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2부. 신전과 궁전, 권력과 음모의 공간 (16~30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고요한 아드리아 해 위에 떠 있는 수상 도시의 심장은 언제나 활기로 넘쳤다. 좁은 수로를 따라 유유히 지나가는 곤돌라, 물결 위로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딕 건축물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거대한 바실리카,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 이 있었다.
황금빛 모자이크와 기둥들이 화려하게 빛나는 이곳은 베네치아의 영광을 상징하는 걸작이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보물이지. 이 화려함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역사학자 알렉산드로 콘티(Alessandro Conti) 는 눈을 빛내며 산 마르코 대성당의 외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예술사 연구자 소피아 로세티(Sophia Rossetti) 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대단해요. 이렇게 섬세한 장식과 모자이크는 본 적이 없어요.”
“베네치아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난과 약탈이 있었지.”
알렉산드로는 가이드처럼 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웅장한 돔 천장과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이크가 그들을 감싸 안았다.
“828년,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성 마르코의 유골을 밀반출해왔어. 돼지고기 통 속에 숨겨서 말이지.”
“왜 돼지고기였죠?”
“이슬람 세력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야. 그들은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으니까.”
소피아는 놀라움과 흥미로움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메모를 적어 내려갔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성 마르코의 유골을 신성한 보물로 여기며 대성당을 지은 거군요.”
“맞아.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야. 이곳에는 다른 보물들도 모여 있었어. 그리고 그 보물들 중 일부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지.”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약탈했을 때를 말하는 거군요?”
소피아가 빠르게 대답했다.
알렉산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게 되었지.”
그는 대성당의 보물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금과 은, 그리고 보석으로 장식된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중 일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가져온 거야. 성 마르코 대성당은 그 약탈의 결과로 얻어진 부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해.”
“그리고 아직도 그때의 보물들이 사라졌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사라진 금의 십자가’라고 불리는 성물이지.”
알렉산드로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서를 펼쳤다.
노란 빛이 오래된 종이를 비추며 미세한 먼지가 공기 중을 떠다녔다.
“이게 그때의 기록이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가져온 금의 십자가는 보물 중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겨졌지. 그러나 16세기 말,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어.”
소피아는 숨을 삼켰다.
“도난당한 건가요?”
“그렇다고들 하지. 대성당 내부에서 발생한 범죄일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어떤 이들이 몰래 빼돌렸을 수도 있어.”
“그럼 지금도 그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겠군요?” 소피아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알렉산드로는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지. 특히 최근의 조사 결과, 금의 십자가가 한때 베네치아의 귀족 가문 중 하나의 소유였다는 단서가 발견되었거든.”
“그렇다면… 아직도 베네치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말인가요?”
알렉산드로는 창문 너머로 멀리 보이는 대성당의 황금빛 돔을 바라보았다.
“베네치아는 아직도 그 보물을 품고 있을지도 몰라. 그걸 찾는 건 역사학자가 아니라… 도둑의 일이겠지만 말이야.”
베네치아의 해질녘.
소피아는 성 마르코 대성당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알렉산드로, 우리가 찾으려는 게 정말 단순한 보물일까요? 아니면… 그 보물에 얽힌 역사의 진실일까요?”
알렉산드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역사라는 건 원래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거야. 다만 우리가 할 일은 그 미로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것뿐이지.”
그들의 뒷모습을 따라 황금빛 석양이 천천히 베네치아를 물들였다.
그러나 대성당의 어딘가에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