차며, 한 여자아이에게 내 인생을 바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놓아주었다. 바뀌기로 결심했다. 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군대를 전역하기 전에 책을 10권이나 읽을 거라고 다짐했다(이때는 앉아서 책 한 장 읽는 것도 힘들었다).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이라 다짐했다. 전역을 할 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다짐했다.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던 순간이 지나간다.

군대는 내가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공간이다. 훈련을 통해 편안한 잠자리에 감사함을 느꼈고, 진흙이 들어간 전투식량을 먹으며 평소 먹는 밥에 감사함을 느꼈고, 하루종일 삽질과 마대자루를 옮기며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또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들과 갈등을 겪고 인간관계의 복잡성에 대해 배웠으며,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법을 배웠으며, 책임 없는 집단의 나약함을 배웠고, 한 선임으로부터 생각하는 자의 강함을 배웠다. 그리고 군대에서 더 많은 배움을 위해 대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대학에 합격했다. 이렇게 전역 하루 전, 나는 100번째 책을 끝으로 군생활에 마무리를 지었다.


대학생이 되고 스스로를 채찍질을 하던 순간이 지나간다.

대학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공부와 독서에 매진했다. 스스로를 몰았다. 끊임없이 배웠고, 끊임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이곳은 나에게 집이 아니었다. 도를 닦고 수련을 하기 위한, 그 어떠한 공간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닥치는 대로 읽었고, 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러는 중,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처음에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동아리에 들어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학과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외로웠다. 외로움은 이겨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커지기만 하였다.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순간의 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차 무뎌지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외로움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홀과 주방에서 일하던 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휴학을 했다. 이유는 잠시만 멈춰서 삶을 재정비하고 싶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목표란 것이 모호해졌다. 남들이 가는 길을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목표, 스스로 정하지도 않은 목표라는 것에 목을 매느라, 주변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하던 음식점에서 사장님께 부탁하여 주방으로 들어갔다. 홀과 주방을 모두 다 할 수 있었기에, 홀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쉬지 않고 일에 매진했다. 별 다른 목표는 없었다. 그저 오늘 일을 잘 끝내는 것, 일을 하지 않는 날은 나름대로 잘 보내는 것, 이것이 전부였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것, 이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독서와 글쓰기도 멈추고 현재에만 충실하며 열심히 살았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순간이 지나간다.

일을 해서 번 800만원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 모든 것이 낯설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거리낌 없던 영어 덕분인가, 금세 적응했고,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완전히 적응을 하고 나서는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음식을 먹고,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오스트리아와 일본의 피가 섞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독일 여학생, 암을 이겨내고 순례길을 걷고 있던 부부, 홍콩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누나, 순례길에서 쉬고 있던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빵을 나눠주던 할머니, 그라나다로 향하는 기차에서 나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대화를 하다가 마지막엔 나를 꼭 안아주던 아주머니, 세탁비가 부족하던 나에게 2유로를 기꺼이 주었던 선생님 등 너무나 많은 이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유럽에서 자신을 감추지 않는 법,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미소를 짓는 법, 처음 보는 이와 어울리는 법을 배웠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음악과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법, 흥정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20kg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걸었던 순례길 위에서는 지루함과 고독을 사랑하는 법, 급한 마음을 달래고 잠시 쉬어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마저 지나간다.
이 모든 순간을 지나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 이르렀다. 이곳에 있는 나는 온전히 사유에 머물러있다. 물론 평소에는 사유와 감각, 그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그리고 항상 이 중간 지점에 머무르기 위해 노력한다. 너무 깊은 사유는 스스로를 현실과 동떨어진 외톨이와 상처투성이로 만들고, 감각에 의지하는 순간에는 판단이 흐려져 스스로를 쾌락의 지옥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사유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을 마주하기로 한다. 마주 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들은 아마 내가 태어나기 1000년 전에,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한 것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너무나 추상적이지만, 모든 곳에서 나타나기에 말로써 표현하기가 참 까다롭다. 누군가 그 존재에 대해 알려준다면, 그들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존재를 마주할 땐, 순간 머릿속이 그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 아마 그 존재들은 '지혜'라고 불리는 것 같다. 그리고 고매한 지혜는 '진리'의 다른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p.209
가르침은 아무런 단단함도, 아무런 부드러움도, 아무런 색깔도, 아무런 가장자리도, 아무런 냄새도, 아무런 맛도 갖고 있지 않아. 그 가르침이라는 것은 말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지. 자네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도록 방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바로 이 가르침이라는 것, 바로 그 무수한 말들이 아닐까 싶어. 그 까닭은 말이지, 해탈과 미덕이라는 것도, 윤회와 열반이라는 것도 순전한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고빈다. 우리가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열반이라는 단어만이 존재할 뿐이지.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사람들의 삶에는 각자의 지혜가 존재함을 이해했다. 지식을 배우면,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을 배우면, 그것이 내 것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우리는 부처와 예수가 될 수 없다. 지혜는 자신이 나아가지 않으면, 탐구하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사문이 되어 내면을 비어보기도, 권력자가 되어 모든 것을 탐해보기도, 굶주림에 지쳐 땅을 보고 쓰러져보기도, 배부름에 취해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보기도,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다가도, 이별을 통해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자유를 찾아 문을 박차고 나서다가도, 세상에 속박되어 무력함을 느껴 보기도, 강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숲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의 조화를 느껴보기도 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의 삶에 답답함을 느낀다. 부모는 자식의 삶에, 스승은 제자의 삶에, 친구는 친구의 삶에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자신의 지혜를 가르칠 수도, 강요할 수도 없다. 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결국 뜻이 맞는 이는 자신의 선택으로 그 삶을 살아간 것이고, 뜻이 맞지 않는 이는 떠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스스로를 그런 삶으로 인도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저 우린 각자의 삶을 멋지게 영위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우린 모든 것의 끝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그곳에서 서로의 삶을 이야기해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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