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1부. 사라진 문명과 잃어버린 건축 (1~15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1994년, 터키 남동부.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는 흙먼지를 털어내며 바닥에 드러난 돌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삽질할 때마다 거대한 석조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높이 5미터, 무게 10~20톤에 달하는 거대한 T자형 석주(Stone Pillar).
기둥에는 정교한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하이에나, 뱀, 전갈, 새…
슈미트는 손을 떨며 돌 표면을 쓸었다.
“이 정도면 기원전 3천 년쯤 된 거겠지?”
그러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가 나왔을 때, 연구진은 충격에 빠졌다.
“기원전 9,600년…? 신석기 시대?”
이건 불가능했다.
고블레키 테페(Göbekli Tepe)는 12,000년 전의 인류가 만든 신전이었다.
슈미트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발견입니다.”
터키 남동부의 우르파(Urfa) 지역에 위치.
거대한 석조 기둥 200개 이상 존재.
기원전 9,600년~8,200년에 걸쳐 건설됨.
기둥에는 동물과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음.
“이게 믿어지십니까?” 슈미트는 돌기둥을 가리켰다.
연구원 아시야가 고개를 저었다.
“신석기 시대에는 이런 걸 만들 수 없었어야 해요. 이건… 너무 정교합니다.”
고블레키 테페는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도 전에 건설된 거대한 유적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거대한 신전을 세운 것일까?
고블레키 테페는 기원전 9,600년, 즉 농업이 시작되기 전에 지어졌다.
그러나 이곳을 건설한 사람들은 정착민이 아닌, 이동하는 수렵채집인들이었다.
슈미트는 연구팀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역사에 따르면, 인류는 농업을 시작한 후에야 문명을 만들었어요.”
그러나 고블레키 테페는 그 반대였다.
“여기는 도시도 없고, 농경지도 없어요. 하지만 신전은 있죠.”
이 말은 ‘신전이 먼저, 농업이 나중’이라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구원 미하일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신전이 농업을 탄생시킨 걸까요?”
고블레키 테페는 인류가 농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 돌기둥들은 어떻게 세워졌을까?
고블레키 테페의 기둥은 무게 10~20톤, 일부는 50톤에 달했다.
신석기 시대에는 금속 도구가 없었다.
그러나 돌기둥의 표면은 놀랄 만큼 매끄럽다.
정교한 조각이 가능한 기술이 존재했어야 한다.
아시야가 돌기둥의 문양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걸 단순한 뾰족한 돌로 조각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슈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 돌들을 어떻게 옮겼을까요?”
고블레키 테페 주변에는 채석장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즉, 이 돌들은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수렵채집인들이 10~20톤의 거석을 이동했다?
바퀴도 없었고, 가축도 없었다.
아시야는 기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수렵채집인들이 만든 게 아닐지도 몰라요.”
슈미트는 조용히 말했다.
“이걸 만든 사람들이 누구든, 우리가 아는 신석기 시대보다 훨씬 발전된 사회를 이루고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고블레키 테페는 왜 버려졌을까?
고블레키 테페는 일부러 흙으로 묻힌 흔적이 발견되었다.
누군가 거대한 신전을 의도적으로 매립했다.
이전 세대의 신전을 폐기하는 의식적 행위였을 가능성.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의 믿음을 버린 것일 수도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존 환경이 변화했을 가능성.
사냥과 채집이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 구조가 등장.
고블레키 테페의 기능이 상실되었을 가능성.
슈미트는 연구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닙니다.”
“이곳은 문명의 탄생을 증명하는 장소입니다.”
고블레키 테페는 우리가 알고 있던 문명의 기원을 뒤집어 놓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신을 믿기 시작했을까?
농업은 문명의 시작이 아니라, 종교 때문에 탄생한 것일까?
수렵채집인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등한 사회를 이루었을까?
아시야는 멀리 보이는 석조 기둥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기둥들이 12,000년 동안 여기에 있었어요.”
슈미트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여기에 있을 겁니다.”
고블레키 테페는 신석기 시대의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의 답은, 여전히 모래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